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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 Aloha, USA!
미주 코뮌연맹이 최종 승리를 거두고 대부분의 상하원의원들과 정부 각료가 구속 또는 전향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구시대의 유물은 모두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바레인 및 차고스 군도에 주둔 중이던 인도양함대 사령부는 수병 반란으로 무너져 혁명정부에 합류, 유럽 함대와 주둔군들 역시 혁명정부에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진주만의 태평양 함대는… 달랐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급 전략원잠을 비롯한 잠수함 수십 척과 수백기의 SLBM이 일거 침묵했습니다. 혁명정부는 즉시 인도양 함대와 유럽-대서양 함대를 총소집해 태평양을 이잡듯 뒤져 1척의 순양함, 4척의 구축함, 9척의 잠수함을 잡는 데 성공했지만… 대부분의 함선들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무사히 진주만에 도착했습니다. 이 함대를 이끄는 이는 다름아닌 엘모 줌왈트 제독이었습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해군, 해병대, 일부 육군 병력들은 ‘소요’를 일으키는 불순세력을 일소하고 하와이 주지사 조지 아리요시(George Ariyoshi)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태평양함대 사령관 줌왈트 제독, 미 태평양육군 사령관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장군, 미8군 사령관 크레이튼 에이브람스 장군을 필두로 한 이들은 내각 각료 및 양원 의원 전원 유고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물론 일부는 구속되었고 일부는 전향했으며 일부는 어디론가 망명을 떠나 있었으나…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시민들의 혐오를 한몸에 받는 구 정부 일원을 모셔올 필요는 없었죠. 미합중국 대통령 승계절차에 따라 유일하게 남은 하와이 주의 주지사 아리요시가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 내각 장관진에는 줌왈트를 비롯한 장성들이 자리했습니다. 문민 통제? 지금 그딴게 중요합니까?
안정을 찾자마자, 미합중국 정통정부는 난징과 캔버라에 즉시 연락을 넣었습니다. 아태조약기구는 아직 살아있으며, 이는 구 미해군의 4할에 달하는 전력을 온존한 태평양함대와 해외 주둔 미군을 가진 호놀룰루 정부가 조약상 당사자 자격을 취득했다고 말입니다. 답장은 빨랐습니다. 중국과 호주는 즉시 호놀룰루 정부를 승인해 아태기구를 재건할 수 있었죠.
이로써 미 혁명정부는 태평양의 반 이상을 내주어야 했습니다. 진주만의 함대가 미 서부를 직접 공격하거나 서쪽으로 진격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렇다고 정통정부의 전력으로 진주만을 함락시키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그렇다고 극단적 방법을 쓰면… 세계는 핵의 화염으로 뒤덮일 것입니다. 결국 혁명정부와 정통정부는 서로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교전을 중단, 일단 숨을 고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세계의 권력분포는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바뀐다는 사실 한 가지만 빼고, 모든 것이 바뀔 것입니다.
S1. 가식의 끝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신임 야코블레프 총서기는 1974년 11월 7일 '10월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성대한 기념식을 열고, 그동안 러시아와 소련에서 복권되지 못한 수많은 극좌부터 극우에 이르는 정치범들을 복권을 선포였습니다. 그리고 1975년부터 정말로 전 내무인민위원장 겐리흐 야고다, 국방인민위원장 레프 트로츠키와 그의 아들 세르게이 세도프, 전 코민테른 총서기 니콜라이 부하린, 마흐노 자유지대의 마지막 사령관 드미트리 포포프, 크론시타트 수병반란의 지도자 스테판 페트리첸코, 바실리 볼디레프, 보리스 사빈코프, '기존의 소련'이었다면 극우반동이나 극좌모험주의자라고 비난을 받았을 이들이 대거 명예회복을 한 것입니다. 특히 아타만 그리고리 미하일로비치 세묘노프와 파시스트 콘스탄틴 로드자엡스키, 니콜라이 우스트랼로프가 복권된 것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수용소와 감옥을 전전했던 멘셰비키와 나로드니키들이 석방되었고 모두가 민주주의가 눈앞이라 생각할 즈음,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는 야코블레프 총서기의 충격적 사망 이후 1975년 3월 인민들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듯 장관회의와의 합동회의에서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1. 소련 내의 모든 기업은 오직 소련공산당 및 우당의 당원만이 소유할 수 있음
1-1. 여기서 우당이라 함은 신설되는 정당이 아닌 1917년 2월부터 현재까지 러시아 및 소비에트 연방의 영토내에 '존재했던 정당'만을 이르며, 해당 정당(입헌민주당, 사회혁명당, 사회민주노동당) 외의 신규정당 창당은 허가되지 않음
2. 대규모의 사면에 따라 치안 악화가 우려되는 바 현존하는 FSB와 SVR과 모든 경호 및 첩보기관, 국가근위대, 내무부를 재통합하며 그 수위기관은 내무부(MVD)로 유지할 것임.
3. 신생 내무부는 소련 내의 모든 '반혁명적, 반국가적 사고 및 행위'를 엄격히 단속할 것이며, '소련 특색의 사회주의 노선'에 위배되는 어떠한 정치책동이나 대중선동을 용납하지 않을 것임
신생 소련에는 더이상 정신병원 강제입원도, 수용소 강제수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몇몇 인민들이 NKVD의 부활을 항의하며 시위하러 나왔을때, 소련 지도부는 기존의 정권이었다면 상상 못할 정책을 내렸습니다. 바로 이들을 전부 해고해 무직자로 만들고 복지정책에서 제외시켜버린 것이었습니다. 순식간에 굶어 죽게 생긴 이들이 항의하자, 소련 정부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소련 특색 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소련정부는 사회주의의 밑거름이 될 자본주의 건설의 선두주자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원칙에 따라 '사기업' 및 '공개된 공기업'의 '정상적 경영 절차'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
그때서야 소련 인민들은 깨달았습니다. 새로운 지도부에게는 더 이상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이니 인민의 생활을 책임지느니 하는 어떠한 대의명분도 필요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은 사법체계에 의존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는 하루 아침에 실직자가 되고 병원에도 가지 못하며 대중교통조차 못 쓰게 되었습니다. 소련 정부는 더 이상 '가식'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원하는 만큼 인민을 핍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S1-1. 망하는데는 이유가 없다.
