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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제 3 수행편 제 2장 정기 훈련과 상시 훈련(定期訓練 - 常侍訓練 )
제1절 상시 응용 주의사항 (1)
I. 들어가며
지난주까지 공부한 것은 정기훈련법이었죠. 대종사님은 이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과 수행으로서 복과 혜를 구하고 일체 생령을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법을 내셨는데 그 법이 일상 수행의 요법으로서 강령을 지어서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상수행의 요법에 언제 어떻게 하라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일상이라는 말은 항상 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받쳐주는 것은 결국 훈련입니다. 훈련을 해야 삼학 팔조 사은 사요가 실행이 됩니다.
일상수행의 요법 ← 훈련 - 정기 (靜時) - 法
사실적도덕 - 상시 (動時) -修行
- 상시응용주의사항 6조 (자력)
- 교당내왕시주의사항 6조 (타력)
훈련은 정기와 상시로 나뉩니다. 정기는 정시(靜時)훈련, 상시는 동시(動時) 훈련입니다. 정기는 법의 훈련이요 상시는 수행의 훈련입니다. 다시 상시훈련은 두 가지로 상시응용주의사항6조(자력),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6조(타력) 이렇게 되어있습니다다. 도를 이루겠다 큰 도인이 된다, 성불제중 제생의세를 한다고 하면 동정 간에 공부가 되어야 하고 자타력을 병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훈련으로서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어야 합니다. 개교의 동기에 그렇게 나와 있죠.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 해 봅시다. 많은 종교 생활 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것이 사찰이나 교당, 교회를 가는 것입니다. 즉 ,타력을 입는 것이죠. 교당 내왕 시 주의사항이라도 하면 괜찮은데 법회 보는 것, 예배 보는 것, 기도참석 하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과연 타력만으로 될 것이냐.
조금 공부한 사람은 정기 훈련을 하러 갑니다. 맛 들인 사람은 훈련원만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대단하죠. 원불교 처음 입교하면 사종의무로서 받지만 먼저 교당을 나와야 사종의무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즉 성불제중의 기초가 형성되는 것이죠. 그 다음 훈련을 나야 하는데 훈련도 제대로 나느냐 하고 보면, 지금 원불교 훈련은 문제가 많습니다. 대종사님 당대에는 동, 하 3개월씩 났습니다. 즉 1년의 반을 훈련을 났습니다.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먹고살기 힘들잖아요. 저희 교당은 여름과 겨울 2박3일 나고 7일간의 훈련 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도 훈련이 많지 않아서 아쉬운데 우리 교당에서 나고 있는 훈련이 전국에서 제일 많이 나는 것이랍니다. 우리 교당 같이 훈련 나는 곳이 없습니다. 대개 1년에 한번 1박2일 갑니다. 그러니 교화가 안 될 수밖에 없죠.
그 다음 진짜 공부는 상시공부입니다. 쉽게 말해 상시는 자력이 주가 되는 것이고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타력-은 종이 되는 것입니다. 원불교 다니는 교도님들을 보면 상시응용주의사항이 주인가 교당내왕시주의사항이 주인가 살펴 봐야 할 것입니다.
교당 내왕시 주의사항도 제대로 안되고 정기훈련도 제대로 안되면 상시 응용 주의사항은 더 안 됩니다. 제가 이런 교도를 봤습니다. 교무님 저는 법회를 20년간 안 빠졌습니다. 그래서 대단한 줄 알았는데 실제 내용을 보니까 그렇지가 않아서 분석을 해봤습니다.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이 빠져있었습니다.
정기훈련은 법의 훈련이에요. 법의 훈련이라는 것은 기본, 방법, 원리를 제대로 배운다는 것입니다. 정기훈련은 11과목입니다. 이는 3학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기훈련을 할 때는 전화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롯하게 기초를 배우라는 것이죠. 정기훈련 광고가 나오면 날짜를 잡아놔야 합니다. 갈 듯 말 듯하고 있으면 정말 불쌍하죠. 교당을 위해서 교무를 위해서 훈련을 나주는 것 같이 튕기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불쌍한 중생이 있나 싶습니다. 고마워서 환장해야 하는데 거꾸로 튕기고 있어요.
II. 상시응용 주의사항 1,2조
상시응용 주의사항 중 제일 중요한 것이 1조입니다. 정기훈련 11과목이 수양, 연구 취사였죠.
