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49)
퍼펙트 칸 장승철 ・ 2023. 4. 2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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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49)
#천인적덕(千人積德)
지나가던 노스님…
떠꺼머리 머슴 순봉을 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아깝다, 아까워”
인중이 죽어 꽉 막힌 팔자
천 사람에게 덕 베풀면 살아난다는데…....
떠꺼머리 총각 순봉이가 산비탈 콩밭을 메다가
옷을 벗어젖히고 콸콸 흘러내리는 계곡에 들어가
비 오듯 흐르던 땀을 씻고 나서 삼베 보자기에 싸온
보리밥을 펼쳤다.
보리밥 한 숟갈에 일하다가 캐놓았던 더덕을 종지 속의
고추장에 듬뿍 찍어 와그작와그작 점심을 먹고 있는데
지나가던 노스님이 걸음을 멈췄다.
“아깝다, 아까워.”
순봉이를 한참 내려다보던 노스님이
혀를 끌끌 차며 산속으로 발걸음을 떼자 머리를 한대
맞은 듯 멍하니 있던 순봉이 벌떡 일어나 노스님의 가사
장삼을 잡았다.
“뭐가 아깝다는 거예요?
불쑥 한마디 던져놓고 가면 궁금해서 잠도 못 잡니다요.”
순봉이가 차가운 계곡물에 담가놓았던 호리병을 꺼내와
“곡차 한잔하세요”
하며 탁배기를 따르자 단숨에 한 잔을 들이켠 노스님과
대화가 시작됐다.
“네 관상을 보면 이렇게 지낼 팔자가 아니여.”
“아직 장가도 못 간 머슴 주제에 팔자가 펴지면 얼마나
펴지겠어요”
라며 한숨을 토하자 노스님이 말했다.
“너의 상은 나무랄 데가 없어.
다 인중이 죽어서 팔자가 꽉 막힌 거야.”
“죽은 인중을 어떻게 살려요. 타고난 팔자가 그런걸.”
순봉이 힘없이 말하자 노스님이 일갈했다.
“천인적덕(千人積德)하면 인중이 살아나!”
“도대체 천인적덕이 뭐예유?”
“천 사람에게 덕을 베푸는 일이야.”
노스님이 떠나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생각하던 순봉이 손바닥으로 땅을 쳤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다. 팔자를 고치는 거야!”
그때 마침 문둥이가 도롱이를 걸치고 어기적어기적 둑길을
지나가자 달려가 그를 계류에 데리고 가서 목욕을 시키고
새참으로 싸온 삶은 감자를 줬다.
문둥이가 눈물을 흘리고 떠났다.
그날 밤, 순봉이는 제 방 벽에 숯으로 한 획을 그었다.
다리를 절고 홀로 사는 이웃집 노인을 위해 새벽같이
우물물을 길어주고, 거지에게 신고 있던 짚신을 벗어주고,
지나가는 장님에게 명아주 지팡이를 쥐여줬다.
순봉의 방 벽면에 바를 정(正)자가 이어졌다.
다만 남에게 덕을 베풀자니 자연히 주인집 일이
소홀해져 주인으로부터 수없이 꾸지람을 들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등잔불을 들고 正 자를 세어보니
여섯 개 하고도 아래 下자, 서른셋이다.
순봉은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 천년에 천 사람에게 덕을 베푼단 말인가.
“그 술 잘 마시는 노스님 말을 믿어도 될 일인가.
덕을 베푸느라 작년에 받은 새경, 엄청나게 축났는데….
억지로 덕을 베풀자니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초리가
이상해.”
의심이 꼬리를 물자 순봉이는 물걸레로 正자들을 지워버렸다.
괜히 팔자에도 없는 헛고생을 했다.
여기고 이튿날부터는 주인집 농사일에 바짝 매달렸다.
힘든 두벌 논매기를 하고 나서 이틀 쉬는 날이 찾아왔다.
동네 머슴들과 천렵을 갔다.
힘들게 고기 잡을 필요가 없었다.
날이 가물어 냇가에 웅덩이 하나가 냇물과 동떨어져 생겨나
물고기들이 그 속에 갇혀서 바글바글한 것이다.
반디그물로 채를 뜨니 금방 물통 하나가 꽉 찼다.
매운탕을 해 먹겠다고 동네로 가다가 고기 물통을 든
순봉이 갑자기 그걸 냇물에 쏟아버렸다.
머슴 친구들 세 명이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할딱거리는 생명들, 불쌍해 못 보겠네.
내가 대신 주막에 가서 닭볶음탕 살게.”
며칠 후 산비탈 콩밭에서 콩을 뽑던 순봉이가 노스님을
만났다. 노스님이 눈을 왕방울만하게 뜨고 소리쳤다.
“인중이 살아났어!”
“스님 나는 천 사람에게 덕을 쌓기는커녕 백 사람에게도…”
얘기 끝에 순봉이 물고기 한 통을 방생한 걸 노스님이 알았다.
“그 물고기들은 전생에 사람들이었어. 맞아!”
노스님이 무릎을 쳤다.
순봉이는 꿈속에서 가리켜준 대로 산속으로 들어가
백년 묵은 산삼을 백뿌리나 캐서 팔자를 고쳐버렸다.
[출처]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49)|작성자 퍼펙트 칸 장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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