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 이야기
드디어 영화 <대호>를 봤다. 가슴이 찡했다. 영화 <대호>속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배우를 둔 아버지가 한 턱 쏜 것이었다. 단역 중에서도 제법 비중 있는 역이고 배우 이름은 양호성, 일본군 폭파범으로 나오지만 영화배우의 꿈을 향해 한 발짝 앞으로 전진 하는 아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있는 부정(父情)이 실린 기분 좋은 한 턱이었다.
영화는 인간 대호와 호랑이 대호의 이야기였다. 인간 대호는 명포수였던 사냥꾼 천만덕(최민식 분)과 산군(山君)으로 불리던 지리산의 마지막 호랑이자 지리산 자락 사람들로부터 신성시 되었던 호랑이 대호였다.
줄거리는 단순했다. 복선도 별로 없었지만 영화 속에는 1925년 일제 식민지 시절을 살아내는 조선인의 삶과 그 속에서 태어나 자라는 젊은이의 눈에 비치는 아픈 현실이 있었고,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에 대한 호랑이 사이에 흐르는 교감이 있었다. 명포수 천만덕은 젊은 시절 지리산에서 암호랑이 한 마리를 사살한다. 새끼 두 마리가 있었다. 일행이었던 도포수 구경은 호랑이 새끼도 죽여야 한다고 했지만 만덕은 새끼를 거두어 굴에 넣어주고 먹을 것을 던져주며 살아가게 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태어날 때부터 애꾸였다. 그 호랑이가 대호였다.
호피 가죽에 매혹당한 일본군 고관과 끄나풀인 조선인 일본인 장교, 사냥꾼들은 지리산의 산신령 대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다. 대호에게 아내를 잃고 어린 아들을 키우며 약초꾼으로 살아가는 만덕은 총을 놓은 지 오래 되었다. 영화 속에서 사냥꾼 부대를 이끄는 도포수 구경은 대호에게 죽을 뻔한 적이 있다. 대호는 신출귀몰하다. 사냥꾼은 덫을 놓아 암호랑이와 두 마리 새끼를 잡았다. 가족을 잃은 대호는 인간을 도륙해서 복수를 한다.
대호는 자신을 살려준 명포수 만덕을 안다. 명포수로 명성을 날리던 아버지의 과거를 아는 열여섯 살 아들 석이는 포수로 살아가길 원한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며 사랑을 키워온 처녀가 쌀집으로 시집을 가게 된 것을 알고 석이는 대호를 잡아 돈을 벌 궁리를 한다. 산에 살면서 아버지로부터 총 쏘는 법을 배운 석이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냥꾼이 된다. 첫 사냥에 따라나선 석이는 대호의 잔인한 복수극으로 죽음에 이른다.
하지만 늑대의 밥이 되기 전에 대호는 만덕의 죽은 아들을 그의 오두막에 물어다 준다. 그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인간 대호와 호랑이 대호가 마주보던 눈빛, 거기엔 증오도 분노도 없었다. 서로의 아픔을 알고 있는 눈빛,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식 잃은 통증에 대나무 밭은 온통 하얗게 얼어붙어 설화가 피었다.
옛날부터 호랑이는 신성시 했던 동물이다. 산신령으로 떠받힘을 받았다. 호랑이는 자신의 밥이 아니면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본 강점기에 멸종당했다는 조선의 호랑이가 지리산 기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다. 어려서 엄마는 지리산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굴속에서 알록달록 예쁜 고양이 두 마리를 봤다고 했다. 하도 예뻐서 앞치마에 안았는데 위쪽 돌너덜에서 자갈 더미가 굴러 오는 바람에 혼비백산해서 약초 보따리도 팽개치고 집에 와 며칠을 앓았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1925년 그 시절에 비해 지리산의 깊이는 드러났고, 구석구석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길이 났지만 그래도 처녀림은 존재하지 않을까.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전설과 설화는 살아 구전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본다. 대호는 그 구전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인간과 동물의 교감, 마지막 하나가 되어 절벽으로 떨어지는 호랑이 대호와 인간 호랑이, 영화를 본 소감은 묵직했다.
영화가 끝났는데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영화감독은 대호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일본군에게 빌붙지 않으면 사냥꾼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현실, 아무리 동물을 죽여 가족을 먹여 살리는 업이지만 사냥꾼으로서 정도는 있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살길을 열어주고 공존하는 것, 그 시절은 가난했지만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을 살았다. 일본군이 대호에게 전멸 당할 때 고소해 하면서도 대 놓고 불만을 토할 수 없었던 사냥꾼들, 어리바리하지만 우애와 인정을 가진 조연배우 사냥꾼의 연기가 빛났다.