1. 응용하는데
온전한 – 수양
생각으로 – 연구
취사 – 취사
주의할 것이요
(경계를)응용하는데 = 앞에 경계를 이 생략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경계, 육근을 응용하는데가 생략 되었다고 생각 하시면 이해가 되실는지요? 육근이나 경계를 응용하는데 , 하는데 여러분 어떻게 하십니까? 보통사람은 습관과 업력으로 욕심으로 합니다. 할 때 생각 없이 합니다. 내일 아침에 서울회관 10시에 갈 겁니다. 서울 회관가려면 미리 차를 청소해야 하고 의자세팅 해 놓아야하고 기름 넣어놓고 세차를 해 놓아야 합니다. 그다음 네비게이션도 찍어 놓아야 합니다.
운전하기 전에 생각을 해야 하죠. 생각이 미리준비입니다. 그런데 청소도 세차도 의자세팅도 안 해놓고 기름도 안 넣어 놓고 네비게이션도 안찍어 놨어요. 그러고 출발하니까 이것저것 하다 늦게 출발하고 네비게이션 잘못찍으면 고생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대개 그렇게 삽니다. 정말 그렇죠. 실제로 우리 삶 속에서 보면.
중생들은 살았던 대로 삽니다(습관, 업력, 욕심). 보통사람은 취사를 먼저 합니다. 취사하면서 생각합니다. 하고 나서 생각한다. 거꾸로 합니다. 그러고 나서 참회한다고 일기 씁니다.
그것이 아니라 대종사님께서는 응용하는데 있어 먼저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해라. 하셨습니다.
취사가 잘 되려면 먼저 주의를 해야 합니다. 주의라는 것은 아무리 취사를 잘 하고 싶어도 유념을 안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제일 좋은 유념은 메모하는 것입니다. 머릿속에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주의 하지 않고 취사한 예-
한맥증권 이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한맥증권 직원이 셀sell하고 바이buy, 주식을 살거냐 팔거냐를 거꾸로 눌러버렸습니다. 426억이 거꾸로 가버려서 회사 문 닫았습니다. 직원 한 사람이 주의 하지 않고 거꾸로 눌러서 회사가 망했습니다. 주의 하지 않고 취사합니다. 자기 혼자만 망하고 죽어버리면 상관없지만 회사까지 다 망하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영국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영국은행을 망하게 해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인도의 직원이 주식을 잘못해서 그것을 메꾸려고 일본 주식을 샀는데 그때 일본동경 대지진이 나서 일본은행자체가 문 닫아 버렸습니다. 좌산님이 예화를 잘 드시는데 이리역 폭파사건이 있었습니다. 기차에는 사람만 싣고 다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기름, 우편물, 무기, 시멘트-를 싣습니다. 어느날 TNT라는 화약을 실었습니다. 기차역 직원이 기차에 TNT 폭탄이 실려 있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고 꽁초를 던졌는데 TNT가 폭발해서 익산 시내 몇 Km반경까지 폭발해 죽었습니다. 폭발해서 죽은 사람이 한 둘 이겠습니까? 그것이 주의 하지 않은 것입니다. 유념하나 안한 차이 입니다. 자기 실수로 자기만 죽으면 다행인데 요새는 공동사회잖아요. 공동체 사회다 보니까 그 실수가 엄청난 피해를 줍니다. 그러니까 타자녀 교육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라도 해야 되는 겁니다. 대구지하철 얼마나 많이 죽었습니까? 남대문도 보세요. 사회 불만을 품은 자가 기름통 들고 (저질렀지요).
주의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주의를 해야 하는데 그 주의는 삼학으로써 주의가 되는 것이거든요. 첫째는 취사를 잘 해야 하는데 취사를 잘 하려면, 결정을 하려면 먼저 생각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결정하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생각이 나오죠? 막하면 나옵니까? 내가 이렇게 말 하는데 생각이 각각 다르거든? 어떻게 된 거지요?
여기서 여러분 생각할 것이 있어요. 생각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나오는가? 여러분 생각으로 취사하세요? 감정으로 취사하세요? 사교형하고 관계형은 감정으로 취사를 합니다. 지시형과 사색형 생각으로 취사합니다.
