몆년전 어느 교회 소속 젊은 교인들이 강남에 있는 유명한 절에 들어가 소위 땅 밟기식 선교 방법으로 곳곳을 다니며 통성으로 기도하며 우상의 절간이 무너지기를 소원하는 모습을 동영상까지 찍어서 공개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은 파괴될 것이며 회복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불교계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고 결국 그 교회 담임목사가 가서 잘못했다고 공식 사과하고 머리 조아리기까지 한 일이 일반언론에도 보도된것입니다. 그러자 안티기독교들은 껀수하나 제대로 걸렸다는 식으로 인터넷 상에서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런데도 명성을 가진 기독교 지도자들은 그 사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이나 성경적인 변론한번 없었습니다.
한동안 단기선교여행이 유행처럼 명성있는 지도자들 교회부터 시작하여 웬만한 교회면 한 두 번에서 수십차례씩 경쟁하듯 교회행사로 실시 했습니다. 그 단기 선교 여행중 대표적 활동으로 실행하는 것이 바로 “땅 밟기 식 선교”인 것입니다. 해외 단기 선교 여행자들의 현장체험 얘기를 통해 들려지고 알려지는 그들의 땅 밟기 사례에 대해 볼 것 같으면 정말 황당합니다. 그들은 용감하게도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자체지역이나 위험한 이슬람 여러나라에서 심지어 모스크바에서도 땅 밟기를 하며 “이 땅을 우리에게 주소서”, “이 땅의 악의 세력이 무너지게 하소서”등을 외치며 기도하며 찬양하며 어느 특정 지역이나 자기들이 목표했던 지역을 돌며 행진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그 땅 밟기가 국내로 들어와 대학 캠퍼스나 타종교지역이나 교회들이 목적하고 예배당을 건축하여 확장하고자 하는 주변이나 특정 지역을 주기적으로 돌며 “내가 밟는 이 땅을 우리에게 주소서”, “방해 세력이나 사탄의 세력을 무너지게 하소서”하며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이들의 땅 밟기식 선교 근거는 여호수아 시대에 여리고성을 돌자 무너졌던 성경의 역사를 근거로 하고 있으며, 또 하나는 여호수아 14:9절에서 네 발로 밟는 땅을 네게 준다는 말씀에 근거하여 한다고 합니다. 호세아 4:6절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지식은 성경의 지식으로서 계시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분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 분의 뜻이 언약으로 계시된 말씀을 진리로 바르게 아는 지식입니다. 이것이 없거나 안된다면 신앙은 엉망이고 잘못되는 것이며 올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몰락의 요인이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교회들이 진정한 교회모습은 없고 이교적이고 세속적이고 인본적으로 전락, 가칭 교회 상태로 되어 있음을 그대로 증거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땅 밟기식 선교는 이만큼 내 맘대로 금 그어 놓고 혹은 말뚝박아 줄 쳐 놓고 이것을 내땅으로 해달라는 순 어거지로 정말 황당한 짓이요 복음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인 것입니다.
