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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남난희, 산에서 살어리랏다
네팔 영토 히말라야 지도
히말라야 14좌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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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민족이 옛부터 신성하게 여겨온 백색.
바이칼 호수의 옛 조상에게 백색은 마음의 고향.
백색 설원 히말라야는 옛 조상에게는 신앙의 대상.
인생은 백색 설원에서 태어나
백색 설원으로 되돌아가는 것.
백색 수의는 백색 설원을 의미.
한반도 옛 조상의 뿌리를 말해주는 '소'와 '활'.
소 처럼 큰 동물이 살 만한 곳은 히말라야 일대.
말을 달리며 활을 쏠 수 있는 곳은 티벳 고원 일대.
바다 밑바닥이 조산운동으로 솟아 형성된 히말라야
대륙 이동설은 1912년 베게너에 의해 처음으로 제안
그러나, 대륙을 이동시키는 원리를 설명하지 못했다.
하여, 대부분의 과학자들에 의해 부정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와 1960년대 심해 해저탐사가 가능
해양저 지형과 해양지각의 물리적 성질이 밝혀졌다.
지구 내부의 열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맨틀에서 대류가 일어나서 솟는 곳에 용암이 흘러나와
새 해양 지각을 만들고 맨틀대류가 하강하는 곳은 소멸
맨틀대류가 상승하는 곳은 해령이라 부르며
맨틀대류가 하강하는 곳은 해구라고 부른다.
해령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해구 쪽으로 이동해 소멸
이들이 컨베어 벨트처럼 움직이며 지각은 움직인다.
1968년 대륙이동설과 해저확장설을 합친 판구조론
지구표면은 여러 개의 판으로 나뉘어져 조금씩 이동.
오늘날 지구상에는 유라시아판, 아프리카판, 인도판,
태평양판, 아메리카판, 그리고 남극판의 6 판이 존재
이 판들의 상호 이동방향에 따라 생기는 판의 경계
발산경계, 보존경계, 그리고 수렴경계 3가지로 구분
발산경계는 두 판의 이동방향이 서로 반대인.. 해령
해령에서는 새 해양판이 생성, 해저가 양쪽으로 확장
보존경계는 경계따라 판들이 반대쪽으로 미끄러지는 곳
수렴경계는 판의 이동방향이 마주보는 곳으로 조산운동.
...............조산운동.......................
조산운동은 대규모의 산맥을 형성하는 과정.
즉, 판의 수렴경계를 따라 산맥이 형성된다.
판과 판이 서로 만나는 방식은 크게 3가지가 있다.
해양판과 해양판, 대륙판과 대륙판, 해양판과 대륙판
태평양판과 필리핀판이 만나는 경우,
빠른 태평양판이 침강해 해구를 형성
태평양판이 침강해 솟아오른 유라시아판
쿠릴 - 캄차카 - 알류산 호상열도를 형성.
히말라야 산맥은 대륙판과 대륙판의 만남.
2억2천5백만 년 전 인도는 오스트레일리아 옆
유라시아는 북반구, 인도와의 사이는 테티스해
약 8천만년 전 인도는 유라시아 6,400km 남쪽에 위치
이때 인도는 100년에 9m의 이동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약 4,500만년 전, 마침내 인도는 유라시아판과 충돌했다.
대륙지각과 대륙지각이 충돌한 것!
해양지각은 대륙지각 아래로 침강하지만,
대륙지각과 대륙지각이 충돌하면 솟는다.
하여, 형성된 히말라야 산맥과 티벳고원
히말라야 산맥은 인도와 티벳 사이 2,900km
산맥의 중턱에서는 암모나이트 화석이 발견.
암모나이트는 중생대 바다에 살았던 생물이다.
아직도 판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에 의해 산맥이 솟고 있다.
지구가 산 행성 임을 입증하는 조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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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가 히말라야.'
인도 대륙과 중국의 티베트 고원 사이 산맥.
캉첸중가봉, 네팔에서 인도에 걸친, 히말라야.
해발 7,300m 이상 고봉이 30여 개나 되는 산맥.
정상 부분은 만년설로 덮혀 옛부터 신성한 성지.
'히말라야' = hima(눈) + laya(보금자리).
중국과 인도 사이의 교통을 가로막는 장벽
겨울에는 북쪽 찬기류가 이곳을 넘지 못하고,
여름에는 남쪽 남서무역풍이 북을 넘지 못한다.
서쪽 낭가파르바트(8,126m) 산에서부터
동쪽 남차바르와(7,755m) 산까지 2,500km
남북간 넓이는 200~400km, 전체면적은 59만 4,400㎢,
산맥 중간 네팔 및 부탄 왕국 외 대부분은 인도 영토
전체적으로 히말라야 산맥은 활처럼 굽은 산호(山弧)
남쪽은 급경사를 이루어 힌두스탄 평원과 높은 고도차
북쪽은 티베트 고원과 연결되어 남쪽보다 고도차가 적다.
