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의 별자리들 - 사진 담론의 작은 역사 | 채승우 지음 | 보스토크 프레스.
|사진의 역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사유들이 서로 연결되는 순간
✵ 책 소개 :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부터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 수잔 손택(Susan Sontag, 1933-2004)과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 1920~1991)까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이념과 미학에 따라 등장했던 사진에 관한 담론과 저작들을 추적한다. 그 변화와 흐름을 복기하면서 동시대에 차지하는 사진의 자리와 의미를 가늠해 본다. 오랜 시간 사진기자로 일했고, 동시에 사진교육자이자 사진작가로 활동해왔던 저자 채승우는 그동안 계속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질문들을 우리에게 건넨다.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사진의 역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사유들을 서로 연결하는 이 책을 통해 그 물음에 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사진에 대하여, 공기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삶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숨을 쉬고 공기와 힘의 무게를 잊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은 때론 그 보이지 않는 힘들을 포착하게 만든다. Carla Andrade의 사진들처럼./ Adrian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흑백사진에 담아 보여주는 사진작가이다. 흑과 백으로 덮인 그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절대적인 고요와 동시에 끊임없이 재생되는 자연의 움직임이 함께 느껴진다.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빛과 바람이 보이기도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 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기도 하며, 쏟아지는 눈이 시야를 가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사진이라고는 하지만, Adrian의 사진에는 그 순간을 맴도는 앞뒤의 시간들이 함께 담겨있는 것 같다./ 천체사진 중 가장 철학적인 사진이라 여겨지는 ‘창백한 푸른 점’이다. 1977년 9월 5일 지구를 떠난 무인 탐사선 ‘보이저 1호’가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을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문학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표현해냈다. 압도적이고 광활한 어둠 속 너무도 밝은 그러나 너무도 작은 점 하나가 우리의 지구라는 사실은 정말 말 그대로 사람에게 우주적인 단위의 공허함과 두려움을 가져다주었겠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이들에겐 이 세계의 거대함에 대한 경이로움을 가져다주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들은 이 사진으로 인하여 고립 상태를 자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구에서 바라본 밤하늘 별 하나의 모습과 지구 바깥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면, 우리 지구도 이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겐 밤하늘 별 하나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 지은이 : 채승우 사진가.
작업과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는 바탕으로써, 18년 동안 중앙 일간지에서의 사진기자 경험을 큰 자산이라고 여긴다. 일찌감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사진의 말하기에 관해 관심을 두어야 했고 동시에 그 일이 간단치 않음을 다양한 차원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깃발소리>, <경제연감>, <신반차도>, <농업박물관> 등의 작업을 전시와 사진집으로 발표하고,『사진이 즐거워지는 사진책』,『사진을 찾아 떠나다』,『여행 관광 방랑』을 썼다. 지금도 공부의 범위를 넓혀 가고 있는데, 사진을 화두로 삼을 수 있던 것을 행운이라 생각한다.
“왜 다른 신문과 같은 사진을 못 찍어 왔지?” 18년간 일간지 사진 기자로 일한 저자는 상사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책을 이 문장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런 답을 찾았다. “우리는 모든 순간을 볼 수 있는 초월적 관찰자가 아니니까.” 같은 공간을 찍어도 사진기를 든 이에 따라 결과물은 늘 달라진다.
한정된 시야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사진을 찍고, 바라봐야 할까. 저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사진의 역사 속 빛났던 사유의 순간들을 별자리 지도처럼 연결했다. 총 4부에 걸쳐 발터 벤야민, 빌렘 플루서 등 사진 철학 연구자들의 담론을 소개하고,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거리들을 정리했다. 눈에 안 보이는 블랙홀을 망원경으로 찍으면 ‘사진’이라 할 수 있을까? 동일한 피사체가 담긴 사진의 표절 여부는 어떻게 가릴까 등의 고민이다. 저자는 특히 원주민을 ‘외래종’ ‘나체’로만 표현해 비판받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을 사례로 들며 피사체뿐만 아니라 이를 향한 촬영자의 태도와 시선 또한 카메라에 잘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목차 :
들어가며: 약도를 그려 당신에게 건네주기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에서 빌렘 플루서플루서(Vilem Flusser, 1920~1991)까지
사진 담론의 지형을 그리는 지도
이 책은 사진 담론의 지형을 탐험한 저자가 자신이 걸었던 사색의 길을 지도로 그려 독자들에게 건넨다. 이 지도는 크게 네 개의 별자리를 맴돌며 저마다 고유한 빛으로 반짝이는 사진 철학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 그 첫 번째인 1부 ‘사진의 코드’는 사진을 찍거나 사진을 바라보는 과정에 내재된 관습들(코드)의 윤곽을 보여준다. 사진을 찍고 바라보는 과정에서 작동하는 코드화의 문제를 짚어보는 것이다. 특히 취미사진과 보도사진, 여행사진, 가족사진 등 일상과 밀접한 사진들로 이야기를 시작해 흔히 어렵게 생각하는 사진 철학과 이론이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또한 사진 안에 담기는 소재나 표현 방법뿐만 아니라 카메라에서 구현되는 원근법적인 바라보기 역시 관습, 즉 코드에 길들여진 방식임을 밝힌다. 사진과 원근법의 관계를 설명한 여러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내는 한편, 코드화의 문제를 다뤘던 20세기 후반의 구조주의 연구자들과 포스트모더니즘 연구자들을 소개하면서 1부를 정리한다.
