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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사람이 그리운 날☆]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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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리운 날]
임동윤 시집 / 소금북시인선 001 / 소금북(2015.07.20) / 값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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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리운 날∙1
임동윤.
햇살 맑은 툇마루에 앉아
외갓집 지붕의 흰 그늘을 바라본다
희디흰 그늘이 뒤덮은 지붕은
구름속이다
잡힐 듯 나지막한 허공이다
그 하늘로 참새들이 날갯짓을 하고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배추흰나비도 나풀거릴 것 같은
이따금 산비둘기 울음도 날아와 앉는다
저 흰 물결, 어디서 온 걸까
할머니가 심은 벽오동나무 그늘일까
온통 흰 그늘로 지붕을 덮은
목련 한 그루
헐벗은 누더기를 벗겨내듯
환하게, 봄 한철 견디고 있다
이쪽 강물을 풀어 저쪽 지붕까지
마치 명주실을 펼쳐놓듯이
단단한 눈물
임동윤
강은
단단한 뿌리를 가졌다
무딘 칼날로는
아무 구멍도 낼 수 없다
저 설해雪害의 자작나무가
제 몸을 털어내듯이
바닥이
제 구실을 할 때까지
강은
단단한 뿌리
차가운 눈물을 가졌다
마음 그늘∙1
임동윤
마음엔 늘 나 아닌 그 사내가 살고 있다
내 마음의 행로를 따라 제대로 걷지 못하게 한,
그와 이처럼 오래 동거해왔다니,
단칼에 그를 뿌리칠 수 있는 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조금씩 재치와 부끄러움과 체면을 알면서
내 얼굴은 철판처럼 두꺼워지고 가면이 되었다
그때부터 그와 나 사이엔 단단한 끈이 있어
세 치 짧은 혀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살아왔을 뿐
그리하여 상처투성이 그늘만 남았을 뿐
흐르고 싶을 때 흐르는 강물은 얼마나 편할까
날고 싶을 때 허공을 나는 새들은 얼마나 편할까
먹고 싶을 때 꿀꿀 먹는 돼지는 또 얼마나 편할까
아직 강물처럼 흐르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허구의 강을 허우적거리는
간사한 내 세치의 혀, 그 혀가 건너는 흐린 세상
이 몹쓸 놈의 혀를 단칼에 잘라낼 수는 없을까
밤새 담금질로 눈먼 혀를 두드려볼 뿐
너무 오래 늪지를 걸어온 발이 습관처럼 올라가는
우리 가파른 삶이 출렁거리는 바다
굵은 소금으로 내 세 치 혀를 염장해볼 뿐,
환한 그늘
임동윤
누구나 그늘 한 자락 하 자락 가지고 산다
그 휴양림으로 들어가려면 산지소를 지나야만 한다
그곳은 황소가 빠져 죽었다하여 붙여진 이름
태풍매미가 휩쓸고 가서 지금은 바닥을 드러내지만
휴양림이 들어서기 점 봄이면 함박꽃이 지천이었다
동네 형들과 물 그늘에 낚시 드리우고
한참 물속으로 들여다보면 시퍼런 밑바닥이
꼭 우리를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마치 천년 묵은 이무기 살아서
곧 승천할 것 같은 웅웅거림이
