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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초가을 선선한 공기가 코끝을 스친다. “후읍~” 숨을 깊게 들이쉰다. 숲의 맑은 기운이 폐를 통해 온몸으로 퍼져간다. 이렇게 몇 번 더 심호흡을 하니 어느새 몸도 마음도 숲속의 일부가 된 듯하다. 이른 시간임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여럿 눈에 띈다. 깊은 산속 산토끼처럼 개울물로 가볍게 세수하고 산책길에 나선다.
현재 청송자연휴양림엔 5.4km에 이르는 순환로를 따라 산책 코스가 형성돼 있다. 이 코스의 외곽만 따라서 성인이 빠르게 걸었을 때는 40분, 천천히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길은 평탄하고 경사도 부드럽다. 따라서 산책로를 걷는 것보다 산행의 재미를 더 느끼고 싶다면 휴양림 뒷산과 연결된 등산로를 따라 한 바퀴 돌면 된다. 이 경우 2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는 일반 휴양객들이 주로 애용하는 순환산책로로 방향을 잡는다.
- ▲ 아침 산책을 즐기는 가족. 숲에는 활엽수와 침엽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삼림욕하기에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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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가을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야영장에서 시계방향으로 걷는다. 길은 차량도 운행이 가능할 정도로 널찍하다. 양쪽으론 숲이 짙푸르다. 그 속에서 벌써 붉게 단장하고 가을 맞이하는 녀석도 있다. 옻나무다. 하긴 이 숲에서 가장 성질이 급한 녀석이 아닌가. 잎이 노랗게 변해가는 생강나무도 만만치 않다. 잔설이 남아 있는 이른 봄에 샛노란 꽃으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이 녀석은 가을도 서둘러 맞이하는가 보다.
아이들은 길가에 핀 노란 달맞이꽃이며, 자줏빛 물봉선과 인사를 나눈다. 사진 찍는 게 취미인 작은 아이는 만나는 자연의 친구들마다 사진기에 모습을 담느라 바쁘다.
“투둑!” 바람이 불자 조용하던 숲속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뭘까? “투두둑!” 이번엔 더 요란하다. 보니 작은 소란을 일으킨 주범은 다름 아닌 도토리였다.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였던 것이다. 길가로 굴러떨어진 녀석들을 몇 개 줍는다. 금방 한 움큼이다.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바닥 안에 고동색 가을들이 가득하다. 일찍 일어난 아기 다람쥐들도 덩달아 바쁘다.
- ▲ 산책로 주변에 조성된 삼림욕장. 나무로 만든 긴 의자가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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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의 집 갈림길을 지나면서 길은 한껏 한적해진다. 주변에 조성된 삼림욕장으로 발길이 끌린다. 제법 굵은 소나무와 갈참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숲엔 기다란 나무 의자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잠시 쉬어가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유혹이다.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는 가족도 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이따금 웃음소리가 숲 바깥으로 터져 나온다. “후읍~”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한다. 숲속을 부유하던 피톤치드가 몸속 깊숙이 파고든다. 상쾌하다.
10분쯤 쉬었을까. 몸은 한껏 가뿐해진 듯하다. 다시 발품을 판다. 길은 호젓하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에 박자를 맞춰 걷는다. 흥겹다. 중간 중간 나무들 앞에 앙증맞은 이름표가 설치돼 있다. 그때마다 녀석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본다. 산벚나무, 층층나무, 고로쇠나무….
길엔 키 작은 풀이 가득하다. 풀이 적은 차량 바큇자국을 따라 걷는다. 어느덧 ‘산나물군락지’ 팻말 앞에 도착한다. 청송자연휴양림 중에서 이곳에 산나물이 가장 많아 이렇게 설치를 해놓은 것이다. 팻말엔 이곳에서 참취, 곰취, 미역취, 산두릅, 원추리, 잔대, 달래, 냉이, 쑥, 둥글레 등 다양한 산나물이 자란다고 씌어 있다. 그 뒤를 이어 산나물 채취법도 자세히 기록돼 있다. 작은 아이가 읽는다.