에롤 모리스(Errol Morris),『코끼리가 숨어 있다-사진이 드러내고 감추는 것』/ 영국 사진가 로저 펜톤이 크림전쟁 당시 찍은 사진. 비탈 아래와 왼쪽의 둔덕은 물론 길위에도 포탄들이 흩어져 있다. 시차를 두고 찍인 위의 사진과 이 사진은 '사진 조작(연출)'이라는 포토저널리즘 윤리 논쟁을 일으켰다. (사진제공 돋을새김 출판사)
먹으로 그린 한 폭 수묵화 같은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 작품 ‘SNM1A-201HC(2011년 작)’. 서로 기댄 소나무들이 살아 있는 인간 군상을 닮았다.(기사 내용관 관련이 없음)
1부 사진의 코드//1장 사진 보기에 관한 질문— 에롤 모리스(Errol Morris),『코끼리가 숨어 있다-사진이 드러내고 감추는 것』/2장 수백 년 소나무를 자른 사진가/3장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반성/4장 솔섬 사진 표절 소동/5장 상상은 구체적이어야 한다/6장 원근법이라는 코드/7장 원근법 체계와 사진/8장 구조주의의 코드 연구
◦ 2부 ‘사진이라는 매체’에서 저자는 어떤 특정한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매체로서 사진의 특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즉 단순히 장면을 찍고 바라보는 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서 근본적으로 ‘사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앞서 문제를 제기한 코드화에 관한 답을 찾자면 거리를 두고 사진의 매체적 성격을 점검해 보는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매체 자체에 관한 관심을 촉발시킨 모더니즘의 사유 과정을 살피는 한편, 모더니스트들이 던진 사진 ‘고유의’ 속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20세기 전반 사진을 크게 변화시키는 동력이었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20세기 후반에 매체 개념이 다른 차원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보여주며, 언어와 사진을 포함해 매체의 변화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벤야민, 손택, 플루서 등 여러 철학자들의 통찰을 통해 살펴본다.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피터 헨리 에머슨(Peter Henry Emerson) ‘쟁기질, 고랑의 끝(At Plough, The End of the Furrow)’, 1887. 퍼블릭 도메인
2부 사진이라는 매체//1장 블랙홀을 ‘사진’ 찍다/2장 매체에 관해 생각하기/3장 사진 고유의 속성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4장 변증법적 이미지로서의 사진/— 발터 벤야민,『사진의 작은 역사』,『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5장 바라본다는 것의 윤리— 수전 손택,『사진에 관하여』/6장 장치에 대항하여 유희하기— 빌렘 플루서,『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전(桑原史成 寫眞展), ‘다시 보는 청계천 1965-1968’> 특별전 포스터/ 다큐멘터리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가(桑原史成) 바라본 청계천-전시에 소개되는 사진은 1965년과 1968년에 촬영된 것으로, 태평로에서 동대문까지 약 2킬로미터 구간을 중심으로 아침과 저녁시간 대에 찍은 사진들
◦ 다음으로 3부 ‘사진에서 주체의 문제’에서는 예술에서 ‘작가’와 ‘독자’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했고, 그 안에서 주체의 개념 또한 어떻게 변모했는지 추적한다. 인간중심주의를 바탕에 둔 낭만주의 문학을 거쳐 모더니즘 예술에서 ‘작가’, ‘영감’, ‘창조성’ 등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살펴보고, 1960년대로 넘어와 ‘저자의 죽음’이 선포되면서 독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떠오르는 과정을 조망한다. 특히 저자는 아카이브를 문제 삼는 작업들을 통해서 사진 감상에서 독자의 역할이 커졌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러한 흐름을 거슬러 1980년대 이후 예술사진을 옹호하는 형식주의 담론에서 관객과 맥락보다 사진 내부에서 의미와 가치를 다시 찾으려 했던 시도들도 함께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주체에 관한 사유들을 전반적으로 다시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3부 사진에서 주체의 문제//1장 초월적 관찰자의 문제—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다큐멘터리 사진가』/2장 사진에 작가의 내면이 담기는가?/3장 대상, 작가, 작품, 관객/4장 생산적 방향 상실의 아카이브—존탁,「자연의 연필」/스벤스피커,『빅아카이브』/5장 예술사진을 위한 담론—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예술이 사랑한 사진(원제 Why Photography Matters as Art as Never Before (2008년)』/6장 늘 완전한 결론 없이 협상하는 자아— 루시 수터(Lucy Soutter),『왜 예술사진인가?(Why Art Photography?)』
