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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집을 나간다고 짐을 싸들고 나왔다가 갈 곳이 없다고 도로 들어갈 수도 없어 생각다 못한 필상의 처는 올해부터는 고등학교 2학년인 영우의 딸 성숙과 올해 고등학교 입학하여 1학년이 된 성호가 자취하는 군청 소재지인 금촌에 있는 아이들 자취방으로 갔다.
오후에 학교에서 돌아와 뜻밖에 어머니가 와 계시는 것을 보고 학기 초라 밑반찬이라도 해서 가지고 오신 줄 알았다가 방 한쪽에 놓인 낮 설은 큰 가방을 보고 어머니께 무슨 가방이냐고 성호가 물었으나 어머니는 명확히 대답을 안 하시고 얼버무리신다.
다른 때 혹 반찬이라도 해서 가지고 자취방엘 오셔도 애들의 옷 빨래나 방 청소를 해주시고는 두세 시간도 못 있고 집으로 가시던 어머니가 저녁이 다 되도록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으셔서 궁금한 성호가 다시 집에 안 가시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여기 며칠 있으려고 왔다고 하신다.
어머니의 그 말씀에 성호는 입으로는 어쩐 일로 그렇게 여유가 있으시냐고 물으면서도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하여 학교가 있는 곳인 금촌 자취방으로 나오기 전 집에 있을 때 성수 형의 대학 입학금 문제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심하게 다투시는 것을 보고 와서 어머니의 행동이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를 챘지만, 어머니의 입장과 영우의 딸인 성숙이 누나의 입장 생각해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성숙도 집을 떠나기 전 집안의 모든 사정을 알고 있어 속히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시는 큰어머니의 행동과 그분이 가져오신 가방을 보고 큰어머니가 왜 오셨는지 눈치를 챘고 그런 성숙으로는 큰어머니 보기가 연간 민망한 것이 아니다.
성수와 자기 친오빠 성국의 대학 진학 문제로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으니 그런 성숙을 보고 성호가
“누나! 너무 걱정마라. 어머니는 내가 잘 설득해 볼 테니, 누나는 모르는 척척해.”하며 다독인다.
“그러면 큰어머니가 나보고 너무 뻔뻔하다고 하시지 않을까?”
“그러시지는 않을 거야. 어머니가 아버지와 다투신 것이지 누나 때문이 아니잖아. 그리고 어머니가 누나를 얼마나 귀여워하시는지 누나도 알잖아.”
그건 그렇다. 아들만 있는 집에 외동딸이라 성숙은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난처해할 것 같은 성숙의 입장을 고려해서인지 필상의 처도 성숙에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평소와 같이 대한다.
그렇게 이틀을 지낸 후 토요일이다.
학교를 다녀와서 먼저 와 있는 성숙을 성호가 불러내
“오늘 내가 엄마를 설득해 볼 테니, 누나는 잠시 자리를 피해줘.”라고
말해 성숙을 밖으로 내보내 놓고 성호는 어머니와 마주 앉아
“어머니! 성수 형 일로 화가 나서 집을 나오신 거죠?”
하고 물었다.
처음에는 대답을 안 하시던 어머니가
“안 그래요? 어머니!”하고 되묻는 성호의 물음에
“그래! 네 아버지 처사에 화가 나서 집을 나왔다.”
하고 지금도 화가 안 풀리셨는지 언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가실 때가 없으셔서 이리로 오셨군요.”
하고 성호가 빙그레 웃음 띠자
“너마저도 이 어미를 놀리는 거냐?”
하고 역정을 내신다.
“어머니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처사가 답답해서 그래요.”
성호가 하는 담담한 대답에
“무엇이 답답해?”
어머니의 반문하는 물음에는 힘이 많이 빠졌지만, 아직도 노기가 있다.
“이제 어쩌실 작정이에요?”
“나야 여기서 너희들과 살지. 설마 네 아버지가 우리 밥이야 굶기겠냐? 또 네 아버지가 생활비를 안 준다고 하면 남의 집을 도우미라도 하면 내 한 몸 못 살겠냐?”
하는 어머니 말씀에 어떤 결의 같은 것이 보인다.
“어머니! 그러지 마시고 아버지를 이해하세요. 아버지도 그렇게 일 처리를 하시고 마음이 좋으시겠어요.”