눈 덮인 가파른 봉우리, 깊게 팬 계곡, 곡빙하,
풍부한 난대 식물과 고산식물로 덮힌 히말라야
오늘날 세계 등산가들의 발길을 이끄는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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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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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고원에서 바라 보는 히말라야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기까지 히말라야
4열의 평행 산맥으로 구분되는 히말라야.
외히말라야는 바닥이 평탄한 구조곡
'시왈리크 산맥'으로 구성되어 있다.
히말라야 산계 중 가장 남쪽에 있는 산줄기
동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히말라야 전체에 걸쳐
뻗어 있으며, 최대 넓이는 100km 정도로 측정된다.
남쪽 경계부의 고도는 300m,
북쪽 경계부는 800m에 달한다.
시왈리크 산맥은 인도 평원에 면한
남쪽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는 반면
북쪽 사면은 완만하고 평탄한 분지
소히말라야는 시왈리크 산맥 북쪽에 있다.
넓이 약 80km, 평균고도가 1,000~4,500m
좀 더 북쪽 대히말라야 하천들에 의해 개석.
인접 봉우리 간의 고도가 비슷하여
봉고동일(峯高同一)의 개석고원 지형.
이 지역에 뻗어 있는 3개의 주요산맥
나그티바·다올라다르·피르판잘 산맥
모두 대히말라야 산맥에서 갈라져 형성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며
서쪽으로 펼쳐져 있는 분지
카슈미르 계곡도 소히말라야.
이 분지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이 160km,
넓이 80km이며, 평균고도가 1,700m에 이른다.
젤룸 강이 이 분지를 가로질러 굽이쳐 흐르다가
이곳에서 인도 잠무카슈미르 최대 울라르 호를 형성.
대히말라야 산맥은 히말라야 산계의 등뼈에 해당
주능선이 대부분 설선 위로 솟아 있어 만년 설원.
대히말라야에서 가장 높은 부분들은 네팔 영토 내
세계 최고봉 14개 봉 중 9개가 여기에 있다.
서쪽에서부터 솟은 9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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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울라기리 제1봉(8,172m),
안나푸르나 제1봉(8,078m),
마나슬루 제1봉(8,156m),
초오유 산(8,153m),
기아충캉 제1봉(7,922m),
에베레스트 산(8,848m),
로체 산(8,511m),
마칼루 산(8,481m),
칸첸중가 제1봉(8,59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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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히말라야 산맥은 북서쪽 파미르 고원에서 출발
남동쪽으로 펼쳐지다가 네팔에서 동남 동쪽으로,
시킴에서는 동쪽으로, 부탄에서는 동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산호.
대히말라야 북쪽에 있는 테티스 히말라야
대히말라야와 확실한 경계 설정이 어렵다.
카슈미르 지방에서 너비가 가장 넓어
스피티 분지와 레오파르기알(6,791m)·
실라(7,026m) 산이 솟은 자즈카르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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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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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밀라야 산맥은 고생대와 중생대 동안
테티스 해 해저에 퇴적되었던 해성퇴적암,
인도 순상지의 전면을 형성한 결정질암(結晶質岩),
초기 산지에 이어 형성된 만입을 메운 내만성퇴적층
이미 형성된 산지가 침식된 육상퇴적물로 구성.
히말라야 산맥의 융기는 크게 3시기로 구분.
융기작용은 백악기 후반(6,500만 년~1억 년전)
인도 데칸 고원이 티베트 고원으로 접근하며 시작
히말라야 산맥 형성에 직접 관여한 운동
신생대 에오세(약 3,800만 년 전)에 발생.
조산운동으로 테티스히말라야와 대히말라야 융기.
2번째로는 신생대 마이오세(700만~2,600만 년 전)
내만성퇴적물과 인도 순상지 전면이 융기하여 형성.
2차례에 걸친 조산운동이 해성퇴적암을 융기
현재 히말라야 산지의 4,000~5,000m 고도에서
중생대 해서(海棲)생물인 암모나이트 화석이 발견
3번째 조산운동은 제3기말(약 700만 년 전)
현재까지 계속되는 조산운동으로 히말라야 융기.
외히말라야, 시왈리크 산맥을 형성했다.
홍적세 중기(약 150만 년 전) 이래로
히말라야는 적어도 약 1500m 이상 융기
현재도 융기를 계속하고 있는 하안 단구.
이와 같은 조산운동을 판구조론으로 설명하면
지구 인도양판의 일부인 인도 순상지가 북진
유라시아 대륙판의 티베트 고원과 충돌하며
그 사이 해저 퇴적층을 습곡 충상단층 작용
지면을 들어올려 인도 순상지 앞부분이
유라시아 대륙 밑을 파고들면서 들려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계를 형성한 것.
히말라야를 형성하는 암석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이다.
이것은 유라시아 대륙을 밀어붙이면서
그 밑을 파고든 인도 순상지의 앞부분.
