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출신의 배우, 가수.
한국에선 배우로 유명하지만, 중화권에선 가수, 작사가, 작곡가, 영화 연출가, 영화 제작자로도 롱런하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일명 홍콩 사대천왕 중 한 명으로 90년대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외래어 표기법에 의한 발음 표현은 류더화. 표준 중국어로는 Liú Déhuá라고 읽으나 광동어로는 Lau⁴ Dak¹waa⁴(라우딱와)라고 읽는다. 사실 홍콩 배우들은 모국어로 광동어를 쓰는데, 한국에선 중국의 표준어는 북경어 표기법으로 통일해서 표기한다. 일본에서는 홍콩 배우들의 이름을 영어식으로 사용해서 유덕화는 '안디 라우' 라고 해야 말이 통한다.
생애
어릴 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아버지가 농업을 물려받지 않고 아이들과 도시로 이주하기를 택해, 그 대가로 재산을 한푼도 물려받지 못하고 가난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어릴 때 살던 나무로 된 집이 불에 타 유랑생활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1961년 9월 27일 6남매(2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난 유덕화는 홍콩의 방송국인 TVB 연예인 훈련반 10기 출신[8]으로, 홍콩 TVB 드라마에서 잇달아 굵직한 배역을 맡으며 중국어권은 물론 국내 팬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다. 대표작으로 '83 <신조협려>[9]에서 양과, '84 <녹정기>에서 애신각라 현엽을 연기했다. (황제의 시호는 죽고 나서 정해진다.) 녹정기는 원작의 스케일 때문에 일부 개작이 이루어졌지만, 위소보 역을 맡은 양조위와 함께 초절한 싱크로율을 보였다. 아직도 많은 중드 팬들이 이 작품을 녹정기 가운데 최고로 꼽는다. 1981년 드라마 과객(過客)에서 단역 맡던 해인지라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같이 단역으로 출연했던 배우들 중에는 훈련반 10기인 척미진, 양가휘 등이 있었다. 이 드라마 주연배우는 9기생인 황일화와 먀오차오웨이였다. 동년 드라마인 영웅출소년에서도 단역으로 출연하는데 대사가 딱 한마디 정도였다. 주윤발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드라마 천왕군영회(千王群英會,1981년작) 13화 39분 40초 쯤에 주윤발의 부하로 양가휘와 같이 등장한다. 1982년 드라마 소걸아에서 주연이기는 하지만 마지막에 먀오차오웨이의 엄청난 구타로 인해 사망한다. 동년 드라마 엽응(獵鷹)에선 주연이었는데 4화쯤에 웃기는 장면이 나온다. 백문표라는 원로배우가 자기가 교봉(천룡팔부 등장인물 중 한 명)이라고 미친 노인네 역으로 등장하는데 그걸 말리려고 관정걸의 만수천산종횡을 부른다. 이 엽응에서 첨으로 경찰 출신 갱단밀정으로 들어간다.
당시 TVB에선 주연을 맡을 만한 남자 배우들이 모두 떠나는 바람에 신인급 배우들을 상당히 많이 띄워주며 기회를 줬고 그 중에서 특별히 유덕화와 탕진업, 먀오차오웨이, 황일화, 양조위를 오호장(五虎將)이라고 하여 TVB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였다. 이들은 모두 TVB 연예인 훈련반에서 배출한 당대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1982년에 영화 <채운곡>과 <망향(원제목: 投奔怒海 투분노해)>에 출연하면서 여러 영화에도 얼굴을 비췄고, 1985년에 음반 <지지도차각애니(只知道此刻愛你, 광동어 앨범)>를 내면서 가수로서 활동도 시작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이때까진 스타라고 언급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부터 영화 출연 작품 수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 엄청나게 다작을 하며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다만 이런 다작의 배경은 삼합회의 협박 때문으로 찍기 싫은 영화들까지 억지로 찍어야 했던 영화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유덕화의 영화 흥행성적은 본인의 원톱 주연보단 주윤발이나 성룡 등 스타급 배우와 함께 찍은 영화가 압도적으로 히트를 쳤다.
