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삶의 거적을 벗어버리고
건너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강 건너 저쪽 세상으로 가는 길목 한 쪽
사시사철 햇살이 따사로울 것만 같은
풍광 고운 골짜기에 자리잡은 그곳
모텔 연 화 장 *
참 부질없던 이승의 마지막 밤과
염라부閻羅府 첫날밤이 공존하는 곳
풀방구리를 드나드는 생쥐조차 시커먼 그곳엔
언제나 까마귀 형상의 그림자가 어슬렁대고
한결 같은 블랙앤화이트복장의 사람들은
애써 죽음을 타인의 몫으로 돌리며
국화 향기 속에서 독한 소주를 마시고 또 마신다
가는 이와 남는 자, 누구의 슬픔이 더 클까
빈약한 추론의 귀착점은 존재하지 않고
조화의 수량과 조의금 액수를 가늠하며
남은 자들이 슬픔을 빌미로 치르는 의식의 전당
이내 떠나는 아침을 밝히는 태양을 향해
불뚝 선 직립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는
화장장 굵고 높다란 기둥 언저리엔
하얀 혼백魂魄이 어지러이 이별을 고하고
제 설움에 복받쳐 가슴치며 오열하는
남은 자들의 절도 없는 어색한 퍼포먼스가
멋쩍게 이별의 끄트머리를 장식하면
떠나는 자의 가슴 후비는 속울음은
불구덩이 언저리에 진한 흔적으로 남는다
* 수원시 공용 장례식장 겸 화장장.
[연화장 손님들], bookin. 2018.
카페 게시글
시사랑
모텔 연화장 / 김석일
플로우
추천 0
조회 118
18.04.20 06:47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