“첫째, 손으로 뜯는다. 산나물은 캐는 것이 아니라 뜯는 것이다. 그 식물 자체도 피해를 입거니와 땅속에서 자라고 있는 다른 산나물 잎이나 뿌리도 다치게 된다. 둘째, 절대 뿌리째 뽑지 않는다. 뿌리를 먹지 않는 것도 많으며, 뿌리째 뽑으면 이듬해 산나물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은 뻔하다. 셋째, 채취할 나물을 정해서 뜯는다. 산나물을 조리할 때 여러 가지 나물이 섞이면 나물 특유의 향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넷째, 정확하게 아는 나물만 뜯는다. 유독성을 가진 나물이 적지 않으며, 산에서 만나는 식물 중 산나물과 생김새가 비슷한 독초가 의외로 많다. 다섯째, 여러 포기에서 조금씩 뜯는다. 뿌리만 남긴 채 잎을 죄다 뜯어낸 식물은 말라죽고 만다.”
어느새 입 안에 군침이 가득 고인다. 산나물을 먹고픈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계절은 초가을. 그렇다면 삼림보호를 위해 조성한 휴양림에서 비록 봄이라 해도 산나물을 채취할 수 있을까.
“우리 청송자연휴양림은 산나물 종류가 아주 많아요. 그래서 봄에 이곳을 찾으면 많은 산나물 종류를 볼 수 있지요. 우리 휴양림을 이용하는 탐방객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길가에서 조금씩 산나물을 뜯는 것은 허용하고 있어요.”
- ▲ 산책로 주변의 식생을 관찰하며 달맞이꽃을 사진기에 담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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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자연휴양림 소속의 숲해설사에게 물어보니 탐방객이 야외 식탁에 올리는 적당량의 산나물을 뜯는 것은 말리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산나물을 채취할 때 주의할 점을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렇다면 봄에 이 청송자연휴양림을 찾는다면 삼림욕은 물론이거니와 싱싱한 산나물로 밥상은 한결 풍요로워질 것이다.
“휘익” 숲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인다. ‘뱀?’ 하긴 생태가 워낙 잘 보존돼 있으니 뱀이 없을 까닭이 없다. 그러나 녀석은 도마뱀이었다. 뱀인가 두려워 멀찍이 달아났던 작은 아이가 가까이 오더니 재빠르게 도마뱀을 잡아챈다. 아이는 손바닥의 도마뱀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같은 ‘뱀’자가 들어 있는 동물인데 두려움과 친근함의 간극이 저리도 큰 걸까.
“집에서 이 도마뱀을 키울래요.”
‘뭐라고? 그 징그러운 녀석을?’ 나는 대답한다.
“이 도마뱀은 키우기도 어렵고 또한 이 녀석은 이 숲속에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결국 아쉬워하던 아이는 숲에다 도마뱀을 내려놓는다. 녀석은 후다닥 달아나 금방 숲속으로 사라진다. 아이는 아쉽다는 듯 녀석이 사라진 숲을 바라본다.
다시 길을 걷는다. 머리 위에서 오미자(五味子)가 붉은 열매를 매달고 있다. 껍질은 시고, 과육은 달며, 씨는 맵고 쓰며, 전체는 짠맛이 나는 저 녀석들로 술을 담그면 일 년 내내 다섯 가지 맛을 볼 수 있는데. 그리고 눈에 띄진 않았지만, 숲속 어디 인적 드문 곳에선 머루와 다래란 녀석들도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또 입에 군침이 돈다.
- ▲ 1.도마뱀을 징그러워하지 않고 관찰하고 있다. 2.청송자연휴양림 계곡은 수량이 많지 않아도 가재가 살 정도로 수질이 좋다. 3.붉게 익어가는 오미자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4.청송자연휴양림엔 여러 종류의 참나무가 자라고 있다. 가을이 되면 길가에 도토리가 많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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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계곡을 끼고 자리 잡은 휴양림
다시 돌아온 야영장. 야외 식탁에서 꿀맛 같은 아침을 먹은 뒤 아이들은 야영장 옆에 있는 개울에서 논다. 계곡의 수량은 많지 않다. 청송자연휴양림은 계곡을 두엇 끼고 조성돼 있지만 계곡에 수량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계곡 둘레로 워낙 숲이 짙어 아쉬운 부분을 충분히 상쇄해준다. 사시사철 인기가 많은 이유다.