“네 아버지는 늘 그랬어. 한 번이라도 너희 형제를 먼저 생각한 적이 없어.”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럴 수뿐이 없지요.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계시니 어떤 원칙으로 일을 하셔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집에 위계가 서겠어요. 형은 몰라도 아니 형도 알거에요. 아버지가 왜 그렇게 하시는지. 그래서 아마 형도 지금은 섭섭해하겠지만, 얼마 안 돼서 아버지를 이해할 거예요.”
“너희가 아버지를 이해한다니 내가 고맙기는 하다만.”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께 화가 난 어머니가 고맙다고 하신다.
“실제로 이렇게 나오셨지만 속으로 아버지가 걱정되시죠?”
“걱정은 무슨.”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말씀에는 어느 정도 힘이 빠졌다.
형의 일로 화가 나서 집을 나오긴 했지만, 남편과 결혼 후 25년이 넘도록 심하게 다툰 일도 없이 다정한 사이이었는데 이번 일로 이렇게 집을 나와 있으니 한 편으로는 집안 걱정되시는 것도 사실인 모양이다.
이것을 눈치챈 성호가 다시 설득을 시작한다.
“어머니! 그리고 형이 어디가 있는지 모르는데 지금 어머니가 이렇게 나와 계시면 나중에 형이 집으로 연락하거나 돌아왔다, 어머니가 안 계시면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자기 일로 이렇게 된 것 알고 무척 걱정하고 근심할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도 지금쯤은 어머니 걱정을 많이 하실 거예요.”
“네 아버지도 있고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도 있잖아?”
“그렇게 하고 나간 형이 집에 연락하면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겠어요? 집을 나간 형이 객지에서 고생하다가 큰맘 먹고 집에 연락했는데 어머니가 안 계셔 봐요. 얼마나 당황스럽고 섭섭하겠어요. 아니 내일이라도 형이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안 계시면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래서 자기 탓을 하고 실망하여 도로 집을 나가버리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는 또 얼마나 민망해하시며 어머니를 걱정하고 기다리시겠어요.”
이제 고등학교 일 학년이 된 성호가 하는 말을 듣는 필상 처는 성호의 성장에 마음이 부듯했다.
그리고 영우네 부부를 생각하니 자기의 행동이 좀 지나쳤던 것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다.
“그러니 오늘 저와 같이 집으로 들어가시죠?”
“아니다. 당분간은 더 여기 있어야겠다.”
그래도 어머니는 망설이신다.
“어머니! 그러지 마세요. 어머니의 마음은 이제 충분히 아버지께 전달됐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집을 나오신 지 오래되면 들어가시기가 더 힘들어져요. 오늘 토요일이라 저도 집에 가려고 했으니, 저와 같이 집에 들어가세요.”
성호의 말을 듣고 필상 처는 그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에 아무 말 없다.
그런 어머니를 성호가 어서 가자고 손을 잡아끌고 멀리 가지도 못하고 집 주위에서 마음 졸이며 기다리다 성호가 나와 어머니와 나눈 대화 내용을 하고는
“어머니 마음이 많이 누그러지셨으니 이제 누나가 설득해 봐.”하는 성호의 말을 듣고 성숙이
“큰어머니 저를 보아서라도 들어가세요. 성호 말처럼 오늘 우리도 집에 가려고 하니까요. 공부하다 토요일 집에 들어갔을 때 큰어머니가 해주시는 닭죽이 참으로 맛있었는데 여기 계시면 오늘은 누가 그렇게 맛있는 닭죽을 만들어 주어요.”
하고 아양을 부리며 필상처의 등을 민다.
이렇게 해서 필상의 처는 그날 오후 성호와 성숙을 앞세우고 성호와 성숙이 집으로 가자고 하도 성화해서 할 수 없이 들어왔다고 하며 귀환했다.
돌아온 필상의 처를 보고 영우와 영우처는 손을 잡고 반가워하고 특히 영우처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필상은 이렇게라도 처가 돌아와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아무 말 없이 볼일이 있어 다녀온다며 윗동네로 올라가 버린다.
필상은 겉으로 말은 안 했으나 처음에 처가 집을 나갔을 때는 갈 곳도 없는 사람이 집을 나갔으니, 어디로 갔을까 고생이 심하겠다고 생각하며 하루 이틀 기다려 들어오지 않으면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많이 하던 중에 성호의 연락으로 처가 성호에게 가 있는 것을 알고 나서는 다소 마음을 놓았다.
