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일 대선 개표결과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선 후보가 총득표율 49.42%를 획득하여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국민의 힘 김문수 후보는 41.15%를 얻어 2위를 기록했습니다.
윤석열 전대통령의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인 만큼 상대당의 치명적인 실수로 인한 반사이익을 얻은 이재명 후보의 낙승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선거결과가 의외라고 놀라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 후보 선출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민의 힘 내분 사태를 고려하면 김문수 후보가 40% 이상 득표한 것은 관전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선전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김문수 후보의 득표율은 이재명 후보를 의도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김문수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보수내지 중도 층 유권자의 배려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0.73%(247,077표) 차이로 윤석열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문수 후보가 득표수로 말하면 20대 대선때 윤과 이의 표차이보다 12배 정도 많은 표차이로 이재명 후보에게 당선의 영광을 안겼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 결과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의 표를 합하면 이재명 후보의 득표보다 조금 많기 때문에 김후보와 이후보가 단일화를 했으면 이재명 후보를 이길수 있었다고 주장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에 불과 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문수로 단일화 되었건 이준석으로 단일화 되었건 단일화에 성공한 후보가 단일화 당한 상대방을 지지자의 표를 다 흡수 한다고 가정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힘은 지금 “어찌할꼬, 어찌할꼬” 하면서 당의 체질개선과 쇄신을 도모하지 않으면 내년에 있을 지방 선거는 물론 그 다음해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전망이 그리 밝지 않습니다. 국민의 힘은 12.3 비상계엄한 선포하여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 당한 윤석열 전대통령과 관계를 단절하고 제로 베이스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윤석열 전대통령이 남긴 정치적 유산을 전부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은 6.3 대통령 선거에서 49.42%로 얼른 보기에 득표율이 매우 높은 것 같지만 투표율을 감안한 전체 유권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득표율은 39.24%로 4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국정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결코 충분한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임 이재명 대통령도 우호적인 중도층의 지지기반을 점차 더 확보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미국의 역사 학자 아서 술레징어 주니어(Arthur Schlesinger, Jr)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란 독재가 아닌 민주적 대통령제 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영역에서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 합니다. 현재 국회의 의석분포로 봐도 더불어 민주당 175석에다 범 여권을 합치면 190석에 육박하고 있어 문재인 대통령은 행정과 입법부의 통제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통령제하에서 행정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고 입법권마저 대통령을 배출한 더불어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입법과 행정의 막강한 통합권력을 이용하여 균형감을 가지고 국정을 효율성 있게 처리할지 아니면 자신의 진영정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폭주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우리나라의 보수는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 그리고 윤석열에 대한지지로, 진보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이재명에 대한 지지로 보수와 진보를 상징화 하며 자처합니다 따라서 한 진영을 선택한 우리나라의 유권자들은 자신이 선택한 진영의 영웅에게 절대적 찬사를 보내고, 상대 편의 영웅에게는 노골적으로 저주와 비난을 보냅니다.
현재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권자들이 영웅들의 과거에 매달려 미래를 위한 토론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위는 피지배자임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나 김대중과 같은 과거 지배 엘리트와 지신을 동일시 함으로서 각자 지지하는 영웅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적대시합니다.
유권자가 자신의 이상을 정치적 영웅과 동일시하는 행위는 결국 그 영웅에 대한 ‘숭배와 복종’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숭배와 복종 현상은 세가지 치명적 정치적 문제를 야기합니다.
첫번째 문제점은 유권자의 영웅 숭배가 바로 그 대상이 되는 영웅을 타락 시킨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숭배는 숭배받는 사람을 과대망상 환자로 타락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둘째로 유권자들을 오염 시킵니다. ‘숭배와 복종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합리적 정보수집과 그 정보에 대한 비판적 검토의 기회를 박탈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웅 숭배의 가장 큰 폐해는 같은 피지배자 유권자들끼리 서로에 대한 분노를 양산해 인간관계를 단절하는 원인이 됩니다.
우리사회의 지배 엘리트들은 다음과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조언을 철저하게 지켜 왔습니다. 즉 “ 피지배 계급이 잘 복종하고 혁명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들 사이에 ‘우애의 정신’을 없에기 위해 끊임없이 편가르기를 실행 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현재 미국과 우리나라와 같이 대통령 중심제를 태책하고 있는 나라는 정치를 정당이 주도하는 정당 정부가 아니고 개인화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치를 개인화 시키는 대통령제는 세가지 문제를 유발합니다.