... 야코블레프 총 서기가 죽은것과 그 과정 사이에 무슨일이 있길래, "타락한 노동자 국가" 라고 비난을 받을 지언정, "노동자 국가" 였던, 소련이 어떻게 "기업 국가" 가 되었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사회주의로의 길에는 민주주의만이 필요하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도,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도 필요없다. 개혁적이거나 혁명적이라고 구분을 지을 필요가 없다. 전진하며 변화하는 모든 사회주의로의 길은 기본적으로 혁명적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정치원칙, 1946년, 후일 소련 공산당이 채용- |
새로이 소련 공산당의 총서기가 된 알렉산데르 야코블레프는 야심차게 개혁안을 준비하였습니다. 그의 개혁안은 안드로포프의 안정적인 개혁보다, 코시긴의 멀리 뻗어나가는 개혁안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이며 과감했습니다. 일당제를 해체하고, 소련 내 공화국들에게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고, KGB를 해체하고, 계획경제를 해체한다, 이 모든 것을, 그것도 빠르게 한다는 것이 야코블레프의 목적이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계획경제를 급격히 해체하며 물가는 상승하고, 화폐가치는 폭락하고, 예금은 휴지조각이 되어갔습니다. 밀수가 만연하는 가운데 축소된 내무부와 해체된 KGB는 이를 막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당 간부와 연줄이 있거나 본인이 당 간부였던 자들이 국가산업의 불하 과정에서 큰 이익을 얻었고, 각 자치공화국의 당서기들은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다행히도 야코블레프는 어느 정도의 식견과 지도력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령으로 사망할 날만 앞두고 있던 당의 최고 원로 중 한 명인 아나스타스 미코얀을 비롯한 옛날의 개혁파들에게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련을 유지해라'라는 조언을 받은 야코블레프는 자신이 약속했던 급진 개혁과 안드로포프 파벌의 잔당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시작했습니다. '국가근위대'라는 이름으로 개편된 내무군은 밀수를 때려잡기 시작했고, FSB로 개편된 국내정보국 또한 제기능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야코블레프의 칼날은 최후로 부패한 관료와 그에 결탁한 기업을 향했습니다.
자신들의 가장 부패했었고 가장 공산주의에 관심이 없었던 보수파의 최후의 저항은 예상된 것이었습니다. 각지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고 군축으로 힘을 빼놓았던 소련군조차도 다시금 들고 일어날 기미를 보였습니다. 당간부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된 야코블레프는 군 내의 대표적인 소장파 인사였던 드미트리 야조프 대장, 산업계 인사인 알렉산데르 티쟈코프와 올렉 바클라노프, 아르카디 볼스키, 조지아 공산당 총서기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마지막으로 가장 젊은 재무부의 발렌틴 파블로프, FSB의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등신진 인사들을 대거 기용했습니다. 물론 이들 또한 시장 자유주의의 맛을 충분히 본 뒤였습니다만, 큰 걱정은 없었습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야코블레프 총서기가 군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좌파공산주의자였던 발레리 사블린 함장의 총격을 맞고 사망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개혁의 지도자가 갑작스레 부재한 상황에서 중도파와 보수파들은 재기를 노렸습니다. 야코블레프가 등용했던 신진인사들은 갈 곳이 없어졌습니다. 개혁을 중단하면 당 원로들에게 쫓겨날 것이고, 개혁을 지속하기엔 원동력이 없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의견을 냈습니다.
"우리가 개혁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헤게모니를 잡아야 합니다. 보수파와 중도파의 논리를 뺏어서 씁시다. 우리가 사회주의자입니다. 우리가 레닌주의자입니다. 왜 우리가 반동 우익이란 말입니까? 누구보다도 연방의 유지를 위해 노력했는데?"
이른바 사블린 사건을 명목으로 새로운 지도부는 대규모의 숙청과 진압을 개시했습니다. 그 명목은 '레닌주의 원칙에 입각해 사회주의 소련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것'이라는, 보수파와 중도파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 법이니, 자기합리화를 통한 이들의 신속한 행동을 막을 이들은 없었습니다. 그 타깃의 대부분은 기존의 당간부와 이 틈을 타 분리공작을 하던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야코블레프가 약속하고 진행했던 개혁은 하나 둘 씩 엎어졌습니다. '자유화'된다던 경제는 신진 지도부, 이른바 '7인방'과 그 관련 인사들이 죄다 장악하였습니다. '진정한 레닌주의'를 명목으로 당간부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KGB 또한 부활했습니다. 당과 최고 소비에트는 '소련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명목으로 새로운 개혁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7인방 또한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분명 생존을 위해 진행하였던 친위쿠데타는 자신들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었습니다. 그것은 명목상으로나마 사회주의를 발전시켜야했던 스탈린의 권력보다도 더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중심을 잡아줄 원로 당간부들이 사라진 지금, 폭주는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는게 아니었습니다. 권력은 자본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은 '사회주의'로 인민들을 세뇌하며 누구보다도 자본주의에 충실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지도부가 되었습니다.
네. 이것이 사건의 전말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끝까지 보시지요.
CA1. 세개의 화살표로 적들을 분쇄하라!
1975년 3월 11일, 워싱턴 DC의 “미합중국 정부”는 붕괴했습니다. 물론 태평양 함대는 하와이로 도피해 바다 건너의 사악한 드래곤에게 모든 것을 의탁한다는 한심한 결정을 내렸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어쩌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주도한 제임스 리들 “지미” 호파 반파시스트행동연합 위원장은 미주 코뮌연맹의 승리 및 혁명 완수를 선포했습니다.
물론 혁명의 승리는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지 않았으며, 본래 무언가를 무너뜨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을 다시 세우는 일이 훨씬 어려운 법이었습니다. 도시 및 농촌의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코뮌을 주도로 한 혁명이었던만큼,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이름은 더 이상 붙일 수 없었습니다. 빌 엡튼 서기장은 그 대신 “Commonwealth of America(미연방국)”이라는 국호를 추천했고, 이는 코뮌연맹 평의회를 만장일치로 통과했습니다.
새로운 미국은 반파시스트행동연합과 MVP의 깃발로 뒤덮였습니다. 어디서든 검은 깃발과 세 화살표 문양, 그리고 치켜든 주먹 문양을 볼 수 있었죠. 링컨 기념관은 미합중국의 자유와 단결을 지켜낸 위대한 대통령을 기리는 공간에서 “타락한 위정자들에 맞서 힘없는 자들을 지키려다 순교한 성인”을 기념하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콜럼버스 로터리는 표트르 크로포트킨 로터리로, 성 니콜라스 애비뉴는 칼 마르크스 대로로, 밴더빌트 대로는 윌리엄 Z. 포스터 대로로 개명되었습니다. 또한 워싱턴 DC는 메릴랜드 주에 편입되고 뉴욕이 새 수도가 되었다는 사소한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최대 무역파트너였던 중국이 제1의 가상적국이자 패권경쟁자로 떠오르면서 미국은 경제적 타격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간 소수의 강도귀족들에게 독점되던 부를 인민대중 모두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일시적인 부침을 극복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뒤로는 내수경제와 서유럽 중심 무역을 기반으로 한 국가협동조합 체제가 잘 자리잡기를 기대해야겠죠.
