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1. 조금 다른 방식의 애국
볼리비아에서 있었던 DEA 요원들의 피살사건은 현지 대사관 인원 및 CIA측 인원들에 의해 현지 카르텔의 행동으로 유야무야 묻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초대 DEA 국장 피터 덴싱어(Peter Densinger)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교전 중에 우발적으로 죽은 것도 아니고, 여러명의 요원들이 하룻밤만에 자택에서 살해당한 사건이 고작 카르텔 짓이라고요? 차라리 아르헨티나가 민주주의 국가라는 소리를 믿겠습니다.
덴싱어 국장과 요원들, 그리고 기자들은 사건을 파헤쳐 나갔고, 드디어 이 모든 것의 진실을 캐낼 수 있었습니다. 조사결과를 받아든 국장은 놀라자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을 출구없는 마약전쟁에 빠뜨려 신음하게 한 일, 파시스트 아르헨티나가 브라질과의 전쟁에서 승리해 인종학살이 벌어진 일, 국가를 위해 몸바쳐 일하던 마약단속국 요원들이 살해된 일, 그리고 이란에 유사파시스트 황제가 복귀해 중동의 정세를 혼란에 빠뜨린 일… 이 모든 것은 한 몸뚱이에 달린 여러 개의 모가지였습니다.
이란 내전에서 신정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막기 위해 존슨 행정부가 대책을 강구했던 일, 혹시 기억나십니까? CIA는 “더러운 일에 쓸 자금은 또다른 더러운 일로 충당한다”는 그들만의 원칙에 충실했습니다. 한쪽 손을 더럽혔다면, 반대쪽 손 역시 진흙탕에 처박아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이었죠.
1971년, 국제 제재로 자금줄이 막힌 아르헨티나는 궁여지책으로 코카인과 메탐페타민을 생산해 팔아치우는 방식으로 전비를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반파시스트 연합군이 승리할 것이 유력해보였죠. 이란의 파시스트 왕당파를 지원하기 위해서 CIA는 기꺼이 이 마약 유통을 도왔습니다. 여기까지만 했으면 그나마 나았을테지만, 이란 내전 개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이들은 엄한 생각을 품기 시작합니다. “남미 전체를 마약에 찌들게 한다면 비밀공작에 필요한 수입원이 더욱 불어날테고, 그렇게 된다면 유라시아 대륙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막는 일에 효과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쿠바에서부터 팜파스 대평원에 이르는 마약 생산 및 공급 시스템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네. CIA 남미지부는 수많은 마약왕과 카르텔들의 두목이었습니다.
남미에서 벌어다준 막대한 공작금으로 미합중국은 스웨덴 의회에 막대한 불법 로비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미합중국은 사우드 왕가 내에 피바람을 일으켜 레반트의 패권을 산산조각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소련의 역린을 자극한 건 아무렴 좋은 일이었습니다…
덴싱어 DEA 국장은 이 정보를 법무부에 보고하러 가던 중 차량 폭탄테러로 사망했습니다. 진상을 알아챈 요원들과 기자들은 콜롬비아, 에콰도르, 브라질, 쿠바에서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대통령은 CIA 국장과 2시간동안 단독 면담을 가졌으나,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일은 수많은 “더러운 공작들”처럼 이렇게 묻히게 될 예정이었습니다.
…쿠바계 미국인이자 미 국방부 감찰담당관 하비에르 라모스 소령에게 의문의 두꺼운 편지가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지요…
K1. 옹호받지 못하는 행동.
이철승 정부의 포격 도발은, 소련이 연거푸 실점을 하는 현 시점에서, 정국 타개용으로 써먹힐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사건 해결을 위해, 미국이 주재하여, 미-소-중-남-북의 다자 회담이 개최 되었습니다.
이 회담에서, 소련 대표는 남한의 공식 사과및 배상, 재발 방지 확약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남한은 그걸 받아들이길 원치 않았죠.
문제가 있다면... 미국과 중국의 현 상황이었습니다. 마약과의 전쟁을 대비하며, 그리스의 상황을 주시하는 미국과, 정권 교체 이후 타협과 공존을 주장하는 중국은, 남한을 일방적으로 편들 생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남한은 소련의 요구를 받아들여, 북한과의 협정을 맺을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승리를 가져온 북한은 기쁨을 숨기지 않았고, 소련도 체면치레를 한데 성공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철승 정부겠군요...
