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펀 신작시|권상진
중년 외
이제 먹고는 산다고 했다
이 잠이 마지막이기를,
그런 생각을 어둠의 잔에 털어 넣고
삼킨 적이 있다고 했다
무섭게 닥쳐오는 끼니 앞에서
밥이 먹이로 보일 때는
짐승 같은 울음을 울었다고 했다
밥은 잔인하고 밥은 모욕적이며
때로 모진 언사를 지녔다고 했다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 끼니가
전부 나이로 변해버린 것 같아
삶은 여직 빈속이라 했다
밥걱정 겨우 덜고 나니 이제
나이가 세끼 밥때처럼 몰려온다고 했다
손사래를 쳐보지만
못 본 척 슬쩍 끼어 앉는 나이에게
밥이나 한술 뜨고 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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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어제 한 사람의 손을 놓았다
손바닥엔 실금이 자라나 있었고
이따금씩 들리던 균열의 진앙이 거기 있었다
나는 부서진 교각처럼 서 있었다
너는 흘러갔고
감정의 유속은 속내까지 할퀴며
내 안의 모든 너를 쓸어갔지만
끝내 지워지지 않는 것들은 흉터로 남았다
먼 하류로부터 네가 거슬러 오는 밤
그런 밤은 내내 어떤 기억들이 욱신거려
한참을 돌아서서 딴생각을 해야 했다
그럴수록 흉터 위로 자꾸만 선명해지는
코끼리
기억에 다시 상처를 내고
너를 가둔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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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진 2013년 전태일문학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눈물 이후』, 『노을 쪽에서 온 사람』, 합동시집 『시골시인-K』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