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와 누이는 꽃을 좋아했다. 예전에는 먹거리도 귀했지만 꽃도 귀했다. 어릴 적 내가 살던 곳은 대표적 봄꽃이라는 벚꽃도 거의 없었다.
꽃이라고 해야 산꽃과 들꽃 정도였다고 할까.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와 살구꽃이 저절로 피었다가 졌다.
누이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진달래를 꺾어 왔고, 사이다 병에 꽂아 마루 한쪽에 세워 두고 며칠 동안 꽃 감상을 했다.
이런 꽃들이 지고 나면 찔레꽃과 감꽃, 아카시꽃이 피었을 것이다.
누이와 엄니는 가난한 살림에도 봄이면 장독대 옆 담벼락 아래에다 작은 꽃밭을 가꾸었다.
혹독한 겨울을 무사히 견딘 작약은 해마다 스스로 나왔지만 나머지 꽃들은 심어야 한다. 봉숭아, 해바라기, 나팔꽃, 맨드라미 등이다.
보리 타작과 모내기를 마치고 나면 개구리들이 울었고, 꽃밭에서는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누이가 채송화를 심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장독대 주변과 담벼락 아래에도 채송화가 피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리집 꽃밭의 꽃은 여름 내내 피고지고를 반복하면서 장마도 태풍도 꿋꿋하게 견뎠다.
나팔꽃은 해바라기 몸통을 감고 올라 갔다가 담벼락 위까지 손을 뻗어 당당하게 꽃을 피웠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우리집보다 훨씬 크고 화려한 꽃밭이 있는 집이 있었다. 대문이 있는 브로크 담벼락 위로 한약 냄새가 풍겨 오던 부잣집이었다.
부자들은 항상 행복한 줄만 알았는데 가끔 식구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집 마당가에는 우물이 있어서 마을 공동 우물을 이용하는 일도 없었다.
대문 쪽은 브로크 담이었지만 옆쪽은 탱자나무 울타리여서 쪼그리고 앉으면 그집 마당을 절반쯤 구경할 수 있었다.
이따금 대문이 열려 있기도 했으나 무서운 그집 할아버지 때문에 들여다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늘 한약 냄새를 풍기던 그집에 어느 날 초상이 났고 사나흘 곡소리가 들렸다. 상여가 나가는 날 대문 앞에 화려한 꽃으로 장식한 상여가 놓여 있었다.
어느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상여꽃이라 했으나 그때 나는 상여꽃이 무서웠다.
상여 나가기 전날이었던가? 언제나 꼭 닫혀 있던 그집 마당이 궁금해서 구경을 갔다. 부잣집이라서 그랬을까.
멍석이 깔린 넓은 마당에는 술상 앞에 앉아 있는 조문객들로 붐볐다.
아마도 여름이었던가 보다. 그집 마당가 넓은 꽃밭에는 온갖 꽃들이 피었는데 상여꽃보다 더 다양한 꽃들로 가득했다.
그중 키가 큰 접시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접시꽃이라는 것을 훗날에야 알았지만 화려한 꽃잎을 달고 나란히 서 있던 접시꽃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배고픈 조무래기들은 행여 음식이라도 얻어 먹을 요량으로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후덕한 상주가 아이들에게 시루떡을 하나씩 나눠줘서 달게 먹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 부잣집 대문은 다시 굳게 닫혔다.
화려했던 꽃밭이 궁금했던 나는 탱자나무 울타리 아래로 고개를 내밀어 봤지만 솥뚜껑 만한 토란잎에 가려서 절반만 보였다.
늘 풍기던 한약 냄새는 그쳤지만 그집 꽃밭에는 해마다 접시꽃이 피었을 것이다.
엊그제 큰 누이집을 다녀오는 길에 만난 접시꽃이다. 좁은 시골길임에도 나는 운전을 하느라 보지 못했는데 아내가 보고 감탄사를 내질렀다.
"어머 어머, 저기 접시꽃 핀 것 좀 봐!"
무슨 일 때문인지 이날 아내와 의견 충돌이 생겨 잠시 옥신각신 했었다. 우리 부부의 냉각기라고 해봐야 항상 금방 끝난다.