감정 – 감성 생각 -이성
여기서 사람의 특성이 갈려집니다. 어떤 사람은 감성이 뛰어나고 어떤 사람은 이성이 뛰어납니다. 좋고 안 좋은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다 필요한 것입니다. 감성에 출발해서 이성으로 가는 사람은 감정적입니다. 이성에 바탕 해서 감성을 활용하는 것은 이성적이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게 나옵니까? 대종사님이 온전한 감정으로 취사하라고 안했죠?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 하라고 했어요. 그러면 생각은 어디서 나오냐. 여러분 생각할 때 다 다르잖아요. 제가 어떤 말을 할 때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화냅니다. 그건, 에고(ego)- 자기의 자의식 - 와 관계 있습니다. 견성을 하지 않은 모든 행동은 에고에 바탕을 합니다. 나를 거쳐서 나옵니다. 견성하지 않은 모든 취사는 결국 나라는 것들을 통해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견성이 공부의 지름길이고 출발입니다. 견성을 하지 못한 사람은 ego를 바탕해서 모든 생각이 나옵니다. 결국 자기 보호, 자기의 욕심, 자기명예, 자기 자존심, 전부 그것으로 생각하게 되어있습니다. 결국 이것이 치심이죠. 자의식이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결국 이것이 무명입니다. 그런데 과연 “나다”고 하는 이것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나다”하는 것으로 살아요. 내 자존심, 체면, 감정, 이미지. 과연 그러면 그것은 무엇이냐? 무아(無我)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알 때 비로소 그 사람이 공부가 시작됩니다. 모든 활동, 무아를 깨치지 못하고 ego에서 나온 모든 활동은 허망한 겁니다. 복을 지어도 복은 복대로 죄는 죄대로이지만 동기 자체가 결국 나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허망합니다. 결국은 몸이 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몸은 변하는 것이거든요. 변하는 것을 고정적인 것으로 영원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변하는 것이 어떻게 영원합니까. 실체가 없는 것인데. 이 몸도 실체가 없어, 이 마음도 생주이멸해, 이 몸은 생로병사로 변화해, 우주는 성주괴공으로 변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고정 불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ego 전에 또 있습니다.
전세의 업 식
현세의 업 식
입니다. 여러분에게 똑같은 경계를 주어도 감정 이성 자의식 전생에 업식에 바탕해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전세의 업식에 따라 어떻게 다르냐. 善惡罪福 전생에 내가 무엇을 쌓았느냐에 따라서 다 다릅니다. 智愚習性 이것에 따라 다릅니다. 똑같이 생각을 해도 적당히 하고 대충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대개 성격이 감성적이거나 자의식 지우 습성에 걸려 있습니다. 안보입니다. 전생에서부터 해왔다면 쉽게 안 바뀌죠. 또, 이생에 업식이 있을 때 지우습성이 종자가 됩니다. 인이 됩니다. 이게 경계를 만나면, 인과 생각들이 엮어져서 경계를 만나 취사를 하는데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전세 현세 업식을 잠재 의식이라고 합니다. ego를 기억 저장이라고 하지요. 우리가 생을 마감하면 7식에서 끝납니다. 다 없어집니다. 치매만 걸려도 없어집니다. 7식은 기억입니다. 생을 마감하면 7식까지 싹 사라집니다. 그러나 8식은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이 업식이 무엇을 만나냐? 연을 만납니다. 그러면 둘이 작용을 하는데 이것이 업력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다 각각의 모습으로-복있고 없고, 이런 지혜, 저런 지혜- 있는 것이죠.
과거에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현재의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 여기서 확실한 것은 “온전한”입니다. - 온전한이라는 것은 에고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온전은 진공이거든요. 진공자리. 여기에는 나라고 하는 것이 없이 텅 비었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은 “나다” 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니까, -자존심으로 이기심으로 체면으로 이미지로- 그렇게 하는 것이죠. 진공자리라는 것은 이것마저도 다 녹여내고 아는 것이죠. 이것이 (8식까지가) 마음이죠.
9식은 성품자리입니다. 여러분들이 한 생각을 할때는 전부 연결 되어 있습니다. 감성과 이성은 조화가 있어야 합니다. 이성에 바탕한 감성이 있어야 올바른 감성입니다. 그런데 (주로) 감성이 앞서고 그 다음이 이성입니다. 그러니까 대의를 놓칩니다. 감성이 앞서버리니까요. 옛날에 아테네에서 플라톤이라는 사람이 이성을 그렇게 강조했습니다. 이성을 이데아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감성이 확실히 받쳐주어야 합니다. 대중교화를 한다던지 사람들에게 그 전단계로서 충분히 받쳐줘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판단, 모든 생각들이 감정위주인가, 내 ego에 걸쳐서 나오는가, 전생의 업력에 걸쳐서 나오는가.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받아 드릴 건 받아드리고 해야 합니다.
