|
오십령 주막집
https://youtu.be/i5fJrmdSO24
" 이모 . 여기 밥 좀 줘요 "
남자는 피곤한 듯 등에 짊어진 백팩을 힘들게
벗어내며 주인을 보지도 않고 밥을 시켰다
주방에서 정례 혼자 설거지를 하다 혼자 와서 식탁에 앉는 남자를 보았다 .
" 며칠만에 오는갑네 "
" 당진에 다녀 왔어요 "
" 아따 . 거기까지 가면 돈은 많이 준다요 ?"
" 이 동네는 일거리가 뜸벙뜸벙해서 안그래요 ? "
" 또 내려갈거요?"
" 거기도 별로 재미가 없어요. "
남자는 냉장고로 가서 소주 한 병을 꺼내왔다.
늘 하던대로 익숙하다.
여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얼른 계란 후라이를 만들고 시래기 국을 듬뿍 담아 남자의 식탁에 가져왔다 .
" 배 고프겄소. 술이야 찬찬히 드시고 계시오"
정례는 남자가 식당에 들어 올때부터 가슴이 은근히 뛰고 있었다.
벌써 보름이나 가까이 오지를 않아 몹시나 궁금했던 차였다.
식당은 그녀 혼자하는 작은 백반집이었다.
시장통을 끼고 있는 뒷골목이었지만 비슷한 밥집들이 몇개씩 연이어 자리 잡고 있었다
10평도 안되는 좁은 매장에 주방과 기물을 놓고 나니 식탁이야 겨우 다섯개가 자리 잡은 오밀조밀한 가게였다.
오는 손님이야 근처 상가 사람들이 와서 점심을 먹거나 저녁엔 막일 하는 사람들이 술로 저녁을 때우기도 하는 곳이다.
남자의 이름도 모른다 .
그저 언제가 같이 온 사람이 부르는 호칭이 <정씨> 였다.
그리 큰 덩치는 아니어도 균형잡힌 몸매에 준수한 인상 . 그리고 우수에 젖은 눈빛 때문에 몇번 올 때마다 은근 눈길이 가고는 하였다.
몇 달전부터 이집의 단골아닌 단골이 되었는데 < 정씨>를 더 가까이 생각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밥값이 싸다보니 막일꾼이나 근처 고시원에서 사는 남자들이 저녁이면 몇몇씩 몰려와 술추렴을 하곤 하였다
비가 종일 지분거리던 날 저녁이었다.
비 때문에 데마찌 ( 사정으로 인해 작업을 못하는 것) 가 생겨서 낮부터 술자리가 길어지던 패거리가 결국 다른 손님들과 시비가 붙었다
술값을 안 내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손님에게 시비를 걸고 급기야는 정례에게까지 시비를 걸고 식탁을 엎어버리는 사태까지 생겼다.
그때 마침 <정씨>가 저녁을 먹으러 왔다가 그 꼴을 보게 된 것이다.
" 여보슈 . 형씨들 이게 무슨 행패요 "
" 뭐야? 이거는 ?"
술에 취하기도 했지만 패거리라는 동류의식이 남자 하나 쯤이야 안중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남자에게도 행패를 부렸다 .
술꾼 하나가 남자의 가슴을 밀었다
" 남의 일이 끼지 말고 저그로 찌그러져. 임마 "
남자는 그의 손을 밀쳤다.
" 어쭈 ! 요거 봐라 . 사람을 치네 "
" 뭐야 . 어떤 싸부럴 놈이여 "
정례가 악을 쓰며 가로 막았다 .
" 왜들 술먹고 행패를 하고 그런디야. 손님한티 또 왜 그래 . ? 경찰 부를거야 "
" 경찰 ? 아 이 아줌씨가 사람잡네. 그려 불러 . 저놈이 날 쳤어 . 어서 불러봐 "
어둑해져가는 비오는 골목에 사람들은 없고
이웃 가게 주인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런 날은 종종 생기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돌아 갔다.