짧으면 1시간, 길면 8시간 정도라고 할까.
오는 도중 약간 썰렁한 차안에서 나는 언제 화해의 말을 건낼까를 노리고 있는데 꽃이 먼저 나선 셈이다.
구멍 가게 옆 공터에 차를 세우고 꽃구경을 갔다. 아내가 접시꽃 좋아한다는 것을 이날 알았다.
내 아내는 좋아하는 꽃이 자주 바뀐다.
언젠가는 안개꽃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고, 어느 날은 장미가 꽃 중의 꽃이라서 제일 좋다고 했다.
어쩌면 조만간 필 능소화를 보면 가장 좋아하는 꽃이 능소화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구멍 가게에서 산 하드를 먹으며 잠시 꽃구경을 했다.
문득 어릴 때 부잣집에서 봤던 접시꽃이 생각났다. 그 추억 때문인지 내게 접시꽃은 화려함 뒤로 묘한 슬픔이 묻어나는 꽃이기도 하다. 나도 이날 아내처럼 접시꽃이 더 좋아졌다.
요즘엔 꽃 종류도 많고 어디를 가나 꽃이 천지인 세상이다. 이름을 다 외우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꽃에다 빛깔도 어찌나 화려한지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그럼에도 내겐 우리집 꽃밭에서 피던 봉숭아와 채송화 같은 소박한 꽃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자라 잡고 있다. 그 부잣집에서 봤던 접시꽃 또한 마찬가지고,,
인생에서는 아부가 디딤돌보다는 걸림돌이 될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아부가 양날의 검이기도 하거늘, 아부 중에서 가장 쉽고 무난한 것이 꽃을 향한 아부다.
오늘 나의 꽃을 위한 아부는 여기까지다.
첫댓글
유현덕 님의 꽃글에선
향기가 나네요.
꽃하면 전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대문 밖은 물론이고
대문안 입구부터 담장을 따라
온통 꽃으로 가득했지요.
앞마당엔 시멘트 블록으로
꽃밭을 만드시고
온갖 꽂을 가꾸셨습니다.
꽃밭과 지붕쪽으로 줄을 치어
넝쿨식물도 심으셨지요.
주홍빛 화초 호박과 수세미가
웃어대던 앞마당.
유현덕 님 꽃글를 읽다보니
꽃을 좋아하시고
가꾸시던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우왓~ 반가운 섬아님,,^^
섬아님의 시적인 정서와 고운 감성은 아버님한테서 물려 받은 듯합니다. 꽃밭을 가꾸셨던 아버지 또한 삽으로 시를 쓰신 시인임에 분명하구요.
집 안팎으론 꽃들이, 지붕까지 이어진 넝쿨식물이 마당에 가득했다니 그 풍경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꽃하면 아버님이 생각나신다니 그것 또한 꽃같은 고운 추억이지 싶네요.
섬아님, 항상 꽃길만 걸으시길요.ㅎ
아부인가요?
이렇듯 명문장으로 꽃예찬을 하시네요
곧 손자 데리러 나가려는데
현덕님 글을 만났으니
일단 후닥 반가움부터 전합니다
아버님 돌아가셨을때
동네입구까지는 차로
거기서 꽃상여 해드렸습니다
세상 아름다운 꽃이 꽃상여라니 문득 그때 생각으로 울컥도 해집니다
이제는 그 아름다운 꽃은 볼기회가 없어지네요
이따 또 봐요
정아님의 댓글이 바로 꽃문장입니다. 꽃을 향한 저의 아부는 앞으로도 자주 있을 듯하구요.
우리집 주변 꽃들은 철 따라 알아서 피기에 멀리 안 가도 아부할 꽃들이 있어 다행이랍니다.
볼거리 없던 시절 온 동네 사람들의 구경거리였던 상여꽃을 이젠 영영 볼 수 없겠지만 그런 풍경이 제 정서의 밑바탕이기도 합니다.