여기서 온전한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을 해야 합니다. 온전한 것을 하는 것이 염불좌선, 기도, 무시선, 헌배, 이런 것들이 온전함을 챙기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정시에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하는 온전함은 끊이지 않는 것, 멈추는 것, 그것이 온전함입니다. 그렇게 되나요? 팍팍 튀어 나오죠. 과거의 습관으로 나오던가, ego 로 나오던가, 팍팍 나옵니다. 그래서 온전함에 바탕해서, 온전함에서 솟아 나오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온전한 것은 적적 성성입니다. 온전한 정신 그래서 정신 수양이라 그랬죠. 적적 성성에서 적적은 성품, 성성은 정신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생각으로 해야 합니다. 온전함도 기질적 온전함, 심성적 온전함 다 연관 되어 있습니다. 생각도 시대성에 맞느냐, 사회성에 맞느냐, 이치에 맞느냐, 인과에 맞느냐, 영생관에 맞느냐, 당시의 상황에 맞느냐, 종합적입니다. 그래서 균형과 조화(중도)를 이룬 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모든 종합적인 것을 해서 나와야 하거든요.
성품(9식)으로 온전한 정신 온전한 생각으로 가야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취사입니다. 성품에 바탕해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성을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일원상은 고요하고, 밝고, 신령스럽고, 바릅니다. 공원정의 속성을 가지고 그 속성에 바탕한 생각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생각입니다. 우리들이 하는 생각은 자기들의 경험, 즉 업이죠. 거의 업으로 해 나갑니다. 대적공은 온전함 - 무위 의 세계, 진공의 세계입니다. 본래의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의 본래의 모습은 텅 비어서 텅빈 그것이 그것이 제 이야기를 듣습니다. 무엇이 있어서 듣는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이 듣습니다. 참 신기하죠.
그 성품자리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5-8식 마음으로 하니까, 취사가 거꾸로 되죠. 취선사악 선을 취하고 악을 버려라, 훈련을 갈거냐 말거냐 하면 간다고 하지만 실제로 안갑니다. 봉사활동을 할거냐 말거냐 하면 해야 한다고 하지만 핑계가 나옵니다. 나에 다 속습니다. 알면서도 안되지요. 무명입니다. 결국은 선을 취하자고 해 놓고 아닌것만 매번 취합니다. 이게 중생입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한방에 안됩니다. 훈련을 해서 계속적으로 동정간에 자타력을 들여서 공을 들여야 합니다. 세상에 제일 어려운 일이 돈버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이기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얼마나 어렵나요. 먹고 싶은거 안먹기가 얼마나 어렵나요. 산중의 적 보다 심중 적이 어렵습니다. 내 마음에 힘이 없으면, 훈련이 없으면 힘이 없고 훈련을 안하면 생각이 멈출 뿐입니다. 실제 경계에서 다 무너집니다. 옛날에는 도인들이 산속에서 훈련하다가 실제 경계에 와보니 경계가 딱 나오면 안되는 것이에요. 상시응용주의사항 이야 말로 대종사님의 가장 대적공입니다. 과거에 대적공이라하면 산속에서 염불잘하는 거라고 했지만, 대종사님은 “상시응용주의사항, 즉 자력으로 공부할 수 있는 원불교의 일과표를 내놓으시며, 삼학공부를 하루의 일과 중에서 해라.” 하셨습니다. 이게 상시응용주의사항입니다. 그래서 응용하는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고 미리 연마하고, 경전법규 연습하고, 연습했으면 의두성리 연마하고, 저녁때는 좌선하고, 그 다음에 일기로서 최종 점검해라.” “아침에는 뭐해라 낮에는 뭐해라 경계따라 뭐해라” 다 나왔지요. 이것이 대적공입니다. 안보이는 산에가서 몇년 대적공한다 이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24시간, 눈뜨고 있는 시간에 장소와 환경을 떠나서 내가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것 주의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대적공입니다. 금강경에서 한마디로 말하면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입니다.
“응무 - 응하되, 소주 - 주한바 없이, 무소주 이생기심- 그 마음을 내라”
주한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입니다. 주한다는 것은 뭔가 생각을 주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주해요? 전세의 습관 걸리던가 자기의 ego에 걸려 버리던가 자기감정에 걸려서 대개 나오거든요.