< 짝 >
소리와 함께 패거리중에 다른 남자 하나가 정씨의 뺨을 때렸다
" 이 새끼가 나를 쳤어 . 너 어디 한 번 죽어 봐라 "
그 남자는 자기가 먼저 정씨를 때리고 먼저 자기를 때렸다고 생떼를 쓰려 하였다.
정씨는 맞은 뺨을 쓸으면서 그 남자를 노려 보았다.
" 이 새끼 봐라 . 눈 깔어 이 시펄눔아 "
" 나와라 . 니들 "
" 정씨 참아요 ."
정례는 여러 남자들 틈에 있는 정씨에게 어서 나가달라고 소리쳤다 .
" 아유 . 요새끼봐라 "
일행은 모두 다섯이었고 그 중에 둘은 신장이 180 센티미터가 될만큼 크고 몸이 좋았다.
정씨가 먼저 식당 밖으로 나왔다 .
" 야 저 새끼 잡아 "
소리와 함께 한 녀석이 정씨의 뒷덜미를 잡으려 했다 .
순간 번개보다 빠른 정씨의 주먹이 남자의 이마에 내리 꽂혔다.
술에 취해 있었지만 엄청난 주먹의 위력에
남자는 뒤로 벌렁 나자빠져서 일어날 줄 몰랐다.
이어서 나온 큰 덩치의 녀석에게 전광석화와 같은 주먹을 명치에 박아 버렸다.
" 헉 "
짧은 외마디에 남자는 그대로 꼬꾸라졌다.
나머지 셋중의 한 남자가 정씨앞에 나섰다
주먹을 쥔 뽄새나 날렵한 발의 움직임이 싸움깨나 하는 녀석이었다.
" 얍 !"
바람을 가르듯 주먹이 날아 왔다.
정씨는 몸을 뒤로 피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
그러나 그 순간은 너무 짧았다.
정씨의 몸이 공중으로 뜨는가 했더니 어느새 그 남자는 저만큼 덱데구르 굴렀다.
그의 발이 남자의 턱을 사정없이 차버렸는데
언제 그의 발이 턱을 찼는지 모를정도로 빨랐다
" 너희들도 덤빌테냐 ?"
원래 패거리들은 약자앞에서 한없이 강하고 강자 앞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비굴해진다.
" 아주머니 . 죄송합니다 "
" 사장님 정말 저희가 죽을 죄를 졌구먼유 "
그 일행들은 가게 안의 부서진 기물을 변상하고 밥값을 내고 두손을 싹싹 빌며 물러 갔다
등치가 큰 녀석은 얼굴에 물을 뿌리고야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돌아 가는 뒷모습이 비에 젖은 짚단같았다
그날 이후 . 정례는 정씨가 오면 웬지 마음 편안해지고 마치 제 서방이라도 온 것처럼
반찬 한 두가지라도 더 만들어서 올려 놨다.
정례는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
다만 큰 기술없이 막일을 하면서 자신의 가게에 자주 들른다는 것 뿐이었다 .
이웃의 순댓국집 뚱뚱이는 가끔 찾아와서 정씨에 대해 물어 보지만 정례 역시 아무것도 아는게 없었다.
" 아따 누가 정씨 채갈까봐 그런디야 ?
정씨가 홀몸인거 같응께 자네가 한번 마음이라도 떠 보면 으쨜까 싶어서 그라제 "
" 언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한다요 "
" 참말로 . 얼굴에 딱 써붙어 있는데 그랴?
구신을 속여도 내 눈은 못속이지라 "
그럴때마다 정례는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정례 나이 올해 딱 50.
21 살에 이모의 중매로 결혼해서 매일마다 술에 찌들어 살던 신랑은 간병이 나서 먼저 세상을 떴다. 황달이 오고 새까맣게 얼굴이 타더니 그제서야 " 임자 나 살고싶네. 임자한테 너무 미안하구만 " 하고 한마디를 남기고 떠나갔다.
정례는 미처 눈을 못감은 신랑의 눈을 감겨 주었다 . 신랑은 하는 일마다 무슨 魔가 끼었는지 족족 털어 먹었었다.
결국은 정례가 조그마한 밥집이나마 열어서 하나 있는 딸내미를 키우며 술에 젖어 사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였다.
