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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 먹구름
오 영 민
찔찔이
“새로 온 친구를 소개하겠읍니다. 이름은 윤 동수, 서울 삼천국민학교에 다니다가 이번에 아버지께서 이곳 지서주임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 학교로 전학오게 되었읍니다. 다같이 의좋은 친구가 되길 바랍니다.”
선생님의 소개에 동수는 머리를 숙여 여러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읍니다.
“우선 저기 태환이 옆자리에 가서 앉을까아.”
선생님은 교실 안을 쭉 돌아보시다가 둘째줄 맨 뒤에 짝없이 혼자 앉아 있는 태환이 곁의 빈자리로 동수를 데리고 읍니다.
태환이라는 아이는 얼핏 보아 몹시 누추한 것 같고 더구나 시퍼런 콧물을 더럽게 흘리고 있읍니다. 그것을 본 동수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읍니다.
“임마 ! 또 더러운 코를 흘려?”
---선생님이 책망을 하자 태환이는 그 콧물을 훌쩍 마셔버렸읍니다.
“코를 풀어야지, 마시면 어떡해? 앞으로는 좀 깨끗이 해요, 깨끗이------”
선생님은 딱하다는 듯이 태환이를 책망하고 빈자리의 걸상을 끌어내며 동수에게 앉으라고 했읍니다.
그때까지도 아이들은 한결같이 동수만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자아, 모두들 여길 봐요.”
다시 교단에 오르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주의를 했지만 아이들은 자꾸만 동수에게로 마음이 쏠리는 모양입니다.
“애가 하이칼라를 다 했어?”
“서울애들은 모두 상고머리를 한대.”
“꼭 계집애 같지?”
옆에서 힐끔힐끔 보며 수군거리는 말에 동수는 문득 자기의 머리를 아이들이 흉보면서도 신기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러고 보니 이 반에는 계집아이들을 빼놓고는 자기처럼 머리를 기른 아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동수는 자기의 머리가 부끄러워졌읍니다
―학교가 파하면 집에 가서 당장 머리를 박박 깎아버려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 앉은 태환이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펴보며 부스부스럭 나무뿌리 같은 것을 꺼내 찢어서 질경질경 씹기 시작하였읍니다.
동수는 그것이 칡뿌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았읍니다. 그리고는 공부시간에 칡
뿌리를 씹는 태환이가 못마땅하게 생각되었읍니다.
그런데 태환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칡뿌리를 쭉 찢어서 동수에게 쑥 내밀었니다. 아마 먹어보라는 모양입니다. 동수는 가만히 머리를 옆으로 흔들었읍니다. 그리고는 그제야 태환이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읍니다.
태환이는 아침에도 세수를 안했는지 눈언저리에는 눈꼽이 그대로 끼고, 목과 귀에는 새까맣게 때가 다닥다닥 앉았을 뿐만 아니라 시커먼 손톱도 길어서 여간 더럽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버림받은 것처럼 맨 뒤에 혼자 앉아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동수는 그러한 태환이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았읍니다.
한 시간의 공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었읍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밖에 나갈 생각은 않고 동수를 바라보며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고 었읍니다. 또 머리에 대한 흉을 보는지도 모릅니다.
동수는 그러한 아이들의 눈길이 싫어서 슬그머니 일어나 운동장으로 나왔읍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무손 구경거리나 생긴 듯이 와글거리며 밖으로 따라나왔읍니다.
---내가 미친 줄 아나?
동수는 마음속으로 화를 냈읍니다. 서울거리에 미친사람이 나타나면 아이들이 줄줄 따라다니던 모양이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직 사귀지 못해 서 서먹한 아이들에게 버럭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문득 동수는 아이들 틈에서 여전히 칡뿌리를 질겅질겅 씹고 있는 태환이를 발견하고 놀랐읍니다. 그는 신을 신지 않은 맨발이었기 때문입니다.
---왜 신을 신지 않았을까? 신이 없어서 그럴까?