창의성 창의성 하니까 생각이 창의성라고 합디다. 여러분, 창의성에는 두가지 있다고 해요. 하나는 순발적 창의입니다. Sense죠. 이건 어디서 나오는가. 수많은 저축속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면 대개 노벨상을 받는 사람이 20대에 박사를 따는데요. 노벨상은 30대 후반 4-50대에 받아요. 그 사람들 통계를 내보니 논문이 보통 박사보다 두배 이상 많답니다. 또 하나는, 그 사람들은 타력 활용을 잘 합니다. 노벨상 탄 사람들 특성이, 혼자 연구한 게 아니라,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을 만나서 계속 상호 교류를 합니다. 결국, 노벨상을 탄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탄 게 아니라 수많은 준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을 다 섭렵해서 내것으로 만든 다음에 또 비슷한 다른 사람들과 연구를 하면서 자타력이 병진 되면서 거기에서 기가막힌 연구 결과물들이 나옵니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훈련 나고 하루아침에 될 것 같다고 합니다. 되던가요? 이 세상에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없습니다. 내 안에 ego를 깨뜨려 버리는 것이 견성입니다. 나를 깨뜨려 버리는 것, 참 나를 보는 것이지요, 몸이 나다고 하는 것을 깨뜨려 버리지는 않고는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는 것 족족 자기, 이기적인 자기를 위한 삶이 됩니다. 소크라테스가 (산파술 대화법 때문에) 죽었다고 했지요. 산파술 대화법에서는, 계속 물어봅니다. 시장 후보에게, 당신은 왜 후보가 되고 싶습니까? 답을 하면, 또 계속해서 묻습니다.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나중에 질문을 하다 보면 결국 “내 욕심 때문이다.” 하게 되죠. 계속 치고 들어갔더니 결국은 자기 ego더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한생 산다는 것이 견성을 하지 못하고 자기ego를 벗어나지 못하고 한생을 마친다는 것이 제일 불쌍한 일입니다.
응용하는데 경계를, 육근으로 심신간 경계를 응용해서 쓸 때,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해라. 여러분이 생각할 때 일과 이치를 인과와 영생을 봐서 판단하세요? 연구가 중요합니다. 11과목 중에서 경전 강연 회화 의두성리 정기일기, 상시응용주의사항중에 - 생각, 미리연마, 경전법규 의두성리, 교당내왕시 주의사항에서 문답 감정 해오도 연구과목, 다 연구과목이지요? 연구가 중요해요, 쉽게 말해서 지혜지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따 볼 2조도 지혜입니다. 준비에 실패한 사람은 실패를 준비 한 사람이다. 지혜가 없으면 그렇습니다. 교당의 달력 이야기 했지만. 달력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종사님 교법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입니다. 잘 한 것도 아닙니다. 온전한 생각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냐, 아 경계다 해서 멈추어 지는 것이냐? 계속 마음을 검문소로 활용해서 멈추고 또 멈추고 수십 번 멈춰야죠. 생각도 수십번 수만번 해야죠. 생각 속에 생각, 온전한 생각이 참 얼마나 어렵습니까
온전한 생각은 내 마음을 내가 일심을 만드는 공부잖아요 일심이라는 것은 성품입니다. 5-8식이 아닙니다. 지금 다 이렇게 삽니다. 감정으로 살던가 자기 잘난맛에 살던가 전생의 업력에 끌려 자기인줄 알고 살아요. 참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경계에 따라 마음을 멈추고 멈추다 보면 묘해 집니다. “깨어있기 마음을 깨어서 살펴보다.” 라는 말을 요즘 동남아 쪽에서 많이 합니다. 그럴려면 먼저 멈춰야합니다. 온전한다는 것은 멈춘다는 것입니다. 멈춰서 본래 고요하고 맑고 밝은 자리으로 생각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기가막힌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성품은 본래 대단합니다. 부처의 성품 부처의 지혜 부처의 마음 다 여러분 안에 닮아져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온전한 - 수양
생각으로 - 연구
취사하기를 - 취사
주의할 것이요.
2. 응용하는데 응용의 형세를 보아 미리 연마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어떤 일의 성공유무는 미리 준비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미리준비 잘 하세요?
