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5:24]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그러나 - 이것은 앞의 내용을 역행하는 접속사가 아니라 앞의 내용을 계속해서 잇는 순행 접속사로 사용되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 바울은 앞 절에서 남편이 아내를 위해 희생함을 전제로 보호자가 됨을 시사한 후 본절에서 아내의 의무에 대해 강조한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그리스도인들의 그리스도를 향한 신뢰와 복종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이 복종은 단지 명령에 대한 의무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서 사랑에 의해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한편 '복종할지니라'로 번역된 헬라어 '휘포탓세타이'는 질서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이 여자의 열등함으로 인한 종속적인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 질서에 대한 순응임을 시사한다..
[엡 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하라 -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가 '복종'이라면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는 '사랑'이다. '사랑하라'의 헬라어 '아가파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비이기적이며 무조건적이며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또한 이것은 현재 명령형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든지 언제나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것처럼 남편들도 아내를 무조건적이며 자기 희생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 바울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그 예증으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술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희생하신 목적은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다.
'거룩하게 하시고'의 헬라어 '하기아세'는 '분리시킨다'라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심을 뜻한다.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깨끗하게 함'으로 가능해진다. '깨끗하게 하사'의 헬라어 '카다리사스'는 부정 과거로서 문자적으로는 '씻음을 받았다'는 의미이며
계속적 경험보다는 단회적 경험을나타낸다. 논리적으로 볼 때 '거룩하게 하는 것'보다 '깨끗하게 함'이 우선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과정에 있어서 '깨끗하게 함'과 '거룩하게 함'은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또한 '하기아세'와 '카다리사스'는 모두가 부정과거로서 과거에 이미 성취된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카다리사스'와 '하기아세'의 과정을 이루기 위한 매개체는 '물로 씻음'과 '말씀'이다. 첫째로 '물로 씻음'은 물세례를 시사한다.
둘째로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마티'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레마티'가 '물로 씻음'과 연관되어서 세례의식 때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신앙 고백'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2) 혹자는 '레마티'가 '깨끗하게 하사'와 연결되어서 '복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갖는다.
[엡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셔서 교회를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목적은 교회를 그리스도 자신의 신부로서 맞이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세우다'의 헬라어 '파리스테세'는 신약성경에서 신부를 신랑 앞에 내세우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앞에 세우심을 받는 신부는 '영광스러운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풍성한 기업이며(1:18)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는 곳이다. 한편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신부로 맞이하는 때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 때라고 주장한다. (2) 혹자는 31절에서 현재에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몸을 이루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현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하다. 교회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으며 이러한 관계는 마지막 때에 완전히 성취된다.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계획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이미 예정하신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사람의 노력이나 공적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몸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역사에 의해서 성취되어진다.
[엡 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 바울은 예증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서 되돌아와 본주제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할지니'의 헬라어 '후토스 오페일루신'은 25절에 언급된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시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은 자신의 몸과 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 즉 남편은 자신의 몸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의 성숙과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채워주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 본절은 창 2:24의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남편과 아내는 둘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된다.
[엡 5:29]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 바울은 본절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을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비교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양육하여 보호하기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에크트레페이 카이 달페이'는 문자적으로 '성숙하기까지 따뜻하게 감싼다'라는 의미로서(Wood)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을 정성을 다하여 가꾸며 보호하며 돌보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모습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행하신 모습으로서 남편도 이와 똑같은 원리로 아내를 돌보고 보호하여 성숙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단순히 인간적인 애정의 차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처럼 깊은 영적 차원으로의 성숙을 요구하신다.
[엡 5: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는 이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그리스도께서 지체들의 모임인 교회를 양육하고 인도하시는 것처럼 남편도 자신의 몸인 아내를 잘 인도하여 성숙으로 나아가야 한다 .
[엡 5:31]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
이러므로 - 이것은 인용구를 도입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 아니라 창 2:24에 있는 인용구 그 자체이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 본절은 구약성경 창 2:24의 인용으로서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루신 결혼의 신비를 나타낸다
'합하여'로 번역된 헬라어 '프로스콜레데세타이'는 성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단어로서 문자적으로 '붙게 될 것이다'를 의미한다. 이러한 결합을 통해서 남편과 아내는 분리할 수 없는 '한 몸'을 이룬다.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 '이 비밀'은 앞절에서 인용한 창 2:24을 가리키는 것은 물론,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가리킨다. '비밀'은 본서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구원받게 되는
하나님의 전체적인 목적을 포괄(包括)한다. 비록 본절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참여한다는 언급은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통하여 이루어진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보다 더 심오하며 놀라운 것임을 시사한다.
[엡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그러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렌'은 반의 접속사이나 본절에서는 '이제' 혹은 '여하튼'이란 의미로 이제까지 논해온 내용의 가장 중요한 요점을 서술하고자 함을 나타낸다.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부부의 관계에 있어서 결론적인 권면은 '사랑'과 '경외'이다.
여기서 '경외하라'는 말의 헬라어 '포베타이'는 아내가 남편을 대할 때에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함을 뜻하는 것으로 우러나오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며 의무를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
반면에 남편은 아내가 남편에 대해 경외함으로 복종하고 섬기는 것처럼 그에 상응하게 사랑을 베풀어야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시고 보호하시며 양육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안에서 남편은 아내를 보호하며 서로 협력하여 성숙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