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1798∼1863)의 작품.
종류 캔버스에 유채
크기 260×325㎝
제작연도 1830년
부제는 《1830년 7월 28일》이며,
왕정복고에 반대하여 봉기한 시민들이
3일간의 시가전 끝에 결국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리고
루이 필리프를 국왕으로 맞이한 7월혁명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1830년에 제작되었다.
그림에서 시민군을 이끄는 이는
알레고리로 표현된 자유의 여신으로서 공상적인 현실,
즉 낭만주의의 중요한 요소인 비현실의 진리를 대변한다.
들라크루아는 1830년 10월 18일 형 샤를 앙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는 현대적인 주제, 즉 바리케이트전(戰)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조국의 승리를 위해 직접 나서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국을 위해 이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7월혁명에 대한 들라크루아의 관심은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애국심의 발로였다.
들라크루아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감성과 개성, 상상력으로 승화시키고,
강렬한 색채와 명암의 대비를 이용하여
신고전주의 회화에 정면으로 도전한 화가이다.
회화 기법에 대담한 혁신을 가져온 인상파에 영향을 주었고,
현대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1831년 살롱에 출품되어 상당한 호평을 받았으며
7월 왕정의 수반인 필리프가 작품을 사들였다고 한다.
나폴레옹 3세 때에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진열되기도 하였다.
들라크루아가 죽은 뒤인 1874년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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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술가가 어떻게 국가를 위하여 일할 수 잇는지를.... 에술가의 사회적 책임....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런 방법으로 사회와의 연대......애술가도 국가가 안전할 때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잇는 환경이 되지 않나 싶네요 감사해요
'운명의 여신이여'를 들으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노라니 비록 데모 한 번 못 해 봤지만 '혁명의 꿈'에 가슴 설레던 지난 시절이 생각납니다.... 미국의 상징이 된 자유의 여신상도 이 그림을 본떠 만들었다지요. 총칼 대신 진리를 상징하는 횃불과 법을 상징하는 책으로 바꾸어서...
인간의 역사에서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이 없지요. 횃불이든 책이든 아니면 자유든.., 검은 구름에 가려진 하늘을 보며,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더 밝고 푸르던 하늘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