“앗, 가재닷!”
심심풀이로 돌을 들춰보던 큰 아이가 소리친다.
“정말?” 가까이 가보니 정말로 가재 한 마리가 돌 틈에 가만히 숨어 있다. 아이는 머뭇거린다. 몇 년 전 가재를 잡다가 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아이는 두려움을 극복한 듯 가재를 잡아 올린다. 생각보다 제법 씨알이 굵은 녀석이다.
그 광경을 부럽게 바라보던 작은 아이도 근처의 돌들을 살금살금 들춰본다. 그러더니 이내 소리친다.
“여기도 가재가 있어요!”
잠시 후 작은 아이는 자신이 포획한 가재를 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 집에서 가재 키워요.”
작은 아이는 뭐만 봤다 하면 키우자고 하는 게 버릇이다. 저러다 언젠가는 뱀도 키우자고 할지 모르겠다. 단칼에 “안 돼!”라고 하지 못하고 돌려서 묻는다.
“이 가재는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할까? 아니면 쪼그만 어항에서 사는 게 행복할까?”
아이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회피한다. 그러더니 얼마 뒤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러면 그릇에다 담아 놓고 쫌만 놀게요.”
아이도 나름대로 속셈이 있겠지만, 어찌 이것까지 막으랴. 아이는 시에라컵에 돌을 몇 개 깔아놓은 뒤 계곡물을 채우고는 가재를 넣는다.
“가재야, 여기서 놀고 있어라.”
텐트를 걷고 떠날 채비를 거의 마친 뒤 시에라컵을 보니 가재가 없다. ‘돌 밑에 숨은 걸까?’ 작은 아이는 자신의 손바닥만 한 시에라컵을 샅샅이 뒤진다. 그러나 어디에도 가재는 없다. 아마 다들 야영장비 꾸리는 사이에 탈출한 듯하다. 작은 아이의 표정이 시무룩하다. 하지만 차라리 잘 됐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해가 높이 떠오른다. 이젠 정말 떠날 시간. 초가을날, 청송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 야영하며 자연과 더불어 지냈던 꿀맛 같은 시간은 또 다른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오색단풍 물드는 가을, 하얀 눈 내리는 겨울, 연둣빛 새싹 돋는 봄, 또 녹음으로 뒤덮인 여름까지. 언제나 그리울 것이다.
차 시동을 걸고 야영장을 막 벗어나는데, 그때까지도 시무룩해 있던 작은 아이가 계곡을 향해 외친다.
“가재야, 잘 있어! 다음에 다시 만나자!”
이용 요령
숲 해설 들으며 산책하자
- ▲ 맑은 초가을 햇살이 비껴들고 있는 청송자연휴양림 야영장. 청송자연휴양림은 통나무집은 물론 야영데크 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오토캠핑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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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남면 대전리 31번 국도상의 삼자현 고갯마루 북쪽 골짜기에 자리 잡은 청송자연휴양림은 안전하게 숲 체험을 할 수 있는 휴양 공간이다. 계곡의 수량은 많지 않지만 침엽수와 활엽수가 어우러진 숲이 울창해 분위기가 그윽하다.
현재 5.4km에 이르는 휴양림 순환로를 따라 산책 코스가 형성돼 있다. 성인이 빠르게 걸었을 때는 40분, 천천히 걸으면 1시간 정도 걸린다. 가운데 길까지 걷는다면 총 1시간30분~2시간 정도 걸린다. 또 평탄한 산책로 대신 산행의 재미를 느끼려면 휴양림 뒷산에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한 바퀴 돌면 된다. 이 경우 2~3시간 정도 걸린다.
청송자연휴양림엔 숲해설사가 1명 배치돼 있다. 자연휴양림 관리사무실에 들러 신청하면 숲해설을 들을 수 있다. 월~금요일 5일간(09:00~18:00) 근무한다. 토·일요일과 법정공휴일엔 숲해설을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