첫째, 대통령제는 대통령이라는 ‘한 개인’을 통하여 권력을 인격화하고, 그 개인의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영웅 숭배를 유도하는 현상이 초래됩니다.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역사학자 슐레징거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정당구조가 약화되고 ,대통령 개인이 정치적 결정의 주역이 되는 현상이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둘째, 정치와 권력이 한 개인으로 인격화 되는 대통령제아래서는 정책실패를 하더라도 대통령이 소속한 정당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와 같이 자연인으로서 그 지도자가 퇴진함으로서 정치적 책임이 종결되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12.3 비상계엄에 책임이 있는 국민의 힘의 미래가 새로운 지도자 즉 김문수후보를 내세워 6.3 선거에서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경쟁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 됩니다.
셋째, 정치의 개인화는 소속정당과 무관하게 지도자 개인의 의지로 권력이 행사되는 경우가 가능한데 이러한 현상은 대통령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2016년 11월 미국대통령 선거의 경선 및 본선 당시 공화당 지도부가 명시적으로 반대를 표명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배타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집권 후에도 이에 입각한 행정명령을 발령해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집권 2기에도 불법 이민 단속이라는 명분으로 불법체류자들을 무자비하게 추방하고 비자발급을 차별적으로 하여 국제사회의 반감을 사고 있습니다.
대통령선거에서 정책 보다 인물에 초점을 맞추게 되니 인물의 호(好), 불호(不好)에 대한 평판이 먼저 형성되면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의 이미지에 따른 선입견을 형성하게 됩니다.
선입견은 “싫다”또는 “좋다”로 형성되기 때문에 감정이 개입됩니다. 한편 후보의 소속정당이 내세우는 정책은 (유권자에게) “유리하다” “불리하다” 를 판단해야 함으로 이성이 작용합니다.
대통령선거에서 인물위주로 뽑는 선거는 이성보다 감정의 영역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즉흥적일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6.3 선거 후보자 토론에서 세차례에 걸쳐 후보자들의 정책을 검증하는 시간에 상대 방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으로 시간을 낭비하여 참으로 안타 까왔습니다.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친 후보자 토론이었습니다.
2024년 12월3일 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는 하룻밤사이에 오십 년 전 수준까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행이 위대한 시민이 출동한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지연시키고 용감한 국회의원들이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하여 민주주의가 파멸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독립성과 공동체 의식의 함양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먼저 개인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이 비록 경제부분에 손해를 보더라도 개인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공산품을 유럽에서 수입하더라도 미국은 농업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제퍼슨은 대규모 제조업이 독립성이라는 시민적 덕목을 해칠 수 있다고 본 것 입니다. 시민이 공장의 직원이 되어 사장과 직원의 상하 관계에 편입되면 개인의 자립성이 훼손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지켜 나가려는 미국인의 고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공동체 의식 함양 부분입니다. 민주주의에서 공동체 의식은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공동체 일 예컨데 선거 등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을 뜻합니다. 공동체의 주인이라면 공동체의 안위에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도 감당해야 만합니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를 자랑한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민은 정치에 무식하지 않으며 아테네 시민만이 정치에 참여 하지 않는 사람을 무용지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영어에서 바보를 가리키는 말인 이디어트는 그리스어 , " 이디오테스"에서 나왔는데 이는 공직에 나가지 않는 사인(私人)을 지칭합니다.
시민으로서 공동체 일에 참여 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이디어트'가 된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공동체의 안전과 존립에 관한 문제를 극소수의 엘리트 나 법률가에게 맡길 수 만 없습니다. 공동체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어떤 형태로 건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합니다. 보통 사람이 비록 사격 표적 지 흑점을 명중 시키긴 어렵겠지만 총알이 흑점을 관통했는지는 판단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보수정치 의 원로 비평가인 울리엄 버클리 II세가 주장한 아래 글은 엘리트주의, 전문가주의 그리고 능력주의를 시민판단주의로 바꾸어도 무방하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 하고 있습니다.
"나는 미국정부의 일을 하버드대학교수진에게 맡기기보다 (차라리) 보스톤 공중전화번호부 에 나와 있는 첫번째 400명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윌리엄 에프 브컬리,II세 (1925-2008)
6.3대선을 계기로 정치에의 참여가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임을 인식하고 시민이 공동체의 주인으로 대접 받도록 선출된 정치가들에게 요구하고 그들이 공동체를 위하여 하는 일이 올바르게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환경을 조성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고사성어에 귤화위지(橘化爲枳)란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귤화위지가 뜻하는 바는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환경과 조건이 나쁘면 귤이 탱자가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대폭 수정하는 개헌을 하면 저절로 민주주의가 정착하여 잘 작동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입니다. 외국의 이상적인 통치 형태를 그대로 수입해서 쓴다고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큰 착각입니다. 통치 형태가 아무리 훌륭하고 효과적이라고 해도 시민이 참여하고 적응해서 제도를 정착 시키는 것은 그 나라 공동체의 몫입니다. 한나라에서는 정치적 불안정의 원인으로 간주 되어 폐기한 제도가 다른 나라에서는 정치적 안정을 구현하기 위해 개혁적인 제도로 수용된 사례가 이를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며 성공을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