이상하게 생각하며 동수는 아이들의 발을 쭉 훑어보았읍니다.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은 아이가 두세 명 있을 뿐 대부분의 아이들은 고무신을 신고 있는데 짚신을 신은 아이도 몇 있고 태환이처럽 맨발인 아이들도 있읍니다.
동수는 문득 자기의 하얀 새 운동화를 내려다보았읍니다. 시골로 이사올 때 아버지아 사주신 운동화------ 그런데 아이들은 그 하얀 운동화를 매우 신기하게 여기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자기의 모든 것을 신기하기만 여기고 같이 놀아줄 생각을 않는 아이들,..... 그러한 아이들을 볼 때 동수는 서울의 친구들이 그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울의 친구들은 지금쯤 신나게 야구를 하며 놀겠지------
생각하는데 다시 시작종이 울렸읍니다. 동수가 보니까 맨발의 아이들은 걸레에 발을 벅벅 문지르고 들어갑니다. 그것을 본 동수는 어쩐지 울고 싶은 마음이 뭉클하였읍니다.
그런데 공부 도중에 태환이는 이상할이만큼 동수를 곁눈으로 살피더니 무슨 결심이나 한 듯 선생님께로 나갔읍니다.
“선생님! 배가 아파요.” /
그는 배를 움켜쥐고 울상이 되었읍니다. 동수는 그가 칡뿌리를 먹었기 때문에
배가 아픈 것이라고 짐작했읍니다.
“배? 많이 아프냐?”
“네!”
선생님의 물음에 태환이는 머리를 숙이며 꺼져가는 대답을 했읍니다.
“너는 세수도 안하고, 코를 질질 흘리며 늘 더럽게 하고 있으니까 배도 아프고 공부도 못하는 거야. 몸을 좀 깨끗이 해요, 깨끗이------”
“많이 아프면 집에 가요.”
선생님의 허락이 내리자 태환이는 살았다는 듯이 활기가 떠올랐읍니다. 그리고 코를 훌쩍 마시며 제자리로 왔읍니다.
---참 이상한 아이야.
동수는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읍니다.
태환이가 낡은 책보에 책을 챙기는 것을 동수는 옆에 앉아서 가만히 넘겨다보았읍니다. 표지가 찢어져 없어진 책, 너덜너덜한 공책, 그리고 쥐가 물어뜯은 것 같은 몽당연필------.
어쩌면 자기의 학용품들을 저렇게 마구 가지고 다닐까?
동수는 태환이의 성질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곧 태환이는 어머니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깨달았읍니다. 자기는 아첨저녁으로 어 머니가 잘 보살펴주시기 때문에 학용품이 모두 깨끗할 뿐만 아니라 한번도 세수를 안해본 적이 없읍니다.
--어머니가 없는 아이------
--생각하니 태환이가 몹시 측은하게 생각됩니다.
태환이는 책을 다 챙기자 동수를 한번 힐끔 보고는 그대로 선생님께 인사도 없이 급하게 나가버렸읍니다. 마치 누구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참, 이상한 아이야. |
다시 생각하며 동수는 태환이가 사라진 복도를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끝나자, 승강구에서는 야단이 벌어졌읍니다. 신발장에 둔 동수의 하얀 운동화가 감쪽같이 었어진 것입니다.
동수는 울상이 되어 여기저기 찾아보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자기의 하얀 운동
화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동수의 사정을 눈치챈 아이들은 아무말도 없이 동수의 운동화를 같이 찾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나 없어진 운동화가 나올 리 없읍니다.
“어디다 두었었니?”
급장인 영규가 비로소 동수에게 말을 건냈읍니다. 동수는 영규의 그 말이 무척 고마왔읍니다. 곁에도 오지 않던 아이들이건만 자기의 사정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같이 운동화를 찾아주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읍니다.
그러나 운동화를 잃어버린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사그러지지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여기에 두었었는데 없어졌어.”
하고 대답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려 나왔읍니다.
“찔찔이가 홈쳐간 모양이다.”
그때 누군가가 큰 발견이라도 한 듯이 외쳤읍니다.
“그래, 그런지도 몰라.”
