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단체 생활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구속받는 것 같아서 견디기 어려웠으나
할 수 없이 차츰 길들여지게 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갔지만 함정을 탔었고 장교로 복무하게 되어
식사때마다 식반을 드는 것은 면하게 되었고
나중에 소해정을 탔을 때는 식기가 모두 은으로 된 것을 사용하게 되었다.
직장을 다시 학교로 옮겼더니 점심시간에는 학생식당과 교직원식당이 따로 분리돼 있었지만
모두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배식을 편리하게 위해 식반(트레이)을 사용하고 있었다.
영어로는 식반을 트레이라고 하지만 일본식 발음으로 보통 추라이라고 한다.
점심 때가 되면 식당입구에서 길게 줄을 섰다가 배식구앞에서 추라이판을 들고 음식을 받아 식탁으로 가서 앉아 식사를 한다.
우리가 직장에 다니면서 생활하는 것은 다 먹고 살려고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하루 세끼 먹는 식사중에 직장 구내식당에서 그 1/3을 보내는데
대량으로 만드는 음식에 정성이 들어갈 리가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인데 그런 즐거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단지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 먹지 않으면 아니되기 때문에'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언제 '추라이 인생 신세'를 면하나? 싶었다.
요즘 집에 있으니 삼식이 신세가 되었다.
추리이 인생은 겨우 면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와꾸 인생'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나이 들면 마누라가 외출하면서 남편 반찬 차리기 귀찮아 곰탕을 끓여놓고 때가 되면 데워서 먹어라고 한다더니
마누라가 직장에 나가면서 반찬을 냉장고에 출입이 간편한 네모난 유리그릇을 사다가 거기에 담아 놓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그것도 내기가 귀찮아서
김치통 하나만 내어 놓고
밥통에서 밥 한 그릇 퍼고
마트에 내려가서 산성 막걸리 한 통 사 와서 한 사발 부어 마신다.
추라이 인생 넘어가니 와꾸 인생 찾아오고 이 담엔 무슨 인생이 찾아올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