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CGV 뒷골목에 있는 스폰지 사무실에는, 스폰지가 정말 있다. 조성규 대표 테이블 뒤편에 열대어를 기르는 세 개의 어항이 나란히 놓여져 있고, 그 속에 일종의 수질 정화 시스템 기능을 갖고 있는 스폰지가 숨겨져 있다. 영화사 이름에 무슨 무비나, 씨네 혹은 엔터테인먼트도 들어가지 않고 스폰지라니!
그러나 생각해 보면 스폰지가 하는 역할은, 그 어항 속의 스폰지처럼 우리 영화계의 정화작용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흥행이 되는 블록버스터나, 톱스타가 나온 영화들만을 수입해서 한 몫 잡으려는 한탕주의 영화 수입은, 우리의 사고를 단순화시키고 문화를 획일적으로 만든다. 만약 스폰지가 없었다면? 나는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 동안 훨씬 불행했을 것 같다.
영화 마니아들을 흥분시킨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나 [메종 드 히미코], 무라카미 하루끼의 소설을 영화화 한 [토니 타키타니] 혹은 재일교포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나 이상일 감독의 [식스티 나인], 그리고 [시티 오브 갓]으로 새로운 감수성을 보여준 브라질 출신 페르난도 메리렐레스 감독의 신작 [콘스탄트 가드너]를 하나라도 보았다면, 돈도 되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작은 예술 영화들을 꾸준히 수입해서 배급하는 영화사 스폰지의 조성규 대표에 대해 궁금해 할 이유가 있다.
[2002년 1월, 스폰지를 차렸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는 미친 짓 하는 거 아니냐고 싸늘하게 쳐다보았지만 지금은 우군이 많이 늘어났다. 스폰지라는 이름은 형체가 없다. 그게 좋았다. 무엇인가를 흡수한다는 이미지가 좋았다. 해외 영화인들도 스폰지라는 이름 듣고 재미있어 한다.]
지난해부터 스폰지의 성과는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단관 개봉했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4만 명 이상 들면서 1년 가까이 롱런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올해 초 종로의 시네코아 극장 중 한 개관을 [스폰지 하우스]로 명명하고 운영을 위임받아 실시한 첫 번째 영화 [메종 드 히미코]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전국 9만 명이 든 이 영화는 아직도 지방을 순회 상영 중이다. 물론 [왕의 남자]의 천만이 넘는 관객과 비할 수 없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천만보다 훨씬 위대한 숫자라고 생각된다.
스폰지는 [거칠마루]와 [온 더 로드2]를 제작했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거칠마루]는 3천명, 윤도현 밴드의 유럽 투어 다큐멘타리 [온 더 로드2]는 그 숫자도 안 된다. 2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 이 영화가 돈 벌 거라고 생각은 안했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스폰지는 영화 제작 외에도 외화의 수입 홍보 배급, 그리고 DVD와 O.S.T 출시까지 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하드웨어 유통 시스템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시네코아에 오픈한 [종로 스폰지 하우스]에 이어 압구정동에 있던 [씨어터2.0]을 인수 받아 4월 27일 [압구정 스폰지 하우스]로 개관한다. 부산, 대구, 인천 등에서도 이런 작은 극장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컨텐츠에서 아쉬울 것이 없었다. 시네큐브, 나다, 이런 극장에서 우리 영화를 틀어주었다. 불편한 것은 없지만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시스템이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 1월 1일부터 종로 시네코아의 1개관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다행히 [메종 드 히미코]가 성공했다. 또 튜브 엔터테인먼트가 이사 가면서 압구정동의 [씨어터2.0]을 좋은 조건으로 인수 받았다. 좌석 수도 80석이고, 위치도 좋지 않다. 100% 확신은 아니지만, 우리 콘텐츠를 활용하면 잘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극장을 인수 받는 사이 소방법이 바뀌어서 지금 소방공사를 최종적으로 하고 있고, 첫 작품으로는 전설적 밴드 [너바나]의 자살한 리드 싱어 커트 코베인 일대기를 다룬, 구스 반 사트 감독의 [라스트 데이즈]를 상영한다. 90년대 문화적 감수성의 성감대를 건드린 커트 코베인 이야기는 많은 대중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확대 개봉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종로와 압구정 두 곳의 스폰지 하우스에서만 개봉한다. 이게 스폰지의 전략이다. 희소성을 높이고, 스폰지 하우스의 존재를 뚜렷하게 영화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 영화제를 개최할 계획인데, 2004년에서 2006년 사이에 개봉된 일본의 인디 영화들 중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 10편을 골라 개봉한다. 영화제 기간에만 상영하는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수입 심의 받고 가져와서 개봉하는 영화들이다. 극장 개봉이 끝나면 DVD 출시하고, 지상파 TV에 판매하는 수순을 밟는다. 오늘의 스폰지를 있게 한 효자 상품 [조제..]와 [메종 드 히미코]의 이누도 잇신 감독의 다른 작품도 계약되어 있지만, [예전 작품처럼 반응을 얻을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스폰지의 영화 배급이 전국 5,6개관의 소규모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인 굿 컴퍼니]는 전국 100여개 관을 잡아 개봉했고 25만 명의 관객이 들었다. 개봉 첫 주에 전국 100개관을 자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메이저 배급사에서 눈여겨보지 않는, 그러나 재미있고 작품성 뛰어난 영화를, 적은 돈으로 구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스폰지의 영화 고르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영화제는 가지만, 그 자리서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간다. 레이다망에 안 걸린 영화가 있나 찾아보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기존의 세일즈 하던 회사들과 미팅하면서 작품을 구입한다. 주요 거래처인 일본 회사와는 전화로 상담을 한다. 새로운 작품들은 시나리오도 미리 보내온다. 영화제를 통한 구매보다는 시스템을 가동해서 움직인다. 스폰지가 사랑하는 감독들, 빔 벤더스나 기타노 다케시, 짐 자무쉬 등 거장들의 신작 구매와 국내 미 개봉된 그들의 예전 작품들을 라이브러리 차원에서 구입하고 있다.]