이 가장 오래된 암석 층은
표면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
스피티 분지와 몇몇 한정된 지역에서
그 다음으로 오래된 고생대와 중생대의
해성퇴적암의 대규모 노두를 관찰할 수 있다.
관입암은 마이오세 이전에 관입된 오래된 것과
마이오세 이후 관입된 새로운 것으로 구분된다.
마이오세 전에 형성된 화강암이나
화강섬록암 같은 심성암의 노두는
북부 카슈미르 지방에 넓게 분포하고
라다크 산맥의 전부가 이 암석으로 구성
발티스탄 대부분 지역,
카라코람 산맥의 남부
이 암석을 볼 수 있다.
마칼루·마나슬루·낭가파르바트 같은 봉
그러나 에베레스트 봉은
인접한 로체·초오유 같이
석회암과 혈암으로 이뤄졌고
혈암은 북쪽으로 경사져 있다.
이 분포는 편마암의 기반 위에 퇴적된 석회암과
혈암이 충상단층작용을 받아 나페를 형성했거나
히말라야 횡와습곡으로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히말라야의 나페 구조는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다.
심라의 크롤 나페, 우타라칸드 가르왈 나페가 전형적.
나페 구조는 중앙 충상단층선 따라 나타나고 있다.
중앙 충상단층선은 대히말라야 산맥의 남쪽 경계선.
고도가 갑자기 높아지고, 지층배열의 순서도 바뀐다.
예를 들면 충상단층으로 형성된 피르판잘 산맥에서는
석탄기(2억 8,000만~3억 4,000만 년 전) 형성된 석회암
플라이오세(250만~700만 년 전) 지층 위에 뒤덮여 있다.
외히말라야 지질구조는 단조로우며,
주로 제 3 기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부 중부 상부 시왈리크층으로 구분
이들은 주로 사암·혈암·역암 등의 하성(河成)퇴적물
하부 시왈리크층 두께는 600~2,000m, 중부는 1,000~1,500m,
상부는 1,500~2,000m 두께. 카슈미르 분지는 호성층도 형성
카레와스층과 시왈리크층에서는
홍적세 빙하의 증거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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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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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지는 19개의 주요 하천으로 배수되는데
그중에서 인더스 강과 브라마푸트라 강이 가장 크다.
이들 하천의 유역면적은 산지 부분에서만 약 26만㎢.
나머지 17개 강 중 인더스 강의 지류인 젤룸·체나브·
라비·베아스·수틀레지 강은 면적 총 13만㎢를 흐른다.
갠지스 강의 지류로는 본류인 갠지스 강 상류부와
야무나 람강가 칼리 카르날리 랍티 간도크 바그마티
코시 강이 있으며, 총 유역 면적은 약 22만㎢ 정도.
브라마푸트라 강의 지류로 티스타 라이다크 마나스
총 유역면적은 18만㎢. 히말라야 4열 계곡을 흐른다.
즉 산지에서 인더스 하계의 하천들은 북서쪽으로,
갠지스·브라마푸트라 하천들은 동쪽 또는 동남쪽
히말라야 산지 북서쪽에서는
힌두쿠시 산맥과 카라코람 산맥
분수령을 이루어 인더스 강을 차단.
중앙 아시아로 흐르는 것을 막고 있다.
히말라야 산지의 계속된 융기는
하곡에 하각(下刻)작용을 촉진하여
깊은 곡과 횡곡(橫谷)을 형성하고 있다.
빙하 또한 히말라야 산지의 주요 배수체계로
이보다 아래로 흐르는 하천의 급수원이 된다.
우타라칸드에 몇 개의 빙하가 발달해 있는데
이중 가장 큰 강고트리 빙하 길이가 약 30km.
쿰부 빙하는 에베레스트 지역에서 발생한 것.
히말라야 지역에서는 빙하의 이동속도도 다양하여
카라코람 산맥 발토로 빙하가 하루에 약 2m를 이동
반면, 쿰부 빙하는 하루에 0.3m 정도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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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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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북향사면은 토심이 두꺼워
저지에는 밀생한 삼림이, 고지에는 초지
흑갈색을 띤 삼림토는 실트질(質).. 참흙
우타라칸트 지방에 주로 분포.
이 토양은 과수재배에 이상적.
부식질을 많아 차 재배에 적합.
동쪽 라다크 고원에는 염성 토양이 나타난다.
토지생산성이 높은 충적토 지대가 하곡을 따라
형성된 곡저평야나 하안 단구를 따라 펼쳐지며,
고지대 대부분 부식질이 없는 미성숙 산악토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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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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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맥은 인도 대륙(남쪽)과
중앙 아시아 간의 대기와 수분 분수령
대기의 기상현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 위치와 높이 때문에 대히말라야 산맥은
겨울에 인도 방향 시베리아 북풍을 차단하고,
여름에 남서 계절풍 습기를 차단해 북쪽은 건조.
그 결과, 남쪽 사면에 많은 비와 강설을 초래
북쪽 티베트 고원을 건조기후 지역이 되게 한다.