남편을 묻고 돌아 오는 날 .
세상이 그리 허무 할 수가 없었다.
해 준것 하나 없어도 제 남편이요 , 이십년 가까이 살 부비고 살던 서방이었는데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만 보아도 따라가면 어디선가 남편이 있을것만 같았다.
그래도 제삿날이면 딸 미순이랑 남편 젯상에 그 웬수같은 술 한 잔 올릴때마다 눈물을 찍고는 하였는데 작년 봄 미순이년마저 제 신랑 좋다고 후다닥 결혼을 하고나니 가게를 나오나, 집에를 들어가도 막막하고 적막하기만 하였다.
그러던 차에 그런 사건이 생기고도 정씨는 아무런 내색않고 꾸준히 밥집을 찾아주니 고맙기도 하고 은근히 손님에서 남자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밤이면 혼자자는 이불 속에서 생각도 나고
정씨의 손길이 자신을 쓰다주는 상상도 할때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 정씨 아재 "
밥을 먹다가 남자가 정례를 돌아 보았다 .
" 오늘 나랑 술 한 잔 합시다 "
" 장사 않할라고 그러세요 ?"
" 마음도 싱숭생숭하고 나도 술 한 잔 하고 싶어서 그라요 "
정례는 이제 마악 볶은 소고기를 정씨 앞에 내려 놓았다.
" 웬 불고기요 ?"
" 먼저부터 정씨랑 한 잔 하려고 했었는데.오늘 손님도 없고 "
정례는 남자에게 소주 한 잔을 따랐다.
남자도 정례의 잔에 술을 따랐다.
" 무슨 일 있오?"
" 무슨 일은 ! 그저 술 한 잔하고 싶어 그라요 .자 들어요 "
두 사람은 목구멍 깊숙히 소주를 털어 넣었다.
" 아참 . 잠깐만요. "
정례는 일어나더니 간판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 아니 장사 안하려고 작정을 했어요 ?"
" 오늘이 내 생일이이유. 적적해서 술 한 잔 하려고 그래요 "
정례의 얼굴에 발그레 미소가 피었다 .
" 그런데 정씨는 이름이 뭐예요 . 맨날 정씨 정씨 부르니 정들까 겁나요 호호"
" 그냥 정씨라 부르면 됐지. 이름은 알아서 뭐할라고 . 내 이름은 봉길이요 . 정 봉길 "
" 봉길씨 . 호호 재미있어라 .이름이 "
" 뭣이 재미있어요 ? "
" 어쨋건 이렇게 둘이 술 한잔 마시니 좋아요"
" 그런데 생일이 맞긴 맞아요. 하루 푹 쉬시지"
" 이제 쉬잖아요.호호 . 오메 내 정신 좀 보소 "
정례는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갔다.
조금 있더니 전과 잡채를 한접시 가득 담아 왔다.
그런데 . 음식도 음식이려니와 정례가 옷을 말끔하게 갈아 입고 온 것이다.
" 이모가 정말 생일이 맞나 봅니다 "
" 피이 ~ 진짜 생일은 따로 있다요 . 그런데 자꾸 이모 이모 하지 마세요"
" 그럼 . 뭐라 불러요 ?"
" 김씨에 정례. 조금 촌스러워도 울 아버지가 지어 준 귀한 이름인디"
" 아 . 김정례씨 . 이쁩니다 이름이 "
" 피 . 거짓말마소 .호호호 "
"어옇튼 생일 축하 드립니다 . 이렇게 생일밥 얻어 먹으면서 선물도 준비 못했네요 "
" 호호호 . 오늘은 내가 정씨 . 아니 정 봉길씨랑 술 한잔 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랬어요 "
정례는 비어있는 남자의 잔에 술을 따랐다.
" 먼젓번 일도 고맙고해서 더 늦어지면 마음이 달아날까 못 할것 같았지라 "
" 고마워요. 어쩐지 다른날보다 상이 푸짐해서 놀랬는데 ."
