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증심사 지역 식당가 부곡정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부곡정 안으로 들어갔다. 이용환과 윤정남이 먼저 와 있었다. 꼭 한 달이 지나서 만나니 더욱 반가운 장면이 이루어졌다. 이어서 강공수 김영부 박남용 윤상윤 등이 도착하였지만 나종만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했더니 메시지를 보지 않아서 집에 있다면서 바로 출발하겠다고 대답했다. 박남용이 ‘프로바이오틱스 스트로배리 요기스’를 한 봉지씩을 주었다. made in USA 였다.
10시가 되어 산행을 시작하였다.
김상문 수상작품선집 《古木에 핀 꽃》 출판기념회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요즘 〈윤석열 탄핵 소추 헌법 재판〉에서 윤석열의 발언과 국힘당 국회의원들의 거짓 말, 육군 사관학교 출신 군인 장성들의 거짓 진술과 발뺌 그리고 책임전가 등 군인정신에서 벗어난 떳떳하지 못한 행태들을 보면서 느낀 소감 등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올라갔다.
그리고 요즘 내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민족사랑》에 소개된 《정해룡 평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올라갔다. 어느 덧 약사암에 도착하여 온수통에서 따듯한 물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 정경달(丁景達) 장군의 후손인 중학교 동창생 정성남을 만나 《정해룡 평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더니. 어렸을 때, 같은 영광 정씨(丁氏)인 정해룡씨가 자기 집안의 형님이라면서 장흥군 장동면 반산(盤山) 마을 시제 때는 항상 자기 집에 와서 주무시고 가셨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내려오다가 당산나무 길로 가는 입구에서, 「무등산 국립공원」 소속 긴급 구조 차량이 미끄러운 급경사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멈췄는데, 구조 요원이 차량에서 내려오다가 빙판에서 미끄러져 나뒹구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두 사람의 구조요원이 번갈아 미끄러지는 것을 보고 서둘러 내려와 버렸다.
다시 부곡정으로 내려왔더니, 나종만 장휘부 김상문도 다 참석하여 10명이 되었다. 오늘은 내가 생일 턱으로 쏜다고 예고했던 것처럼 점심을 대접하고, 헤어질 때에는 내가 방앗간에 주문하여 가져 온 백설기 한 덩이씩을 나누어 주고 헤어졌다. 우리와 같이 했던 김종국(요양병원 입원), 김재일(자가 요양 중), 정원길(자가 요양 중) 등의 문병에 대하여는 가장 적합한 방법을 더 논의해 보기로 하였다.
《정해룡 평전》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 문영심 작
정해룡(丁海龍,1913~1969,봉강鳳崗)은 흔히 이야기하는 보수와 진보의 잣대로 잘 설명되지 않는 인물이다. 보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보적이고, 진보라고 하기에는 너무 보수적인 그래서 한마디로 그를 일러 ‘양반 빨갱이’라고 할 수 잇을 것이다. 사실 ‘양반’과 ‘빨갱이’라는 말은 서로 어울리지는 안지만, 봉강의 인격 안에서는 이 둘이 아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그는 비록 어려서부터 한학을 수학한 선비였지만 동시에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특히 동생 정해진은 경성제대 학부와 동경제대 대학원을 나온 당시로서는 최고 학벌을 지닌 신식 인텔리겐챠이자 급진적 공산주의자였다. 형제는 같으면서도 달랐고 다르면서도 같았는데, 그것은 바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똑같이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고 헌신했다는 데 있다.
정해룡은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자 앞서 언급했듯이, 집안의 종들을 풀어주고 2,000석의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 또한 그는 몽양 여운형과 함께하면서 혁신정당운동에 적지 않는 자금을 대기도했다. 김성수가 고려대학교를 설립할 때에도 거금(논200두락)을 희사했다. 무엇보다 향리에 남아 활동했던 그는 양정원(養正院)을 세워 가난한 농민의 자식들을 가르치면서 끝까지 고향을 지켰다. 이른바 민족교육운동에도 헌신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동생 전해진은 좀 더 급진적인 사상에 경도되어 사회주의 사상을 철저히 실행에 옮기고자 노력했다.
이렇듯 전 재산과 자기 한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했던 그, 나라의 운명은 결국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이라는 엄혹한 현실 앞에 마주 서게 되었고, 이들 형제 앞에는 더 큰 시련이 닥쳤다. 현실 정치에서 이렇다하게 뜻을 펼치지 못했던 봉강(鳳崗)은 고향에 남아 지속적으로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고, 동생 정해진은 북으로 올라갔다.