히말라야 산지의 우기는 겨울과 여름에 각각 1차례.
겨울에는 인도 쪽으로 이동해오는 저기압에 의해 폭설.
히말라야 산지의 고봉에 눈은 주로 이 시기에 내린 눈.
5월말에서 8월 남서 계절풍에 부는 우기에는 반대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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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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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와 강수량에 의해 열대 아열대 온대 고산 식물군
열대 상록우림은 중부와 동부 히말라야의 산록부에 분포
목재와 수지로 이용되는 딥테로카르프 상록교목이 대표수종
대나무는 경사가 급한 곳에 나타나며,
참나무와 밤나무는 표고 1,000~1,700m
오리나무는 경사지의 수로를 따라 분포.
서부 히말라야로 갈수록 강수량이 감소하고
고도에 따라 열대우림은 열대 낙엽수림 지대.
이곳의 대표 수종은 목재로 사용되는 살나무
1,000~1,400m 표고의 고원지대에 무성.
열대 낙엽수림은 서쪽 건조지대로 가면서
스텝·반사막·사막 식생대로 점점 변한다.
온대 삼림은 1,400~3,400m 표고,
온대 활엽수와 침엽수로 구성된다.
참나무, 히말라야삼나무, 가문비나무.
수목한계선 위쪽에 나타나는 고산식물지대
대개 표고 3,200~3,500m에서부터 시작된다.
서부는 4,200m까지, 동부는 4,500m까지 계속.
양지바른 바위지대는 향나무,
습한 곳에는 진달래속 관목들.
그늘진 곳에는 지의류·선태류,
고지대에서는 꽃 피는 고산 초본
고지초원은 에베레스트와
낭가파르바트에서 특히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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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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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히말라야 동물들은 지중해 지역,
에티오피아, 터키 지방 동물들과 유사
과거 기린이나 하마 같은 아프리카 동물들 서식지
시왈리크 산맥 지층 사이 화석으로 밝혀지고 있다.
수목한계선 위의 동물들은 이 지역 고유 동물들
코끼리·물소·코뿔소는 외히말라야의 낮은 구릉지
숲으로 덮인 타라이(인도 북부, 네팔 남부)에 분포
사향노루와 카슈미르사슴 역시 멸종 단계에 있다.
또한 히말라야곰(아시아흑곰)·표범·랑구르원숭이류·
고양이·히말라야염소·히말라야영양이 숲지대에서 발견.
수목한계선 위의 지대에서는 백색표범·
갈색곰·적색팬더·티베트야크 등이 산다.
야크는 라다크 지방에서 짐 운반하는데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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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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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맥 일대에는 인도 3대 인종집단 가운데
드라비다인을 제외한 인도유럽인과 티베트미얀마인
지역에 따라 다른 분포를 보이며 거주하고 있다.
대히말라야와 티베트에는 티베트인 미얀마인
소히말라야에는 키 크고 백인인 인도 유럽인
잠무카슈미르 외히말라야에는 인도 유럽인들
카슈미르 계곡 인도유럽인은 카슈미르인.
소히말라야 산악지대에는 유럽인종 가디족
구자르족은 계절따라 목초지를 오가며 생활
카슈미르 지역 대히말라야 산맥 북쪽에는
참파족·라다크족·발티족·다르드족이 산다.
이중 다르드족을 제외한 세 부족이 티베트 미얀마인.
참파족은 인더스강 상류에서 목축생활을 하는 유목민
라다크족은 카슈미르 인더스강 유역 계단식 논밭을 정착민
이슬람교도인 발티족은 인더스강 유역 아래쪽에 분포
히마찰프라데시, 우타라칸드에는 카네트족과 카시족.
네팔에서는 각지에 티베트 미얀마계 부족들이 고루 분포.
인도 유럽인에 속하는 파하리족이 국민의 다수를 차지한다.
티베트 미얀마계 주민으로는 네와르·타망·구룽·
마가르·셰르파 등의 부티아계 부족과 키라트족
키라트족은 카투만두 일대
네와르족은 네팔 초기 정착민
타망족은 카트만두 계곡의 북서쪽과
북쪽, 동쪽에 있는 높은 계곡지대에서 산다.
구룽족은 안나푸르나 남쪽 등성이에 거주하며
해발 3,660m 고지의 목초지에서 소떼를 기른다.
네팔 가부에 사는 마가르족은
계절 따라 네팔의 초지로 이동.
에베레스트 산 남쪽을 본거지로 하는
셰르파족은 산을 잘 타는 것으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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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맥 등정은 1880년대에 시작되었다
1883년 브리튼 그레이엄이 등반하며 등반 열기.
20세기 초 카라코람 산맥과 시킴히말라야 일대
등정을 하려는 원정대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1921년 이후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시도가 10여 차례
1953년 5월 에드먼드 힐러리 경이 정상 등반에 성공.