그 둘레를 에워쌌던 거였다
마치 움푹 파인 거대한 가마솥 같은
보이지 않는 밑바닥이 금세 잡아당길 것만 같은
그곳엔 보이지 않는 손이 사는 듯했다
그 손은 큰 산을 끌어당기고 아름드리 소나무와
물푸레나무와 진달래와 뻐꾸기울음까지 삼키고 있었다
그러다 화들짝 낚싯줄을 잡아당기면 허탕,
무언가가 그곳에 있어
낚시에 걸린 물고기를 낚아채는 것 같았다
어쩌다 낚싯대로 바닥을 가늠해보지만
곧 우린 알 수 있었다
어느 해 한 여자가 빠져서 아직 그곳에 산다는 것을
너무 바닥에 가라앉았는지, 혹은 태풍매미가
먼 바다로 실러 날랐는지 풍문만 무성하던 그곳
소가 끌어당긴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흉흉한 밑바닥의 깊은 비밀을 보았을까
그 휴양림으로 들어가려면 나는 그곳을 지나야만 한다
나를 아는 사람만 그 황소와 그 여자를 추억할 뿐
사람이 그리운 날∙4
임동윤
눈 내리는 창 안으로 바람이 분다
그럴수록 추억은 꽁공 얼지만
달도 어는 강 씉에
그런 달밤을 한 사내가 헤매고 있다
그 달빛이 내 안에 산다
그 달빛이 밤마다 베갯머리에 있다
누가 나를,
저 커튼 밖으로 데려가 다오
추억이 없는 얼굴은
비로소 나를 기억하리라
벌거숭이 나뭇가지네 휜 깁을 내리는
저 착한 눈송이처럼
추억이 없는 나라에서 사는 나를
추억이 나를 퍼다 버린다
저탄더미에 쌓이는 눈발처럼
그렇게 나는 이 밤,
기억을 추억 속으로 돌려보낸다
깊은 동굴 속을 파 들어간다
아무도 안다고 하지 마라
가벼운 것이 그리운 저녁∙2
임동윤
지팡이 팽개쳤습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맹인이지만
지금은 지팡이 없는 행보입니다
가는 곳마다
발 디디는 곳마다 지천으로 꽃입니다
연둣빛입니다
아차, 발 헛디뎌
더러 헤저드에 빠지면 어때요
거기가 비로 꽃나라인 것을요
그대여, 지팡이 버리고 달려오세요
겨울옷 훌훌 벗어던지고 달려오세요
감옥 같은 세상
바람에 훌훌 벗어던지고, 나 어때 하며
두 팔 한껏 벌려보세요
지팡이 없어도 걸어보세요
건널목의 더듬거리던 망설임도
잘 달리는 준마 하나 얻어 타는
이 봄날
바로 우리 저녁이란 것을 알면
지금 바로
지팡이 하나 내팽개치는 것이
무에대수겠습니까
앵두꽃
임동윤
앵두꽃 진다
화르르 집 허무는 꽃들
속 드러낸 우물에 고요가 깊다
모두 떠나 고요가 갇힌 뜰
다시 후르르 지는 꽃들
그리운 풍경이 하나씩 사라진다
제 스스로 몸 허무는 집들
누가 우물 같은 가슴이라 했나
먼 산 뻐꾸기 울음 봄날을 몰고 가면
제 풀에 화르르 지는 앵두꽃
떠난 자의 숨결이 깊다
먼 산 바람소리
임동윤
엄마 품에 안긴 아기가 급히 젖을 빨고 있었다
다급한 소리는 껍질과 껍질 사이를 건너뛰며
전마나무 숲을 온통 흰 깁으로 부풀리고 있었다
까마귀울음이 숲 전체를 흔드는 것 같았다
톱날 같은 울음이 총소리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피웅피웅 날아드는 총알세례, 숲이 흔들리고 있었다
숲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폭설은, 얼어붙은 등짝을 적시는 바람소리였다가
말라붙은 젖을 빠는 아가의 허기진 입질이었다가
마침내 대청봉 휩쓰는 바람소리로 달려들었다
눈감아라, 모두 눈감아라!
귀를 막아도 쏟아지는 폭설과 바람소리
침묵을 비집고 쏟아지는 까마귀소리, 얼어붙은 소리
노루들이 놀라 가지가 바닥으로 휘어지는 것 같았다
바닥으로 탕탕, 쓰러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눈보라는 연이틀 그치질 않았다
바닥으로 몸 눕히는 가지들이 많아졌지만