“찔찔이자식, 배가 아프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운동화를 훔쳐깆고 갔어!”
아이들은 동수의 운동화를 찔찔이가 홈쳐갔다는 것으로 의견이 일치되었읍니다.
--찔찔이?
동수는 찔찔이가 누군지 몰라서 어리둥절하였읍니다.
“코 잘 흘리는 태환이 말이야.”
영규가 동수에게 귀띔을 해주었읍니다. 찔찔이라는 것은 태환이의 별명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찔찔이네 집에 가보자.”
누군가가 외쳤읍니다. 그 말이 무슨 신호이기나 한 것처럼 몇몇 아이들은 노루처럼 뛰어가기 시작했읍니다.
동수도 어느 결엔가 맨발로 그들을 따라갔읍니다. 발바닥이 좀 아팠지만 운동화를 찾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참으며 아이들의 뒤를 따라갔읍니다.
찔찔이네 집은 학교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산밑에 있었읍니다. 이미 학교에서는 다음 공부가 시작되었건만 아이들은 상관치 않고 그냥 찔찔이네 집으로 단숨에 뛰어갔읍니다.
찔찔이네 집은 동수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아주 보잘것없는 오막살이였읍니다.
아이들이 헐떡이며 찔찔이네 집 방문을 왈칵 열었을 때 찔찔이는 시꺼먼 발에 동수의 하얀 운동화를 신고 방안을 왔다갔다 거닐고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문을 열자 훔칫 놀라며 운동화를 벗어서 얼른 등뒤로 감추었읍니다.
“임마! 왜 얘 운동화를 훔쳐왔어?”
영규가 먼저 버럭 소리를 질렀읍니다. 그러나 찔찔이는 운동화를 등뒤에 감춘 채 아무 대꾸도 않고 두꺼비처럼 눈만 멀뚱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너, 남의 운동화를 훔쳐가지면 도둑놈이잖아!”
“이 도둑놈아, 빨리 동수의 운동화를 내놔!”
아이들은 저마다 눈을 부릅뜨고 한마디씩 을러댑니다.
“너, 배 아프다는 것은 거짓말이지? 빨리 운동화를 내놓고 선생님한데로 가자.”
영규가 또 눈을 부릅떴읍니다.
“이 거지 같은 자식아! 너의 아버지 어디 갔니? 이제 너의 아버지도 얘네 아버지가 잡아간다.”
누군가가 또 을러댔읍니다. 그 말에 찔찔이는 갑자기 눈에 눈물이 맺히더니 무슨 결심이나 하는 듯이 운동화를 밖으로 획 내던졌읍니다. 그것을 본 아이들은 이번에는 찔찔이를 끌어내려고 그냥 방문에 버티고 서서 욕지거리입니다.
그러나 동수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뜨거워지기 시작했읍니다. 태환이가 불쌍하게만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 운동화를 태환이에게 주자.
마침내 동수는 이렇게 결심하였읍니다. 집에 가서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면 아버지나 어머니는 꾸짖지 않을 것 같았읍니다. 그래서 그는 방문에 잔뜩 버티
고 선 아이들을 헤치고 운동화를 찔찔이 앞에 내밀었읍니다.
“태환아, 이것 너 가져!”
동수의 뜻하지 않은 말에 아이들은 모두 깜짝 놀랐읍니다. 더구나 찔찔이는 눈이 휘둥그래졌읍니다.
“나는 집에 신발이 또 있어, 그러니까 이 운동화는 너 가져!”
동수의 말이 끝나자 찔찔이는 미친사람처럼 운동화를 덥썩 집어다가 가슴에 꼭 안는 것이 아니겠읍니까? 그것을 본 동수는 매우 기뻤읍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아이들과 퍽 가까와지게 된 일입니다. 그래서 동
수는 아직도 어리둥절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찔찔이와 자기를 번갈아보는 아이들에게 싱긋 웃음을 던졌읍니다.
푸른 메아리
그날 저녁에 동수는 학교에서의 일을 어머니께 낱낱이 말하고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박박 깎아달라고 했읍니다.