" 종일 이 음식 만들면서 오늘도 안 오면 어쩌나 했어요. 괜한 짓하나 싶기도 하고 "
" 정말 고마워요 . 이런 음식 먹어 본지도 오래 됐네요 "
" 먹고 싶을때 언제든지 말만하소 . 내 얼마든지 해 줄테니 "
그 사이 한 병이 비워졌다
정례는 냉큼 한 병을 더 꺼내왔다.
" 결혼은 했소 ? 색시는 ?"
" 아직 총각이우 "
" 오메 . 아직 총각이어라 ! 뭣하다가 여지껏 장개도 안 갔오?"
"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
" 맞아. 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능가
애기 좀 해 보소 "
스무살 시절에는 그에게도 꿈이 있었고 사랑하는 여자도 있었다.
권투 특기생으로 들어간 대학 생활은 온통 장미빛 미래로 가득 차 있었다.
국가대표로 뽑힐만큼 그의 실력은 출중했다
그러나 졸업을 앞두고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메달도 땄지만 막상 당장 오라는 직장이 없었다는 현실은 그 비극의 시작이었다.
프로로 갈까 그만 은퇴를 생각할까 기로에 맞닥뜨렸을때 그는 프로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먹고 살아야 할 이유와 모셔야할 부모와 동생이 있었기에 봉길은 세계 챔피언의 꿈을 놓칠 수는 없었다.
여자는 봉길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그녀는 사랑은 젊은 시절 한때의 꿈이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부모들은 주먹질이나 하는 운동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봉길에게 그녀는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일방적인 절교에 봉길은 당황스럽기만 했고
자신을 다시 되돌아 볼 수 밖에 없었다.
세계 챔피언 . 돈과 명예가 그에게 온다면
그녀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주고 싶었고 오직 그녀만을 위해서 살것 같았는데 . 그것이 동기는 아니라 할지라도 권투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몇번의 경기에 죽을 쓰고 그는 글러브를 내려 놓았다.
그동안 쌓아왔던 피와 땀과 눈물이 베여있는 메달을 몽땅 강물에 던져 버렸다.
" 얼마나 사랑했는데 . 그 사랑앞에 이런 메달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허접한 물건일뿐 ....."
자조띤 독백과 함께 그의 지난 날의 뜨거웠던 사랑과 화려했던 흔적을 강물에 흘려 보냈다.
" 아따 .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나 "
" 다 지나간 일들인데요. 이젠 기억 속에서 모두 지웠어요 "
" 그래도 첫사랑을 어찌 잊겄소 "
정례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눈물을 글썽이었다
" 봉길씨는 나이가 몇이오 ?"
" 이제 마흔 여섯이우. 벌써 그렇게 나이만 먹었어요 ."
" 오메. 나보다 네 살이나 아래네. 호호호
누나라고 불러야 하겄소 "
봉길은 그만 웃음이 터졌다
정례의 얼굴이 마치 어린 여자아이처럼 밝고 귀여워 보였다.
" 그러면 누나 합시다. 그거 뭐 어려운가요 껄껄 "
두사람은 술기운이 올라서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벽이 하나하나 허물어지고 있었다
" 그래 그동안은 어떻게 살았소 ? 동상은 "
동대문 시장 포목점의 말단 직원이 그의 첫 직장이었다.
운동으로만 살아온 그에게 장부를 들친다거나
알 수없는 전문 용어로 채워지는 서류를 만지는 일을 그에게 하라면 그것 또한 고문보다 더한 일일 것이다.
운동으로 길들여진 그의 성실함과 체력은
다른 점포의 사장들의 눈에도 띠었다.
몇 해를 고생하고 주위의 도움으로 중간상의 일을 시작했다 . 일명 나까마라는 일로, 잘 찾지 않는 물건이나 특이한 직물을 싸게 받았다가 찾는 이가 나오면 제법 비싼 값에 팔았다 .
상가 계단 밑에 아주 작은 창고로 시작한 일이 제법 번창을 한 것도 그의 사람됨에 시작된 것이다.
봉길은 성실하고 겸손했다.