거북등 나무들은 끝끝내 자식들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마치 품에 안고 주검으로 지켜내려는 듯이
어린 가지를 떠받드는 저 나무들의 들끓는 모성,
그 눈빛이 바닥까지 휘어지는 가지를
온몸의, 부둥켜안는 숨결이 다시 거칠어지고 있었다
깊은 밤 편지∙1
임동윤
이파리를 버린 나무가 남겨둔
마지막 열정이 가볍게 바람을 탄다
밤하늘 허공에 꽂혀있는
뜨거운 플러그,
달빛 별빛을 받아먹은 저것은 사랑이다
양수 속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마지막 탯줄의 끈을 좀처럼 놓지 못하듯이
나무에 연결된 저 확고한 인연
어느 눈보라 치는 밤이거나
까치 한 마리 날아와 굶주림을 채우는
추운 새벽까지 나무는 허공 끝에다
뜨겁게 플러그를 꽂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저것은,
그대에게 내어줄 내 몸인지도 모른다
추운 사람들에게 내어줄
우리 뜨거운 플러그인지도 모른다
그대에게로 달려갈 우리 모두
밤하늘 허공에 내걸린 빨간 열매들이다
밤새 간당거리며 바람을 탄다
깊은 밤 편지∙6
임동윤
그 밤에는 폭설이 내리고
나뭇가지마다 이는 흰 바람을
내 마른 혀가 핥아먹고 있었다
별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몇 번인가
푸른 자작나무 숲에서 미끄러지고
꽁지 짧은 새들만 주둥이를 묻고 있었다
마침내 내 속으로 뚝뚝 떨어지는 별들
거친 물살이 집들을 허물고 가면
그 풍경에 갇혀 가동이 힘든 나의 몸
저 백색경보 속의 허리를 꺾는 정신들은
바닥까지 흔들다가 이윽고 보이지도 않았다
이 밤에도
저 흰 풍경 속으로 나의 말들은 달려가고
밤하늘은 펑펑 그리움을 토해놓는다
모든 것이 흰 물살에 갇히는,
나를 위한 것은 그 아무 것도 없다
퍼렇게 흰 적막한 눈을 가리고 섰다
매화가 피면
임동윤
개울물 꽝꽝 얼어붙은 대한 추위에
홀로 된 할머니 개울물 깨고 빨래를 하신다
언제 열릴지 모르는 친정길
맨손의 물먹은 옷들은 명태처럼 얼어붙고
손마디 뻘겋게 그리움을 비벼 빠신다
언제 열릴지 모르는 친정길
울진 읍내에서 덕거리로 가마타고 온 설움을
쩡쩡 방망이로 후려치신다
장지문 길길이 눈발 쌓이던 밤
다시, 11월
임동윤
내 속의 나무가 잎을 떨구고 있다
오늘 아침이 저물고 있다
건성건성 꿈을 단 아침이 떨어져 내린다
누가 나를 슬퍼할 것인가
주름 많은 이마 위로 눈발이 흩날린다
다 지나간 일이라고,
추억은 그런 거라고 비망록에 쓴다
노란 은행잎이 검게 내 발등을 적시는
다시, 11월
내 속의 나무는 잎을 매단다
노랗게, 노랗게 주둥이 치켜들고
캄캄한 수평선의 나를 마시고 있다
봉개동의 봄
- 제주시편∙1
임동윤
연분홍 물간이 거친 오름을 태우고 있다
토실토실 물오른 고사리가 고개를 밀어 올리지만
이 봄의, 잘 지낸다는 안부는 낯설다
마음의 병이 너무 깊은 탓,
행불인 이름들은 묘비명에서 늙어갈 뿐
해묵은 팽나무에 이는 바람은 얼음덩이다
오래 보듬어야 할 이웃들은
망각의 너울을 쓰고 사라져간다
고목나무 둥치의 탄흔처럼 숨은 얼굴들
태풍이 몇 번인가 거친오름을 다녀갔는가,
돌아와야 할 사람들은 생사조차 없다
밤마다 조릿대는 마을까지 내려와 울어대지만
고마독새* 똥소리기가 빙빙 도는 대낮
다시 봄이다
연둣빛 소리 천지가 다 환한데
이 눈먼 동굴을 지나면 아ㅓ침이 오려나,
저 가시뿐인 마른 찔레넝쿨에도
파릇파릇 물 차오르는 소리 가득하다
*봉개동: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행정동. 제주4.3평화공원이 있다.