대호를 쫓다가 대호에게 물려 죽게 된 도포수 구경, 사냥꾼은 산에서 죽는 것이 원칙이라며 자신의 시신을 거기 두라던 마지막이 짠하다. 총받이가 되어서도 끈질기게 죽지 않는 대호, 영화에서 그 장면이 억지스러웠다. 대호의 활약은 멋졌지만 총알받이가 되어서도 살아있다는 것이 현실적이지 못했다. 그 대호가 마지막 찾은 사람은 인간 대호, 자기 목숨을 가져갈 사람이었다. 만덕은 숨겨놨던 총을 꺼낸다. 죽은 아들을 장사지내고 대호의 거처를 향해 눈 덮인 절벽을 오른다. 둘이 마주보고 선다. 대호는 달리고, 만덕은 총을 쏜다.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진 대호와 만덕은 형제처럼 나란히 누워 눈 속에 파묻혔다. 가족 사랑이 애틋했던 호랑이와 사냥꾼, 호랑이도 인간도 절망뿐인 이생에서 마지막 탈출은 죽음 밖에 없었을까. 드디어 둘은 하나로 승화되어 지리산 깊은 골에 누웠다. 감독은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호랑이가 호랑이 굴에서 바라보던 굴 바깥 쪽, 지게문을 열고 대나무 숲에 와 있는 호랑이를 바라보던 늙은 사냥꾼의 눈이 어쩜 그리도 닮았을까.
호랑이가 죽은 자신의 새끼를 더 깊은 굴에 물어다 두고 나오듯 조선의 명포수였던 사냥꾼은 아들의 시신을 굴피 집에 놔두고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다. 불꽃처럼 살다간 호랑이와 인간의 이야기가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다시 보고 싶은 설경, 억새밭, 눈 덮인 숲, 바윗길, 무엇보다 호랑이의 포호하는 모습, 늠름한 기개가 다시 보고 싶다. 대호 보러 다시 갈 참이다. 인간과 호랑이의 父情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따뜻하지만 통증을 느끼게 하는 영화 대호는 2015년 연말을 장식했다.
이것은 사족이지만 아울러 우리 문학회 회장님 아드님의 승승장구를 축원하는 바이다. 일본군 폭파병으로 나오는 두 사람 중 인물이 훤한 사람이 양호성이란 청년이었다. 우리 회장님보다 잘 생겼다. 가만 생각하니 종자보다 밭이 좋아서 아닌가 싶다. 역시 멋진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것은 토질 좋은 밭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되새기게 했다. 내년에 인천상륙작전 영화에도 단역으로 나온다는데 대호에서보다 업그레이드 된 역이 아닐까 미리 기대해 본다.
2015. 12. 18 금요일 맑음
첫댓글 '대호'는 너무 잔혹하고 무서웠지만 가슴 미어지게 아픈 영화였습니다. 무서운 장면에서 눈을 가리면서도 통증은 느껴야겠다 싶어서 다섯손가락 사이로 화면을 들여다 봤습니다. 아프면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호랑이는 열여섯 소년 석이를 알고 있었던게지요. 그 소년이 총으로 자신을 쏘니까 어쩔수 없이 방어를 했는데 석이가늑대들의 밥이 되는건 싫었던 대호. 총에 맞았던 대호가 피를 흘리면서도 늑대들의 밥이 되는 석호의 시신을 아버지에게 돌려 주었던 대호. 인간 천만덕과 대호가 마지막에서의 결투는 결투가 아닌 자살이었지요. 서로의 아픔을 사람과 동물의 포옹!
선생님!
어제 그래서 뜨거운 포옹을 해주셨지요?
눈물 감추며^^
인간과 동물의 교감은 그들만의 언어로 통하는 거지요. 자연속에 살면 저절로 그리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석이 그 어린 녀석아 죽어가는 것은 진짜 아픔이었어요. 부모 말 들으면 자다가 떡 얻어 먹는다. 그걸 명심하게 해야 했는데.^^
박래녀 선생님
영화평론가로 나서시면 어떻지?
[대호]를 멋지게 논평해 주셨군요
좋은 글 잘 감상해어요
고맙습니다
멋져보여요
고마워요. 동환 님^^ 멋진 연말 보내세요.^^
잘 보았네요 ^^
글로 읽는 대호 감사합니다.
양호성님의 발전도 기대합니다. _()_
콩자반 님, 같이 갔어야 하는데. 아쉽소. 담에 보러 가요. 꼭요.^^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행복한 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