국내에 카지노 무비 붐을 일으킨 1989년작 <지존무상>은 알란 탐과 유덕화의 공동 주연 작품이지만, 극의 전개 과정 상 알란 탐이 유덕화에 비해 본래적인 주인공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알란 탐보다 유덕화의 인지도가 월등히 높고, 유덕화가 연기한 캐릭터가 의리의 상징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유덕화의 영화처럼 기억되고 있다.
물론 지존무상에서의 역할은 원톱이 아니지만, 임팩트로는 주인공보다 더 매력이 있는 캐릭터긴 했다.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순정파 터프가이 캐릭터였으니. 지존무상 초반부 교도소 신에선 유덕화인지 몰라볼 정도로 팅팅 부은 얼굴로 나오지만, 이후 영화가 진행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덕화의 얼굴이 등장한다. 이때 갓 출옥한 유덕화를 마중나온 여인이 관지림으로, 관지림은 영웅본색 2에서 배신자 역할을 맡았던 중견배우 관산의 딸로 유덕화와 영화에서 커플로 나온 적이 많아, 둘은 '스크린 커플'로 불리기도 했다. 여튼 이때부터 유덕화는 한국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다 1990년 오천련과 함께 출연한 두기봉 제작 진목승 감독의 <천약유정>이 히트를 치면서 비로소 흥행 배우로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제목이 없어 보였는지 국내에 들어올 땐 <천장지구>로 개명당했다. 그런데 1993년에 유덕화가 진짜 <천장지구>란 제목의 영화를 찍는 바람에 국내에서는 천장지구 속편(천장지구 2 - 속 천장지구)이라는 부제목을 붙여서 수입해야 했다. 심지어 내용과 제목 자체가 <천장지구>와 전혀 상관이 없는 영화 <1/2 차동상(1/2次同床)(1996년 홍콩 개봉작)>은 <천장지구 3 - 천장지구 완결>라는 제목으로 1999년에 수입되었다. <천장지구>에서 보여준 유덕화의 청재킷과 오토바이는 당시 청년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켜 한동안 유덕화 흉내를 내는 젊은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국내가수 핑클은 '당신은 모르실거야' 뮤직 비디오에서 이 영화 패러디를 하기도 했다. (이효리가 맡은 역.)
천장지구에서 보여준 유덕화 특유의 캐릭터는, 천장지구와 지존무상보다 이전에 출연한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15]>과도 비슷하다. 터프가이 주인공(유덕화)를 정점으로 그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오천련, 장만옥), 어리숙하고 충동적인 친구/후배(오맹달, 장학우), 조직 내부의 갈등, 남자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결말 등 구성이 비슷한데 유덕화의 대중적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극대화시키고 싶었던 제작자 등광영의 입김이 들어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장만옥, 장학우와 함께 출연한 열혈남아의 성공 이후 왕가위 감독의 후속작인 아비정전에도 출연했는데 유덕화, 장국영, 장만옥, 양조위, 유가령 등을 출연시킨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내용이, 열혈남아 스타일의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라서 흥행에 크게 실패했다. 열혈남아에 출연했던 장학우가 이후 왕가위가 연출한 동사서독에 출연하고 아비정전의 장국영, 양조위가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었음에도 데뷔작의 주인공 유덕화는 아비정전 이후로 왕가위 작품 출연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왕가위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대충 기획하고 즉흥적으로 촬영하는 스타일이고 따라서 촬영기간이 늘어진다. 반대로 유덕화는 배역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통해 준비된 상태로 임하는 데다가 음악 활동으로도 바쁜 그의 스케쥴을 왕가위의 늘어지는 촬영기간으로 인해 취소 혹은 미뤄야 하기까지 하니 애시당초 작업 스타일이 상극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다가 왕가위의 두 번째 작품인 아비정전에서 원래는 경찰인 유덕화가 메인 롤을 맏을 예정이었지만 그 즉흥적 스타일로 인해 왕가위 본인이 장국영의 캐릭터에 매료되어 비중이 뒤바뀌끼는 변덕을 부리고 이에 유덕화는 큰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둘이 결별하게 된 것은 춘광사설 때의 일인데 계약서에 싸인까지 해놓고 정작 촬영은 양조위와 해버리자 인내심이 바닥난 유덕화는 "감독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와 굳이 함께할 필요가 없다."라며 사실상의 결별을 선언하였다. 둘의 앙금이 풀리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다.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을 제작한 사람은 등광영이라는 인물로, 대만 출신이지만 젊은 시절엔 주윤발 못지않은 훤칠한 인물에 자신이 인기배우이자 홍콩 영화판의 실력자였다. 등광영은 자신이 키우던 풋내기 감독 왕가위가 (흥행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대로) 만든 아비정전의 실패로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만다. 홍콩 영화계의 거물이자 삼합회와도 연이 닿는다는 (아버지가 대만 삼합회 쪽 인물) 등광영이 왕가위를 손봐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소문이 당시 홍콩 연예계에 돌 정도였다.