1980년 보성 가족 간첩단 사건과 집안의 풍비박산, 그러나……. 비극은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에 터지고야 말았다. 이른바 ‘보성가족간첩단 사건’이 그것이다. 비극의 씨앗은 15년 만에 갑자기 북으로 올라갔던 정해진이 고향 보성에 형을 만나러 1965년 8월 어느 날 밤에 나타나 동반입북을 권유했던 것이다. 이때 형 정해룡은 정해진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셋째 아들 정춘상을 함께 북으로 보냈다. 정해진은 2년여 후에 다시금 고향마을을 찾아와 다녀갔지만 이렇다 할 만 한 간첩활동은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허약한 지신들의 기반을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정해룡-정해진 일가의 은밀한 접촉을 적발해, 1981년 1월 20일 국가안전기획부를 통해 고정간첩 3개망 15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집안사람 37명이 곤욕을 치르기까지 했다. 결국 정해진을 따라 북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왔던 정해룡의 셋째아들 정춘상은 사형에 처해졌다. 그리고 빨치산 경력이 있던 정해룡의 숙부 정종희는 무기징역(대법원에서 12년형)이 선고되었다.
이러한 정씨(丁氏) 가문의 비극은 결국 분단된 조국이 잉태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좌(左)냐, 우(右)냐를 떠나 같은 민족으로 살게 하고자 하는 염원은 이들 형제의 현실적 삶을 완전히 파괴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정해룡의 생가이자 삶의 터전이었던 보성 회천면의 ‘거북정’의 사랑채에는 아직도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勿爲歷史罪人)는 가훈이 적힌 족자가 걸려 있다. 이 글귀는 아마도 임진왜란 때 나가 싸워 나라를 구한 먼 선조(先祖) 반곡(盤谷) 정경달(丁景達,1542∼1602)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가문다운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들 명문가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봉강 정해룡 및 그 집안사람들만큼 이를 철저히 실천했던 이들도 없을 것이다. 더욱이 풍전등화의 국운 속에서 이를 과감히 실행했다는 것은 단순히 재산의 희사만이 아닌, 앞서 언급한 가훈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가 더 큰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사랑》2024.11에서
내가 《정해룡평전》을 여기에 올린 이유는 이렇습니다.
정해룡이란 사람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고향 보성 출신 인물이 과거에 제헌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그의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그 사람의 실체가 진짜 공산주의자였는지 훌륭한 애국주의자였는지 궁금해 하고 있던 차에 《민족사랑》이라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월간지에서 《정해룡평전》의 책 소개를 읽어 보고, 내가 이순신장군과 난중일기를 연구하다가 충무공의 종사관이었던 정경달(丁景達)의 후손이 바로 정해룡이었으며, 그가 “역사의 죄인이 되지 말라”(勿爲歷史罪人)는 가훈을 실천하기 위해 자기의 정치적 신념인 사회주의(Socialism) 실현을 위해, 전 재산을 항일운동과 인재양성과 인권신장에 쾌척해버린 사람이 어찌 폭력적인 공산주의(Communism)에 경도될 수 있었을까? 그는 아마 ‘해방공간’이라는 우리민족이 처했던 불행한 시기에 현실적 실정법에 저촉된 불행한 이상주의(理想主義)자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이상주의가 지금 같은 시기에 복지사회 건설로 실현되었더라면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선정될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일 시 : 2025.02.13(목)
참 가 : 강공수 김상문 김영부 나종만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장휘부 등 10명
불 참 :
회 비 :
식 대 : 83,000원 양수랑 지출(애호박찌개 5, 김치찌개 2, 청국장 1, 전병 1, 공기 1 등)
김상문 출판기념회 꽃바구니 헌정 : 50,000원 지출
금 일 잔 액 : - 50,000원
이월 잔액 : 560,000원
총 잔 액 : 510,000원
끝
첫댓글 자랑스러운 친구 아석.
어는새 이처럼 기나긴 산행
후기를 쓰고 올렸는가?
뿐만 아니라 향토 인물들의
발자취를 글로써 새겨내는
아석의 글솜씨가 부럽네.
아석과의 동문수학을 자랑하려네 ---장휘부
아. !!! 우리 회장
아석님의. 글솜씨는 아는바와같거니와
오늘은. 그역사적 사실을
잘살펴 모르고있는
정해룡의사상검증이나
그애국적사실을
잘살펴기록해놓은점은
누구도. 흉내낼수없는
대작이네
혼란했던 시기의 사상은
좌우를 떠나
국가존립을 염려했던일인데
그만. 분단이라는 역사앞에 가치선택이라는
문제에서
그만. 우리나라 현실과 동떨어졌기에
일어난비극
너무. 잘 해설해놓았기에
감탄
오늘. 떡도 유난히 맛있더라
역시 회장 맛. !!!
고맙게. 읽고
고맙게 잘먹었네-----김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