유인물을 봅시다. 미리 준비를 한다고 하면 최소한 다음 생까지는 준비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미리준비죠. 우리가- 원불교인이- 제대로 생활하는 것은 불법시 생활 이라고 하죠. 불법시 생활이라 하는 것은 성품에 바탕해서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것) 온전한 생각 이것이 불법입니다. 불법으로 취사하는 것이죠. 그럴려면 날마다 계획해야 합니다. 하루 동안과 수시로 나뉩니다. 일과는 하루 동안이지요 - 아침에는 수양연구 낮에는 보은불공 밤에는 수양 반성 참회. 수시로는 동정간 을 의미합니다. 일 있을때는 동시죠. 이때에는 주의, 유념이 필요하며, 정시에는 (일 없을 때는) 일심,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동시에는 멈추고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 하는 것, 정시에는 일심으로 염불 좌선 기도 강경입니다. 평상시 동과 정을 편수 하면 안되요. 동과 정이 어울러 맞아야 해요. 어떤 사람은 일은 잘하는데 수양이 안되고, 어떤사람은 정시에는 잘하는데 막상 일할때는 정신을 못차리지요. 그러면 안됩니다. 균형이 안 맞아서 그렇습니다. 해마다는 즉, 1년에 상시와 정기훈련입니다 정기는 작은 선원 상시는 큰 선원이라고 했습니다. 보통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 정기가 작은 선원입니다. 상시훈련은 교당내왕시주의사항과 상시응용주의사항. 문답 감정 해오 훈련 법회 반조. 온전생각취사 준비 경전 의두 수양 반조 6 조항을 이렇게 해 놓았어요.
위로 올라갑니다.
“생마다 계획.” 한생을 놓고 계획한 것을 말합니다.
태아 영 유아기 때에는 타력이 필요합니다. 그 타력도 자력이 근본이죠. 내가 어떻게 한 것에 따라 부부인연 또 만나는 거거든요. 특히 이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부모의 정성이 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첫 잉태 될 때부터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그 사람 인생의 8-90프로 끝났다고 봅니다. 제가 지금 어른들 대상으로 설법 하지만, 뒤돌아서면 안합니다. 반면, 어릴때는 정말 효과 큽니다. 소년기 청소년기 도학 과학을 널리 배워서 깨닫습니다. 하루아침에 안됩니다. 습관의 힘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죠. 도학과 과학을 배우라 하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은 과학을 배우고 도학은 나중에 나이 먹고 배우죠. 그러니 감방가고 유치장가고 하죠. 요즘은 은행도 믿을 수 없대요. 손님들 돈을 마음대로 대출해 가요. 결국은 도덕성이 다 무너져서 그런겁니다. 국민을 어둡게 만드려면 정보를 안주던가 스포츠에 매진하도록 합니다. 우리 국민들의 집단 의식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장년기에는 가정사회 국가 세계일체생령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거죠. 무슨일하냐? 제도 사업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특성 복있는 사람 특성 말씀 드릴게요. 복있는 사람은 부지런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잘살지 못하고 환영받지 못합니다. 준비를 함에 있어서 복은 근면성에서 옵니다. 복이라는 외적 현상은 내적으로 근면이라고 하는 성품에서 나오는 겁니다. 게으르고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복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복이 도망가게 되어있습니다. 부지런하면 역량이 터지죠. 일이 보입니다. 이것저것 경험이 쌓이게 되면 연결이 되요. 게으른 사람은 가능하면 안 하려고 하니, 역량이 터지지도 않고 무섭다고 못한다하며 도망갈 생각 합니다. 우리는 일원상과 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맨날 도망갈 생각을 합니다. 대종사님께서 일 안하는 사람은 불보살 명부에서 빼버린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사람은 말로만 하고 일을 안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은 동 시대라 활불시대입니다. 공부해서 일 잘하자는 것입니다. 그 일을 ego에 의해서 감정에 의해서 하는 게 아니라 온전한 생각으로 일해야합니다. 노년기에는 대해탈과 생사연마로 영생을 준비하는데 적공합니다. 노년기에 쓸데없는 짓 하는 삶이 많습니다. 탑골공원에 가면 구경할것 없나하며 기웃거리는 불쌍한 노인들 많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돈 번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것도 갑갑한 일입니다. 우리가 영육쌍전의 원리로 보면 공부도 하고 사업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때가 있습니다. 언제 열심히 공부해야 해요? 지금 해야죠, 물론. 그러나 때가 있고, 때에 맞게 해야 합니다. 나이 70넘어서 돈번다고 돌아다니지 말고, 그때는 생사대사 연마하고 내세 공부해야 합니다. ‘안보여요 다리 아파요. 허리아파요’ 그런 소리 말고 수요공부방에 나이 먹은 사람이 와야 합니다. (연속극 매일 보고 있으면 뭐합니까?) 그래야 나중에 최후일념이 최초일념이 됩니다. 선악, 죄복, 지우, 습관의 씨 내생에도 가져가죠. 이 씨를 이왕이면 내가 선으로, 복으로, 지혜로, 좋은 습관으로 가져가야합니다. 내생에도 판단할 때 ego에 걸치지 않고 온전한 생각으로 수용해야 하니까요.