“아니, 이렇게 소담스러운 머리를 왜 깎아?”
이발소 아저씨는 사뭇 아깝다는 듯이 동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깝더라도 오늘 사권 아이들과 앞으로 더욱 가깝게 지내려면 그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눈 딱 감고 머리를 깎아버리는 수밖에 없었읍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귀밑에서 시원스럽게 나는 바리캉 소리는 어디서 그렇게 간지러움을 몰아오는지 목을 움추리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동수는 목을 움추린 채 눈을 감고 간지러움을 꼬옥 참았읍니다.
“다 깎았다.”
이발소 아저씨의 말에 동수는 눈을 뜨고 의자에서 내려와 거울을 들여다보았
읍니다.
“?------------”
동수는 아주 형편없이 달라진 자기의 얼굴 모습에 깜짝 놀라면서도 싱긋이 웃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더구나 맑은 공기가 머릿속으로 확확 스며드는 것 같이 시원스러워서 마음이 유쾌해지기까지 합니다.
동수는 자기의 중머리를 한번 씀 만져보고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가벼운 걸음으로 집에 왔읍니다.
집에 온 동수는 또 한번 크게 놀랐읍니다. 뜻밖에도 담임선생님이 농부인 듯한 낯선 손님과 함께 오셔서 어머니와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어머니의 앞에는 자기가 태환이에게 준 하얀 운동화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까.
“허어! 동수의 모습이 달라졌구나.”
“호호호·-----”
선생님과 어머니는 동수의 달라진 모습이 우스운 모양입니다.
그러나 낯선 손님만은 풀이 죽은 듯 맥없이 동수를 한번 힐끗 보더니 곧 얼굴을 숙입니다.
“어머니! 이 운동화 어떻게 된 거예요?”
선생님께 인사를 끝낸 동수는 어머니 옆에 앉으며 물었읍니다.
“글쎄 네가 주었다는 운동화를 도로 가져왔구나.”
“왜요?”
“이분은 태환이 아버지신데 밭에서 돌아오니까 태환이가 저 운동화를 신고 있어서 훔쳐온 줄 알고 뺏어가지고 학교로 오셨기에 모시고 왔다.”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을 했읍니다.
“그것은 제가 태환이에게 준 걸요.”
“그럼요, 한번 준 것이니 염려말고 갖다 아드님께 주세요.”
동수의 말을 받아 어머니도 부드럽게 말하며 하얀 운동화를 태환이 아버지 앞으로 밀어놓았읍니다.
“고맙습니다.”
머뭇거리다가 한참만에 떨리는 말로 감사하는 태환이 아버지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혔읍니다.
선생님과 태환이 아버지가 돌아간 후에 동수는 서울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읍니다. 혜어진 지 얼마 되지는 않지만 벌써 몇 년이 흘러간 것처럼 아득한 그리움에 꽉 찬 친구들입니다.
동수는 오른편 맨 앞자리에 앉았던 희경이부터 차례차례로 자리를 더듬어가며 그 얼굴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읍니다. 자기와 크게 다툰 일이 있는 창준이도 이제는 잊을 수 없는 그리운 벗입니다.
동수는 이들 친구들에게 머리를 깎은 일과 태환이 소개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태환이가 처음에는 너무 지저분한 것 같아서 싫었지만 그를 자세히 알
고 난 후에는 측은하게 생각되어 마음으로 가까와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세히 썼읍니다.
편지를 다 쓰고 나서 기지개를 켜는데 이상하게도 태환이 아버지가 또 찾아왔읍니다. 이번에는 커다란 암닭을 한 마리 가지고 찾아온 것입니다.
“학생의 마음씨가 하도 고마와서 변변치 않은 것을 감사의 뜻으로 가지고 왔
읍니다.”
“아니, 이러심 안돼요.”
어머니는 난처한 듯이 사양했지만 태환이 아버지는 억지로 닭을 놓고 갔읍니다.
태환이네 살림을 미루어보면 결코 닭을 칠 만한 형편이 못될 것 같은데 이렇게 닭을 가져온 것을 보면 필경 사온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을 받아도 될까?