천성도 그러려니와 노력에 대한 댓가는 그를 속이거나 실망시키지 않았기에 그의 자리는 천국이었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처음 직장이었던 점포의 일을 여전히 돌봐 주는 의리 또한 지켰다.
벌어서 부모님을 봉양하고, 동생의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미친듯이 일 속에 빠졌다
가끔 여기저기서 혼처도 알아봐 주마고 했지만 봉길에게는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얼마나 가슴이 짓부수어지고 무너졌는지 두렵기만 했다
운동선수 특유의 순수함과 일종의 고지식함은 여성에 대한 거리를 두게 되었고 그런 까닭에 실생활에서 여자를 만날 시간을 억지로 만들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 봉길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때 마침 덤핑 물건을 잔뜩 외상으로 받았다.
봉길은 처음에 그것을 마다했었다.
그러나 큰 물건을 처분할 곳이 없었던 덤핑 사장은 ( 공장에서 직접 물건을 원가이하로 대량 구매 ) 봉길에게 무조건 밀어 넣었다.
워낙 덩어리가 커서 오억원 어치 정도의 물건이었다. 장사는 사람 장사라 믿었던 그에게 회복이 불가능할 만큼의 폭풍이 몰아 닥친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음으로 모든 물량을 한꺼번에 가져간 지방업자가 고의부도를 내고 잠수를 탄 것이다.
앞이 깜깜하였다.
그에게 아직 이런 큰 거래가 위험부담이 많은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링위에서 어느 강자의 주먹 한 방에 녹다운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물주는 그에게 물품대금을 회수하려 했고 봉길의 성격상 그저 지나치지 못한것은 뻔한 일이었다.
세상 인심을 깨닫게 된 것도 그런 상황이 모질게 벌어지고 나서였다.
봉길에게 외상을 진 사람들은 물건값을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에는 스스로 나자빠지게 하였다.
부모님께 사드렸던 집을 줄이고 이것저것 닥닥 긁어서 물주에게 마지막 결재를 하던날 사장은 그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 자네는 이런 시장바닥에서 버틸만큼 독하지를 못해. 인간적으로는 자네를 좋아하지 않을수 없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아닌 짐승이 되야해. 그래야 살어 . 안그러면 내가 죽지 "
그리고 사장은 봉길에게 어느 정도의 돈을 쥐어 주었다.
" 이건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인 자네에게 주는 마음의 보상이라고 생각해 ."
봉길은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꺽었다.
사장이 주는 돈을 받았다.
그리고 이 고마움은 반드시 갚겠다고 하며 물러 나왔다 .
그후 봉길은 여기저기 지방을 떠돌며 막일을 하였다.
공사장의 인부처럼 마음 편한 일이 없었다.
대도시. 바닷가 도시나. 공장 굴뚝이 줄줄이 서있는 곳이나 떠도는 부초같은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서울 근교의 소도시까지 굴러 들어 오게 되었다.
" 오메 ~ 불쌍해라 "
" 불쌍하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나 자신이 그렇게 생각을 않하니 편합디다 하하 "
" 으째 사람이 그리 물러 터졌당가 "
" 이젠 더 물러 터질 것도 없어요."
" 부모님은 살아 계시고 ?"
" 네 . 아우가 잘 되어서 모시고 있지요. 제가 매달 용돈이랑 생활비도 보태니까 ...."
" 그랴 . 내가 첨 봤을 때 알아봤어라 "
" 고마워요. 누이 . 오늘 모처럼 맛나게 저녁 대접 받았어요. "
" 고맙긴 , 사람사는게 다 그런거지. "
" 사실은 오늘 여기 들른것은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된 것 같아서 마지막 인사라도 하려 왔어요 "
순간 정례는 가슴이 쿵 하며 떨어지는 것 같았다.
" 워딜 간다고 ?"