오후 내내 밥벌이 하느라 정아님 댓글에 후다닥 답글을 달지 못해 죄송합니다.ㅎ
우리 우리 현덕님 방가 방가 방가요ㅎㅎ
잘 지내셨쥬?
오늘도 현덕님표 좋은 글 엄청 감사히 읽었습니다.
저희 부부도 싸워봤자 얼마 못 갑니다.
둘 다 속이 없어서, 용건 있으면 싸운 거 잊어버리고 바로 말 겁니다. ㅎㅎ
사모님의 현재 스코어 최애 꽃은 접시꽃이로군요.
저의 현재 스코어 최애 꽃은.. 수국입니다. ^^
어느 꽃인들 안 예쁠까요.
이젠 내가 꽃이 아니니 모든 꽃이 다 예뻐요.
저 중학교 때 부잣집이던 친구네에 가면, 늘 집에 배인 특유의 좋은 향기가 있었어요.
향수 냄새도 비누 냄새도 아닌 독특한 향기,
현덕님 글 속 부잣집 한약 냄새에 제 기억 속 그 집의 향기가 겹쳐지네요.
제게도 그 친구네 집은 동경의 대상이었거든요.
현덕님 감사해요.
자주 글 올려주세요오~~^^
저는 유월이면 능소화사랑입니다
넝쿨장미보다 내사랑이옵니다 ㅎ
요즘 서울대 이승훈교수님
의학상식 유툽 넘 잘보는데
지주막하출혈 이야기 하셔서 놀라고 달님 생각났어요
진짜 지금 존재하고 계심이 천운이다~~!!!!
@정 아 글츄, 지금 제가 이 땅에 살아있음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그런데 그새 그 감사 그 감격을 잊고 살아요.
정아님 이 댓글 읽으며 새삼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우리 현명하고 따뜻하신 정아님! ^^
ㅎ 달항아리님 잘 지내시지요?
싸워봤자 얼마 못 간다는 달님 댓글 보면서 우리집과 닮은꼴이라 잠시 미소를 짓게 됩니다.
가능한 제가 지면서 사는데 그날은 접시꽃을 보고 싶어서 제가 고집을 부렸나 봅니다.
어릴 적 정서가 평생을 간다는 말이 있던데 저한테는 유독 더 그러지 싶네요. 그 집에서 풍기던 한약 냄새와 화려한 접시꽃이 묘한 슬픔을 안겨주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곧 수국이 피는 계절이군요. 요즘 수국은 색깔도 다양하던데 꽃들도 사람들도 꽃처럼 참 고운 세상입니다.
꽃같이 고운 심성을 가진 달항아리님도 날마다 고운 날들이길 빕니다.ㅎ
지금은 어딜가나 꽃천지인데
꽃들이 마음을 흔들어 놔서
좋아하는 꽃이 자주 바뀌지요.
유현덕님
칭찬과 아부는 다르지요?ㅋㅋ
사람에게는 아부하면 탈 날 수 있지만
사물에게는 아부해도 용서가 되니
특히 꽃에 대한 아부는 사랑입니다.
어렷을 적에는 몇 가지 꽃 뿐이었는데
지금은 이름을 다 알기에도 벅차지요.
저도 상여꽃이 무서웠었어요.
제라님, 안녕하세요.
꽃들이 마음을 흔들어서 좋아하는 꽃이 자주 바뀐다는 제라님 말이 일품입니다. 아마 제 아내도 그러지 싶구요.
저는 제목을 먼저 정해야만 글이 써지는 사람인데 이렇게 정한 것이 꽃한테는 칭찬보다 아부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꽃에 대한 아부는 사랑이란 말, 저도 나중에 함 써먹고 싶은 구절이네요.
제가 꽃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이름 모르는 꽃이 대부분이랍니다.
비록 이름은 몰라도 예쁜 것은 알지요.ㅎ
이맘때면 접시꽃이
한창피어가지요..
친정어머니께서
꽃나무를 많이 가꾸셨는데
이제는 빈집에 접시꽃만
남아있네요
접시꽃은 생명력도 강하고
번식력도 좋아
가꾸지않아도
지들끼리 잘살아가고
있더라구요...