또한 신미국은 돈 가진 자들의 정치 머신(political machine)으로 전락해버린 ‘정당’ 따위를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진정한 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해 각 조합과 직능, 코뮌의 대표들로 구성된 국정평의회(State Affairs Council)가 위원장과 각 부문 국무위원을 선출할 것이며, 이 과정은 인종, 성별, 종교, 장애여부 등에 관계없이 평등할 것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특별히 더 평등”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자, 이제 바깥으로 눈을 돌려봅시다. 태평양 쪽으로는 눈길도 주기 싫군요. 반대쪽을 보도록 하죠. 프랑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의 동지들은 우리를 번영으로 이끌 동반자들입니다. 스페인 역시 곧 넘어올 조짐이 보이는군요. 입에 담기도 역겨운 구체제의 지도자들이 중남미 외교관계를 망쳐놓은 덕에 그쪽은 좀 시간이 걸리겠습니다만, 남방의 더러운 파시스트들과 맞서려면 언젠가 공투가 필요할 것입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친구를 더 찾아볼 수 있겠죠.
뉴욕 시 브롱크스의 국정평의회는 지미 호파 동지를 미연방국의 국무위원장으로 재신임했습니다. 위원장 동지 뒤에 서있는 총든 남자들은 누구냐고요? 그런 걸 궁금해하면 곤란하지요! 경고 한 장 드리겠습니다. 인민의 민병대와 자경단(MVP) 담당 국무위원이신 카를로 감비노 동지께서는 인민들의 안전을 걱정하시느라 밤잠을 설치고 계시니, 아마 두번째는 용서하지 않으실 겁니다.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진정한 인민의 시대, 누구도 핍박받거나 차별받거나 착취당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다 같이 열렬한 박수를 보내도록 할까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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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발, 박수 안 쳐?”
———미국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R1. 여리고 성이 무너지다
제3차 중동전쟁에서의 패전 이후, 레반트 연방의 지도부는 커다란 내홍에 빠졌습니다. 바트당 집권 이후 숨죽이고 있던 우익 국가주의자, 자유주의자, 이슬람 근본주의자 세력 등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연방의 결속이 느슨해지자 세속주의적 국가체제 하에서 보호받고 있던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공격 역시 재개되고 말았습니다. 바트당의 우당인 노동자당 당수 이츠하크 라빈이 한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암살당한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국왕 후세인 1세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바트당을 밀어내고 다시 균형을 잡아 국가를 이끌어보려 했지만, 이 마지막 시도는 국가보안부 장관 사담 후세인의 정보망에 적발되어 국왕이 유폐되는 결말로 이어졌습니다.
국왕을 사로잡은 사담은 자신의 이익과 권세에 충실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모래 위에 지어진 궁전보다는 바위 위의 오두막집을 선호했죠. 사담은 자신의 세력근거지인 바그다드로 향해 자신의 상관인 알바크르 총리를 무참히 살해하고 이라크 공화국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3일 뒤에는 연방 북동부의 쿠르드족이, 그 다음날에는 레바논과 시리아가 독립을 선포했죠.
그 뒤는 끊임없는 항쟁과 혼란의 반복이었습니다. 마지막 남은 연방의 흔적인 팔레스타인 및 요르단 지역은 연방 재수복을 위해, 시리아와 레바논, 이라크는 각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쿠르디스탄은 생존을 위해 싸움에 뛰어들었죠. 이 싸움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연방과 악연을 맺었던 주변국들 역시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입니다.
S1. 두 성지의 보호자, 죽다!
사우디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경제의 알파이자 오메가였습니다. 엑슨, 모빌, 쉐브론, 텍사코 등 미국 4개 정유사가 60%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과 사우디의 긴밀한 협조관계는 이 거대한 사업을 굳건하게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미국이 혁명으로 뒤집어진 지금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미연방국 정부가 주요 정유사에 대한 부당이익환수조치를 실시하자, 사우디아람코는 마치 카드로 지은 집처럼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BP, 로열 더치 쉘 등 유럽계 정유사들 및 금융사들이 구제금융을 시도했지만, 혼란한 정치상황은 이들의 작전에도 커다란 차질을 빚었죠.
1975년 4월 1일, 아람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석유가 넘쳐나도 채굴할 수 없는 상황이요, 설령 현지의 책임자들이 독단적으로 채굴했다고 한들 당장 유통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국가경제의 파탄을 의미했죠. 사우드 왕가의 파흐드 국왕은 왕위 선양으로 이 사태를 마무리지으려 했으나… 잃을 것이 없는 민중들은 왕가 자체의 축출을 원했습니다. 그렇게, 사우드 왕가는 불과 두 세대만에 왕국을 잃어버렸습니다.
왕조를 축출한 민중들은 크게 두 계열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는 신앙으로 뭉쳐 샤리아에 근거한 정결한 세상을 만들자는 이슬람 율법주의자들, 그리고 하나는 부의 재분배와 인민의 해방을 부르짖는 호파주의자들이었습니다. 바레인에 주둔한 미군과 지부티에 주둔한 프랑스군은 당연히 후자에게 갖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결국 급진좌익의 거두 무스타파 와흐바를 중심으로 좌익 이슬람주의자들을 포용한 형태의 정부가 건설되었습니다. “히자즈-네지드 이슬람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긴 국명을 가진 새 국가가 젯다를 수도로 하여 수립되었죠.
와하비스트 이슬람주의자들과 사우드 충성파 잔당들을 진압하고 석유개발을 재개하여 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중동의 패권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겠지요…
BNL1. 저지대의 운명
NORAD와 NATO가 미국의 죽음을 맞이하여 재편되는 그 과정에서, 영연방인 캐나다는 러시아 망명정부를 흡수했고, 영국또한 홍콩을 매개체 삼아 중국과 강하게 연대하는데 성공해 제 갈길을 찾았습니다. 터키는, 나토를 탈퇴하고, 제 갈길을 찾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 왕국의 섬들이라거나, 혼란에 빠진 중동이라거나. 눈 앞에 먹잇감이 가득했죠.
문제가 있는건, 저지대의 삼국. 베네룩스였습니다. 독일이 자유롭게 풀려났고, 프랑스또한 반 파시스트를 외치며 치안 유지 명목으로 군대를 늘리고 있었습니다. 불안을 느끼는건 매우 당연했습니다. 보호막인 나토는 무너져 내렸는데, 주변의 정세는 험악하기 짝이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험악하기 짝이 없는 국제정세에서, 이윽고 국제 정치의 비정함을 알았습니다.
자신들은, 신발 속에 들어간 모래와도 같다는것 입니다. 거슬리지 않는다면, 그대로 있을지언정, 거슬리기 시작하면 이내 털려나갈 운명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삼국이 동맹을 선언한다면, 그 존재감은 분명 열강의 "거슬림"을 불러오기 충분할겁니다...
따라서, 그들의 선택은 단순한 "중립"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겪은 경험때문이라지만, 그들의 선택은...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처절한 방식이었습니다.
베네룩스 삼국은, 협정을 체결하여 군사력을 감축, 제한했습니다. 실질적으로 군대를 해산하고, 치안을 담당할 경찰력만의 통제를 채택하고, 자신들의 주변 강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에게 공통된 제안을 건냈습니다. 룩셈부르크에는 영국, 네덜란드에는 프랑스, 벨기에에는 독일의 대대를 주둔시켜, 상호 견제와 균형을 꾀하는 제안이었습니다.