G1. 소련의 철수. 유고의 행보는...
그리스의 시위는, 소련의 총칼로 진압 되었습니다. 플로라키스가 소련군을 불렀다는 이야기와, 소련군이 무작정 쳐들어왔다는 이야기, 진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체 사람들은 수근수근 대고들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진실이 둘중 어느것이든, 소련이 말했던 코시긴 독트린이, 5년을 채 못 버틴채 종이조각이 된 것은 자명해 보입니다.
따라서, 소련은 더이상 동구권을 납득 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걸레짝이 된 독트린을 누가 신경이나 쓰겠습니까? 다만, 중요한건... 그리스에서 군대를 빼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점령군으로 생각할것이었습니다. 이는 독트린 이전의 국제 관계에서의 문제기도 하지요... 그리스 시민들은 당연히 독일을 떠올릴테구요. 물론, 흑해함대의 주둔지이자, 북 이탈리아를 지원할 수단, 그리고 이념때문에라도 무너뜨릴수 없는 이유가 있지만... 네. 그렇게 쉽게 국가가 무너지겠습니까? 그런 걱정은 기우입니다.
그렇기에, 소련군은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총칼로 짓밟힌 시민들이, 마땅한 지도자도 없이, 뒷배도 없이 바로 들고 일어서는걸 상상하는건, 당위성이 낮았으니까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가 걱정되긴 하지만...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불만을 가진자들을 후원해 유고슬라비아를 쪼개려 하면 됩니다. 우스타샤, 밀로셰비치... 얼마나 많습니까? 티토 한사람으로 세워진 국가는 그가 죽기만을 기다리면 금방입니다...
K2.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한반도 5자회담에서 쓰디쓴 패배를 맛본 이철승 총리는 군부의 말썽꾸러기들을 다루느라 아주 죽을 맛이었습니다. 이 박정희 꿈나무들은 조국통일 완수니, 재산 균분이니, 국가 통합이니 하는 슬로건들을 마음껏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좌익인지 우익인지 구분도 안 가는군요. 윤필용 국방부장관, 김복동 육군참모총장, 그리고 그 심복인 일명 “쓰리박(박준병, 박희도, 박세직)”은 은밀하게 구국의 결단 가능성을 타전하며 문민정부를 압박해 왔습니다.
군부, 여당 내 반대파, 그리고 대중의 요구를 적당히 조율하며 겨우겨우 국정을 운영하던 이철승 총리에게 비보가 전해진 건 1974년 10월 15일의 일이었습니다. 이철승의 최측근인 내각 총리청 차관 기유현이 실은 북한 정권의 간첩이라는 정보가 폭로된 것입니다. 심지어 기유현은 이철승 총리의 비자금 장부를 관리하는 등 여러 사적인 일들도 맡고 있었는데, 총리의 부적절한 사생활에도 깊이 개입되어 있었죠.
이철승의 지지세가 대폭 꺾이자 군부는 터키식 쿠데타를 시도했습니다. “조용히 내려온다면 이 모든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 그러나 터키 때와 달리 이철승은 강짜를 부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 군의 부적절한 행동을 국민 전체에게 폭로하고 내각 재신임을 위한 의회해산, 내각총사퇴, 그리고 재총선을 발표했습니다. 최규하 외무장관은 미국, 일본, 중국 등 우방국들을 돌며 문민정부 지지를 약속받았습니다.
군부는 혼란에 빠져, 당장 엎어버리자는 쪽과 이만 꼬리를 내리자는 쪽으로 나뉘어 내분에 휩싸였습니다. 윤필용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K2-1.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윤필용 국방장관을 필두로 한 군부는 일단 총선거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사회당이 불리한 성거법과 당국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당세를 확장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상황이니 국민당이 전체 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으나, 당내 파벌간 의석분배가 문제였습니다. 만일 김대중이 이끄는 당내 좌파가 우세할 경우, 군부는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요.