◦ 마지막으로 4부 ‘사진적인 것’에서는 사진의 지표(index) 담론을 주요하게 다룬다. 1970년대 후반부터 여러 연구자들이 ‘사진이란 무엇인가?’ 묻고, 그 답을 사진 기호의 지표성에서 찾는 과정과 맥락을 촘촘하게 짚어본다. 이를 위해 본질을 부정하고, 실존과 현상, 상황을 탐구하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연구자들이 찰스 샌더스 퍼스의 기호 구분 위에서 사진의 지표성이 도상 기호의 동일시, 상징 기호의 코드화에 저항할 수 있는 속성으로 여겼던 과정을 되밟아간다. 그리고 실재의 조각인 사진 이미지가 보다 큰 기호 작용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 담론을 통해 예술이 실재를 다룰 수 있고, 현실의 문제에 실천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는 사진을 바라보는 독자의 역할과 책임에 관해서, 또 디지털 이후의 사진에 관해서도 생각할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4부 사진적인 것//1장 사진의 지표 담론— 필립 뒤봐,『사진적 행위(L'acte Photographique)』/2장 불연속과 모호함을 다루기— 존 버거(John Peter Berger, 1926-2017),『본다는 것의 의미(About Looking)』,『말하기의 다른 방법(Another Way of Telling)』/3장 사진적인 것— 로잘린드 크라우스,『사진, 인덱스, 현대미술』/4장 완강한 현실의 깨어남과의 대결—롤랑바르트,『밝은방』/5장 디지털 시대의 ‘지표성’ 혹은 ‘사진적인 것’— 제프리 배첸,『사진의 고고학』/6장 실재를 구성하는 예술— 할 포스터,『소극 다음은 무엇?』/7장 몽타주, 끝없는 질문으로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
나가며: 길 찾기 자체가 하나의 고유한 글쓰기/찾아보기/책에서 언급되는 주요 도서
✵ 책 속으로 :
글을 쓰는 동안 종종 내가 ‘지도’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진에 관한 생각들 혹은 개별의 사진 작업들이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지도일 것이다. 지나온 길을 볼 수 있으면 그 길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뻗어갈지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혹은 그저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일이다. (…) 이 책은 사진 전체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개별 작가나 작품에 관해서도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의 장에서 한 권의 책을 주로 다루면서도, 그 책을 전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또 다른 책이나 생각들과의 연결을 그려보고자 했다. 여기서 내가 이은 연결은 기본적으로 각 책과 저자의 생각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으며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 설명한다는 점에서 그들을 (어려운 것에서 사용해볼 만한 것으로) ‘구제’한다.
- <들어가며: 약도를 그려 당신에게 건네주기>, 9~10쪽.
보는 방식은 단지 대상을 바라보는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본다는 것은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이고, 판단은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사람들의 보는 방식을 반영할 뿐 아니라, 보는 이에게 영향을 준다. 우리가 어떤 사진을 좋아하고, 반복해서 보고 따라 하는 동안 우리는 그 사진의 보는 방식에 물들게 된다. 자신에게 익숙한 사진을 더 쉽게 이해하고 선호하며, 심지어 익숙한 사진이 더 옳다고 판단하기까지 한다.
-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반성>, 34쪽.
월천리 솔숲(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 이영일)
왜 사진에서는 표절 시비가 드물까? 오히려 이 질문이 중요할 듯하다. 사진이 모두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라 그럴까?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이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것이 아님을 모두가 알기에 표절 시비가 없는 것은 아닐까? 보통 카메라 앞의 대상을 자동으로 복사해 내는 것을 사진 매체의 기본이자 장점이라 여긴다. 여기서 사진의 복사해 내는 능력은 창조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진은 모두 독창적이지 않다고 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사진을 만드는 과정에 사진가만의 독특한 생각과 의도가 충분히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독창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 <솔섬 사진 표절 소동>, 41쪽.
우리는 핸드폰으로 친구들이 공유해 준 사진을 보고, 그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코멘트를 달아 다시 공유한다. 여기에 플루서의 질문을 이어볼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이 뭔가 했다는 생각이 오히려 관심을 끝내도록 유도하는 것 아닐까? 제의적인 동작이 뭔가를 했다는 착각과 자기만족을 일으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은 오히려 덜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세상을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 <상상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53쪽.