베네룩스는 서로 연합하지 않을것입니다. 베네룩스는 군대를 보유하지 않을것입니다. 베네룩스는, 그저 균형자, 영국, 프랑스, 독일도, 삼국 내에서 다투지 않겠다는 조약을 요청하며, 베네룩스는 처절하게 "생존" 할것입니다.
물론... 그 생존 또한, 영국, 프랑스, 독일이... 허락 해줘야 하는 일이지만. 이들의 영토는, 가라앉지 않을수 있을까요?
W1. 한 시대의 끝, 그리고 또 다른 시대의 시작
1975년 8월 1일. 아주 놀라운 소식으로 1975년의 하반기를 시작하게 되겠군요. 바로 소비에트 주권국가연맹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과 미연방국의 빌 엡튼 서기장이 베른에서 만나 냉전의 종식을 만방에 알렸다는 소식 말입니다.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냉전의 종식과 탈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공동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세계에 평화가 다시 찾아왔다고 선언했습니다. 평화와 탈냉전, 예, 아주 좋은 소리군요. 하지만. 어째 우리는 그게 진실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내전으로 피폐해진 놈과 급진개혁으로 혼란에 빠진 놈의 말이라 그런가.
사실 둘이 베른에서 냉전의 끝을 외친 데에는 양국의 복심이 있었습니다. 소련의 실권을 잡은 7인방과 올리가르히들은 자국 내의 혼란을 수습하는데 여념이 없어서 체제경쟁을 더 지속하고픈 생각이 없었고. 미국은 과거의 동맹이었던 중화민국과 새로 대립각을 세우며 미중냉전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상태라 소련과의 대립을 끝내 모든 여력을 태평양 쪽에 겨냥하고 싶었기에. 둘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뭐 그 이후는 모두 알다시피 소련이 코메콘과 WTO에서 탈퇴하고, 소련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중동부유럽이 독자세력으로 등장하고, 영연방과 아시아 연합이 협력을 선언하고, 아르헨티나-남아프리카 연방-로디지아가 신추축국을 선언하는 일들이 있었지요. 더 이상 세계가 자유진영과 공산권의 양극체제가 아닌. 다극체제로 재편되는 일들 말입니다.
1914년 전의 세계와 후의 세계가 다르듯이. 1975년 이전의 세계와 이후의 세계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EU1. 늙은 사자가 몸을 뒤채다.
코시긴 독트린을 쓰레기통에 쳐박았던 모스크바가 사회주의마저 포기하고, 장기화될 줄 알았던 미국의 내전사태는 단기간에 끝날 조짐을 보였습니다. 졸지에 홀로 남겨진 동구권 국가들은 심각한 안보 딜레마에 직면했죠. 소련이 코메콘과 비스바덴조약기구를 탈퇴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 불안감은 극에 달했습니다. 졸지에 “소련 없는 소련팀”이 되어버린 동구권은 어떻게 해서든 살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마침 남북 이탈리아가 근시일내 통일에 합의하고 임시공동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소식은 새로운 움직임의 기폭제가 되어 주었습니다. 공동위는 통일 이탈리아 신정부가 코메콘 회원국 자격 역시 계승한다는 방침을 확정했고,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는 이 움직임을 매개로 코메콘 재가입을 추진했죠. 독일을 비롯한 잔존 회원국들은 즉시 이를 수락했습니다. 폴란드의 스타니스와프 오스트롭스키 대통령 역시 이 움직임에 동참했습니다.
결국, 계속해서 변절자 소련의 편에 남기로 한 핀란드를 제외하고 모든 동구권 국가들이 코메콘과 비스바덴조약기구의 유지를 추구하기로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회원국들은 경제 및 에너지 부문의 협력기구인 코메콘과 군사안보 부문 협력기구인 비스바덴조약기구를 하나로 합쳐 더욱 굳건한 단결을 결의했습니다. 새 통합기구의 이름은 독일의 빌리 브란트 수상의 의견대로 “유럽연합(Europäische Union, Европска Унија)”으로 정해졌습니다.
새로 출범한 유럽연합은 “하나된 유럽”과 “유럽 인민의 번영과 안전”을 모토로 야심찬 통합 드라이브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시일은 걸리겠지만 단일통화, 국경개방 및 모든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이동, 권역 내의 완전한 신뢰무역, 공동안전보장, 치안 및 국경방위협력, 보건의료협력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개시되었습니다.
이들의 움직임이 스러져가는 현실사회주의의 마지막 몸부림이 될지, 아니면 인민해방의 거대한 불꽃이 될지… 더 지켜보아야 하겠지요.
C1. 민주주의의 병기창
1975년 10월 21일, 인도차이나 연방 수도 사이공에서 역사적인 회담이 막을 올렸습니다. 중화민국 총통 장징궈와 호주연방 수상 고프 휘틀럼, 영국 수상 레지널드 모들링, 미합중국 총무장관 엘모 줌왈트 등이 각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한 이 회담에서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를 수호하기 위한 여러 안건들이 논의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안티파시스트의 탈을 쓴 좌익 파시스트들이, 러시아에서는 금권으로 나라의 모든 것을 장악한 과두재벌들이 장악했고 유럽의 절반은 자칭 “민주사회주의자”들이 자신들만의 장벽을 쌓는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많은 논의, 논쟁, 밀고 당기기가 오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적어도 자유민주주의 강대국 간의 숙의와 협조, 자유무역, 저개발지역에 대한 공동원조, 역내 위기사태에 대한 즉각적이며 협력적 개입 등 큰 틀의 방침에는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파운드화-위안화-(구)달러화의 환율바스켓 제도(호주 달러는 파운드 스털링과 1:2 고정환율) 도입, 자유무역기구(FTO) 창설, 아태조약기구 확장 등이 합의되었죠.
이제 자유진영은 군사안보 측면에서 자유국가동맹(AFN, Alliance of Free Nations), 무역 측면에서 자유무역기구(FTO, Free Trade Organization), 통화 및 금융 측면에서 통화연합기금(MUF, Monetary Union Fund), 개발 측면에서 개발협력조정기구(ODCF, Organization for Development, Cooperation, and Facilitation)라는 칼과 방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굳건한 협력과 연대 위에서만 자유와 정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피비린내와 매캐한 연기로 얼룩진 20세기를 보냈습니다만…
다음 세기는 어떨까요?
UK1. 동방의 진주?
영국령 홍콩은 영국 윈저 왕실의 직속 식민지로, 영국군과 호주군이 주권과 치권을 모두 행사하는 곳이었습니다. 영국이 브루나이를 완전한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떠나간 지금, 홍콩은 태평양 일부 도서지역을 제외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이들이 점유한 유일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사이공 회의가 열리는 도중 영국-중국-호주의 삼국은 1945년의 천청-이든 합의에 따라 홍콩 문제를 논의사항에서 제외했으나, 근본적인 세계질서가 변화한 지금 이 문제를 수면 아래에만 내버려둘 수는 없었죠.