같은 해 낭가파르바트 봉은 카를 마리아 헤를리크코퍼
오스트리아-독일 등반대에 의해 최초 등정에 성공했다.
남난희.
그녀에게서는 히말라야 옛 조상의 혼이 느껴진다.
히말라야 설원과 티벹고원을 누비던 옛 조상의 혼.
지리산 천왕성모의 영혼이 담겨있는 듯한 그녀의 삶.
요즘 무박 주말산행 붐으로 대중화된..백두대간 종주
백두대간을 구간 구간 나누어 산행하는 붐이 일고있다.
우리나라 국토의 등뼈에 해당하는 산맥이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 첫 종주자는 놀랍게도 여성.'
현재, 지리산 전설 속 마야부인 같은 삶.
2년 반 결혼생활 후 스님이 되어 떠난 남편.
그녀는 아들 기범과 함께 화개골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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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난희! 그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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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년 경북 울진 출생, 1981년 한국 등산학교를 수료.
1984 년 1월 1일부터 76일 간 국내 최초로 백두대간 종주.
1984년 3월 16일, 끝내 동계 여성 단독 백두대간 종주를 성공.
.................그녀의 술회...................
"그때는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이 있기 전이었다
유사 이래로 눈이 가장 많이 왔다는 그해 겨울
혼자서 76일 동안을 산에서 먹고, 자고, 걸었다.
20대 후반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을까?'
정신과 육신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를 경험하는 일
그 산행으로 최고의 극한 한계를 모두 경험한 그녀.
아직도 눈이 내리는 날이면 그때 생각이 난다는 그녀.
"백두대간 산행 중 몹시 추웠던 어느날 산능선에서
텐트치고 밤을 보내려는데 유난히 찬 기운이 강했다.
발끝에서 머리카락 끝까지 외로움이 스멀스멀 다가왔다.
산을 내려가기에는 너무 어두웠고 더구나 길도 없었다.
외로움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텐트 밖으로 나온 그녀.
눈사람이라도 텐트 옆에 두고 자려고 눈을 뭉쳐보았지만
너무나 추운 날씨에 내린 눈이라 잘 뭉쳐지지도 않았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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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7세 처녀로 백두대간 단독도전은 불가사의.
허리까지 빠지는 폭설, 굶주린 멧돼지 떼의 공격,
밤새도록 텐트 속에서 울며 코펠을 두드렸던 그녀.
'그날밤이 그녀에게 얼마나 길고 무서웠을까?'
감기 몸살 중에도 연료를 아끼려 혹한과의 싸움.
전인미답 코스라 진로 막는 잡목 숲에 악전고전.
식수가 귀한 눈밭에 허리까지 빠지며 겪는 갈증.
그 눈밭을 러쎌로 헤치며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
인간 인내심의 한계점에서 엄습해 온 졸음과의 사투,
중도에 하산하고 싶은 마음 억누르며 '자신과의 싸움'.
칫솔 반 토막 내서 쓸 만큼 큰 배낭 무계와의 싸움.
멧돼지 덫에 걸려 나무 위에 꺼꾸로 매달렸던 일화.
그 덫이 발목이 아닌 등산화에 걸렸기에 무사 탈출.
식수조차 귀한 산속에서 세수할 물이 있을 리 만무.
생리기에도 쉴 곳이 없고 몸 씻을 물조차 없는 산 속.
너무도 목욕하고 싶은 마음에 화전민가에 들렀던 그녀.
"총각은 군대 갔다 왔는가?"
"....................."
목욕한 후 다시 홀로 산으로 올라가는 발걸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도 울며 다시 오른 산속.
오지마을 화전민에게 오해받을 만큼 장정 체격.
큰 배낭을 짊어진 탓에 누구도 여자로 볼리 만무.
여자이지만 여자 대접 받지 못할 때가 서러웠던 듯.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여성다운 여성, 남난희'.
그런 그녀의 마음을 첫 만남에서 사로 잡았던 남자.
지리산에서 상경한 청학동 댕기머리 총각와 데이트.
두 사람은 첫만남에서 밤새도록 술한잔으로 데이트.
새벽녘 처녀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며 집에 바래다 준 청학동 총각.
그 당시 밤새 술을 마셔도 대작할 남자가 없을 만큼 철녀인 그녀.
그녀를 연약한 여자로 여기던 그 청학동 총각의 청혼에 결혼 결심.
그녀를 순수하게 여자로 대한 남자는 그가 처음.
그것이 그녀가 청학동에 둥지 튼, 운명적인 인연.
그곳에 찾아가 내가 만난 그녀의 첫인상은 여성다웠다.
둥굴레차를 권하며 섬진강이 오염될까 봐 걱정하는 모습.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몸에 배인 그녀는 정말 산악인 답다.
1986 년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강가푸르나' 봉(7455m) 등정.
1989 년 '금녀의 벽'이라는 설악산 토왕성 빙벽 폭포를 두 차례 등반.