대종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준비를 잘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짧은 시기에 법문에 준비라는 법문이 정말 많습니다. 동정간에 동정일여가 기가막히게 잘 되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깨달으시고 제자 모아서 기본적으로 영육쌍전의 원리를 공부 시키죠. 그리고 바로 익산 가지 않으셨고, 변산 가서 또 준비합니다. 교재준비 하고 인연 모으고 당신 수양하시며 준비를 철저하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익산 나오셔서 바로 훈련나러 가십니다. 총부건설하면서 훈련납니다. 그리고 창립인연들 다 준비했어요. 서울 56번 올라 가셨습니다. 총부에만 있지 않으셨고, 다 점검하고 돌아다니셨습니다.
여러분 노후준비는 잘 하고 계세요? 요새 보험 회사 잘 해 놨더라고요 그것도 중요하죠. 육신이 살아갈 경제적 준비도 중요하지만 정신이 내생에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잘 준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두가지가 잘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준비를 하면 정말 편안하거든요. 무시선이 저절로 됩니다. 어떤 일을 겪을때마다 커지고 환영받고 보호받고 은혜가 생산되거든요. 준비가 없으면 겪을때 마다 혼나고 욕얻어먹고 성질나고 짜증나고 정신 못차리고 구박받고 그러잖아요. 여러분 어떠세요? 준비를 하려면 미리준비를 해야 하잖아요. 꼭 기말 시험되면 시험 때문에 다 빠지죠.
죽을 때가서 생사준비하면 무엇합니까? 대종사님이 40살 먹으면 준비하라고 하셨잖아요 준비하고 계신가요? 갈 때는 순서가 없어요.
준비라는 것은 계획이죠. 우리교당도, 원불교도, 개인도 계획이 있을 것입니다. 이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서원에 맞게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5-8식을 뚫어버리는 것이 서원입니다.서원의 힘은 감정, 생각, ego도, 전생의 업식도 모두 뚫어버립니다. 무서운 힘이 있어요, 저런 힘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요? 서원의 힘은 무섭습니다. 다 뚫어 버립니다.
대종사님은 자력양성에 일인 일기 원업과 부업을 준비해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준비를 한다는 것은 계속 내가 부지런히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백도 가지고, 미리 다 챙기는 것이죠. 보통 보면 우리나라사장들 80%는 새벽 6시 이전에 일어난대요. 6시에 이후에 일어나는 사장은 우리나라에 10%~20%도 안되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유있게 미리 맑은 정신에 준비하는 것이죠. 대종사님은 한국에서 원불교를 하려고 미리준비 하셨다고 합니다. 미리 한국땅에 여러번 나셨답니다. 인연을 미리 걸어놓고 다 준비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그냥 우연 자연 되는 것이 아니라 다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것도 내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외 교화도 준비해야 할 것이고, 학사도 준비해야 할 것이고, 앞으로 인터넷 세상 빅데이터 세상 클라우드 세상이 된다고 하는데 여러분 준비 하십니까?
뭐 준비하고 계세요? 잘 먹고 잘 사는 준비 하고 계십니까? 사람이 태어났으면 원력을 가지고 자기의 ego를 뚫어버려서 이 세상 사은에 무언가 하나 남기고 내생 준비도 확실하게 해 놓고 저축해놓고 큰 포부와 경륜을 가지고 무언가 하나 남겨야죠. 지금 초기 교당이니까 얼마나 할 게 많겠어요?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이 보이네요. 이 세상 어떤 일도 준비 없이 성공한 사람 없습니다.