중국과 영연방은 제각기 근거를 들어 홍콩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싶었으나, 이들은 내심 이 문제가 당장 중요한 자유세계의 단결을 저해할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자체가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아무리 대단한 상징이라지만 섬 하나때문에 내분이 일어나 세계가 악의 손아귀에 넘어간다면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랍니까? 협상대표들은 공개적으로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물밑으로는 어떻게든 타협안을 찾으려 하며 원만한 해결을 도모했습니다.
홍콩섬 및 구룡반도와 신계를 분할하는 안, 전역을 반환하되 주권과 치권을 분리하는 안, 심지어 아예 독립국으로 전환하는 안까지 논의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싱가포르의 리콴유로부터 의외의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홍콩을 자유국가동맹 및 각 부문 대표기구의 소재지로 만들어, 주권을 중국에 반환하되 그 지위는 자유세계 전체가 수호하는 도시로 전환하자는 것이었죠.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내는 이 제안은 삼국 대표단 모두를 그럭저럭 만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홍콩은 중국의 영토이되 자유국가동맹 사무국 도시행정처(Urban Administrative Body)가 관할하는 완전한 국제도시가 되었고, 자유와 정의가 끝끝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의 상징으로 거듭났습니다.
단결과 우애, 그리고 승리를 향한 확신! 홍콩은 이제 동방의 진주가 아닌, 세계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A1. 종말의 전주곡.
굉음과 함께 지표에는 큰 불길이 일었습니다. 대아르헨티나국 최고사상법원에서 마푸체족 전체에게 사형을 선고한 이후, 모든 마푸체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즉시 척결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서식지’로 지정된 지역은 모든 이들의 거주가 금지되는 무인지대가 되었고, 정기적인 공군 폭격이 이어졌습니다. 밭을 가는 농민부터 운송업자, 말 탄 여행자까지, 공격기의 기총소사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새로 설립된 “인종순수청”은 어떤 인종이 우월한 아리아계 백인종이고 어떤 인종이 잡종이며 어떤 인종이 열등종인지를 엄밀히 가리는 작업에 동원되었습니다. 거리에서 집회가 일어났을 때 시위자의 인종 비율에 따라 진압방식을 결정하도록 하는 법이 새로 통과되기도 했죠. 예컨대 네그로이드들이 주도한 빈곤퇴치 캠페인은 당국이 구역을 봉쇄하고 무차별 신경가스 공격을 펼침으로써 진압되었습니다. 진압군은 시위자들 뿐만 아니라 근처를 지나가는 물라토계 여인의 배를 총검으로 찌르고 그녀의 유모자를 부순 뒤 총검에 아기를 꽂아 전리품처럼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대아르헨티나국 정부가 바라는 이상향은, ‘순수한 국가’였습니다. 사소한 얼룩일지라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노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신성한 행위이지만, 이 세계의 적법한 지배종인 아리아계 백인은 오로지 ‘행복 추구’를 위해서만 노동을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나머지 열등인종들이 노예노동을 해야 했기에, 그들에게는 일 18시간 이상의 노동이 강요되었습니다.
행정상 편의를 위해 유색인종과 백인종의 거주구역 역시 철저히 분리됐습니다. 유색인종 거주구역은 범죄와 타락의 온상으로 분류되어 군경 신규 입대자의 실전훈련지로 이용되었습니다. 모름지기 자랑스러운 대아르헨티나의 군인이라면 적에게 가장 왕성한 잔혹함과 적개심을 보여야 했기 때문에, 열등종을 가장 창의적으로 살해하는 이들에게 최상등급이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광기는 1975년 6월 29일 아르헨티나와 유고슬라비아의 친선 축구경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경기 중 메스티소계 공격수가 골찬스를 놓치자, 팀 주장이 벤치에서 산탄총을 가져와 그라운드에서 그를 즉결처형한 것입니다.
경기는 즉시 중단되었고, 강대국들의 내홍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습니다. 그러던 11월의 어느날, 포클랜드 섬(말비나스 군도)에서 대규모 탄저균 감염사태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공격을 감행할 이는 단 하나밖에 없었죠. 반파시스트 십자군을 선언한 미연방국은 동맹들을 불러모았고, 영국은 아태기구를 호출해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제 자리로요…
S2. 정말 위대합니다 서기장 동지!
서기장이던 야코블래프 동지. 아, 이젠 故 야코블레프 동지. 그는, 두가지 노선으로 연방을 재편하려 했었죠. 책임 대국과 자유화. 자유화는 설명했고... 책임대국은 더 이상 우리가 동유럽을 가지고 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자유롭게 풀어줄 것입니다. 신뢰가격으로 자원을 팔아줘도, 오일쇼크로 어려울 때 지원해줘도 고마운 줄 모르고 우리를 불신하는 동유럽 놈들은 알아서 하라 합시다! 티토에게 가든 미국에게 가든 알아서 하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위에 말했듯, 사유재산 보유, 자영업 허가, 민간 기업의 창업... 뭐든지, 뭐든지 할겁니다.
네? 개혁으로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구요? 뭐, 그건 어쨌든 해결 될겁니다. 보십시오. 보이지 않는 손이 물가를 자유롭게 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국영 기업 민영화 과정이 불투명하다구요? 꼬우십니까? 꼬우면 시위라도 하십시오.
일부 인사들이 국부를 독점하고 있다구요? 부의 집중으로 대기업이 늘어나야 국가 경제가 성장할거 아닙니까. 정경 유착이 너무 심하다구요? 뇌물이 만연해지고 있다구요? 말은 제대로 합시다. 뇌물이 아니라 후원입니다. 국가를 이끌기 위해 필요한겁니다.
예전엔 8시간만 일했는데, 지금은 12시간을 일한다구요? 꼬우면 아르헨티나에 가십시오. 18시간 일하고 싶습니까? 노동에 감사 하십시오. 총선이 온다라... 총선. 아, 좋은 말이군요. 득표율 합계가 이상하다구요? 140%? 아 뭐 그럴수도 있죠. 방송사가 실수한겁니다.
경제 성장률은 10%에 육박하고, 인플레이션은 2%로 안정적이며, 국가는 풍요로워지고 있군요. 공정, 정의. 그런건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인류사는 적자 생존이었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원하는게 뭡니까? 이리 와서 홍차 한잔 드십시다. 제것과 색이 다른건 신경 쓰지 마시구요.
(이 문서는 빨간 잉크로 쓰여졌습니다.)
