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장차 예수님을 에워싸고 십자가에 못박을 로마군병들, 즉 이방인들을 의미한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을 <고이>라 부르는데, 이 말은 '가축'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개도 가축들 중의 하나로써 이방인들을 지칭하는데 쓰였던 말입니다.
2. 이사야가 말한 '개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이익만 추구하며..." (사56:10-11)
이사야가 말한 개들은 당시의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목자와 파숫꾼들로 세움을 입은 자들이건만, 게으르고 둔감하여 시대를 읽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리사욕만 챙기기에 바빠서 경고를 발하지 못하는 자들이었으므로, <벙어리 개>라는 지탄을 받았던 것입니다.
양들을 지키는 개는 도둑이나 늑대(적)가 오면 요란하게 짖어야 하는데, 먹는 데 골몰하여 제 때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개들이란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어야할 신유의 은혜를 이방인인 가나안 여인에게 주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뜻인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유대인들 처럼 이방인들을 개라고 생각하지는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다만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기 위해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그리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마7:6)
여기의 '개'도 이방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적도 없고, 율법도 계명도 없기에 가축처럼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에겐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를 준다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고, 자칫 반격을 받아 상해를 얻을 위험성이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4. 바울이 말한 '개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빌3:2)
여기서 말하는 '개들'이란 아마도 거듭나지 못한 유대인들을 의미할 확률이 큽니다.
왜냐하면...<몸을 상해하는 일>이 개역한글에서는 <손할례당>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손할례당이란 몸에게만 할례를 행했을 뿐, 마음엔 할례를 하지 않은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만 유대인이지, 속은 이방인과 같은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5. 요한이 말하는 '개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밖에 있으리라."(계22:15)
여기에 나오는 '개'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 중에 하나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개는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는 잡식성 동물입니다. 성과 속을 구별할 줄을 모릅니다.
<결론>
'개'란 야수도 아니고 육축도 아닌 중간자적인 존재입니다. 어쩌다가 사람들에게 길들여져서 사람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밤에 도둑을 지켜주고, 사냥도 하며, 양떼를 몰아주고, 장님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인간과 놀아주는 친근한 동물이 되었지만, 본성은 아직도 살을 찢고 피를 핥아 먹는 야수의 성질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동물인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으며, 교인들 가운데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 양 되신 예수님처럼 깨끗하고 온순한 양이 되어야 하는 데, 아직도 남을 물어뜯고 찢는 일에 쾌감을 느끼며, 상처를 주고 피흘리기를 즐긴다면, 이는 아직도 야성이 살아있는 들개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교회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장차 나타날 거룩한 도성인 새예루살렘에도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