선거 결과, 이철승의 동지회는 참패를 면치 못했습니다. 김대중의 국민회의 역시 어느정도 약진했지만 당내 비주류에서 벗어나지 못했죠. 승자는 김종필의 금요회, 장준하의 위국회의 지지를 받은 김영삼의 민주산악회였습니다. 새 총리가 된 김영삼은 제일 먼저 윤필용을 만나 부총리직을 제안함과 동시에, 새 국방장관에는 정승화를 내정했습니다. 김복동 육참총장은 합참의장직을 ‘약속’했고… 육참총장의 인선은 일단 미뤘습니다. 윤필용과의 독대 자리에서 김영삼은 “어느 때보다도 군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협조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작전이 단행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정승화는 군 인사실행방침이라는 서류를 김영삼에게 가져와 결재를 요청했습니다.” 국방장관, 군 통수권은 누구한테 있습니까?” 서류를 쭉 읽어보던 김영삼은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일갈했죠. “통수권은 대통령의 위임을 통해 총리께서 행사하시게 되어 있습니다.” 정승화 국방장관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습니다.
“그럼 이 짓거리는 다 뭐란 말이오?!” 역정을 낸 김영삼은 정승화에게 축객령을 내리고, 곧장 비밀리에 측근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합참의장 영전이 예정되어 있던 김복동의 자택으로 수경사 헌병대가 찾아왔습니다. 거의 동시에 필동의 육군본부에서는 박세직이, 파주의 3군사령부에서는 박준병이, 북한산의 특전사령부에서는 박희도가 체포되었죠. 그 이하 장성급 장교들 역시 보직해임 명령을 받고 우왕좌왕하고 있었습니다.
부총리로 임명된 윤필용이 공격을 알아챈 것은 자정이 가까워올 무렵에서야였습니다. 분기탱천한 그는 즉시 병력을 동원하려 했으나… 애초에 부총리에게는 어떠한 명령권도 없었습니다. 허리가 끊긴 군부세력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항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일선의 몇몇 영관급 장교들은 두목의 지시가 끊긴 상황에서도 자신의 영달과 생존을 위해 항전했습니다. 9공수여단장 장세동은 중앙청에 공수부대를 보내려 했으나 해병대 병력에게 격퇴되고 장세동 본인 역시 사살되었습니다. 3공수여단장 허화평은 항전명령을 하달하기가 무섭게 사령부 건물로 직격된 105mm 포탄에 맞고 절명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부질없는 저항을 시도하다 비극적 결말을 맞이했죠.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끝마친 김영삼 총리는 비공개 일정으로 주한 중국대사 위안차이나를 접견했습니다. “새로 사귄 친구보다는 역시 옛 벗이 믿음직하구만.” 총리와 대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A2. 진실과 국익
미합중국 국방부 감찰담당관 하비에르 라모스는 당시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하바나 가이즈(Havana Guys)”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한 쿠바에서 부모님이 한두푼씩 아낀 돈으로 공부하여, 등록금이 공짜인 웨스트포인트나 애너폴리스에 진학한 인물. 그의 국적은 미국이었으되, 하비에르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아니,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큰형이 마약 카르텔에게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미국 사업가의 가정부로 들어가 뼈가 빠질듯 일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문서를 읽은 하비에르 소령은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그날 먹은 모든 것을 게워냈습니다. 그 와중에도 그의 명석한 두뇌는 이 모든 것을 만천하에 폭로해 악의 근원을 파괴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죠. 빠르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보고 라인을 지키는 것은 가장 멍청한 행동이었습니다. 누가 이 사실을 알고 있고, 또 행정부의 어느 선까지 이 일을 기획하거나 은폐하는 일에 가담하는 지 모르는 상황에서 길은 한가지였습니다.
운좋게도, 다음 날부터 그는 1주일간의 휴가를 신청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프랑스 파리로 향한 하비에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현지 언론사에 전하는 한편, 기자회견을 준비했습니다. 개인이 거대권력을 향해 펀치를 날린 뒤에는, 가장 눈에 띄는 곳이 곧 가장 안전한 곳이었으니 말입니다.
