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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이순대
명절을 앞두고 음식 배달 봉사활동에 참여하였다. 북향민 어르신 가정에 추석 음식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군포사랑방은 같은 지역의 북향민끼리 서로 돕는 작은 단체로 어엿한 사무실도 갖추고 있다. 여러 달 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온 만큼 제대로 자본주의식으로 사는 셈이다.
중요한 것은 장점이면 장점대로 살리는 일이다. 북이면 북, 남이면 남 대로, 명절에 마음을 서로 나누고, 어르신과 이웃을 돌보며 사는 미풍양속이 좋은 보기이다. 고독한 이름 ‘북향’(北鄕)에는 북쪽에 고향을 두고 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피해의식으로 가득한 실향(失鄕)이 아닌, 자기 주도적 선택이니만큼 낯선 객지에서 서로 돕고 사는 일은 당연하나, 그렇지 못하다.
배달 현장은 군포에 있는 LH 임대아파트에 사는 일곱 집이었다. 오래된 아파트지만 자연 환경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다만 가족없이 홀로 산다면 높고 푸른 하늘조차 더 외로움을 타게 할 듯싶었다. 물론 도시 속 아파트 생활은 누구에게나 이웃이 없다. 이웃끼리 담을 쌓고 서로에게 이방인처럼 산다. 몸을 사려온 삶에 익숙한 그들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을까?
탈북이란 말이 아직 낯설던 시절에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다. 어쩌면 독일의 아파트 생활은 군포 임대아파트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럽의 아파트는 대개 서민용이었다. 게다가 대학가에는 기숙형 아파트가 즐비하였고, 100여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벌집처럼 살았다. 그래도 독일어라는 같은 말을 쓰는 까닭에 이웃으로 지냈다. 다만 추석이나 설날은 한국인만 외로움을 타는 고독한 명절이었다.
제법 규모가 커서 관리인을 따로 둔 후슈타트링 아파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1층에 살던 관리인은 독일통일 후 중앙아시아에서 귀환한 디아스포라 독일인이었다. 그는 집집마다 마당을 청소할 당번을 배정하여 누구나 아파트 환경관리에 참여하게 하였다. 거부할 수 없었다. 정한 날이 오면 커다란 빗자루를 그 집 현관에 갖다 두고,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었다. 예외가 없어, 아파트 주민이라면 억지로라도 공동체를 의식하며 살았다.
비슷한 아파트 풍경은 평양에서도 본 적이 있다. 가정예배소를 방문한 그 날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락랑구역 충성1동 4현관 11, 12반(‘충성의 7월 11일 붉은기 인민반’) 아파트 입구에는 자긍심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쓰여있고, 각종 실적을 표시하는 그래프 세 개가 붙어 있었다. 뜨물, 폐지 현황표 같은 것인데 이제 막 고난의 행군을 빠져나온 경제 사정에 비추어 그런 재활용품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프가 선명도를 잃은 이유다. 소위 집단화의 단면이었다.
명절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었다. 이주민이 밀집한 복흠시 서민아파트든 두만강 변에서 피난 온 북향민이든 그리움은 언제나 명절과 같을 것이다. 명절이 공동체적인 까닭은 세상 어느 곳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살기 때문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연휴가 시작되면 복흠역 앞에 길게 늘어선 귀성객들이 눈에 띈다. 멀리 동유럽으로 떠나는 전세버스를 타려는 외국인 노동자의 귀성 행렬이다. 유럽의 중부와 동부 그리고 남부에서 온 가난한 유럽인들이다.
일전에 군포사랑방에서 들은 이야기다. 많은 북향민들은 교회에 대한 경험이 많지만, 더 이상 교회에 출입하지 않는다. 북향민을 만만한 전도 대상자로 여겨 과도한 친절을 베풀지만, 상대로 하여금 몸을 숨기게도 만든다. 북의 집단화와 남의 공동체성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도를 넘는 애정과 선을 넘는 통제는 다르지 않다. 교회의 열심은 보다 절제하고 언뜻 무심할 필요가 있다.
LH 임대아파트에 사는 북향민들은 추석 선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들과 형편이 비슷한 사람들에게 더 진정성을 느낀 때문일 것이다. 노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받던 배달 품목은 아주 소박했다. ‘오색 부침개, 기정 떡, 무 생채 그리고 아바이순대.’ 아마 같은 마음이었을까? 볼품없는 순대일망정 아스라한 명절 풍경과 꿈엔들 잊지 못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