W2.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네. 여기까지가, 48년 이후로 세계를 풍미하던 두 열강의 개편. 그리고... 다극체제로의 재편까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의 끝은 아닐겁니다. 이 이후로도 세계는 흘러갈겁니다. 어떠한 길을 걸었는지 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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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시간은 흐르고, 막을수는 없다.>
"DEATH TO THE FALSE PRESIDENT!" - 시위대의 구호. 비델라 : 수도를 점거한 군대들이 보이십니까? 하야하십시오. 아니면 군부에 권한을 넘기시거나. 이사벨 페론 : 그거 알고있습니까? 우리 핵 탄두의 투발 위치가 어디인지. 비델라 : 뜬금없는 소리를... 빨리 결정이나 하십시오. 호해가 했던 문답이나 할 시간은 없습니다. 이사벨 페론 : 우리 핵 탄두는... 외국이 투발지였던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당신들에게 넘기느니, 잿더미로 만들겠습니다! 비델라 : 무슨... (굉음이 울린다) - 버섯구름이 솟아오르기 30초 전.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미는 상처입었습니다. 남미는 파괴되었습니다. 남미는 고문 받았습니다. 하지만 남미는 해방 되었습니다." - 아르헨티나가 패전하고 멸국 된 직후 연설. 이 이후, 아르헨티나는 안데스 산맥을 기준으로 위임 통치된다. |
"우리의 제 1 국정 목표는, 재정 적자의 해소, 외채 문제의 해결입니다." - 후지모리 후보의 당선 취임사. 이후, 페루는 경제의 대외 개방, 공기업 민영화, 투자 시장 개방을 단행한다. "우리는 인류를 두 개의 적대적 진영으로 갈라놓은 자들에 의해 고통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민중과 함께 할 것입니다!" - 체 게바라. 볼리비아 혁명에서. |
아랍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이집트와 리비아, 튀니지 세 지역으로 구성되며, 각 지역에는 집행위원회를 설치하여 일선정책의 실시에 관한 사항을 조사, 연구한다. - 아랍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헌법.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1200명을 살해하고, 70%의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외교 참사로 인한 평판 악화를 일으키고, 잔학함과 고문으로 부당하고 무자비하게 국민을 탄압한 정부는, 단 하루도 이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권한을 초월해 행정부를 찬탈했습니다!" - 쉴레이만 에브렐. 커피 혁명 가두 연설에서. 이 이후 군부는 사임하고, 에브렐이 터키 대통령에 오른다. "이것이 우리가 흘린 핏값에 대한 대가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 우아리 부메디엔. 알제리-프랑스간 협정으로 대규모 양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한 이후. 그후 친미 진영에 편입되었다. "본 의장은, 현재 우리 모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상황에서, 전 스페인 국민 여러분께 최대한 침착하고 안심하시기를 짧고 간결하게 당부드리며, 의회에서의 표결 결과를 발표합니다. 후안 3세 전 국왕의 유고 이후, 공화정체 전환에 대한 의회의 표결은, 총 350석중, 찬성 252표, 반대 78표, 기권 20표로, 가결 되었음을 선언하며, 국민 투표에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 스페인 의회. 후안 3세 서거 이후 공화정으로 전환되며. |
"향후 10년 전방위 협력… 인도태평양 중요" - 리덩후이 AFN 수반 - 리지브 간디 인도 총리의 회담 이후 기사. 인도가 AFN에 준회원으로 가입하며, 아프리카에서 각축전이 열린다. "우리는 강대국에 비굴하게 굴복하지 않을것입니다! 끝까지 맞서 싸울것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아프리카의 정치에서 손을 떼십시오!" - 아프리카 통일 기구 대표. 르완다 내전, 에티오피아 쿠데타, 나이지리아 암살 사건 이후. |
"갑자기 볼스키씨가 급사 할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그럼 전국 경영 관리 위원회는 리하초프씨가 맡게 합시다. 그정도로 "후원금" 을 냈으면 줄만 하지 않나 싶어요." "그럼 볼스키씨 아들인 볼쇼스키는 어디 앉힙니까?" "에이... 아직 어린데 거기까지 생각하지 맙시다. 어차피 시간 길어요. 상속법이나 잘 정비해 두고..." - 인민 생산성 증대 최고 소비에트 회의에서. |
"만일 미국의 누구건 핍박 받고 있다면, 날 찾아올거요. 그리고 나는 그에게 호의를 베풀거요. 당신들은 그럴수 있소?" - 폴 카스텔라노. 민병대 진영. "우리가 우리를 둘러싼 최악의 상황에서 지키며, 올바른 태도를 지키는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승리일것입니다." - 하워드 진 자경단 진영. "민병대와 자경대의 현재 정책은 미국의 치안을 악화시킬 뿐이다." - 노엄 촘스키 수호부 진영. 위의 세 발언은, 모두 호파의 사망 후 갈등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이후 퍼시 노튼이 집권하지만... "우리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VIP"는, 말만 치안을 담당한다고 할 뿐입니다. 사실은 본인들이 "VIP" 인것 마냥, 우리를 억압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미국에서, 이런 갱단과 같은 행위는 용납되어선 안될 것입니다! 정부는 조속히 시정조치를 내리십시오!" - 람스도르프, "MVP"에게 총을 맞기 직전 발언, 센트럴파크 집회에서. "중국은 이제 엄청난 힘을 과시하면서, 자신들의 영향권을 확장하고, 그들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동안, 그들은 가면을 뒤집어쓰고, 국제법을 파괴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영향을 증대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른바 자유라는 이름 아래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자국의 권리를 중국에 양도 하는게 자유 국가 동맹입니다. 중국은 당신들에 군림하나, 당신들을 책임지지 않습니다." - 노엄 촘스키 연내 담화. 위는 아군을, 아래는 적군을... 변한게 있을까. |
"현재 한, 중, 일의 표준 모델은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유례없는 안정에 기여하고 있음이 명백합니다. 비판 하시려거든, 대안을 내놓고 말해 주시겠습니까?" - 류메이란 민정 수석. 도어 스테핑에서 아시아 정치 체제에 대한 질문의 답변. |
"國民黨, 中国石油化工에 不法 請託" - 시노펙 불법 로비 사건.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로 인해 YS가 사퇴하기에 이른다. "첫 번째, 북측의 무력 도발을 허용하지 않는다. 두 번째, 남측은 흡수 통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세 번째, 남측은 화해와 협력을 추진한다." - 김대중 총리의 햇볕 정책 원칙. 북한 정권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흡수되었다. "현재, (구) 북한의 통제하에 있던 지역의 시민들과 (구) 남한 시민들의 소득 격차는, 통일 당시의 1:3의 격차 이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 여당과 행정부는, 통일 당시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는 조속히 합의를 이행 하십시오. 만일 합당한 조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권익 연대는, 신임 보완을 파기하고, 불신임을 상정 하도록 하겠습니다." - 95년 국회 연설에서, 이북 주민 권익 연대 대표, 나선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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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번 연대기가 끝났습니다. 공교롭게도 한국으로 끝났습니다. 이 다음 작품은... 네. 댓글로 예고 되던 그거... 겠네요 ㅋㅋ.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기회에 만납시다!
@931117 그 일환으로 헌법 서문을 수정.
(개정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4·19의거 및 5·16혁명의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후략)"
@931117 (개정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5·16혁명의 이념과 10월 유신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국의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조국을 건설함에 있어서,(3.1운동:임시정부/4.19:민주화운동을 부정.조국 통일을 위한 침략 전쟁 가능성 공식 인증.자유민주적 질서 및 민주공화국 체제를 사실상 부정)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기회의 균등화를 부정하고 국민들을 소모시킬겠다는 선언)
국민생활의 향상을 기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후략)"(항구적 세계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부분을 삭제하며 전쟁 가능국가임을 선포)
@931117 서문을 개정하면서 언론 통폐합을 단행하고 방송관련법을 제정 및 수정해 전분야의 대중문화를 탄압.시사적인 내용이 아예 없거나 친정부 내용만을 다룰수 있도록 허가.