이윽고 자유세계의 모든 언론이 이 충격적인 진실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FBI는 부랴부랴 국가의 치부를 감추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죠.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하비에르 소령이 돈을 노리고 조작된 뉴스를 뿌린 것이라 해명했지만, 언론보도에 호응한 제보가 미국 내에서도 줄을 잇자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CIA 국장은 청문회장으로 향하던 차에서 내려 절벽 밑으로 투신자살했습니다. 버드 행정부는 도덕적으로 파산했습니다. 아니, 미국의 권력자들은 “몇몇 좋은 사람들(A few good men)”에서 저질 범죄자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인들은 현 행정부 하에서 감행된 복지 삭감, 부자 감세, 긴축재정, 노조 탄압이 그나마 대의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었으나… 권력자들은 서민들을 마약에 취하게 만든 뒤 부정부패를 즐기는 악한일 뿐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자유의 수호자라 굳게 믿었던 정부는 민간인을 사찰하고,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아들딸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었으며, 자국민을 상대로 생체실험을 강행했고, 신성해야 할 대통령 선거에서 노골적인 사기극을 펼쳤으며, 이제는 국가기관을 동원해 시민들을 죽이고 마약에 찌들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들이 원하는 것은 더 이상 “더 나은 정부”나 “나에게 기저귀 살 돈을 쥐여주는 권력자들” 따위가 아니었습니다. 불과 분노(Fire and Fury). 이 최악의 형태를 한 배신을 되갚아줄 방법은 단 하나였습니다.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어 주소서. 세계를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
(시편 94:1-2)
S1. 신뢰받지 못한다면.
라모스의 폭로는, 자유세계에서만 퍼져나가지 않았습니다. 소련은 프로파간다를 위해, 공산 진영에도, 제삼 세계에도 뿌리기 위해 최대한 역량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자국에도 뿌렸습니다. 이것이 자신을 몰락시킬거라곤 예상도 못하고...
CIA가 일으킨 사건들은 명백히 미국의 치부가 맞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요? 문제가 있다면, 그걸 막아야 하는 KGB는 도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입니까? 스웨덴에 로비를 해서 배신을 시켰다구요? 그렇다면 요원을 죽여서라도 막았어야지요. 이란의 파시스트놈들에게 무기를 공급했다구요? 당연히 막았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그리스의 시위대에 자금을 댔다구요? 그걸 보기만 했습니까?
아... 네. 공직 기강 단속을 위해, 수사에 매진 하셨다구요... 참 잘 하셨습니다. 그거, 결과가 어땠는지나 말해보시죠. 말해 보시라구요! 네... 거액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 일부만 잡아넣은 탓에, 실질적으로 재계의 높은 사람들에게 가이드 라인이나 만들어줬죠. 인민들은 소확행을 저지르게 되었구요... 네. 참 좋은 결과군요.
하나 더 문제가 있군요. 다른 사건들은 몰라도, 이것때문에 그리스에 군대를 투입하고, 1년도 못 버티고 철수했습니다. 동구권에 대한 신뢰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해보십시오! 안드로포프 총 서기!
... 네. 대화가 조금 길었습니다만, 결론부터 말하지요. 안드로포프 총 서기는, 전 서기장인 코시긴과는 달리, 불명예스럽게 퇴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네. 야코블레프가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당의 중앙 감사 위원회의 대표는, 현 상황에서 소련 하나. 그 하나를 재편하기엔 충분하다는 평을 가졌고, 재계에 명망 또한 높았습니다. 이제, 그는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A3.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는 이 죄악의 땅의 범죄를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피뿐이라고 이제 확신한다.” - 존 브라운 |
하원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상원에서 이를 몇번이고 반려하며 행정부는 사실상의 기능부전 상태에 빠진 1974년 가을의 미합중국. 연방정부의 통제력은 날이 갈수록 급감하고 있었습니다. 남부 주를 중심으로 KKK의 후계를 자처하는 자생적 백인우월주의 집단이 활개를 쳤으며, 디트로이트는 시장 이하 주요관리자들이 파산을 선언하고 야반도주해 노동자들끼리 자치공동체를 만들어 도시를 운영하는 상태였죠. 그러던 9월 21일, 테네시 주 잭슨빌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경찰과 주방위군의 방관 하에 흑인 및 히스패닉계 학생들이 탄 통학버스를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후 벌어지는 피의 복수극의 서막을 열고 말았습니다.
디트로이트 코뮌을 장악하고 뉴욕과 시카고 일대를 석권한 상원의원 겸 마피아 보스 겸 노조 실력자 지미 호파는 그의 멘토 빌 엡튼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지미, 이제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네. 고상한 체하는 당내 우파들은 엿이나 먹으라지.”