그러나 조 대표는 더 깊게 파고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가령 백두대간에서 그랬던 것처럼, 타르코프스키나 앙겔로폴리스를 구입하지 않고, 또 그보다 더 어려운 영화는 [필름포럼]에서 다룰 것이기 때문에, 스폰지는 그 베이스 위에서 사람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화를 한다는 것이다. 배급 사이즈도 스크린 100개까지는 할 수 있고, 재미있는 일본 영화, 유럽 영화가 30만, 40만 드는 시장이 우리나라에서도 형성될 거라고 믿고 있지만, 100만 200만이 드는 영화를 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영화사 백두대간에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등 예술영화를 수입하기 시작한 94년쯤 그런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인 것이, 현재의 스폰지까지 오게 되었다. 스폰지는 영화사 백두대간 이전, 예술영화들을 소개했던 문화학교 서울이나 코아 아트홀의 연장선상에서 일을 하고 있다.
[영화 시작한지 올해 10년 되었다. 지금까지 영화 말고는 해본 일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영화사 스폰지는 비즈니스 개념이 아니라 일종의 영화공동체다. 밖에서는 우리가 문화적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데, 우리 스스로가 재미있으니까 한다. 우리가 하는 것을 예술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영화와 할리우드 상업 영화 사이에 굉장히 많은 영화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전부 예술영화라고 부른다. 배급의 규모는 와이드 릴리즈에 비해 한 단계 작은 사이즈이고, 메이저 영화가 아닌 측면에서 보면 인디영화다. 그러나 우리가 소개하는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도 고국인 스페인의 박스 오피스에서는 항상 1위를 기록하고, 프랑스에서도 박스 오피스 2위나 3위를 하는 영화다. 즉 대중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폰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은 모두 12명. 회사는 독특한 조직구조를 갖고 있다. 한 가지 업무만 하는 사람은 해외/배급/극장/시나리오 파트의 4명뿐이다. 나머지 8명은 한 편의 영화를 수입부터 홍보, 배급, DVD와 O.S.T 출시, 자금 결산까지 소비과정 전체를 각자 담당한다. 즉 동시에 8편의 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 경리가 없다. 홍보를 안 하는 작품은 1원도 지출하지 않는다. 소문 없이 개봉해도 그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은 극장을 찾아온다는 것이다.
[우리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누군지 이제는 안다. 커뮤니티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해외의 좋은 네트워크나 투자 소스 같은 그 어떤 인적 파워보다도 중요하다. 스폰지의 강점은, 우리는 우리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알고 있고 그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에 카페 [스폰지 하우스]를 만들어서 3년 동안 그 작업을 했다. 현재 회원이 6500명이다. 공개 카페이기는 하지만 실명으로 가입신청을 해서 승인받아야만 들어올 수 있다. 일부러 쉽게 가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찾아오기 힘들게 해놓았다. 그러나 하루 3,4천명이 방문할 때도 있다, 충성도가 높다. 우리 영화를 이 사람들이 본다. 그러나 커뮤니티 모임은 전혀 안한다. 1만 명 정도의 예술영화 핵심 관객 중 반 정도는 [스폰지 하우스]에 들어온 것 같다. 우리가 하고 싶은 영화와 그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적절히 섞어서 하고 있다.]
그는 감정이입을 잘한다. 드라마나 쇼 프로를 보면서 눈물도 많이 흘린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많이 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었다. 지금은 같이 만나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일과 사적인 구분이 거의 없다. 영화를 빼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 유일한 취미가 물고기 키우는 거다. 그러나 영화 일 안하게 되면 완전히 끊을 생각도 있다. 지금까지 손과 입으로만 살아서, 육체노동을 하며 살고 싶은 욕망, 한국 아닌 다른 공간에서 살고 싶은 욕망도 있다.
[올해 새로운 도전이라고 한다면, [조제..]나 [메종 드 히미코] 같은 성공 스토리를 한국 인디영화에서 찾는 것이다. 한국 인디영화가 2,3만 드는 경우가 나와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