이후 국회 및 통일주체국민회의 관련도 수정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아예 상설기구화.정부는 상하원 체제화라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국회가 갖고있던 입법권과 예산안,결산 심사등 모든 권한을 강탈.
국회는 그저 의원들의 의사수단으로 전락.사실상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국회가 되버리는 순간이었다.이는 혹시나 추후 총선에서 반유신세력이 이길 경우를 대비해서로 보인다.
또한 이와 함께 계엄령을 해제했으나 동시에 국회의 계엄령 해제 권한이 통일주체국민회의로 넘어가버린다.
심지어 신추축국과 연대해 핵개발을 다시 진행중이라는 루머까지 퍼지기 시작.현단계에서 다시 시작되면 2,3년안에 자체 핵무기 생산이 가능해질것이라는 미국 정보부의 우려섞인 보고서가 전달
@931117 정신 나갔나...
@돈이 곧 진리 어차피 채택되고 논의 들어가면 다들 당연히 이대로 가면 안된다고 할테지만...
근데 진심 이랬으면 좋았을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것 같은...
오랜만에 정주행했네요 ㅋㅋ
강도귀족의 나라가 된 소련, 정치깡패가 나라를 다스리는 미국에 비하면 사회주의 EU라던지 교도민주주의 중화민국 정도는 상대적 천국이나 다름없는..
제가 만든걸 기반으로 한탓인지 지나치게 나온것 같은 생각도 드는군요...
p.s:새댓글 알림이 유지상태라 안것뿐...
모든것이 상대적이지만, 내가 너보단 낫다(...) 로 굴러가는 세계는 이상적이진 않죠 ㅋㅋ 이중 하나 빅토로 만든다고 하면 생활 수준은 그래도 eu가 제일 나을것 같네요 ㅋㅋ
아. 그러고보니... 연대기가 없어서 다시 볼때는 슈나이더님이 제일 안 좋네요 ㅋㅋ 물론 제 기준 (1. 자기거는 웬만해서는 다시 안 본다 (이유 : 본인 옛날건 부끄럽거나, 너무 잘 알거나 해서) 2. 플레이만 재밌는 쪽도 사실 잘 안 본다. 3. 미완결은 또 안 본다.) 에서지만 ㅋㅋㅋ... 암튼 쓰고있는거도 잘 써야 할텐데 말이죠 ㅋㅋ
+ 근데 정주행 하신다는건... 기대 해도 되나요? ㅋㅋ 다음작이 비로소...? 하지만 지금은 연초(...)
@dear0904 저도 아주 가~~~~~~~끔 봐도 내가 이걸어떻게 썼나 또는 어찌 플레이 했었나 하니...
@931117 사실 기반이 그리 중요하진 않다 싶기도 합니다. 지금 여행도 기반 자체보다는 진행하는 플레이어...? 들의 성향에 더 흐름이 있거든요 ㅋㅋ...
+ 새댓글 알림은 굳이 안 끄죠 ㅋㅋ...
+ 제일 부끄러운건 첫작이죠. 처음 쓴것도 그렇고, 첫 참가도 그렇고 ㅋㅋ...
@dear0904 안봐서 모르겠네요(선넘을까봐)
+ 그렇죠.몇몇분 새글 알림처럼
+ 전 게임기반 연재적글이...
@dear0904 하려면 지금 해야 합니다. 저는 요맘때가 제일 덜 바쁜 시기라.. ㅋㅋ
심지어 생각도 좀 있습니다 ㅋㅋ
@E.E.샤츠슈나이더 아 ㅋㅋㅋ 보통 연말 연시인데 다르시군요 ㅋㅋ... 생각도 있다면 더 좋네요 ㅋㅋ
+ 이 짤이 어울릴수도 있겠네요 ㅋㅋ... 늙지는 않았지만 저는 이렇거든요(...)
@dear0904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드라이브 한번 걸어볼까요.. ㅋㅋㅋ
진행이야 뭐 시간 나는대로 하면 되는거고..???
@E.E.샤츠슈나이더 진행이야 시간 나는대로 하면 되죠 ㅋㅋ 빠르게 시작해야 바빠지기 전에 끝납니다(??)
+ 물론 그래서 빨리 시작했는데 바빠질때까지도 못 끝내면 제 꼴이 나는거구요(???)
++ 별개로, 지금 여행 연재를 생각해보면, 누가 1453-2022 연재를 제안했던게 수용되면 어땠을지 싶습니다 ㅋㅋ...
@dear0904 당연하죠.저야 컷 규정 정하는등이 있었지만 그거야 제가 웬만하면 시간이 나니까 그런거니까.
+ 저도 연재도중 일하면서 보고 해서...근데 신기한건 노가다 당시에 시간이 촉박한데도 금방 쓸수 있을거라고 몇몇분이 그러셔서 해봤더니 진짜 금방 나왔던 기억이
++ 저도 전근대 시기 얘기 나왔을때 1화당 10년 단위로 할 생각이 있었죠.단 한번도 진행을 못했기에 시험적용도 못했지만...
@931117 시간이 진짜 귀한 자원임을 늦게 알았죠 ㅋㅋ...
+ 저도 비슷합니다. 언제나 볼 상황 자체는 만들수 있고, 답변까지도 가능한데... 항상 쓰는게 문제죠 ㅋㅋ... 나눠서 쓰는게 가능하면 그렇게 했겠지만.
+ 매 화마다 흐르는 속도는 조정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사건을 많이 다뤄야 한다? 이럼 더 시간을 쓸 수도 있고, 중요한 사건이 안 터진다? 이럼 시간을 빠르게 보내고... 그런거죠 뭐 ㅋㅋ...
@dear0904 전 시간도 시간이지만 인적 자원을 더 중히 여기는...왠지는 아실테니 스킵
+ 전 이상하게 "님이라면 얼마 안남은 시간이라도 금방 내실수 있을거에요!!"라는 식의 말을 들은 기억이...근데 사실 그게 꼭 좋은것만은 아니던게 퀼리티는 둘째치고 그러고 다른 사람들이 쓰는거 보고 무의식적으로 "나도 그정도 수준(부정적 의미)도 금방 쓴다는 소리 듣는데 그렇게 시간 들이고 나온게 이거야?"라는 생각을 가질때가 있더라고요
+ 뭐 시스템과 작성자 성향차이죠 그런건
@931117 아 뭐... 사실 제 경우는 인적 자원도 중요하지만, 상황이 그렇다보니까 ㅋㅋㅋ...
+ 보통 생각보다 오래 걸리면 그렇죠 ㅋㅋ... 그래서 오래 휴재를 하고 복귀할땐 두려움이 없지는 않을걸요 ㅋㅋ...