<하얀 능선에 서면> <낮은 산이 낫다> (학고재·2004) 책 3 권을 펴냄.
1991년 강원도 정선으로 들어가 삼 년 간 '정선 자연학교'에서 교장.
'정선 자연학교'는 임대한 폐교에서
도시 학생들에게 여름철 자연 교육장.
그녀는 학생들과 함께 산에 오르고, 들풀을 뽑고, 돌탑 쌓고, 물놀이했다.
자라나는 2 세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천연 식단으로 건강 교육.
하지만, 태풍 루사로 인해, 그녀가 2년 반 쏟았던 정성은 물거품처럼.. 폐허.
그 후 그녀는 지리산 청학동에서 전통 찻집 '백두대간'을 운영.
그 실내장식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에 대동여지도 생각이 났고,
이우형 선생 도움을 받아 대동여지도 한 점을 찻집 천장에 붙였다.
그녀는 아들 기범이와 함께 지리산 화개 장터 위쪽 화개골에 산다.
그녀는 스님이 된 후 그녀 곁을 떠난 남편의 도움으로 그곳에 정착.
그 흙집에서 증제차, 녹차, 가죽나물, 남난희 표 된장을 제조하며 생활.
그곳에 이사온 후 남성용 사각팬티와 러닝을 즐겨 입게 되었다는 남난희.
남성같은 강인함보다 옷을 입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편안함 때문이란다.
그녀는 천왕성모처럼 만난 남편과 헤어져, 마야부인처럼 살아가는 산 전설.
"아궁이에 불을 때면 얼마나 행복한지....세상에 그 어떤 향수가 나무 타는 냄새에 견줄 수 있을까 싶다. 여름에는 대문을 걸어 잠그기만 하면, 그야말로 다른 세상이 된다. 맨발로 마당을 서성이거나 아예 마당에 퍼 질러 앉아서 땅기운을 그대로 받으며 풀을 뽑기도 하고, 더우면 시원한 우물물로 몸을 식힌다. 그리고는 그냥 발가벗은 채로 마당을 서성이며 몸을 말리기도 한다. 대문을 활짝 열어 두어도 들어올 사람은 없다." ---남난희 저 '하산' 중에서...248쪽 글 인용.---
대나무 숲을 지나 지리산 자락에 안긴 그녀의 집.
그녀가 외출했을 때면 대문에 못 하나 걸린 문고리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잠금 장치가 그녀의 심성을 대변.
봄이면 집 주변에서 나물을 캐고, 대밭에서 죽순을 딴다.
텃밭에서는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고 기른 고추와 감자,
무, 배추, 상추, 호박, 오이, 토마토를 여름 가을에 수확.
자연에서 수확한 그대로 먹거나 데쳐서 먹고,
양념도 담근 간장이나 된장을 조금 넣는 정도.
가죽나물, 음나물, 취나물, 잰피, 산초 장아찌.
손님이 오면 잡곡밥을 안치고 두부를 숭숭 썰어 넣고
청국장을 끓여 내고 장독에서 묵은 김치를 내오는 그녀.
틈틈이 캔 쑥부쟁이와 머위나물 그리고 석빙고의 장아찌.
평소 그녀의 밥상은 소박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밥에 된장과 김치 또는 된장찌개와 나물 비빔밥.
햇빛에 탄 피부와 순박한 웃음에서 피어난 건강함.
그녀는 농사를 지을 때에도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자연에서 필요한 만큼만 취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
그것이 자연에 기대어 살고싶은 그녀 마음의 자세이다.
약간 모자란 듯, 사는 것이 자연에 가까이 가는 방법
풀잎, 돌멩이 하나도 자연을 아프지 않게 하려는 마음.
이웃과 나눌 정도의 수확이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그녀
된장을 팔아 최소한의 생활비 정도에 만족하려는 그녀.
자신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만큼만 만들어 판매를 한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지만 돈을 주고 사람을 쓰지는 않는다.
“된장은 햇볕과 공기, 물 자연의 힘을 빌려 담그는 거예요.
거기에 세월의 맛, 옹기의 맛이 더해지고, 내가 기운을 보태요.
발효 음식은 만드는 사람의 기가 좋아야 만든 음식 맛도 좋아져요.
때문에 옹기에 담을 때는 맨손으로 퍼 담아요.
제 건강한 기운이 장에 배어 전해지길 바래요.”
차 역시 집 뒤 언덕에 있는 야생 차밭에서 수확한다.
그녀를 찾아오는 손님과 함께 나눌 정도면 족하단다.
그녀는 도시에서 살 때나 지금이나 차를 즐겨 마신다.
“아이에게 좋은 것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에요.
자연이 제공해 주는 먹거리가 있는 시골이라 가능한 일.
제가 아는 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
정성 다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건강해지면 저도 좋죠.”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가지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다는 그녀.
진정 욕심없는 그녀는 산에 사는 것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2005년 현재 49 세인 그녀에게 아직도 포기할 수 없는 소망.
