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장,
박효숙은 펄펄 날뛰는 아들의 모습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본다.
“대체 내 말이 뭐가 그리 해롭다는 것이냐?
남도 아니고 하나뿐인 네 동생에게 집을 내 주는 것이 그리도 큰일이더란 말이냐?
남을 들여서 온갖 먹을 것을 다 대주면서 네 동생에게 해 주는 것이 그렇게 싫다는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이냐?“
“어무님!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더!
지금 그 사람들 어디 공짜로 있는 사람들입니꺼?
우리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더!
그만한 값어치는 하고도 남는 사람들이지예!“
지욱의 화를 가라앉히려고 순영이 나선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꼭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유별나게 해야 하는 것인지 난 도통 이해를 할 수 없다.“
”어무님이 이해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남의 집일을 새벽 4시부터 잠도 자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합니꺼?
어무님 말씀대로 아가씨 내외가 잠도 자지 않고 그 시간에 일어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말인겨?“
“다 필요 없어!
더 이상 어떤 말도 이 정신 빠진 노인네와 말할 필요가 없다.
이제 이 노인네가 왜 내 집을 찾아왔는지 확실하게 드러난 이상 더는 내 집에 있게 할 수 없는 일이야.“
지욱은 박효숙의 마음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더 이상 화를 내지도 않고 박효숙을 내 보낼 생각을 한다.
“당신이 나를 낳은 내 어머니라면 이쯤에서 조용하게 내 집에서 나가주는 것이 그래도 어머니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하는 것이니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서울 당신 딸에게 가시오.
그 여비 정도는 내가 마련해 주겠소.“
“싫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이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겠다.“
”할 수 없소.
정 그렇게 나온다면 내가 강제로라도 양로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소.
나중에 내 원망이나 실컷 하면서 살아가면 되겠소이다.“
양로원이라는 말에 박효숙은 몸을 벌떡 일으켜 지욱에게 매달린다.
“지욱아!
제발, 그만 화를 풀어라!
다시는 어미가 미주 생각을 하지 않고 숨죽이며 살겠다.
그러니 양로원으로 보낼 생각을 하지 말아라.“
”아빠!
이젠 그만 하세요.
할머니께서 이렇게 애원하시는데 그만 화를 푸세요.“
종현이가 애원을 한다.
지욱은 종현이 보기가 미안스럽고 부끄럽다.
“종현아!
너는 이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 있거라!
아빠와 엄마는 더 이상 말도 되지 않는 할머니의 억지에 당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아빠!
그래도 아빠를 낳아주신 할머니시잖아요?
아빠가 버림을 받으셨다고 할머니를 내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버림을 받는다는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아빠가 할머니를 버리시고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
지욱은 종현이의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다.
어린 자식이 버림받았다는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이다.
“애비야!
이 애미가 잠시 네 생각을 하지 않고 미주만 생각했던 것을 용서해라.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니 그만 화를 풀고 용서해라.“
지욱은 더 이상 자신의 고집대로 밀고 나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종현이가 보는 앞에서 내 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종현이가 있어 한 번은 참습니다.
더 이상 내 집에 미준가 뭔가 하는 인간들 모습이 보이는 날이면 종현이가 있다 해도 더 이상 참지 않습니다.
또한 내 집일에 아무런 간섭을 하지 마세요.
이곳은 이 사람과 둘이서 맨주먹으로 일군 우리들의 터전입니다.
아무도 그 누구도 이곳에 와서 함부로 간섭을 하려 든다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다시는 그 애들을 오지 못하게 하겠다.“
박효숙은 급한 나머지 지욱이 하자는 대로 다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지욱은 종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어제 집에 도착을 하자마자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종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고 자신의 마음도 추스르기 위함이다.
그렇게 지욱이 종현이를 데리고 나가자 비로소 순영은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아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에효, 내가 늘그막에 자식에게 이 무슨 고역이란 말이냐?
아무리 에미를 싫어한다고 툭하면 나가라는 말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 질긴 목숨이 모질기도 하다.“
박효숙은 지욱이 나가고 없자 순영을 상대로 분풀이를 하려든다.
순영은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시어머니를 상대로 말대답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순영은 작업장으로 나간다.
마음이 어수선하고 불편할 때는 그저 일에 파묻히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순영은 터득하고 있었다.
유여인은 슬그머니 자신의 집으로 가서 진한 차를 만들어 가져온다.
“한 잔 드세요.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기분도 나아지실 것입니다.“
순영의 기분이 어떠할 것인지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고맙습니더!”
“종현이가 참으로 의젓하고 대견스럽네요.”
“그렇지예?
우리 종현이가 참으로 많이 컸고 속이 무던히도 깊은 것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네요.“”허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철부지 어린아이로만 생각했더니 참으로 속이 깊고 생각이 깊습니다.
정말 잘 키우셨습니다.“
유여인은 종현이가 참으로 어른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어린아이로만 알았던 종현이가 어른스러울 정도로 속이 깊다.
순영은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시어머니의 횡포가 오늘의 일만은 아니지만 종현이를 그렇게 생각하고 종현이가 듣는데서 함부로 말씀을 하시는 것에 대해서 너무 화가 나는 순영이로서는 마음을 다스를 수가 없었다.
“사모님!
세상 노인들 마음이 다 그런 모양입니다.
