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코로나 상상하기(1): 청소년을 위한 삶의 기본기, Alive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라는 웃지 못할 농담이 있다. 교육 현장의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구시대적인 행정 시스템과 마구잡이로 도입되는 교육정책, 그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는 아이들. After 코로나를 준비해야 하는 지금,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 거대한 물음에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서교동 마당에 모인 사람들
김경옥 : 서울시교육청과 협업으로 고교자유학년제 오디세이민들레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공교육 교사 시절 힘들기만 했던 교육을 이제는 본인의 진정성과 삶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있다.
김희옥 : 서울혁신파크 내에 위치한 크리킨디센터 센터장으로 근무 중. 최근 ‘내가 걸어온 길이 맞는 것일까?’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중이다.
박활민 : 활Lab 대표, Life 디자이너. 숲 생활을 경험하면서 삶의 패턴을 바꾸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지붕 아래’에서 해 왔던 모든 행위를 ‘하늘 아래’에서 해 보고 있다.
안기숙 : 전 S그룹 20년 근속, 현 유쓰망고 객원연구원. 모든 인간이 숫자로 계산되고 줄 세우는 꼰대 만렙이 됐다고 느꼈을 때, 과감하게 퇴사했다. 지금은 스스로에게 Life gap year를 허락해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오연호 : 오마이뉴스 대표 기자, 지난 7년간 한국과 덴마크를 오가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삶을 위한 수업> 덴마크 교육 시리즈 책을 저술했다.
정승관 : 꿈틀리 인생학교 교장, 홍성에 위치한 풀무학교에서 30년간 생활하다 강화도 꿈틀리 인생학교가 개교하고 강화도에 둥지를 틀었다. 꿈틀리 개교 5년간 매년 새로운 청소년을 만나면서 섬 생활을 함께 하고 있다.
조한혜정 : 문화인류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20년 전 하자센터 설립. 최근엔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방식으로 ‘코로나19,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라는 화두로 다양한 사람들과 논의의 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황석연 : 어쩌다 공무원. 독산 4동 전국 최초 첫 민간인 동장 출신, 목포 ‘괜찮아 마을’ 설계 기획자, 청년들에게 실패해도 괜찮아, 도전해도 괜찮아, 실험해도 괜찮아 등 ‘괜찮아’ 시리즈 마을을 기획 중이다.
시작은 가벼웠다. 서울, 제주, 세종, 강화, 춘천에 거주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운동movement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뭘 하면서 살고 있나 ‘모여서 수다 떨고 안부를 전하자’로 시작됐다. 김밥 한 줄과 수박 한 접시로 시작된 수다는 100분 토론을 방불케하는 자리가 됐다. 역시나 대화의 화두는 코로나19와 그 이후의 교육의 미래에 대해서. (아래 기술된 내용은 집담회 참여자들이 각자 이야기 한 내용의 요약본임을 밝힌다.)
코로나19 이후의 배움
2020년 코로나19 이후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글로벌, 인류 생존의 문제가 됐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라는 물음이 전 세계의 화두가 되었다. 교육 생태계도 마찬가지다. 견고한 공교육 시스템만이 배움터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교실이라는 공간이 있어야 학교라고 생각했던 틀이 무너지고 있다. 온라인 개학과 학습이 시작됐고, 온-오프라인을 병행하는 배움의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소셜 스쿨, 홈 스쿨링, 대안학교 등 그동안 ‘일반적이지 않아 우리와는 상관없게’ 보였던 다양한 형태의 배움들이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온라인 학습터를 선택했으나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것이다.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
그간 교육은 지향하는 목표점이 있었다. 입시와 대학. 이 목표점을 향하기 위해 ‘모든 아이들은 공평하고 공정한 지점’에서 출발해야 했다. 이 같은 전제로 교육의 논의가 시작되다 보니, ‘아이들의 출발점(가정환경, 경제적 형편, 지역적 자원 등)이 다르니까 비슷한 지점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제공해 줘야’ 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논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왜 닿아야 하는 지점이 모두 같아야 하는가? 각자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다양한 배움의 형태가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인식의 전환을 시도하기에 지금이 적기라고 입을 모았다.