38선에서 멈췄지만 백두산까지 완주하고 싶은 백두대간 종주.
국내 최초로 완주할 기회가 그녀에게 주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산에서 살어리랏다.
"내가 한국 여성의 대표 산악인이 되는 계기는
1984년 1월 1일 시작한 단독 태백산맥 종주등반
그때는 백두대간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이었다.
부산이라는 땅덩어리가 생기고 난 후
눈이 가장 많이 왔다는 그 겨울이었다.
혼자서 76일을 산에서 먹고 자고 걸었다.
20대 나이에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았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대신 너무 힘들었고 외로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푸념은 뒷발자국으로 남긴 채
1984년 3월 16일에 끝끝내 산행을 마쳤다.
사람들은 성공이란 단어를 썼고 나는 허탈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던 것 같다.
정신과 육신이 다다를 수 있는 한계를 경험하는 일
그 최고의 극과 극을 모두 경험한 것은 행운이었다.
그후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견딜 수 있는 끈기가 생겼고,
당당하게 맞설만한 힘이 생겼다.
'어느새, 산행은 내 삶의 기준.'
그후, 매일 밥 먹듯 숨을 쉬듯
암벽을 올랐고, 빙벽을 올랐다.
그리고, 히말라야까지도 올랐다.
어쩌다보니 남보다 앞서 올랐지만
그것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산을 가든지,
어떻게 산행을 하든지
그것은 나의 의지지만
산이 나를 받아 주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산 앞에 최선.
산 앞에서 겸손하고자 했고,
고마워했고, 당당하자고 했다.
나 자신에게 당당해야
산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으니까!
산에게 선택된 자로서
부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산이 향상 그리웠다.
지금 내개는 "도전"이란 단어가 너무 생소하다.
적어도 산 앞에서는 도전이라는 단어는 안 된다.
인간이 자연에게 도전이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굳이 도전이라 해야 한다면
자신과의 도전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의지, 용기, 기술, 힘 등.
요즘 자연을 벗삼아 산속에서 살아보니
더욱 그런 사실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강도높게 산행하지 않지만
여전히 산을 편한 마음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예전에는 최초 최고 타이틀이 붙은 등산을 했다면
이제는 그저 입산이고 편안하게 산과 만나는 것이다.
과거 목적 때문에 산의 한부분에만 집착했다면
지금은 산 안에 모든 것과 교류하고 산과 합일.
산이 곧 나 자신이고, 내가 곧 산의 일부분인듯.
오늘처럼 눈이 쌓인 날이면 지난날 열정이 생각난다.
어느 겨울날 산능선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려는데
그날은 유난히 찬 기운이 강했고 외로움이 엄습했다.
손끝, 발끝에서부터 머리카락 한올 한올까지
숨막힐 것 같았지만 하산하기엔 너무 어두웠다.
더구나 길도 없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텐트 밖으로 나와 눈사람이라도 옆에 두고 자려고
눈을 뭉쳐보았지만 너무 추워 눈도 뭉쳐지지 않았다.
그때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 뿐이었다.
그당시 힘겨웠던 산행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행이 아니라 수행이었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산에게, 자연에게 감사하며 산다."
자연에서, - 남난희.
자연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욕심은 절대 금물이다.
언제부턴가 나의 삶은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것이 없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또 어느 곳에도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게 되었다.
물기가 다 빠진 풀처럼 가벼운 마음이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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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일간 백두대간을 단독 종주한 여성 산악인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강가푸르나봉 등정
그러한 그녀가 산을 타는 방법은 옛날과 다르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조바심치지 않고
바삐 걷지 않고 중간에 하산을 해도 상관없다.
예전에 등산을 했다면 지금은 入山한다는 그녀.
그녀가 최근 펴낸 에세이 ‘낮은 산이 낫다’
그러한 삶의 변화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여성 산악인끼리의 에베레스트 등반 계획 좌절
잠적, 결혼, 출산, 서울을 벗어나 지리산으로 이사,
이혼, 강원 정선자연학교 교장,
태풍 루사로 자연학교 풍비박산,
다시 지리산 화개골에 정착한 그녀.
삽시간에 생명을 앗아가는 강가푸르나의 돌풍보다
자연학교를 날린 태풍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깨달음.
이십대에는 채워지지 않는 삶의 갈증
남보다 우월하고 싶은 성취욕에 쫓긴 삶
그게 자신과 남에게도 상처를 주었다는 그녀.
이제 그녀는 산을 오르는 대신에 산자락에 살며
찻잎을 덖고, 콩으로 메주를 빚고 된장을 만든다.
그녀를 변화시킨 것은 지리산 대자연과 아이.
풀 두번 매준 정도여도, 콩은 잘 자라준다.
'애인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그녀의 아들
비오면 까치 잠자리가 무사할까 걱정하는 아이
한 해를 시작하는 날과 두 사람의 생일날
해마다 그녀는 아이와 맞절 의식을 치룬다.