+ 그야 그렇죠. 고정 변수를 얼마나 두냐등등의 차이고...
@dear0904 적어도 저처럼 인원 확보 불가로 사장 상태는 아니잖습니까...하하...슈나이더님도 3명 이상은 확보 가능하실테고.
오죽하면 제 전게에 올린 지도.원하시면 사용 가능하다고 하겠습니까.ㅋㅋㅋㅋ
+ 사실 그래서 디어님이 서독 연재하고 할때 "아니 시간은 나보다 많이 쓰던데 나도 퀼리티나 작성 능력 안좋은데 나보다도 안좋아 보이지?"할때가...동방의 진주 당시에도 생각보다 시간 오래 걸렸네 하긴 했는데.사실 그럼에도 개인 역량상 한계로 못다룬게 수두룩...
+ 전 플레이어 달래가며 변수 책정해야 했으니까...
@931117 사실 인원 확보쪽에서 신경을 적게 쓰는게 지금 여행이라 ㅋㅋ... 대신 이 방식의 단점은 보시다시피(...)
+ 저는 4가지의 족쇄가 있거든요 ㅋㅋ 시간이 오래 걸리면서 퀄이 낮은 이유가(...) 타속도 느리고/필력도 높지 않고/이중 편집 필수/체력-집중력도 높은 편이 아니라...
+ 아. 하긴... 글킨 했죠.
@dear0904 이 네개가 어케 영향을 주는가는... 1. 필력이 낮으니 초기 콘티 자체가 늦게 나옴. 2. 그리고 그걸 치는 속도 자체도 늦으니 콘티의 변환도 늦음. 3. 체력이 떨어져서 중간에 쉬러가거나/집중력이 떨어져서 딴짓 하고 있음. 4. 그리고 그거 넘어서 끝내면 다음 카페로 넘기면서 교정 한번 더 해야 함(...) 이러죠 ㅋㅋ... 하나 더 있네요. 그리고 이 과정을 최대한 한번에 끝내야 함. 이러니(...)
@dear0904 안봐서 모른다니까요...굳이 추측을 하자면 선택지 설정부터 구상까지 전부 다해야 한다거나 시간 없음 작성하기 존나 빡세다는거?
+ 저도 타자는 썩 좋은 편은 아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글쓰랴 관련 자료 찾으려고 검색하느랴 해서 그런지 최근에 엄마가 브랜드 투표 해달래서 로그인 했을때 제가 입력하는거 보고 "너 타자 빠르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필력은 전 지금도 안좋죠.연재할 당시엔 다른분들이 쓰는걸 복붙했서 썼을 정도니까.제가 직접 창작해 쓴게 몇개나 있을까요.ㅋㅋㅋㅋ
전 걍 카페에서만 썼으니까.네이버 동시 연재도 걍 복붙이었죠.문제는 사진 다 깨져대니까 그만둔.
체력-집중력은 인정.좀 힘썼다 싶으면 뭔가 지치더군요.몸상태가 좋든 나쁘든.
@931117 아. 맞다... 단점은 연재 속도죠.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부담감이 있다 그런건 아닌데, 혼자서 쓰는것 + 댓글 투표로 진행 조력. 이렇다보니 쓰는 속도 텀이... 만일 보통 연대기가 이렇게 했으면... 어렵죠. 솔직히.
+ 진짜 타자가 안 늘어요 ㅋㅋ... 해도 해도 안 늘어서 포기했습니다. 이거때문에 자격증 딸때도 겨우 합격을... 기능은 잘하는데 ㅋㅋ... 필력의 경우는 솔직히 콘티에서 뽑아내는게... 그게 제일 힘듭니다 ㅋㅋ... 이건 다 어려운거고, 카페에서 안 쓰는 이유는 하도 날려먹어서(...)
@dear0904 근데 그분은 제연대기를 그런식으로 "자기만 특별 적용"하길 바랬던 기억이 또 나는군요...
저같은 경우엔 저혼자 뭘 제대로 쓸 능력이 없으니까 부담을 감수하고 사람 많은 시스템을 선호한거니까 그건 개인차.
+ 전 왜는건지 지금도 모르겠네요.사실 타자만 빨라졌지 정작 오프라인처럼 뭘 말해야 할지.그리고 뭘 어떻게 말해야 납득을 할지 애먹은 경우가 현재진행형.
연재했을때나 플레이했을때나 이상하게 다른분들에게 A라고 말하면 B나 C로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서 이걸 어떻게 말을 해야 제대로 받아들일지 똔즌 어떻게 말해야 문제가 안생길지 한 경우가..
오죽하면 전 연설문 작성할때 기존에 있던 연설문에다 문구만 살짝 바꿔 넣고 썼겠습니까.
그나마 예외가 국민정부 당시 엔딩 장면?
플레이 당시엔 소피아로 뺨때리고 한판 뜰땐 최대한 머리 굴려가며 창작했습니다만...
전 그럴까봐 아예 임시저장 하고 그럽니다.근데 웬만하면 시간 초과로 창 뜨면 뒤로 가기 하면 복원되고 그러더라고요.
@931117 하다보면 늘긴 하는데 전 안 느는거라 ㅋㅋ... 아. 그리고 그 후자의 고민이 제 필력과 같습니다(...)
+ 그 경우는 혼선이 안 생기게 잘 말을 해줘야(...) 물론 저도 투표 하다가 뭐 빼먹으니 참사가 나긴 했습니다만 ㅋㅋ...
+ 임시저장 하고 뭘 해봐도 터져서 저 스타일이 된거라서요 ㅋㅋ 최근에는 투표 시작 시간이 12월 13일인데 쓰다보니 14일 되서 그 오류로 글이 터지고(...)
@dear0904 그래도 디어님은 그런걸 연재하시는걸 보면 어느정도 가능해보이더덴요?전 그마저도
+ 그러니까 연대기때나 플레이때나 무진장 애쓴겁니다.다른분들은 안그래 보이실수도 있지만
+ 전 그런적은 없던데...이유를 모르겠네요
@931117 연재의 최대 문제는 사실 필력이나 이런게 아니라 책임감의 문제죠(...) 누구 또 글 유기해서 댓글로 조진게 글로 도는걸 보면 ㅋㅋ...
+ 오류는 팔자거니 하고 그냥 포기 했습니다 ㅋㅋ...
@dear0904 외부 사유로 못하는 경우엔 책임감이 있는걸까요 없는걸까요...ㅎㅎ...전 대놓고 저격당한게 한두차례가 아닌데요 뭐.ㅋㅋㅋㅋㅋ
+ 아...
@931117 경우에 따라 다르죠(...) 외부 사유가 한 두개가 아니라서요 ㅋㅋ
@dear0904 전누가 저격해서가 최소 3번이상에 하차로 진행이 안되서가 그 이상으로 많고 컴이 고장나서가 3번 이상.
한명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려서 의욕 뚝떨어졌다가 컴이 고장나서 이때다 하고 그만둔게 1번.
등등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