제한되고, 움직이지 못하는, 하나의 눈! 그 조건의 현대적 버전이 바로 카메라이다. 카메라는 한 눈으로 들여다보며 촬영한다. 그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카메라가 고정시킨 시점의 위치에서만 볼 수 있다. 사진은 프레임으로 우리의 시야를 가두고, 사진의 화질과 크기 또한 보기를 제한한다. 우리는 그 제한에 너무나 익숙해져 사진의 제약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카메라가 원근법을 기계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일점투시를 재현한다는 뜻이 아닐 수 있다. 시각의 제한 역시 재현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트릭아트에 사진이 필요한 이유이다. 눈치채지 못할 제한을 줌으로써 트릭아트가 그럴듯하게 보인다. 일종의 허위를 보여주는 체계라는 점에서 원근법 자체를 하나의 코드 혹은 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 있다.
- <원근법이라는 코드>, 59쪽.
누군가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거 뭔지 알아?”라고 물으면, 사진 안에 담긴 대상의 이름을 말할 뿐 ‘○○의 사진’이라고 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체들은 대부분 눈에 잘 띄지 않는데, 특히 사진은 사진이라는 그릇 자체가 인식되지 않도록 투명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종이 위에 인쇄되었든, 핸드폰의 액정화면에 떠 있든 사람들은 사진 속의 대상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사진이 투명해질수록 사진이라는 매체에 관해 생각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매체 자체가 코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 <매체에 관해 생각하기>, 91쪽.
삼척 댓재의 여명/ 사진 이영일
우리는 변증법적 이미지로서의 사진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변증법적 이미지가 그 안에 어떤 모순과 운동, 과정을 담고 있는 것이라면, 변증법적 이미지로서의 사진은 곧 작가의 끊임없는 질문에서 만들어진(만들어지고 있는) 이미지일 것이다. 변증법적 이미지는 단일한 것, 억압적인 것, 굳어지는 것에 반동하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의 태도를 요구하는 듯하다.
- <변증법적 이미지로서의 사진>, 106쪽.
사진기자로 일할 때, 사진부장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책은 “채승우 씨는 왜 이런 사진 없나?”였다. 그날의 신문이 나오고 나서 다른 신문사의 신문과 비교하면서 남들의 사진이 더 좋다고, 왜 그런 사진을 못 찍었느냐고 질책하는 말이다. 이러한 질책은 어떤 사건 사고의 현장에서 사진기자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가정해야만 할 수 있다. 그래야만 모든 것을 설명하는, 가장 자극적인 (잘못 이해된 의미로서) ‘결정적 순간’을 찍지 못한 것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사진기자가 초월적 관찰자여야 한다는 요구인 셈이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 개인은 초월적인 관찰자가 될 수 없다. 전쟁터이든 사고 현장이든 그 안에 속한 사람이 어떻게 전부를 볼 수 있나? 그 장소 전체를 볼 수도, 그 시간 전부를 볼 수도 없다. 이 기대치와 실제의 차이에서 문제가 생긴다.
- <초월적 관찰자의 문제>, 128~129쪽.
노르웨이 게이랑에르 헬레쉴트간 피오르드/ 사진 고앵자
나는 우리 주변에서 사진을 설명하는 말들이 종종 불분명한 것이 불만스럽다. 지표에 대한 말들도 포함된다. 이를테면, ‘사진은 도상이기도 하고, 지표이기도 하며, 상징이기도 하다’는 말은 어떤가?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있다. 사진은 대상과 닮았으니 도상 기호기도 하고,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의미를 전달하니 상징이기도 하고, 빛이 닿아서 만들어진 것이니 지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진이 도상, 상징, 지표 모두라고 말하는 것은 지표성에 대한 통찰이 주는 장점을 놓치게 된다. 적어도 롤랑 바르트와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지표 논의에 참여하려면 사진은 지표 기호라고 분명히 정의하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사진은 닮음을 보여주거나 코드를 통해 결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는 이가 뭔가 ‘행위’할 수 있는 지표-이미지로 나타난다.
- <사진의 지표 담론>, 177쪽.
디디-위베르만의 말은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해온 우리의 작업이 끝날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하는 듯하다. 우리가 살펴본 여러 연구자들이 말했듯이 새로움은, 저항은, 답은 끊임없이 묻는 과정 안에서만 발견될 것이다. 장 뤽 고다르는 ‘관객으로 하여금 보게 만드는 것’이 몽타주라고 말했다. 스스로 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하며, 그렇게 바라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몽타주, 끝없는 질문으로서>, 221쪽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Vincent van Gogh(1853-1890), Seascape at Saintes-Maries Arles(생마리의 바다풍경), 1888년, Oil on Canvas, 51x64cm, Van Gogh Museum, Amsterdam, The Netherla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