동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읍니다. 그까짓 닭값보다도 싼 운동화를 주고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비싼 닭을 받았으니 마음이 괴롭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밤늦게 지서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는 자세한 얘기를 듣고도 닭을 받았다고 어머니께 막 야단이십니다.
“글세 안 받겠다고 해도 억지로 놓고 간 걸 어떡해요.”
“내일 도로 갖다줘요.”
“글쎄,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그러나 그렇게 하면 도리어 그분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정말 마음이 괴로워요.”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하겠단 말이오?”
아버지의 언성은 점점 높아집니다. 참으로 그놈의 닭이 문제거리가 되었읍니다.
“아버지! 좋은 수가 있어요.”
동수는 머릿속에는 얼핏 좋은 생각이 떠올랐읍니다.
“그 닮을 제게 주세요.”
“뭐라고?”
“아니, 네가 닭을 어쩌겠다는 거냐?”
아버지와 어머니는 똑같이 놀라십니다.
“제게 주시면 학교 친구들과 같이 길러서 알을 받아가지고 태환이를 도와주고 싶어요.”
“그것 참 좋은 생각이다. 어디 친구들과도 의논해봐라.”
아버지는 당장에 승낙을 하십니다.
“원 애두…”
어머니도 빙그레 웃으십니다.
다음날 동수는 단단히 마음을 먹고 학교를 갔읍니다. 그는 교문에 척 들어서면서 운동장 한쪽에 아이들이 삥 둘러서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무슨 일일까?
생각하며 동수는 곧장 아이들이 둘러선 곳으로 갔읍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어깨 너머로 넘겨다보았읍니다.
--어?
동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읍니다. 아이들이 삥 둘러선 한가운데는 어제 자기가 준 하얀 운동화를 신은 태환이가 싱글거리며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야, 찔찔아! 너 그 운동화 훔쳐 신었지!”
“아니야, 동수가 줬대.”
“병신 같은 자식이 운동화를 신으니까 꼭 돼지발톱에 봉선화 물을 들인 것 같구나.”
아이들은 저마다 태환이에 대한 말과 욕을 하며 저희들끼리 비웃고 있읍니다.
그런데도 태환이는 너무 좋아서 업이 벌어진 채 어쩔 줄을 모릅니다. 누가 뭐
거나 생전 처음으로 신어보는 운동화를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운동화와 아이들을 번갈아보며 자량하던 태환이는 문득 아이들 뒤에 서 있는 동수를 발견하였읍니다. 머리를 깎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동수가 확실하자 그의 얼굴은 벌겋게 물들었읍니다.
동수는 그러한 태환이를 보자 아이들의 울타리를 헤치고 앞으로 나섰읍니다.
오늘은 제법 세수까지 한 태환이의 얼굴은 멀쑥합니다.
“기쁘니?”
동수는 환하게 웃으며 태환이의 손을 덥썩 잡았읍니다. 그것을 본 비웃던 아들은 모두 잠잠해졌읍니다.
“나, 너희들과 의논하고 싶은 게 있다. 모두들 교실로 들어가자.”
동수는 아이들을 둘러보고 침을 꿀쩍 삼키며 서슴지 않고 말을 건냈읍니다.
동수의 말에 아이들은 머리를 깎은 그를 이상한 듯 힐끔힐끔 보면서 아무 말 없이 교실로 들어갔읍니다. 퍽 순진한 아이들입니다.
“태환이도 우리들의 친군데 업수이 여길 것이 아니라 힘을 합해 도와주기로 하자.”
동수는 이렇게 말을 꺼내고 운동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태환이 아버지가 닭을 가져온 이야기를 했읍니다. 그리고 그 닭을 반에서 같이 길러서 알을 받아 태환이를 도와주는 것이 어떠냐고 자기의 의견을 털어놓았읍니다.
