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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stpoort Delft (델프트 東門)
낯선 곳이지만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만나고, 받아들이면 인간세상의 여러가지 풍경과 삶의 다양한 무늬를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마도 여행의 매력인 듯 싶다. 枯葉이 구르는 계절에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까지 무려 5,439 마일(8,702 km)을 10시간 넘게 날아가 낯선 곳에서 내가 만난 회색빛깔의 중세도시 델프트(Delft) 는 유럽 名品 델프트 블루(Delft Blue: 흰색 질그릇에 정교한 푸른색 그림을 칠한 청화백자에 해당하는 'porcelain')의 본 고장으로 16C에 번성한 도시였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중세풍의 도시 면모를 잘 보전하여 갖춘 작은 운하의 회색 물이 머무르듯 흐르는 도시였다.
내가 도착한 10월 3일은 델프트 저녁 거리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말다 또 내리다하고 있었기에 앙증맞도록 정렬되어 포도에 촘촘히 박힌 작은 벽돌들에 빗물이 스며들어 축축히 젖어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트램(Tram:路面電車))이 짤랑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이방인의 마음을 웬지 어릴적처럼 정겹게하면서 어슴프레 가로등 불빛이 적막한 어두운 거리의 하늘을 뿌옇게 밝히고 있었다. " 아! 이토록 먼 곳에 내가 와 있다니..."하고 가을 바람 속에서 잰 걸음으로 호텔을 향했다.
1070년 근대적 도시로 발전하면서 네덜란드 王家의 슬픈 이야기와 17C 네덜란드의 영화가 동시에 어려있다는 역사적 공간 델프트. 아울러 아시아의 인도, 중국으로 진출하는 16C 무역의 교두보였던 번성하는 네덜란드 국가의 동인도회사屋과 동인도館이 세워져 있었던 곳도 다름아닌 이 델프트였다. 델프트의 유서 깊은 모습으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城門인 Oostpoort는 1400년 경에 지어진 '東門 (Oostpoort: East Gate)'인데 델프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쪽 關門이다. 동문 앞으로는 스히 江물이 회색빛으로 유유히 흐르고 그 물위를 흰 백조들이 평화롭게 노닐고 있는 더할 나위 없이 홀란드적인 풍광이었다.
네덜란드 건국의 아버지는 윌리엄 오렌지(William of Orange) 公이다. 오렌지公의 독립저항 운동이 있었던 역사적인 장소로서 스페인 국왕 (King Phillip II)이 보낸 자객 밀사에 의해 1584년 프린스 호프(Prinsenhof)에서 살해당한 오렌지 公의 시신이 보관된 신 교회(Nieuwe Kert : New Church)가 1381년 후기 고딕양식으로 지어졌고 네덜란드 오라니에 王家의 공동무덤이 교회당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의 베아트릭스 女王도 타계하면 이곳에 묻히게 된다. 그래서인지 네덜란드의 상징색이 오렌지 칼라이며 이 색을 국민들이 대단히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 광장에서는 매 시간마다 타종하는 종소리가 들리는데 매우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루(높이: 108,75cm)에 오르면 델프트의 전 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가 있었다. 광장에 위치한 교회 건물들은 북두칠성처럼 델프트 市의 방향을 잡는데 길눈이 어두운 나에게 도움을 준다. 또한 마르크스 장터에는 17C초, 건립한 르네상스 양식의 시청( City Hall)건물이 웅장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시민들의 결혼식을 위해 대여를 해주기도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국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형상의 오렌지색 지붕들과 세월의 때가 켜켜히 덮힌 낡은 벽돌의 건물들은 내가 여행중에 항상 지니는 35mm 카메라의 렌즈 속에서 강한 콘트라스트를 보여주면서 멋진 피사체가 되어지기에 나의 기억을 담아내기에 분주해져 여념이 없었다. 주황색 계열의 미묘한 나열의 오래된 지붕들이 카메라 파인더 안을 들여다보는 내 마음을 가볍게 흔든다. 우리나라 영화에서도 전도연이란 여배우가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혜영'으로 分한 <데이지(daisy)>란 제목의 영화를 中華圈 <무간도>의 영화 유위강 감독이 만든 것이다. 운하의 신비, 풍차의 바람, 튤립의 향기가 어우러진 네델란드의 서정적 교외 풍광과 가장 유럽적인 고색창연한 회색 도시 암스테르담의 항구 거리 풍경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100% 자연광 촬영이라는 과감한 모험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델프트의 모든 버터를 총괄 관리했던 버터하우스(Butter House: Boter Huis) 건물은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名品 브랜드 가구와 조명 디자인을 취급하는 디자인 숍으로 바뀌어져서 세계적인 名品들을 만날 수가 있는 장소이다. 델프트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구 교회( Oude Kert : Old Church)는 1240년경에 세워진 매우 화려한 내부장식을 지니고 있는데 중심으로부터 2 m 기울어진 탑의 경사를 하고 있어 보는 이에게 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다. 델프트가 대단히 자랑하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화가인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가 바로 이 교회당 지하실에 편안하게 눈을 감고 영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의 델프트가 독립운동의 도시에서, 무역의 도시에서, 지식(교육)중심의 도시로 발전하는데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은 1842년 네덜란드 국왕 윌리엄 2세에 의하여 세워진 왕립토목학교 때문이었다. 水理와 土木에 관한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론적 체계의 학문을 탄탄하게 형성하고 노벨상의 과학자를 18명 배출한 학교가 바로 오늘의 토목, 물류, 정보통신 분야의 유럽 명문 대학 TU Delft (델프트 공과대학교: Delft University of Technology)의 전신이다. 델프트의 인구는 2001년 기준으로 96,441명이었는데 등록된 자전거는 120,000대에 달한다고 한다. 1/3 이나 TU Delft와 관련한 사람으로 대학생 숫자가 대략 13,000명으로 학사과정은 없으며 석사과정, 석사후과정, 박사과정이 있다. 석사후 과정부터는 연구지원비에 해당하는 월급을 받는다. 그리고 박사과정의 경우는 꽤 넉넉한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한국 유학생은 거의 드문 편이고 일본과 중국계 유학생은 꽤 있는 편이라고 했다.