못사는 자식이 있으면 그 자식에게 어떻게 하든 더 해주고 싶은 것이 세상 노인들이고 어머니 마음이 아니겠는지요?“
”그런 어무니 마음을 왜 우리 종현아부지에게는 쓰지 못하시는 것인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으니 내 마음이 옹졸한 모양입니더!“
순영은 쓰게 웃음을 웃는다.
집안은 한동안 조용하다.
박효숙여인은 더 이상 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이 집을 쫓겨난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던지 아무런 참견도 하지 않고 죽은 듯이 조용하다.
종현이는 집으로 돌아와 새벽이면 부모님이 일어나시는 시간에 일어나 양계장으로 들어가 일손을 거든다.
지욱과 순영이 아무리 말려도 종현이는 자신의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어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종현아!
네가 돕지 않아도 된다.
잠을 더 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다음에 공부를 해야지.“
지욱은 그런 종현이가 안쓰럽다.
아무리 어른스럽다고는 해도 이제 열다섯 살인 종현이다.
아직은 부모에게 철없이 응석을 더 부려도 좋은 나이인 종현이는 응석은커녕 어떻게 해서라도 부모의 마음에 들 생각만 하는 아이 같아서 참으로 마음이 아파온다.
“아빠!
저는 언제든지 그 시간이면 일어나 공부를 해요.“
”그래?
그렇다면 집에서도 공부를 하렴!“
”아빠!
집에서는 공부할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 시간에 아빠 엄마와 함께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제겐 참으로 좋은 시간입니다.
그동안 떨어져 보내는 시간을 이렇게라도 조금이라도 만회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아빠와 엄마를 도와드렸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그래도 아빠와 엄마는 우리 아들이 아직은 철부지로 다른 아이들처럼 철없이 응석을 부리는 것
이 더 좋다.“
세 식구는 그렇게 새벽시간을 행복한 마음으로 일을 한다.
순영은 자신들 곁에서 함께 일을 도와주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머지않아서 기둥이 될 아들이다.
아들에게 노년을 의지하며 살아가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큰 기둥이 되고 힘이 될 아들인가?
순영은 종현이의 모습을 생각만 해도 행복한 마음이 가득 차오른다.
그렇게 그해 겨울 조용하고 별 다른 문제없이 지나간다.
종현이도 개학을 앞두고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면 내려올 시간이 더욱 없을 것이다.
대학입시준비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들을 허비할 수는 없다.
종현이가 올라가고 나서 집안은 너무나 고요하게 가라앉는다.
날씨가 풀리고 햇살이 따사로운 아침이다.
박효숙은 아침부터 외출을 서두른다.
“어무님!
어디 가시는가여?“
”그래, 오늘은 다녀올 곳이 있으니 여비를 좀 줘라!“
“멀리 가시는 거입니꺼?”
“그다지 멀지는 않지만 빈손으로 갈 없으니 조금 생각을 해 주렴!”
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운해 하지 않으실 정도로 돈을 드린다.
박효숙은 흐뭇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집을 나선다.
그것을 바라보는 지욱 역시 모른 척 한다.
겨우내 꼼짝도 하지 않고 집에만 계셨기에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었고 더 이상 언성을 높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박효숙은 자주 외출을 한다.
그때마다 손을 내밀고 있는 박효숙의 씀씀이에 순영은 감당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벌써 봄 내내 사흘에 한 번꼴로 드린 돈이 적지 않은 액수였다.
“어무님!
아무리 외출을 자주 하신다고 하셔도 돈을 너무 많이 쓰신다는 생각을 안 하십니꺼?“
”내가 무슨 돈을 얼마나 쓴다고 또 생색을 내고 그러냐?“
”어무님!
어디 좋은 사람이라도 생기셨습니꺼?
그래서 그라는 것이라예?“
”무슨 당치도 않을 말을 하고 그러냐?
내가 이 나이에 흉측스럽게 좋은 사람이라니?“
박효숙은 당치도 않다는 듯 기겁을 한다.
그리고 어서 돈이나 내 놓으라는 듯 순영을 바라본다.
“오늘은 많은 돈을 드릴 것이 없습니더!”
순영은 간신히 차비가 될 정도의 돈만 드린다.
“너도 사람을 어찌 그리 무시할 수가 있다더냐?
내가 이 돈을 가지고 어떻게 나가라고?“
“그라믄 나가지 마이소.
요즘은 버는 돈보다는 어무님 돈을 드리는 것이 더 많아 이제는 더 이상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있는 돈이 없습니더!“
순영 또한 완강하게 버틴다.
이대로 모든 뜻을 받들어 드리기에는 너무 많은 돈을 자주 요구해 오시는 시어머니의 씀씀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어디에 쓰시는지 말씀을 해 보이소.
정말 꼭 쓰셔야 하는 곳에 쓰신다면 빚을 얻어서라도 드리지예!“
“너 정말 참으로 무서운 사람이다.
이 시에미가 하는 일에 그렇게 일일이 참견을 하고 따지고 드는 며느리가 있다는 말을 내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정말 시에미 무서운 줄도 모르고 네 서방이 감싸준다고 함부로 날뛰는 꼬락서니를 더 이상은 봐 줄 수가 없구나!“
박효숙은 언성을 높이며 소리를 지른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약한 순영이 기가 꺾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야!
마음대로 하이소.
지도 이제는 더 이상 드릴 돈이 없습니더!어디다 쓰셔야 하는지 말씀을 해 주시기 전에는 드릴 수 없지예!“
”오냐!
내가 미주 네를 가려고 한다.“
순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시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그헣지! "문둥이 콧구녕에 마늘 빼 먹는다"는 전설.... 맞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