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지금 바티칸「바티칸이란 점치는(vaticinia) 고지란 뜻을 지니고 있으며 여기서 바티칸이란 이름이 연유한다. 대성당은 네로(Nero) 황제(54년~68년)의 경기장으로부터 북쪽 언덕 위에 콘스탄틴 대제(272~337년)가 4세기에 세웠던 대성당 터에 서 있다. 네로 황제라면 로마의 첫 주교로서 초대 교황이었던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그 박해를 명령한 장본인이다. 이 대성당 바로 밑은 초세기의 이교도 공동묘지였고, 이 무덤들 사이에 베드로 사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로마제국에서는 노예라도 자기 무덤을 가질 수 있는 권리와 어느 누구도 타인의 무덤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신성불가침의 로마법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러한 법적인 보호도 못 받는 역적으로 취급받았다. 따라서 성 베드로의 유해를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하여 이교도인 무덤과 비슷하게 꾸며 놓고 신자들끼리만 알고 그곳으로 성묘를 다니며 기도하곤 하였다.
대성당의 심장부가 되는 이무덤을 둘러싸고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건물이 세워졌다. 비슷하게 다시 기념 묘각을 세웠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종교 자유가 인정된 이후 콘스탄틴 대제는 초라하게 땅속에 묻혀 있던 사도의 유골을 거두어 특별히 마련한 돌궤에 안치하였다. 그리고 기념묘단을 만들어 그 돌궤를 보존하기 위해 무덤 위를 덮었다. 그 무덤을 중심으로 짓도록 한 대성당을 교황 실베스떼르(Sylvester, 314-335) 1세가 326년 11월 8일 성대하게 축성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 콘스탄틴 대제 기념 묘단과 거의 같은 높이로 그 주위를 대리석으로 덮어 성직자석으로 꾸미고 새 제대를 크게 지어 그 기념 묘단을 덮었다.
교황 갈리스도 Calixtus, 1119-1234sus) 2세는 다시 더 큰 제대를 만들어 있던 제대를 덮고, 교황 클레멘스(Clemens, 1592-1605sus) 8세는 새로운 대성당 건축을 계속하면서 다시 더 큰 제대를 세워 덮었으니, 이 제대가 바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세워진 대성당은 1,200년 동안 존속하였으나 붕괴될 위험이 있었다. 성년을 맞이하여 보수, 증축할 필요성이 생겨 교황 니꼴라오(Nicholas, 1447-14755sus) 6세 때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그의 죽음으로 중단되었다. 1506년 교황 율리오(Julius, 1503-1513sus) 2세 때 대성당을 허물고 새로 짓도록 명하였다. 브라만떼,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폰티나, 베르니니, 마테르노 등 당대의 거장들에 의해 작업이 이어진 끝에 1626년 11월 18일-콘스탄틴 대제 때 세워진 대성당을 축성하였다. 이 대역사는 120년 만에 끝났다. 그러나 광장과 그 외의 부분들은 1700년 초까지 공사를 계속하여 이루어진 작품들이다. 광장 주위의 기둥들은 1656년에 시작하여 11년 후인 1667년에 완성되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과 예술이 총 발휘되어 옛 묘소를 영예롭게 장식하기에 이르렀다.
최근의 고고학 발굴로 그 묘소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여 있음이 고증되었다. 여러 과학적인 연구를 토대로 교황 비오(Pius, 1939–1958sus) 12세와 교황 바올로(Paulus, 1963-1978sus) 6세는 현존하는 유해가 사도 베드로의 것임을 재차 공식 선언하였다. "정말 사도 베드로의 무덤이 재발견 되었는가? 많은 작업과 여러가지 연구의 최종적인 결론은 '그렇다.'는 답변입니다. 사도들의 머리이신 베드로의 무덤이 과연 재발견 되었습니다."
(비오 12세, 1950년 크리스마스 메시지). “예, 그렇습니다. 그분의 무덤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지극히 존경하올 유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역사적 고증이 성립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 자리에 계십니다. 문헌, 고고학, 방증 그리고 논리 등의 분석이 우리에게 이 사실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바오로 6세, 1978년 6월 28일 자 연설).