델프트 공과대학교는 Sebastiaansbrug (Sebastian Bridge)를 경계로 아주 방대한 캠퍼스를 구축하고 있는데 학교 교문으로 경계가 구분되어 있는 우리의 대학과는 달리 캠퍼스內에도 일반 民家가 산재해 있다. 델프트 공대 입구에 자리잡은 종합도서관의 유니크하면서도 단순한 건물은 네덜란드 세계적 건축그룹인 'MECANOO'에 의하여 디자인되었고 오늘의 TU Delft를 상징하는 건물이 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개방향 실내 구조와 중앙의 나선형 계단은 빽빽한 서가로 채워진 우리의 열람실을 떠올린 나에게는 색다른 과감함을 느끼게 한다. 圖書館長 직책을 맡고 있는 터라 더욱 관심을 갖고 찬찬히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초안산 교정의 우리대학 도서관의 초라함을 떠올렸다. 도서관 건물 맞은 편에 자리잡은 콘크리트 구조의 'Aula 館'은 일종의 학생회관으로 컨퍼런스 홀(Conference Hall)이 자리잡고 있으며 교내에서 가장 큰 식당이 아랫층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또 다른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명물은 다름아닌 다양하게 선명한 칼라를 도장한 컨테이너 형상의 기숙사였다. 유학 온 석사과정생들에게 우선적으로 방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
산업디자인이 내 전공분야인지라 조금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산업디자인 공학 (Inderstrial Design Engineering)館을 찾아 방문한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구조의 횡으로 기다랗게 펼쳐진 티타늄 색과 유리 외벽으로 설계되어진 현대적 디자인 건물인데 확 트이게 넓은 중앙홀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강의가 없어 쉬는 시간동안 자유로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1층, 2층 중앙홀 철골 공간구조에 PC를 장착할 수 있는 훌륭한 디자인 가구와 조명설비를 갖추어 주었으며 다양한 30 여개의 실습실 공간과 더불어 교수연구실, 공작실. 컴퓨터 시설을 두루 보유하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이라니 Twin Building 전면 입구 가운데 커다란 무덤같이 생긴 '동산'이 하는 기능이었다. 이것은 다름아닌 자동차의 무단주차를 방지하기 위해서 산업디자인 전공 학생들의 공동작품이 만든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어서인지 수백대의 자전거들이 산업디자인 공학관 앞에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줄지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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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프트工大를 상징하는 종합 도서관 건물
여행에는 또 항상 계획되어지지 않는 우연한 만남이 생겨 또 다른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한국과학기술대학 (KAIST) 토목공학과 김교수를 만나 초면에 우연찮게 델프트 옆 도시 덴 하그(Den Haag)에 위치한 챠이나 호텔(China Hotel), 그의 숙소 방에서 밤 늦도록 네덜란드가 생산하는 세계적 맥주 브랜드의 신선한 하이네켄 (Heineken) 맥주를 거듭 거나하게 취하도록 마시면서 우리의 대학 풍토와 미래의 방향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 것이다. 이곳 델프트 공대에서 올해 부터 김교수와 동일한 전공분야의 박사과정에 유학 중인 신혼의 곱상하게 생긴 아들이 숙소로 찾아와 만나 본 것도 특이한 기억 가운데 하나이었다. 그 아들은 내 아들보다는 두 살 위였다는데, 청색 폴크스바겐의 풍뎅이 모양의 'RETRO' 모델 승용차로 나의 숙소인 웨스트코드 호텔 델프트(WestCord Hotel Delft) 현관문 앞 까지 정중하게 바래다 주었다. 호텔 방 침대에 누우니 불현듯 서울의 내 아들 얼굴이 오랫동안 눈 앞에서 가슴 아프게 어른 거렸다.
텔프트의 가을 바람 속에서 서울의 아들을 생각하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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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돌려도, 어디를 보아도
낯설은 사람, 낯설은 침묵
낯설은 방향
그저 그리운건 먼 땅 끝에 피어 있는
작은 들꽃
그리고 끝으로 하나
너와 내가 해야 할 일은
작별을 하는 일
The Sound of Silence
Emiliana Torrini
사람들은 그들이 만든 네온 神에게 매달렸지.
그리고 그 사인이 나타났어.
"예언자의 말씀은
지하철 벽이나 집의 홀에 적혀있다."
침묵의 소리 속에서 속삭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