콘텐츠가 곧 교육인가?
우리는 알찬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교육의 본질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콘텐츠가 풍부하면,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모두가 ‘콘텐츠는 얼마든지 있어’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게 진정으로 삶으로 꽃피울 수 있는 콘텐츠인지는 의문이 든다.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기성세대들의 프레임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교육은 삶을 살아가는 힘을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곳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학교이든, 지역이든, 숲이나 들판이든, 어디든 배움터가 되어야 한다.
실례로 박활민 선생이 운영하고 있는 활랩은 ‘한 달 숲 살기’이다. 청소년들은 아무것도 갖춰져 있지 않은 숲에서 한 달 동안 생존하는 연습을 한다. 게임 중독과 자해를 반복해 오던 한 친구는 휴대폰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원시 자연 그대로의 생활을 경험했다. 인간 사이의 교감이 없었던 그 친구는 칠흑 같은 어두운 저녁 시간, 모닥불을 켜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통해 관계를 맺어가는 법을 배웠다.
제주도에 위치한 볍씨 학교는 매일 아침 학교 주변을 달리고, 거대한 가마솥에 끼니를 지어먹으며 생활한다. ‘낭송’하는 것이 그 학교의 교육과정이다. 동일한 책을 읽고 각자 인상 깊었던 부분을 낭송하고, 서로가 서로를 포옹해 준다. 감동과 감정이 가슴으로 만나는 순간을 체험한다. 감동의 지점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책의 어떤 부분이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포옹을 하는 순간 타인의 감정이 전이되 나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함께 밥을 지어먹고, 책을 읽으며, 스킨십을 통해 감정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학교의 삶이다.
강화도 섬 생활을 하는 꿈틀리 인생학교는 무언가에 화가 나 있는 아이들을 대면한다. 학기 초, 기숙사 생활, 섬에서 나갈 수 없다는 고립감, 나와 맞지 않는 룸메이트 등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시간도 1~2개월이 지나면 각자의 방식으로 다름을 인정하게 되고, 관계 맺음이 시작되면 안정기에 접어든다. 그렇게 자신이 몰입하고 싶은 주제로 무언가 시작할 동력을 얻는다.
숲 살기, 바닷가에서의 낭독, 섬 생활. 이러한 배움터에서의 콘텐츠는 무엇인가? 그냥 ‘삶’ 그 자체다. 살아가는 것이 곧 배움이다.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교육, 미래 교육을 이야기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 ‘자신의 방식으로 생존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환경의 조성이다. 현재의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생산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 사회의 구성원, 일원으로서 경제 수단으로의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강요와 강조의 교육을 과감히 버릴 때가 되었다.
Alive
인생은 늘 선택이다. 먹는 것, 입는 것, 하고 싶은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가고 싶은 곳, 가야 할 곳 등 항상 선택의 기로에 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나를 살리는 것인가?’, ‘나를 숨 쉬게 만들 수 있는 것인가?’를 스스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얼라이브Alive. 살아 있음을 스스로 느껴야 한다.
더욱이 배움의 과정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얼라이브를 찾는 과정의 경험도 필요하다. 내가 언제 살아 있는지를 파악하도록 잘 훈련된 사람들의 경우, 방향을 잃는다는 것 자체가 힘들다. 어떤 상황과 순간에 직면했을 때, 본인이 이것을 잘 할 수 있는가, 본인과 잘 맞는 것인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배움의 형태는 각자가 얼라이브의 상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환경이 되면 어떨까. 아이들 저마다 가슴에 품었으면 하는 질문이자, 답을 찾아가는 키가 되기를 바란다.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