이러한 동수의 말에 반대하는 아이는 하나도 없읍니다. 그리하여 자세한 의논을 한 끝에 다시 선생님께 여쭙고 집에서 나무와 수수깡을 갖다가 학교 뒤뜰 화단 옆에 닭장을 만들기로 하였읍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닭 두 마리를 더 사주시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이들은 환성을 올리며 태환이를 돕는 모임을 만들고 그 이름을 〈푸른 메아리〉 라고 하기로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
푸른 메아리의 회원들은 하루에 두 사람씩 차례로 닭모이를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당번이 된 아이들이 가져온 옥수수, 수수, 보리, 밀 따위의 모이와 잡아다주는 메뚜기를 먹고 닭들은 토실토실 살이 찌고 알도 잘 낳게 되었읍니다.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저녁부터 불기 시작한 심상치 않은 바람은 밤이 깊어감에 따라 어디선지 시꺼먼 먹구름을 몰아다가 반짝이는 별들의 눈을 온통 가리고 하늘과 땅 사이에 어두움을 팽팽히 펴놓았읍니다.
그 어두움 속에서 천둥이 천지를 뒤흔들 듯이 요란스럽게 울리고 번개가 하늘을 갈라놓을 듯이 번쩍이다가 이윽고 세찬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붑니다.
동수는 총알처럼 유리창을 때리는 빗발을 안타깝게 내다보며 아까부터 근심에 잠겨 있읍니다. 심한 비바람에 학교 닭장의 얄팍한 이엉이 그대로 붙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엉이 그냥 붙어 있다고 하더라도 비가 줄줄 샐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비가 새는 닭장 속에서 닭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아마 비를 쪼르르 맞으며 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동수는 그것이 걱정이어서 쏟아지는 비를 원망스럽게 내다보고 있읍니다. 밤이 깊지 않았다면 당장 학교로 달려가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아무리 짐승이라고 하더라도 온통 비를 맞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얘, 이젠 그만 자거라.”
어머니는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듯이 아까부터 자라고 채근입니다. 하지만 동수는 그 말을 귓둥으로도 듣지 않고 캄캄한 밖만 내다보고 있읍니다. 만약 닭들이 비를 맞고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는 까닭입니다.
“아니, 그렇게 걱정을 한다고 오는 비가 그친다더냐? 그보다는 빨리 자고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가보려므나.”
마침내 어머니는 짜증을 냈읍니다. 그리하여 동수는 할 수없이 자리에 누웠읍
내다. 그러나 잠이 올 리 없읍니다.
동수는 거의 뜬눈으로 밥을 새우다시피 하다가 동이 트자 이불을 박차고 일어
+서 비옷을 입고 급하게 밖으로 뛰쳐나왔읍니다. 어느덧 바랍은 갔지만 가늘어진 빗발은 계속 내리고 있읍니다.
동수는 아직 컴컴하고 비내리는 새벽길울 쏜살같이 학교로 향했읍니다. 학교
앞의 도랑에는 누런 흙탕물이 콸콸 넘쳐 소용돌이치고 있읍니다.
그 무서운 물길을 조심스럽게 건너 단숨에 학교에 이르른 동수는 곧장 닭장으로 뛰어갔읍니다. 다행히 이엉은 날아가지는 않았으나 생각했던 대로 비는 줄줄 새고 있읍니다.
---빨리 손질을 해줘야지.
생각하며 닭장 안으로 들어선 동수는,
---어?
하고, 소스라지게 놀라며 저도모르게 우뚝 걸음을 멈추었읍니다. 닭장 으슥한 지붕 아래 시커먼 무엇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둑놈인가?
얼핏 이렇게 생각되었으나 가만히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둑놈이 아니라는 것은 곧 알 수 있었읍니다.
동수는 조심스럽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서 시꺼먼 뭉텅이를 자세히 살펴보았읍니다.
“앗!”
동수는 하마터면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읍니다. 웅크리고 있는 시꺼먼 뭉텅이는 비를 쪼르르 맞은 태환이가 아닙니까.
동수는 격한 소리로 불렀읍니다. 그때까지도 태환이는 모르고 있었던지 깜짝 놀라며 벌떡 일어섰읍니다. 그런데 그의 품에는 닭 세 마리가 꼭 안기어 있읍니다.