맞습니다.
지금이 접시꽃 피는 시절입니다.
문선이님 친정 어머님께서 꽃을 많이 가꾸셨다니 꽃을 좋아했던 우리 엄니가 생각납니다.
울 엄니는 접시꽃은 심지 않았고 봉숭와, 나팔꽃 등을 심었더랬지요.
접시꽃이 가꾸지 않아도 지들끼리 잘 자랐다니 문득 저를 닮은 꽃처럼 여겨집니다.
앞으로 접시꽃을 더 사랑해야겠습니다.ㅎ
어느해 동창회를
고창구십포
펜션에서 1박하고
정읍고향집으로
들렀더니 빈집에
풀만 잔뜩자라고
장독대 근처에
머우대가
키가 멀대처럼 크게
자라고
접시꽃이 넘예쁘더라구요
부모님 생각에
사진찍어
가족까페에 소식을 알렸던
기억이 아련하네요
첨부한 사진 두 장에 담긴 접시꽃이 모두 예쁩니다. 제가 어릴 때 봤던 접시꽃에 관한 기억 또한 키가 무척 컸다는 겁니다.
사진 속 접시꽃 핀 시골 풍경이 지금은 볼 수 없는 장면이라서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문선이님한테 이런 추억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접시꽃이 생명력 강한 꽃이란 것을 문선이님 사연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덕님 글이 언제 올라 올까 학수고대 했는데 오늘에야 감사합니다
접시꽃, 저도 저 꽃이 접시꽃인 줄은 도종환님 시에서 알았지요
그렇게 절절하게 사랑으로 꽃을 피워 올리던 시인도 이혼을 하셨더군요
아이러니 하지요 ㅎㅎ 이상과 현실은 늘 어긋나니까 말이지요
아버지 따라 어린 동생과 떠돌다 남의 집 방 한칸 얻어 들던 날 아침
그 집 돌담 밑에 피었던 저 꽃 꽃잎은 사진의 꽃잎보다 훨 컷었지요
의지가지 없이 떠도느라 꽃이고 뭐고 못 보던 척박한 제 눈에 그날 저 꽃은
어떤 환회 비슷한 감정으로 다가 오더군요
그날 이후 저 꽃이 질 때까지 삼복 더위 속에도 꽃 근처를 떠나지 않았지요
제가 이름을 붙였어요 꼬꼬댁 꽃이라고 붉은 꽃잎 한장씩 떼어내면 진득한
진액이 나옵니다 그걸 턱밑에 붙이면 흡사 닭벼슬 같았거든요
동생과 종일 꼬꼬댁 꽃잎 턱밑에 코 밑에 붙이고 \꼬꼬 하며
놀았지요 소녀에서 처자로 그리고 어미가 되고 나서 저 꽃이
접시꽃이란걸 알았습니다 오늘 현덕님 덕분에 옛생각에 곁들여
꽃 구경 실컷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동안 조금 정신 없이 보낸 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계획했던 산행도 미룬 일이 많았답니다.
지금 아니면 갈 날이 없을 텐데 하면서도 경중의 순서를 무시할 수 없는 저의 일상입니다.
접시꽃 시인 도종환 선생은 제가 접시꽃 만큼이나 좋아하는 작가랍니다.
시인도 그렇고 운선님도 그렇고 누구든 꽃에 관한 사연 하나씩은 가슴에 담고 사나 봅니다.
저도 워낙 밑바닥 생활을 했기에 꽃을 제대로 못 볼 때가 있었는데 운선님은 더했었나 봅니다.
꼬꼬댁꽃 사연을 듣고도 오래전의 그 접시꽃에 담긴 슬픔이 얼마나 깊을지 저는 감히 가늠할 길이 없어 안타깝기도 합니다.
고난의 길 잘 넘기고 왔으니 운선님도 이제 계절 따라 피는 꽃구경 하면서 인생 즐길 일만 남았습니다.