▼ 교황 제단
중앙 회중석과 양편 주랑이 교차하는 지점, 대성전 중심이 되는 곳에 교황 제단이 놓여 있다. 고백의 제단이라 불리는 여기서 교황이 전례를 집전한다. 일찍이 성 베드로가 피로써 신앙 고백을 하였고 그 뒤 모든 세기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신자들이 이곳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이 제단은 베드로 사도의 무덤 바로 위에 세워져 있다. 갈릴래아의 어부였던 베드로에게 바쳐진 영광은 제단 위에 세운 베르니니의 거대한 구리기둥 천개(Ciboorium), 그 위로 치솟은 미켈란젤로의 웅장한 원형 천정, 그리고 천정Cupola) 받침 둘레에 새겨진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마태오 16, 18)는 예언의 말씀이 대변하고도 남는다. 그 후 여러 차례 제대를 새롭게 덮어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2 천여 년 전에 묻혔던 베드로 사도 무덤의 중심과 그 제대의 중심은 한 번도 변경되지 않고 수직선을 유지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웅장한 원형 천정의 외부 꼭대기 십자가가 베르니니의 천개 중심을 통과하여 베드로 사도의 무덤과 수직선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 꼭대기의 십자가는 대성전 가운데의 중앙탑(오벨리스크) 꼭대기의 십자가와 정동향으로 일직선을 이루고 있다. 이는 최후 심판 때에 동쪽에서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의 유해를 비롯한 초대 교회 건축의 위치가 정동향으로 되어 있다. 제단 주위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성녀 헬레나, 성 론지노, 성 안드레아의 거대한 석상이 눈에 띈다. 성 안드레아 성 아래에 지하 묘소(Crypta)로 내려가는 층계가 있다(맞은편 성 론지노 상 아래에도 입구가 있음). 그리고 내려가면 성 베드로의 묘소는 물론 여러 교황들, 우리가 들어 익히 아는 비오 12세, 요한 23세, 바울로 6세, 요한 바울로 1세의 묘소 앞을 지나 대성전 옆으로 나오게 된다. 중앙 제단에서 현관을 향하고 보면 왼편 머리에 고대의 성 베드로 동상이 보인다. 여러 세기를 두고 무수한 순례자들의 입맞춤에 오른발은 밋밋하게 닳아져 있다.
우측 주랑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 (1870년) 회의장으로 쓰였다. 그레고리안 경당을 지나면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경당에 이른다. 가톨릭 신자들은 성체성사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자신의 믿음을 이곳에서 새롭게 한다. 금을 입힌 감실이며 천사상은 베르니니의 작품이며, 제단 위에 있는 성삼위 그림은 대성전에 소장된 유일한 유화다(다른 그림들은 모두 모자이크다). 다음에 성 세바스띠아노의 제단과 비오 11세와 12세의 기념상을 차례로 지나면, 순례의 발걸음은 피에타(La Pieta)상 앞에 서게 된다. 아마도 세계의 가장 위대한 조각품인,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영감을 주며 영혼을 매료시키는 이 대리석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며, 1499년 그의 나이 24세 때 조각한 이 작품은 그의 젊은 시절의 대표작이다. 동정녀의 얼굴에서 아들의 주검을 안은 어머니의 고뇌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엄숙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머니의 모습을 아주 젊게 조각한 것은, 모성애는 결코 늙을 수 없고 또 영원한 동정녀임을 표시하고자 했다.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있는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다. 완성된 그의 작품을 보고 놀란 사람들이 밤사이에 성모님의 가슴에 두른띠에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얘기도 있다. 원래 이 경당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께 봉헌된 경당이었다. 십자가에서 볼 수 있는 네글자 즉 INRI는 라틴말의 예수스 나자레누스 렉스 유대오룸(Jesus Nazarenus RexJudaeorum 유대인의 왕 나자렛의 예수)의 머리 글자이며 조롱하는 말이었다.(마태오 27,37 : 마르코 15,26 : 루가 23, 38 : 요한 19, 19 참조)이 성전에서 그림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가 완전에 가까운 모자이크다(베드로 대성당에서 지난 1984년 10월 14일, 우리의 자랑스런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로마 경축 미사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으로 봉헌되어 이로서 전 세계 교회가 더욱 널리 한국 순교 성인들을 현양하게 되었다.)