존슨 행정부 때부터 현 버드 행정부까지, 정부당국이 일명 “증오의 8인(Hateful Eight)”이라 부르던 급진주의자들은 즉각 행동에 나섰습니다. 이탈리아계 마피아, 아일랜드계 마피아, 쿠바 갱, 흑표당, 네이션 오브 이슬람, 그리고 찰스 테일러의 라이베리아 용병단이 총동원되어 ‘파시스트’들에 대한 무차별 사적 제재를 퍼부었죠. 이들 모두는 “반파시스트행동연합(UAFA)”이라는 느슨한 조직을 선언, 반파시스트 선언(Antifascist Manifesto)을 발간하고 특유의 세 화살표 문양이 그려진 검은 깃발을 휘날리며 가두시위에도 나섰습니다.
반파시스트연합은 군인위원회와 경찰위원회를 만들어 버드 행정부가 망쳐놓은 연금제도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반파시스트연합은 유색인종이 다시는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노라 선포했습니다. 반파시스트연합은 민병대와 자경단을 결성할 권리가 미 수정헌법에 명시되어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반파시스트연합은 노동자의 권익과 전문가집단의 사회적 필요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파시스트연합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협동가능성을 가로막고 자국민을 학살하는 DC의 행정부가 미국 인민대중의 반역자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주로 소도시나 지방 농촌 군경을 중심으로 반파시스트연합에 동참하는 세력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반파시스트연합은 “인민의 민병대와 자경대(Militias and Vigilantes of the People, MVP)”를 당 휘하 준군사조직으로 두어 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디트로이트와 같은 사례들이 전국으로 퍼져갔죠. 1974년 연말에 이르자, 이제 미국에는 사실상 두개의 체제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DC의 미합중국 정부, 그리고 뉴욕 브루클린의 반파시스트코뮌연맹정부가 그것이었죠.
…그리고 누가 최종적으로 잔존하게 될 지는 이미 정해진 듯 보입니다.
C1. 용이 기지개를 펴다
미국과 소련이 제각기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중화민국은 개혁작업을 순조롭게 진행해왔습니다. 장징궈 총통은 개정된 헌법에 따라 5년 연임의 첫 번째 임기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있었죠. 주요 군벌 및 재벌가문이 사실상 세습해오던 지방 성장 및 성의회 의원을 민선으로 돌리고, 세제를 개편했으며, 대숙청 당시 몰수했던 기업들을 다시 민간에 불하하거나 협동조합의 형태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내부 정비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만큼, 동방의 거대한 용은 이제 바깥을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 남일본과 무역 및 기술협정을 체결한 것은 그 시작이었습니다. 티베트의 톰페티 국무원장과 기본협력협정도 체결했습니다. 그 뒤로는, 역시 남쪽이었죠.
동남아시아의 정세는 마침 혼란했습니다. 태국에서는 자신이 신임한 정부를 쫓아낸 시위대에게 반감을 품던 국왕이 총선 결과를 뒤집고 군사쿠데타를 방조해 다시 군부정권이 들어서는 사태가 있었고, 말레이시아에서는 첸만홍 정부가 여당 과격파 림킷시앙의 쿠데타에 의해 축출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군이 빠진 상황에서 싱가포르군이 “인도적 개입”에 나서 말라야 반도는 그야말로 아노미 상태였습니다
미국이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본 장징궈 총통은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태국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말레이시아의 상황에 개입한 뒤 인도와 협력해 버마의 네윈 정권을 압박하는 것이 중국의 1차 청사진이었습니다. 군부와 협력해 정권을 잡은 태국의 타닌 끄라이비쳰 총리는 이미 몸이 달아 있었고, 중국의 손을 덥썩 잡았습니다. 말레이시아 사태에서는 민주행동당 온건파를 지원해 간접적으로 싱가포르에 힘을 보탰죠. 혼란이 종식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말입니다.