성국으로 해서 그런 일이 벌어져 무척 괴롭고 걱정이 됐던 영우와 영우처도 성호의 연락으로 마음이 다소 나아졌지만 앞으로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런 일이 자주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무거운 마음은 여전했었고 그래서 어떤 결정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필상의 처가 집을 비우고 있는 때에 그런 결정을 할 수 없어 필상의 처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필상의 처가 일찍 돌아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저녁에 술을 한잔하고 집에 들어온 필상은 처가 집으로 돌아온 것에 고마워하면서도 자기의 뜻을 몰라주는 성수와 처가 원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자기가 돈을 더 구할 수 있으면 왜 성수의 입학금을 마련해 주지 않았겠는가.
성수는 자기의 자식이 아닌가, 자기가 누구보다 사랑하는, 돈을 구하다 안 돼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자기를 성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구보다도 이해해 주어야 할 처가 몰라주는 것이 섭섭했다.
집안의 어른인 자기로서는 그렇게밖에 처신할 수 없지 않은가, 또 공부 잘하는 성도와 성국을 끝까지 공부시켜 그 애들이 잘되면 다른 형제들도 도와주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필상의 생각이다.
방으로 들어간 필상은 자기의 섭섭함을 감추고 처와 제방에 있던 성호를 불러 자기 앞에 앉혀다.
혹 감수성이 한창인 고등학교 1학년인 성호까지 자기를 정이 없는 아버지로 생각하고 상처를 받으면 안 되겠고 또 25년을 넘게 살도록 크게 마음 상하게 싸운 적이 없던 처가 성수 문제로 집까지 나갔다 왔으니 조금은 미안하여 아무래도 이해시켜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장으로서 느끼는 자괴감을 버리고 자기의 뜻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성수의 등록금을 만들 수 있으면 왜 안 만들어 주었겠어? 2월 말까지 애를 써보았지만, 힘에 부쳐 만들어 줄 수가 없으니까 못 해주였지. 또 성국은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갔으니, 지금이라도 가정교사 같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자기 앞을 꾸려가겠지만 성수는 하숙비, 등록금, 책값, 용돈까지 모두 집에서 마련해 주어야 할 텐데 세 명을 동시에 대학을 어떻게 보내는가? 내년 성도가 대학을 졸업하면 그때 성수를 대학 보내도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공부는 취미가 있고 잘하는 사람이 해야 하고 성도와 성국이 공부를 잘하여 훌륭히 되면 나중에 성수와 성호를 돌보아 줄 것 아닌가?”
필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이 아주 풀린 것이 아니어서 돌아앉아 있던 필상의 처가 다시 필상을 향해 돌아앉으며 대꾸한다.
“아니, 요새 세상에 친형제도 돕기가 쉽지 않은데, 아무리 의형제라도 결국은 남인데 무얼 그렇게 도와준답디까? 그것은 순전히 당신 생각이지.”
“그래도 우리 애들은 안 그래. 우리 애들은 친형제 이상이야.”
“안 그렇기는 무어가 안 그래요. 그런 애들이 한 번도 성수와 성호에게 양보를 안 해요?”
“아직 애들이니 그런 거지, 그리고 그 건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거야. 그 애들이 몇 번 양보했어. 내가 그렇게 못 하도록 반대해서 그렇지.”
“그런 말 말아요. 그 애들이 양보한 것은 자발적이 아니라 성도 아버지가 강제로 시켜서 한 것이에요. 내가 모르는 줄 알아요. 그 애들이 정말로 양보할 마음이 있으면 당신이 아무리 야단을 쳐도 한두 번은 우리 애들에게 양보했을 거예요. 그런 애들이 잘도 나중에 우리 애들을 돕겠어요?”
옆에서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호는 불길한 생각이 들며 섭섭한 마음까지 생긴다.
성도와 성국이 형은 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애들을 두고 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하오?”
“왜요? 내가 못 할 말을 했어요. 그 애들이 안 그러면 좋겠지만. 요즘 세상인심이 그런걸.”
홧김에 이런 말을 하는 필상 처도 나중에 이것이 정말 현실로 나타나리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즐감하고 감니다
구리천리향님!
무혈님!
지키미님!
감사합니다. 가까이 있는 행복을 찾으세요
즐독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