(여호수아에 나오는 땅밟기 근거 말씀에 대해)
땅 밟기식 선교를 하는 자들이 주장하며 근거로 하는 여리고성 돌기식과 여호수아 14:9절에서 네 발로 밟는 땅을 네게 준다는 말씀에 대해 변론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여리고성은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28KM에 있고 이스라엘이 머물렀던 모압평지 건너편 요단강 서쪽으로 약 11KM에 있는 당시 크고 견고한 가나안 족속의 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두 사람을 정탐하러 보냈고 그 성 기생 라합집에 숨어있다가 돌아와 보고한 성입니다. (수 2:1-24)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동안을 그리하라”고 말씀했고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백성은 큰 소리로 외치라 그러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군사는 들어가 기생라합의 가족외에는 다 멸하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수 6:1-25 참조) 여리고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바 기업으로 주신 바된 가나안 땅중에 이스라엘이 그 시기가 되어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요단강을 건너 맞은 제일 첫 번째 성읍이었던 곳입니다. 그 견고한 성이 무너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주변을 돌고 돌며 땅을 밟고 외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와 그것을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이루심을 보여주시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역사와 반대로 심판이 이루어지는 역사가 동시에 나타난 곳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언약하실 때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창 15:16) 그 언약대로 애굽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던 이스라엘은 그 언약의 성취대로 4대만에 그 땅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그 동안 죄악이 관영해진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의 입성을 통해 그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역사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성은 무너졌고 진멸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은 이스라엘이 기업인 하나님나라로서 실현된 곳이 된 것 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세상 어디에도 여리고성 같은 지역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에 있어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로서 언약의 기업은 그런 어떤 지역이나 강한 세상 특정한 나라도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나라는 메시야 왕국으로서 이곳도 저곳도 아니요 어디서나 복음의 능력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어느 지역을 쟁취하거나 또한 어느 기점을 중심으로 지역 확장으로 쟁취해 가는 것도 아닙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 따라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사로잡히는 복음의 교회로 서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분이 그 분의 교회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역사를 우리를 통해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14:9절에 보면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나아가 헤브론지역을 기업으로 달라면서 이것은 모세가 가데스바네아에서 이 땅을 정탐케 할 때 믿음으로 보고 함으로 인해 모세가 맹세하여 이 땅을 기업이 되게 한 대로 요청하는 중에 나온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 중에 “네 발로 밟는 땅을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라”는 약속의 말씀으로 주신것입니다. 그런데 이말씀을 근거로 예배당 확장이나 선교지 거점 쟁취식으로 땅밟기가 실행되고 있습니다. 땅을 밟으며 구하는 대로 그 땅이 주어지는줄 압니다. 그래서 “ 이 땅을, 이곳을 내게 주소서 우리에게 주소서, 우리의 영역이 되게 하소서”하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출애굽당시 20세이상 장정들은 광야 40년 동안에 모두 죽었지만 정탐꾼 중에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언약의 땅을 밟을 수가 있었습니다.(신1:36) 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 출애굽 2세대가 언약의 땅을 밟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나 갈렙이나 출애굽 2세대들이 그 땅을 달라며 열심히 돌며 밟아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의 조상들에게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기업으로서 주어졌기 때문에 그들이 들어가 당당히 밟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도 주어졌고 이후 모세를 불러 애굽으로 보내시면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출6:6)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밟은 땅은 보통지역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의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주신 언약의 땅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될 메시야 왕국으로서 영원한 나라를 예표하며 상징하는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지금은 구원의 나라로서 실현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된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 고도 못한다고 말씀하셨고(눅17:20-21)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요18:3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젠 복음으로만 역사한다)
선교라는 것은 복음을 통해 언약된 교회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성령의 역사로서 기본적으로 교회된자들이 삶의 터전에서 그리스도의 증인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심에 있습니다.(행1:8) 또한 바울처럼 복음의 전적인 사역자로 주께서 보내심을 통해 쓰임받는 복음의 일을 통해 구원의 역사로 그분의 교회가 서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지역이나 특정된 곳을 쟁취하고 그곳을 영역으로 삼거나 소유하려는 식으로의 선교는 진리로 서가는 교회 모습이 아니요 잘못된 종교들의 영역확장 싸움과 같은 엉뚱하고 황당한 짓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자기의 의를 위하고 인간의 기대나 욕망을 위한 도발적인 행위나 세상 종교들이 하는 미신적인 행의에 불과 한 것입니다. 복음을 통한 교회 구원을 모르고 오히려 방해하는 짓거리 인 것입니다. 복음이 정직하게 구원의 진리로 전파될때 사탄의 권세로부터 여자의 후손인 교회가 구별되어 굳게 서가게 되는 것이요 하나님나라가 구원의 거룩한 백성으로 실현되어 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9:20에 보면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로지 복음의 능력만이 거룩한 세력인 교회를 세워간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47~48에 보면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말씀하심처럼 복음의 역사는 구원으로 언약된 택자들만 불러 거룩한 교회로구별시키는 것입니다. 바울의 증거를 보면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2:13~14)고 했는데 교회구원을 이루시는 성령의 능력이 오로지 우리(복음사역자)복음으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죄된 세상에서 벗어나고 사탄의 권세를 물리칠 권세는 복음의 능력에만 있음을 알고 인본적이고 이교적인 여러 수단방법을 이젠 버리고 순전한 복음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