동방의 거룡은 이제 그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를 짓누르던 불곰은 위궤양에 걸려 배를 부여잡고 있고, 바다 건너의 독수리는 아예 앓아누워 기별조차 없습니다. 이제는 혼자 힘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UK1. 사필귀정
키스 조셉 내각 출범 후 4년, 영국은 마치 병든 닭과 같은 신세였습니다. 의료 서비스 민영화 조치는 아픈 이들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게 만들었고, 아일랜드의 여론은 최악이었습니다. 설령 그곳에 지금 쏟아부은 폭탄과 탄환의 10배, 100배를 퍼붓는대도… 아일랜드인이 멸종하지 않는 한 브리튼은 아일랜드를 굴복시킬 수 없을 터였습니다. 조셉 내각의 지지율은 제3차 아일랜드 대봉기 때 잠깐 올랐다가 다시 폭락에 폭락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호그 남작의 후임 내무장관 존 프로퓨모(John Profumo)의 내연녀가 독일 스파이였다는 스캔들이 터지자, 내각은 모든 정치적 자산을 소진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보다못한 보수당원들은 칼을 빼들었습니다. 당내 평의원 모임인 1922 위원회는 지난번 사퇴한 레지널드 모들링 경을 필두로 조셉 총리의 당수직 및 총리직 불신임을 결의했죠. 처음에는 완강하게 버티던 키시스트들은 점차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습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모들링의 지지율이 조셉 총리, 대처 재무상, 하우 장관 등의 지지율을 2배 이상으로 따돌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엑소더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존 메이저 문화부 장관이 사퇴, 조프리 하우와 마이클 헤젤타인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2월 6일부터 7일까지 단 이틀동안 11명의 장관이 사표를 냈고, 마지막으로 버티던 대처마저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조셉 총리는 어떻게든 후임자를 임명하려 했으나, 모든 이들이 내각 합류를 거절했죠. 결국, 끝이었습니다.
백기투항한 조셉 총리를 대신해 당수에 선임된 모들링 경은 자유당 제러미 소프(Jeremy Thorpe) 당수와 함께 연립내각을 꾸려 뒷수습에 나섰습니다. 우선 NHS 재건이 먼저였습니다. 이미 난립한 민간 의료보험들을 없애는 건 비현실적이었으나, 어떻게든 재원을 긁어모아 새로운 국가의료보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가능했습니다. 비록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동반할지라도, 모들링 경은 이 모든 것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다음은 아일랜드 문제였습니다. 현실적으로 영국은 아일랜드를 지킬 방법이 전무했습니다. 얼스터 지방의 일부 신교도 다수 거주지역 정도를 특별행정구로 남기고 아일랜드와 완전히 결별하는 것만이 그나마 최선의 방책이었죠.
다만 아일랜드를 포기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은 쉽사리 내리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과거 프랑스의 사례처럼 쿠데타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된 자유당의 소프 당수는 정면돌파를 권했습니다. 곧 치러질 총선에 아일랜드 문제를 결부시키자는 것이었죠. 보수당-자유당 연합의 선거 슬로건은 “평화와 번영, 또는 피와 파시즘.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로 결정났습니다. 모들링 경은 또한 루이 마운트배튼 국방참모총장을 찾아가 군부의 신뢰를 재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마운트배튼 경은 걱정과는 반대로 모들링의 결정을 “위대한 결심”이라며 극찬했고, 따라서 군부 반발 시나리오 역시 억제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 국민들은 정의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물론 이는 키시즘의 재림만은 막고 싶었던 노동당이 자발적 협력을 제의하며 이례적인 양보를 했던 덕이기도 했습니다만… 일단 모들링 내각은 정치적 정당성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일찌감치 아일랜드에서 공세적 작전을 전면 중단하고 저항군 및 군중으로부터 연합파 신교도 주민들을 지키는 데에만 주력했던 연립내각은 선거 다음날인 9월 15일을 기해 아일랜드와의 독립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중재 하에 영국 정부와 IRA 간의 협상이 드디어 막을 올렸습니다. BBC는 한때 “영국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이자 최고액 현상수배범이던 에이먼 데 발레라 주석이 노구를 이끌고 모들링 총리 맞은편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생중계했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었죠.
협상은 최소한 다음 해까지 지속될 전망입니다. 그러나 세부사항의 차이만 있을 뿐, 브리튼의 군인들이 1000년만에 자신들의 섬으로 돌아가고 에이레가 꿈에 그리던 독립을 쟁취할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들링 경은 데 발레라 주석과의 대담에서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오랜 죄악의 세월을 건너, 이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고 합니다.” “모든 것은 원래 제자리에 있었소. 1000년 전부터 말이오. 당신들의 속죄를 지켜보되, 절대 망각하지 않겠소.”