“태환아! 너 비 맞으면서 거기서 무얼하고 있었니?”
“닭을 지키고 있었어!”
“닭을 지키다니?”
“비 맞을까봐 그랬어.”
“뭐라고? 그럼 언제부터 여기 있었니?”
“어젯밤에 왔어. 그런데 암만 품에 안아줘도 닭들은 이렇게 젖었잖아.”
말을 더듬거리며 동수에게로 품고 있던 닭들을 쑥 내미는 태환이는 덜덜럴덜떨고 있읍니다. 그제야 닭들도 구구구 소리를 냅니다.
그러한 태환이를 보는 동수는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가슴에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읍니다. 자기는 밤새도록 걱정만 한 것뿐이지만 태환이는 이렇게 비를 맞으면서까지 닭을 지키고 있었으니 갸륵한 일이 아닐 순 없읍니다.
“너, 그렇게 비를 맞았으니 감기들면 어먹하니?”
“난 괜찮아.”
태환이는 오돌오돌 떨면서도 오히려 씩 웃기까지 합니다.
“너 그러다간 안되겠다. 빨리 우리집으로 가자.”
동수는 태환이를 데려다가 옷을 갈아입혀야 되겠다고 생각했읍니다.
“너의 집에? 이 닭들은 어떡하고------”
“그것들도 가지고 가면 되잖아.”
이리하여 동수는 비에 홀랑 젖은 태환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읍니다.
“아니 얘가?----”
동수 어머니는 물에 빠진 새앙쥐 같은 태환이를 보고 딱 벌린 입을 다물 줄을 모릅니다. 그러다가 동수에게서 말을 듣고 얼른 동수의 옷을 한벌 꺼내다가 입혔읍니다.
그러나 태환이는 종내 감기에 걸리고야 말았읍니다.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열이 올라 학교에도 나오지 못하게 되었읍니다. 그러한 태환이를 동수는 매일같이 찾아갔읍니다.
“좀 어떠니?”
“……”
“뭐 좀 먹었니?”
이마를 짚어주며 내일은 약을 꼭 사가지고 와야 되겠다고 생각했읍니다.
동수가 사다준 약을 먹은 후에도 태환이는 닷새 동안이나 더 앓아누워 있었읍니다.
태환이가 일어난다는 날, 그날은 마침 서울 친구에게서 먼저 보낸 편지 회답이 온 날이어서 동수는 기쁨을 어쩔 줄 모르다가 학교 공부가 끝나자 집에 들러 어머니께 여쭙고는 곧 태환이를 찾아갔읍니다.
“나, 밖에 좀 나가보고 싶다.”
여느 때는 상을 찌푸리고 말도 잘 않던 태환이가 동수를 보자 대뜸 밖에 나가보고 싶다고 청들었읍니다. 아마 오래 누워 있어서 몹시 답답했던 모양입니다.
“괜찮겠니?”
걱정이 되면서도 동수는 태환이가 일어나게 된 것이 무척 기뻤읍니다. 그래서 곧 태환이를 부축하여 밖으로 나왔읍니다.
이미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기 시작한 들에는 향긋한 꽃냄새가 화사한 봄바람을 타고 와서 향기를 뿌리고 있읍니다.
“우리 여기에 앉아서 좀 쉬자.”
동수는 비단결 같이 고운 풀밭에 휘청리는 태환이를 앉혔읍니다. 산들바람은 이번에는 자장가로 노란 민들레를 어루만져주고 있읍니다.
“닭들은 어떻게 됐니?”
태환이는 제일 궁금한 일을 물었읍니다. 그것은 자리에 누워 앓을 때에도 얼마나 묻고 싶었던 말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몸이 아파 말하기조차 역겨웠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 그 닭들?”
동수는 잠깐 대답을 끊었읍니다. 순식간에 그의 마음속에는 먹구름이 쫙 깔리어 몹시 서글퍼졌읍니다.
“닭들도 모두 병나서 죽었어!”