준비한다니까 겨우 내 앞길만 준비하고 시험공부 하나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보고 준비해야죠. 이생에 무엇할건가 잡아놓고 그 안에서 계획표가 나와야지요. 그리고 자기 평균 수면을 줄이세요. 언제 중간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100살까지 산다고 착각하지 말고 (사는 것 보다 활동하는게 중요 하죠) 활동할 때까지 몇 년 남았나, 그 시간까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까지 할 수 있겠는가 준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욕심도 좀 떨어지고 큰 걸 보고 뭐 하나라도 남기고 가지, 겨우 산다는 게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살다 가면 동물과 같겠지요.
III. 질문과 답
- 호원교우님: 에고나 자의식에 끌리는 경우가 많은데 고정관념이나 이런 게 내 생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고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업력 습관에 ego에 끌리는게 많은데 이럴 때 놓아버리고 지도인이나 법동지에 드러낼 줄 알고 자기자신에 끊임없이 교육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겠습니까?
- 답: 자네 ego가 이것이라 지적하면 버틸 수 있을까?
온전한 생각은 진공이 중요해요. 제일 기초되는 것은 서원과 신심, 그리고 견성입니다. 그래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아니면 못해요. 업력 습관에 따라 끌릴 때 타력을 활용해야 합니다. 서원도 신심도 던져버리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니까 그게 됩니까? 본인이 ego 에 대해 ego를 어떻게 벗어날건가? 본래의 나를 확보 하기 위해서 얼마나 정시 수양 동시에 ego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 내가 여기서 솔직히, 너의 ego 가 이것이다. 하고 말해버리면 1/3 은 원불교를 떠나버릴 것입니다. 기도를 해도 서원, 성품을 추구하는 기도를 해야지, 욕심을 추구하는 기도를 하면 안됩니다. 여기와서도 ego를 던져버리는 공부를 해야하는데 ego를 감싸는 공부를 하려고 해요, ego를 건드리려고 하면 도망가려고 하고 건드리려고 하면 도망가고 하면 성장이 안되는 것입니다.
- 대용교우님 : 견성을 하지 않으면 성품자리를 통한 온전한 생각을 할수 없다고 하셨는데, 자력적으로는 할수 없는 것인가요? 수행을 한다거나 했을 때 가까운 자리로는 갈 수 있다고 하는데 견성으로 보기는 어렵고, 수요공부방이나 법회에서 교무님 설법을 알아듣고 공부하는 것 또한 지식적으로 알수 있는 것이지 견성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가까워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견성을 하지 않으면 절대 성품자리를 통한 온전한 생각을 못하나요?
- 답: 타력으로 가야죠. 그리고 동시에 자력으로 가는 길로 공을 들여야 합니다. 타력은 신심. 자기의 자의식을 놓아버리는 것이 신심입니다. 스승의 뜻을 그대로, 스승을 타력을 그대로 받아쓴다는 것이 신심이잖아요. 스승이 깨친 지혜 광명을 그대로 갖다 쓰니까 그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신심의 타력이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어중간히 그것도 안 받고 자력으로 견성도 못했다면 자행자지 하는 거죠. 응용하는데 자행자지 습관으로 하는 거죠.
온전함의 기초는 좌선염불만이 아닙니다. 서원만 지극해도, 서원이 지극해 버리면, 정(靜) 정(定) 직(直) 일정심 일정심 일직심이에요. 온전해 지는 겁니다. 온전함이 안되는 이유는 ego 이거든요. 이건 욕심, 우, 습관 때문에 안되는 거죠. 셋중에 하나요. 그러니까 내가 지혜가 무명이면 타력을 빌리고, 또는 자력, 원력으로서 그것을 뚫어버리든가, 아니면 그것을 깨침으로써 확실하게 밝혀 버리던가 해야죠. 깨치지도 못하고 서원도 없는데다가 신심도 없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대로 중생으로 살다 가는 것이죠. 지구가 4만 세대가 흐르면서 흑인 백인도 많아 졌거든요. 한사람의 몸이 전세에 걸쳐 살다 죽은 뼈만 모아도 이 방보다 많을 겁니다. 한 몸이 수많은 생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 많은 생을 이렇게 왔다 갔다 할 것인지 (5-8식) 저렇게 왔다갔다 할 것인지(9식) 본인이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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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의교우님 감사합니다 ^^ 덕분에 강연하고 또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네요~~!!
방금 유인물도 스캔해서 첨부했습니다. 제가 필기한 거라 쫌 그러네요;; 담 부턴 수공정리 할 땐 한장더 받아야 겠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