모쪼록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부인과는 사별을 하고 그유명한 접시꽃당신을 펴내고
5년후에 재혼을 해서 사람들이 실망하고 시집을 불태우기도 했답니다
저는 영월에서 근무할때 스무살짜리 여직원이 대학간다고 사표를 내고
떠났는데 그녀가 제게 보낸 편지중에 "사월이가고 오월이 올때 장다리꽃은
가장 짙다"라는 시가 적혀있어 장다리꽃을 아주 좋아합니다
운선작가님 댓글에 댓글을 달아 죄송합니다
유현덕님의 어린시절에 대한 아름다운 글 잘봤습니다 ^^!
@그산 아, 그랬군요 장다리꽃 시를 보낸 여직원 애틋한 느낌이 간직 된 듯 합니다
장다리꽃은 꽃이 귀하던 6~70년대 자주 보던 먹는 꽃들이었지요 제가 많이 꺽어 먹었던 장다리는 유채 즉 월동추 꽃인데 당시는 씨 받는다고 못먹게 하기도 무 장다리꽃도 정구지 장다리꽃도 신비롭게 보아지던 당시였지요 그산님 마음 속에 남은 애잔한 추억이 좋아 하는 작가 김훈의 단편 속 화자의 독백처럼 그려집니다.
@그산
그산님께서 저 대신 짚어주셨네요.
운선님이라고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이 먼저 세상 떠난 아내에게 바치는 추모시집이란 걸 모르시진 않았을 겁니다.
저부터 가끔 착각과 오류를 저지르기에 운선님을 이해합니다. 나중 제가 도종환 선생에 관한 글을 쓸 기회가 있을 때 밝히려고 했지요.
충주하면 신경림, 청주하면 도종환, 이렇게 엮어서(?) 두분 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랍니다.^^
장다리꽃을 좋아하는 그산님 고맙습니다.ㅎ
삶에 지친 우리네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를 전해주는 꽃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 중 저도 한사람에 속합니다. ^^*
꽃 좋아하는 수피님 반갑습니다.
꽃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순하게 만들기에 나쁜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지요.
수피님처럼 심성이 고우면 꽃이 더 이쁘게 보일 테구요. 항상 꽃처럼 방긋 웃는 즐거운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ㅎ
다섯살때 엄마가 하늘로 떠났다.
그 다음해 초여름 어느날 , 여섯살 아해는
큰누나 손을 잡고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엄마
산소를 갔더니 패랭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네...
엄마의 손길이 느껴지는지 누나도 울고
아해도 울고, 그 꽃은 흐느적 흐느적 춤을 쳤다.
앗! 적토마 선배님 잘 지내시나요?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의 그리움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댓글입니다.
저는 접시꽃에서 묘한 슬픔을 느꼈는데 선배님은 패랭이꽃이었나 봅니다.
엄마 무덤가에 핀 패랭이꽃은 너무 슬퍼하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라는 엄마의 당부였을 겁니다.
모쪼록 좋은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토닥토닥,,^^
@유현덕
오케이....화이팅~!!
유현덕님의 옛집 모습이 그려집니다
장독대옆 담벼락의 봉숭아 채송화 나팔꽃..
화려하지 않지만
얼마나 정감가는 모습일지
유현덕님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해야하나요 ㅎ
전원마을 100여가구가 모여있는 이곳 저희집도
화려한 꽃은 작약정도이고
스스로 씨로 번식하는 들꽃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어요
닭의장풀
괭이밥
씀바귀
봄까치꽃 그리고 톡톡터트려 번식한 봉숭아가 한가득이랍니다
접시꽃과 꽃양귀비도 한자리 차지하고 활짝웃고 있네요
편안한 글 감사드립니다
와우~ 그리움님께서 마치 제 어릴 적 시골집을 본 듯한 댓글입니다.
제 시골집 풍경이 사진으로 남은 것은 없지만 희한하게도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답니다.
비록 손바닥 만한 꽃밭이었지만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아주 많은 추억들이 담겨 있지요.
님이 살고 계신 시골집도 얼추 그려집니다.
봄까치꽃은 잘 모르겠으나 나머지 아는 식물 닭의장풀, 괭이밥, 씀바귀 등 토속적인 이름들이 아주 정감이 가네요.