" 경상도 쪽에 일이년 짜리 공사가 있다고해서
마침 일꺼리도 마땅치 않던 참에 거기로 가려 마음 먹었어요 "
" 아따 지방엘 머허러 간다요 "
정례의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
" 정씨. 아니 봉길동상 . 안 가믄 안되겠나 ? 이젠 어디 한군데 뿌리라도 내리고 살아야허지 않소 "
" 이제 어디가서 이 한몸 받아주 곳이라도 있겠어요. 떠도는 인생이 지쳐 쓰러지면 거기가 내 무덤이면 더 바랄것도 없어요 "
" 이제 오십도 안되않는디 고것이 먼 소리여 "
눈물이 흘러 나온다.
정례의 마음 깊은 곳에서
간절하고 그리웠던 날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비가 되어 내린다.
" 누이 . 이제 일어 날랍니다 "
" 아따 .매정하긴 .조금만 더 있다 가소 "
정례는 남자의 두손을 부여 잡았다.
" 누이 내일 아침밥이나 맛나게 해줘요 "
아무말도 못하는 자신이 너무 밉기만 했다
못가게 잡고도 싶었다.
남자는 정례의 가슴안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아이고 . 지지리 복도 없는 년.
으째 팔자가 이렇다요. 나 생전 처음으로 사랑이란것 하나 가슴에 팍 꽂혀 버린 남자인디
으쩌란 말이요
하늘도 무심하시지 ..... "
정례는 그 밤을 하얗게 새우고 있었다
" 참말로 달려가서 같이 살자고 콱 붙잡고 못가게 해부러 ! 어휴 ~ 불쌍한 년 ! "
" 누이 . 어째 얼굴이 그리 부었어요 "
" 잠이 안 와부러서 그라지 "
정례는 봉길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았다.
무정한 남자. 바보같은 남자였다
얼굴을 마주하면 참고 있는 눈물이 마구 터져버릴 것 같았다.
" 몸 간수 잘 하세요. 어디 아프면 제일 슬픕디다. "
" 자네나 건강하소 . 아프면 여그로 올라오고"
" 네 . 그동안 고마웠어요."
남자는 그렇게 떠나갔다
정례는 그 뒷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눈물로 흐릿해지는 모습을 바라다 보았다 .
" 어메 .이것이 무엇이여 ?"
흰 봉투에는 제법 두툼한 돈봉투와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 누이 . 혼자 힘들게 고생하지 마시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즐기면서 사세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 돈은 누이 옷이라도 한 벌 사입으세요 .
만나면 이별이지만 또 만날 그날을 위해서
더 아름답게 살아 갑시다
동상 정 봉길 올림 >
벼락소
개울 건너 숲속에서
두견이 울고
산밤꽃 피는데
개울 소리만
슬피 흐르네
갈 때
갈 거면
간다고나 말하지
꺼져버린
가슴은
어디로 가야하나 .
비인 가슴안고
온 종일 서성이네
서성이네 .
ㅡ 峨嵯. 2014. 봄.
첫댓글 청산을 걸림없이 去來 하는 흰 구름이,
女人의 마음을 알것 소이까 ?
^^*~
구름이라고 어찌 나뭇가지 끝의 평안을 느끼지 못하겠습니까 ~
아차님
단편소설이군요
참으로 재미 있게
잘 보았습니다.
등장 인물과 사건과
또한 배경들이
나열이 잘 되어서
소설의 재미와
흥미가 느껴집니다.
나도 소설은 쓰고
있지만 정말로
스토리가 매우
인상적입니다.
정길이와 정례의
인물 사이에
맺어진 사건을
보면서 두 사람의
과거를 알게 하네요.
소설의 배경이
너무 잘된 것 같습니다.
정길과 정례의
관계는 또한
누이와 동생으로
삼고 살아가는
스토리는 가장 매우
인상이 깊습니다.
소설이란 언제나
독자들에게는
최대의 관심사이기도
하지요
폭넓은 장르와 사건의
실마리를 이어나가는
작가의 정신을 우리는
본받을 만하지요.
긴 댓글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노력하라는 의미로 받아드려도 되겠지요 !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오십령 주막집
아차님 단편소설
아주 즐겁게 보았지요
멋진 소설에 찬사른 보냅니다
건안건필하시길 바랍니다
보내주신 격려의 말씀에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더 정진하는 계기가 될것 같습니다.
건강하게 깊은 계절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