아이가 있기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는 그녀.
지나간 삶이 산으로 오기 위한 과정이었다면
아무 것도 원하는 바 없는 지금이 평안한 삶.
그게 지금의 삶이고 그 평안이 참 좋다는 그녀.
집 앞뜰에 가지런히 정렬한 수십 개의 장독독.
평상에 앉아 있으면 뜰악을 날아다니는 반딧불
구름 속에 가려있다가도 불쑥 나타나는 훤한 달빛.
서울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달빛보다 두 배는 밝은듯.
겨울이 오기 전에 나무를 많이 해놓아야 한다는 그녀.
나무 잘하는 머슴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며 웃는 그녀.
그것 말고는 아무때나 불쑥 찾아오는 방문객들
방문객에게는 처음이고 마지막인 모처럼 나들이.
무작정 반길 수도 박절하게 대할 수도 없는 입장.
“계십니까? 여기가 남난희씨 댁입니까?”
암튼, 흙냄새 묻어나고
솔바람이 불어오는 그곳.
잃어버린 마음 속 고향인듯.
..........
논골마을.
...........
몇년전 그녀의 후배가 들어와 살고 있다는 마을.
그녀도 후배를 만나러 가끔 찾아간다는 논골마을.
해발 5백m위에 위치한 전형적인 지리산 오지마을
하동군 청암면 금남리 북쪽 산길 따라.. '심곡리'.
심곡리 서쪽 우마차 길에서 5리 쯤 가면., 갈림길.
갈림길 오른쪽은 논골마을,
왼쪽은 사동마을로 가는 길.
논골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반 시간 이상 지속되는 오르막길.
남쪽에 웅장한 칠성봉이 우뚝 솟았다.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고갯마루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논골마을.
바깥 세계과 동떨어져 웅크리고 있는 마을.
마을 뒤편 산등성이에는 대여섯 그루 당나무
10여 가구 중 젊은 사람들은 찾아 볼 수 없다.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가 버리고
농사로 삶을 영위하는 전형적인 오지마을.
300년생 당나무로 보아 마을이 생긴지 오랜듯.
정감록에 따르면 지리산 남쪽 기슭에 피난처 3곳.
청암면 고은동, 오은동(논골), 묵계 심은동 = 3은동
3점리 (풍점리, 먹점리, 미점리) 역시 명당인 피난처.
논골마을은 6.25 당시 주민들이 한명도 다치지 않은 곳.
주민들을 먹여 살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20여 만평 경작지
행정상 청암면에 속하지만 생활권은 악양면에 가까운 면 경계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남부능선은
삼신봉 남쪽의 청학동과 북계리를 감싸며 갈라선다.
좌청룡 남쪽 시루봉을 거치며 논골의 뒷산인 깃대봉.
깃대봉 남쪽 10여Km 지점에는 칠성봉에 이르는 산줄기
논골서 악양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가로막은 자연 장벽.
장보러 다닐 때에는 산길 맥시골 또는 배티재
왕복 6시간 거리 악양장을 그 장벽 넘어 오간다.
깃대봉 남쪽의 안골에서 시작되는 반달 형태의 논골
남동쪽으로 휘돌아 사동과 심곡 쪽으로 빠지는 형태.
묵계 골짜기로부터 또 다시 9Km 정도 떨어진 산골이다.
청암 초등학교 심곡분교까지는 왕복 3시간이 걸리고
중학교가 있는 청암면까지 편도 2시간 반 걸리는 오지.
고갯마루 안골까지 4Km에 이르는 농경지 여러 곳에는
산제밭골, 잔치평전, 웃장구목, 아랫장구목 등의 지명
50여 가구의 옛 주민이 현재는 10여 가구로 줄게 된 곳.
당나무는 언덕빼기를 경계로
북쪽을 음달땅, 남쪽을 양달땅
동구쪽 공터는 진틀배기로 부른다.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을 간직한 채
오지의 삶을 살고 있는 마을 주민들
찾아가는 길.
하동에서 청학동행 버스를 타고 논골 입구에서 하차
하동에서 2번 도로를 이용해 횡천 청암을 지나 논골.
횡천에서 청암을 거쳐 청학동 쪽으로 가다가
하동호(청암호) 언저리에서 서쪽 샛길로 빠지면
예전 우마차 길이 좁은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포장
칠성봉 계곡 물이 흘러가는 칠성봉 산장 앞 계곡
그곳 지나 가파른 시멘트길이 끝나는 곳이 논골.
'흰구름 푸른구름'
마음이 갑갑할 땐 언덕에 올라
푸른 하늘 바라보자 구름을 보자.
저 산 너머 하늘 아랜 그 누가 사나
나도 어서 저 산을 넘고 싶구나.
푸른 구름 흰 구름에 흰 돛을 달아
산 너머 저 하늘에 띄워 보내자.
내 마음 펄럭이는 흰 돛이 되어
달나라 별나라를 맘대로 가자.
- 강소천 님의 동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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