동수의 말은 매우 무거웠읍니다. 아닌게 아니라 동수는 푸른 메아리의 모임에서 기르던 닭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지는 것이었읍니다. 잘만 돌보았더라면 그러한 불행은 없었을 것이라는 후회도 늘 마음속에서 되풀이되었읍니다.
그러한 동수의 마음을 알았음인지 태환이는 더이상 묻지 않고 부처님처럼 또 잠잠해졌읍니다.
“그렇지만 기쁜 소식이 왔어! 오늘 말이야, 서울 삼천국민학교의 내 친구들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우리 학교와 형제를 맺자는 거야, 그리고 특히 너를 도와 주고 싶대, 요전에 내가 네 얘기를 편지에 썼거든------”
동수의 이러한 신바람나는 말에도 태환이는 대답을 하지 않았읍니다.
어느덧 노을이 걷힌 채 어둡지 않은 하늘에는 아직 여물지 않은 달이 떠올랐습니다. 그 달은 씻은 듯이 새맑았습니다.
“닭들은 저 달나라로 갔겠지?”
태환이가 멍청히 달을 보고 있다가 불쑥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읍니다.
동수도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은하수에 뜬 달을 지그시 쳐다보았읍니다.
달은 점점 이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읍니다.
자세히 보니 달이 이쪽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흰구륨이 저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었읍니다.
흰구름이 저쪽으로 흘러가면 갈수록 달은 더 빨리 이쪽으로 달려옵니다.
뿐만아니라 날이 어두워짐에 따라 달은 점점 더 밝아집니다. 달이 밝아질수
록 계수나무 밑에서 옥토끼가 방아찧는 것 같은 그림자가 확실히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계수나무와 옥토끼가 아니라 산과 언덕과 골찌기라는 것을 동수는 서울에 있을 때부터 잘 알고 있읍니다. 그리고 인공위성이 우주를 날으고
머지않아 사람이 달나라에 여행가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읍니다.
그러고 보면 하늘과 땅 사이는 먼 것 같으면서도 결코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동수는 사람의 마음도 하늘과 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읍니다.
처음 태환이를 보았을 때는 싫고 멀었던 마음이 이제는 가깝고 좋아지게 되었고 아이들도 태환이률 찔찔이라고 업수이 여기지 않고 도와주게 되었으며 더구나 멀리 있는 서울 친구들과도 마음을 통하게 되었으니 먼 것 갈으면서도 가까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동수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말 저 달에 사람이 갈수 있니?”
아마 태환이도 동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사람이 가게 된대------”
“달나라에 여행가면 죽은 닭을 만날 수 있겠네.”
“……”
이번에는 동수가 대답을 못했읍니다. 아마 태환이는 푸른 하늘에 은하수, 그리고 계수나무와 옥토끼의 꿈을 그냥 지니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달나라에 가면 죽은 닭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동수는 그러한 태환이의 생각이 무척 아름답다고 느꼈읍니다. 그래서 차라리 달나라의 여행을 하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옛부터 지니고 있는 달에 대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이 그대로 간직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읍니다.
달을 생각하는 옛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부드러웠읍니까. 그런데 지금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거칠어만 갑니다.
그것은 달에 데한 아름답고 아늑한 꿈이 깨졌기 때문이라고 동수는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늘과 땅아 갑자기 캄캄해졌읍니다. 어디서 흘러왔는지 먹구름이 달을 가리었기 때문입니다.
“먹구름은 나쁜 구름이야!”
태환이가 불안스럽게 투덜거립니다. 사실 먹구름이 비바람을 몰아오지 않았던들 태환이는 앓지도 않았을 것이며 닭들도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동수와 태환이는 똑같이 먹구름이 원수같이 생각되었읍니다. 그러나 달을 가린 먹구름은 곧 걷히고 환한 달빛이 다시 휘황하게 내려비칩나다.
이윽고 흰구름이 흘러가면서 달을 이쪽으로 몰아보냅니다.
“태환아! 그만 들어가자.”
달이 이쪽으로 둥둥 흘러오는 것을 보며 동수는 태환이의 손을 꼭 잡았읍니다.
--l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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