P1. 카네이션은 붉은색이다
1974년 4월 25일, 수십년간 지속되어 오던 포르투갈의 이스타두 노부 체제가 종말을 맞이했습니다. 식민지 독립 허용론을 주장하다 독재자 카에타누에 의해 해임된 스피놀라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구국군정(Junta de Salvação Nacional)이 수립된 것입니다. 여태 식민지를 결사옹위하려는 나라들은 모두 참극을 면치 못했다는 점이 스피놀라의 정당성을 더욱 올려주었죠. 거리로 뛰쳐나와 쿠데타군 병사들의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아준 시민들은 새 시대가 열릴 것을 기대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구체제 해체는 장밋빛 미래를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간 억눌려왔던 인민대중의 정치적 열망이 폭발해 사실상의 무권리 상태에 놓여있던 노동자들이 각지에서 총파업을 일으켰으며, 정치활동 규제가 일괄 해제되면서 좌익세력이 엄청난 기세를 과시했죠. 구국군정이 간과한 가장 중요한 사실을 딱 한가지만 꼽자면 이스타두 노부가 없어진 지금 포르투갈 공산당은 국내 최대 정치세력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남부를 중심으로 공산당은 협동농장체제를 구축한 상태였고, 북부에서는 자영농과 보수적 가톨릭 사제들(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정통 가톨릭에 가담한 교권 파시스트들이었습니다.)을 중심으로 반혁명의 물결이 강하게 일었습니다. 과거 식민지를 연방체제로 개편하자는 보수주의자였던 스피놀라 장군은 진작에 중도 좌익으로 전향해 좌파 청년장교의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아무리 구국군정이 단결되었다고 한들 스탈린 식 극좌 집산주의와 극우 교권 파시즘의 물결에 동시에 대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즉, 어느 한쪽에게는 양보를 해야 했습니다.
스피놀라 장군의 선택은 극좌와의 영합이었습니다. 군정의 주요인물 중 하나이자 군부 내 친공산세력의 수장격이던 오텔루 데 카르발류(Otelo de Carvalho)는 공산당과 접근해 사회주의 공화국 건설을 전제로 한 협상에 들어갔고, 스피놀라는 북부의 극우주의자 중 협동조합주의에 찬동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갈라치기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그 결과 구국군정 요인들과 공산당, 기타 좌익세력, 그리고 일부 우익 협동조합주의자들은 '포르투갈 사회주의협동당'의 창설과 제헌의회 수립에 합의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11월 22일 포르투갈 사회주의 협동공화국(Socialist Cooperative Republic of Portugal)이 선포되었습니다. 만약 미국과 영국이 극심한 내홍에 빠져있지 않았더라면 이 움직임은 차단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프랑스의 푸자드 정권이 포르투갈의 좌익 협동주의 혁명을 사실상 지지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은 없었고, 오로지 '테러 올림픽'과 장기불황의 늪에 빠진 이웃 스페인만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불행이자 다행이었던 점은, 사회주의협동당 서기장 알바로 쿠냘(Alvaro Cunhal)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모스크바와는 협력하지 않을 것"을 재확인했다는 것입니다. 대신 그는 스피놀라 국가주석과 함께 프랑스 대표단을 접견했으며, 6시간동안 비밀 회담을 진행했습니다.
철의 장막이 형해화되고, 모두가 제각기 옳은 길을 택하는 시대였습니다.
E1. 피자는 한판을 다 먹어야 제맛
1974년 12월에 열린 이탈리아 공화국(남이탈리아) 총선은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북쪽의 이탈리아 사회주의공화국은 지난 1968년의 대타협 이후 이탈리아 반도의 재통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으며, 평화적 수단에 의한 리소르지멘토의 재완수를 최대 국정목표로 삼았습니다. 마침 남측의 기독교민주당 정권이 거듭되는 경제불황으로 휘청거리는 지금, 프란체스코 데마르티노(Francesco de Martino) 위원장이 이끄는 사회당은 절호의 정권교체 기회를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1949년 공산당의 팔미로 톨리아티 전 서기장이 제시했던 4대 통일원칙(미국의 경제적 번영, 소련의 인민 보편복지, 영국의 의회민주주의, 이탈리아 고유의 지방자치)이 다시 관심을 얻었습니다. 발표된 이듬해 스탈린 정권이 톨리아티를 강제로 축출함으로써 잊혀졌던 원칙이었죠. 만약 남쪽에서 사회당이 정권 획득에 성공한다면, 리소르지멘토 역시 달성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대로 사회당의 압승이었습니다. 연정협약을 맺은 중도좌파 및 중도정당까지 하면 의석의 60%를 상회하는 대승리였죠. 총리가 된 데마르티노는 북쪽의 엔리코 베를링구에르(Enrico Berlinguer) 서기장과 전향적인 자세로 대화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에 화답하듯 베를링구에르 역시 “이탈리아인의 오랜 숙원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남북 이탈리아의 대중들은 그 어느 때보다 흥분했습니다. 세계적 권력공백 현상은 벌써부터 커다란 후폭풍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 끝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
마지막화를 위한 사건 목록.