님의 댓글에서 봉숭아 씨앗 터지듯이 멋진 풍경이 와르르 쏟아져서 저는 참 좋습니다.ㅎ
평화로운 전원생활 되시기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현덕님
제가 자란 산골마을 우리윗집 숙이네 아부지는 어디서 구했는지
저희집 골목을 나서면 숙이네집으로 가는 오르막길에는 온갖 꽃들이 환하게 피어서 기분좋게 해주었어요
사루비아 분꽃 해당화 찔레꽃 과꽃 나팔꽃 채송화 해바라기
까만 분꽃씨앗 톡톡 터지는게 신기해서
땀빨빨 흘리면서 씨앗줍던 일이 엊그제처럼 떠오르네요
고운글에 녹아들었네요
잘 읽고 갑니다
둥근해님 저도 반갑습니다.^^
부지런한 숙이네 아부지 덕분에 골목 골목 온갖 꽃들을 볼 수 있었다니 완전 꽃 피는 산골에 꽃대궐이었겠습니다.
이래서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큰 복이라는 말이 있나 봅니다.
사루비아, 분꽃, 해당화, 찔레꽃, 과꽃, 나팔꽃, 채송화, 해바라기 등, 제가 다시 옮겨봐도 너무나 친근한 꽃들입니다.
우리집 꽃밭에는 없었지만 본문에 나오는 부잣집에는 이런 꽃들이 전부 있었을 것으로 보이네요.
요즘 화려한 꽃들이 많지만 저는 이렇게 어릴 적에 봤던 꽃들에 더 정감이 간답니다.
예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현덕님 잘 지내시죠?
저도 처음 접시꽃을 접했을땐 그 우람한 자태에
한번 눈이 동그래 졌고
크기에 또 한번 놀랐지요..
꽃이라고 하기엔 그 위용이 대단하다고 느꼈답니다
여장부 같은 스타일 이라고 할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장미와 안개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들에핀 꽃과 설악산의 에델바이스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이웃집 이장님 같은 글
즐감합니다,,
그리고 꽃 이름을 모르지만..
생시적 아버님께서 키우던 꽃이 있었는데 이름은 모름
그꽃을 해마다 볼때면 아버님 생각에 마음 한 구퉁이가
저며오네요~~
넵~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칼라풀님 말씀처럼 접시꽃이 키도 크지만 꽃잎도 큰 편이긴 하지요. 그래서 접시꽃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네요.
얼굴 보구 이름 짓는다는 말도 있듯이요.
그러고 보니 지금쯤 설악산 공룡능선엘 가면 에델바이스가 반겨줄 때이기도 합니다. 님이 이꽃을 좋아하신다니 반갑기도 하구요.
칼라풀님 아버님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 이름은 몰라도 꽃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지 싶습니다.
참, 저도 모처럼 이번 토욜에 멀리 있는 산을 갑니다. 무슨 산인지는 다녀와서 알려 드릴게요.ㅎ
항상 좋은 날 되세요.
카페오기 심드렁하여 창 밖에서 기웃기웃
시어머니는 펌프 주변에
게발선인장, 공선인장, 손바닥선인장, 꽃기린을 키우셨어요
엄마는 마당 있는 집에 살 땐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 과꽃을 심으시더니
시골에 가서는 밭을 매다가 가장이 둔덕에
봄맞이꽃, 꽃마리, 냉이, 꽃다지, 개망초, 돼지감자꽃을 옮겨 심고
짬짜미 바라보셨지요
추천 꾹
답글이 조금 늦어네요.
동연님의 댓글로 인해 저도 어릴 적 마을 풍경을 떠올려 봅니다.
동연님 시어머님처럼 제 친구네 집에도 여러 선인장을 길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호기심에 만지면 가시가 여지없이 손가락을 찔러서 얌전히 구경한 했지요. 참고 기다리면 선인장꽃도 피었구요.
어머님이 밭둔덕에 심으셨다는 봄맞이꽃, 꽃마리, 꽃다지 등은 잘 모르는 꽃이긴 해도 이름들이 토속적이라 참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평화로운 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