왕가위 입장에서는 열혈남아 제작 당시 대중적인 입맛에 맞추도록 요구한 제작자 등광영의 압력 때문에 촬영 내내 고생했다고도 하다. 열혈남아가 대중적으로 성공하자 제작자인 등광영은 홍콩 영화계의 톱스타들을 모아서 왕가위의 신작에 왕창 몰방한다. 열혈남아의 성공 이후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머리가 굵어진 왕가위는 대중적인 영화를 원하는 제작자 등광영의 기대와 달리 자신의 스타일대로 영화를 만들고 그 결과물이 해당영화를 상영 중인 극장에 관객의 난동이 일어났더라는 저주받은 걸작 아비정전. 아비정전 시사회장에서 제작자 등광영이 영화가 아직 완성이 덜 되었다고 기자들에게 언질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등광영은 2011년에 사망했는데, 장례식에 유명 홍콩 배우들은 거의 참석했다고.
열혈남아, 지존무상, 천장지구의 연이은 히트 이후 영화와 음반에서 모두 큰 성공을 거두면서 1990년대 홍콩 연예계에서 절대지존으로 군림, 이른바 홍콩 4대 천왕(유덕화, 장학우, 곽부성, 여명)으로 이름을 떨쳤다. 1990년에는 장국영에 이어 투유 초콜릿의 모델이 되어, 신인 시절의 이영애와 CF에 출연하기도 했다. 광고 촬영 대기 시간 중에, 유덕화는 촬영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며 촬영장의 분위기를 살렸다고 한다. 초콜릿 광고의 주제곡인 영어로 부른 노래 'To you'가 들어간 앨범이 1990년에 한국에서 특별 출시되기도 했다. 유튜브에 유덕화가 첨 내한해서 아한아치심을 부른 영상 중에 프로필에서 영화데뷔작이 보트피플(망향)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건 잘못된 정보다. 영화데뷔작은 채운곡이 맞다.
1991년에 발표한 그의 광동어 노래인 일기주과적일자(一起走過的日子)는 20세기 홍콩의 대중가요 50곡 안에 선정될 정도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 노래가 수록된 동명의 앨범 일기주과적일자(一起走過的日子)는 역시 1991년에 발매된 광동어 앨범 애불완(愛不完)과 더불어 그를 대표하는 앨범으로 손꼽힌다.
1991년 8월 16일에는 잠실체조경기장에서 그의 콘서트가 있었다. 서울에서 열린 그의 단독 콘서트 중에서 최초의 콘서트였다. 투유 초콜릿 주제가인 'To you'를 부르는 장면에서 초대가수로 김민종이 나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1991년 8월 24일에는 KBS 2TV 토요대행진에서 공연의 실황 일부를 방송해 주기도 했다. 그는 1993년 5월에는 앨범 진정난수(眞情難收)의 홍보차 내한하여, 1993년 5월 23일 코엑스 대서양관에서 신승훈과 조인 콘서트를 했다. 이 외에도 영화 홍보를 위해 여러 번 내한하여 한국 예능 방송에도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