▼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
성전에 들어서면 우선 한 사람이 일한 듯이 모든 게 잘 균형 잡혀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관까지의 총 길이는 230m, 둥근 천정까지의 높이가 138m이며 성전 안에는 6만 명이 서서 있을 수 있다. 성전의 가운데 통로 바닥에는 세계 유명한 성당의 길이를 표시하고 있어 성 베드로 성전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성전 다음으로 큰 성당은 런던의 성 바오로 성당임이 나타난다. 넓다란 현관으로 들어서면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다섯 개가 보인다. 가운데 청동문은 피렌체의 필라레데 (Filarete)가 1445년 옛 베드로 성전의 문으로 만든 것이다. 맨 오른편 끝의 문이 성문(Porta Santa)이라 하여 25년마다 찾아오는 성년에만 열리는 문이다.이문은 나는 문이다.(요한 10,7)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속세와 하느님의 집을 가르는 경계랄까? 세상에서 하느님의 집으로 기도하려 건너가는 순간이라 하겠다. 베드로 성전 입구 좌편에서 시작하여 차츰 앞으로 나가 중앙정면을 돌아 우편 입구의 피에타(La Pieta)상으로 나오는 순서로 살펴보기로 한다.
베드로 대성당에 들어서면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그리스도교 성전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로 보이는 중앙회중석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가 개최되었던 곳이다. 좌편 회랑(Navis)에서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세례당(Baptisterium)이다. 그리스도의 세례(마태복 3, 13~17:마르코 1, 9~11: 루가 3, 21~22참조)를 그린 벽화는 마리따의 원화를 모자이크로 복원시킨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는 그리스도교적인 재생의 신비를 상기시키고 신앙의 은혜를 두고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한다. 여기서 조금 나아가면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마지막 3대 국왕(제임스 3세, 찰스 3세, 헨리 9세)들을 새긴 기념비가 나온다. 유명한 카노바(1819년)의 작품이다. 바로 왼쪽에는 예수 봉헌 경당이 있다. 여기에는 교황 비오 10세(1903~14년) 성인의 유해가 안치되어있다. 어린이들에게 영성체를 허락한 교황이다. 그다음 상당히 큰 경당은 참사원 성무일도 경당으로서, 이 대성전 참사원들이 성무일도를 합송하는 곳이다. 이곳에 동방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와 교황 글레멘스 11세(1700~21년)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제단 위에는 그리스도의 원죄 없으신 모친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가 펼쳐져 있다. 바로 이어서 맞은 편에 예수의 거룩한 변모(마태오 17, 1~8 :마르코 9,2~8 : 루가9,28-36) 제단이 보인다. 여기 있는 거대한 그림은 라파엘의 최후 걸작 중의 하나다. 왼쪽 뒷편으로 보이는 것은 대 그레고리오의 제단이다. 조금 나아가 왼편에 열려 있는 문은 대성전 제의실과 역사 예술 박물관 입구다. 그다음 넓은 공간이 나오는데 십자형의 이 대성전 좌편 주랑에 해당한다. 맨 먼저 성 베드로 순교 장면이 보인다. 제단 위의 모자이크는 구이도레니의 그림이다. 이 자리가 네로 황제의 경기장 가까운 곳이며 이곳에서 초대 교황 베드로 사도가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한 장소로 전해진다. 이어서 성 요셉 제단과토마의 제단이 차례로 서 있으며 이 주랑에는 고해소가 여러 개 마련되어 있어 사제들이 각 나라의 국어로 고해성사를 준다. 좌편 주랑을 다 지나면 베르니니(Bernini)가 만든 알렉산더 7세의 기념비가 있다.
그곳에 장막을 헤치고 모습을 나타내는 죽음이며, 사랑, 정의, 진리, 지혜이라 네 가지 덕목 이 조각으로 표상되어 있다. 이어서 왼편에는 기둥의 성묘 경당의 맞은편에는 대 레오 성인의 제단이 보인다. 그리고 대성전의 머리끝이 되는 후진(apsis)이 나타난다. 석고재로 된 반투명 유리의 창문에서 나오는 빛은 그 밑의 '베드로의 교좌'를 비춘다. 제단 이름도 베드로의 교좌이며, 양측에는 초대 교회의 4대 교부 성 암브로시오, 성 아우구스띠노, 성 아타나시오, 성요한 크리소스토모의 커다란 상들이 세워져 있다. 이 후진의 전체 구조는 초대 교회에서 비둘기로 상징된 교회의 영혼인, 성령께서 교좌를 비추어 주심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