- 베른 회담 : 냉전은 끝난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래 두 사건이 어떻게 흐르던, 동구권은 이탈할거고... DC의 정부와 버드는 개같이 죽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시대를 다시 열어가기 위한 만남이 필요치 않겠습니까?
- 미국과 파시스트들 : 반파시 연합은 승리할겁니다. 당연 그렇고 말고요... 그리고, 그들은 잘 해낼겁니다. 부도덕하고 부패하며, 무능하고, 악덕한 고위층을 몰아내고 앉았으니까요. 물론 모두가 이에 동의 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국가를 이끌어 가려면, 방향이 필요합니다. 말해주십시오 동지. 여기까지 왔는데...
- 소련과 귀족집단 : 야코블레프 서기장 각하. 우리는, 동구권을 포기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당신을 선출했습니다. 겸사 겸사, 우리에게도 뭐가 떨어지길 바라죠. 어차피 이상이고, 목적이고 개같이 죽은 세계. 인민들은 집어치웁시다. 무엇을 하실 예정이십니까? 일단, 그... "충격 요법" 이란거부터 들어보지요.
- 티토가 이끄는 유고와 동구권 : 야코블레프가 선출 되었다는건, 우리가 가진 반감을 그들도 숙지 했다는 것이겠지. 문제는, 그놈의 신뢰 가격으로 유지되었던 경제 체제... 지만, 일단 믿어볼만한 국가와 지도자가 있으니, 다행이로고. 멍에에서 벗어난 독일이 우리를 지원할테고, 티토 동지가 유고를 묶은것처럼 우리도 묶을것이다. 그가 노인인게 걱정되긴 하지만, 못해도 10년은 더 사시겠지!
- 백인들의 나라 : 전쟁도 끝났고, 핵무기도 있고, 비 백인놈들은 숨만 쉬는 상황이니 태평성대로다. 뭐, 다른 국가들이 우리를 따시킨다는데, 뭐 상관 있겠는가? 팜파스 대초원에서 나오는 작물과, 남아공에서 나오는 광물이 우리를 비호할텐데!
- 용이 날아오르다 : 우리는, 우리를 억누르고 견제하던 두 국가들의 시선에서 벗어났습니다. 뭐, 자기 운신에 급급해야 하니 어쩔수 없겠죠... 장징궈 각하. 이제 우리의 시대가 찾아온것 같습니다. 일단 동북아는 우리의 권역에 있고, 동남아도 거의 비슷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아-태를 규합하기 위한 시간이 오지 않았을까요?
- 녹신월을 높이 휘날리며 : 레반트는 개같이 죽었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지만, 죽을겁니다... 그 말인 즉슨, 사우디와 이집트... 가 다시금 패권을 놓고 경쟁 할 시간이 온다는거죠. 아, 물론 이슬람을 규합하기 위해 같이 공투 할수도 있을겁니다... 만은, 모르겠군요. 둘 다 성격이 개같으니... 아무튼,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여왕이여. 다시금 일으켜 세우소서 : 키시즘은 영국에 큰 상흔을 가져 왔습니다. 모들링경이 해낸 조치는 다시금 돌아오기 위한 조치밖에 되지 못하지요. 대영제국만큼 위대해 지긴 힘들겠지만, 이대로 주저앉을순 없습니다 여왕폐하. 다시, 영 연방을 규합해,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만 합니다!
---------------------------------
+ 투고에 감사드립니다.
끝끝끝! 마지막화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