*고마독새-굴뚝세. 똥소리기-솔개
오리튼물마을
- 제주시편∙3
임동윤
낡은 표지석의 마을 하나 있다
모든 행적은 죄다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오리무중 대숲만 무성하다
그 숲에 드는 바람소리만 찰강찰강하다
밤이면 창백한 달빛이 마른 개울에 쌓이고
새벽이슬 내린 돌담엔 유채꽃 울음만 흔들렸다
얼어붙은 하늘 끝에서 날아온 새 한 마리
초토화된 마을을 다 안다는 듯 훌쩍 날아간다
환삼덩굴에 휩싸인 표지석 위로
햇살 한 자락 내려와 차가운 정수리를 보듬지만
떠난 사람들 언제쯤 돌아올 수 있을까,
오랜 세월 저물도록 편지 한 장 없는
표지석 흐린 글자에 안개만 눈물을 새겨 넣는다
눈은 있으나 못 본 것처럼
입은 있으나 말이 없는 것처럼
한 시절을 견뎌야 했던 혼들만 남아
흔들흔들 풀무더기로 바람을 베고 있다
각명비에서
- 제주시편∙7
임동윤
죽은 이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
이름과 성별, 나이와 저승에 든 날이
아득한 별처럼 각비명에 박혀있다
저 밤하늘 은하수로 흐르는 별들
이곳 사람들은 모두 한 핏줄이라는 것,
우도에서 불어오는 찬바람만
행불 표석을 잡고 온몸 부르르 떤다
중간마을 굶주림 속에서
유탄이 별똥별로 흐르는 눈보라 속에서
젖먹이를 껴안고 동사한 엄마를
그 피눈물의 의미를
저 비설*의 조형물로 속죄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저마다의 욕망을 내려놓는 것,
그 날의 비밀들을 한 꺼풀씩 남김없이
벗겨버려야 한다는 것,
그날이 오기까지,
모든 눈 붉힌 바람들은 한 달포 쯤
이곳에서 눈물 철철 쏟아내야만 한다
*비설飛雪: 아기를 꼭 껴안고 죽어간 모성애를 표현한 조형물
밤과 낮 사이
- 제주시편∙10
임동윤
내가 밤이라면 그대는 낮이었다
내가 낮이라면 그대는 밤이었다
우리들은 경계를 지어야만 살아남았지
그대가 창백한 어둠일 때 나는 환한 대낮이었지
밤도 아닌 낮도 아닌,
해와 달이 사라진 나날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어야만 했어
우리들 욕망의 손아귀에서
마을과 바다가 신음하며 쓰러질 때
대들보와 서까래와 기둥들이 무너져내렸어
우리의 심장을 겨눈 칼은
푸른 대숲을 검붉은 피로 물들였어
마을은 참을 수없는 멀미로 흔들렸고
우리들은 번갈아 밤과 낮이 되었지
서로를 용서할 힘조차 없이
서로를 경계 밖으로 아득히 내몰고 있었지
우리 푸른 깃발은 어디쯤 꽂을까요,
씻어내지 못한 눈물이
수박만한 돌덩이로 내 몸을 짓이기지만
이젠 다만 서로 한 몸이 되어야 할 때
저 추운 바닷바람 속에서도
지금은 오직 대들보와 기둥을 세워야 할 때
동명항 삽화
임동윤
이곳 사람들 모두 배 한 척 띄우고 산다
젖은 어재를 말리는 해가 뜨면 바람처럼 설렌다
괭이갈매기는 만선의 돛대 끝으로 몰려들고
금박의 햇살 한 줌 물고 수평선으로 달려나가는
이곳 사람들, 파랑새 날갯짓보다 가볍다 경쾌하다
생선비늘 같은 그물을 던지며 살아가는 하루하루
해진 무릎을 기우는 저녁까지 바다를 경작한다
거친 물보라 속에서도 작은 등불 몇 개 내건다
저들, 정박할 부두는 어디쯤일까
따뜻한 음계의 불빛을 찾아 생의 질긴 밧줄을 풀며
떠나는 사람들, 뱃고동소리는 늘 살갑다
날마다 납작해진 내력을 바닷물에 헹구며
햇살과 잔물결의 바다를 맛깔나게 버무린다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저울질하며
멀고 재빠르게 물떼새처럼
이곳 사람들, 가슴에 배 한 척 띄우고 산다
자작나무 숲에 내리는 별
임동윤
작은 별인데도 너는 큰 눈을 가졌다
은은한 광채로 날아와 나의 별이 된다
광활한 하늘 길게 목을 늘이는 짐승처럼
내 오래 시선을 두는 나뭇가지 끝에
바람처럼 흔들리는 노래로 살아왔다, 너는
눈먼 아침의 저 산맥 너머에 있고
여린 새들의 날갯죽지에 주둥이를 묻는,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미완성으로
자작나무 끝으로 내려와 몸을 푸는 너, 별이여
오로지 순결한 눈이 되어야 마땅하리라
가장 보이는 것들을 경계해야 하리라
그 어떤 것에도 눈 주지 않고
다만 홀로 깨어나
나뭇가지 바람 스치는 소리를 듣는
고요가 고요를 깨우는 새벽까지
아주 작은 빛을 가진 작지만 너는 큰 별이다
단 한 번도 가까이 가 본적 없는
온몸에 투명한 빛을 두른 너를
나는 지금 나의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다만 가장 빛나는 별의 둘레를 돌며
밤마다 허공을 쓸쓸히 지키는 맑은 눈을 보았다
욕심 없이 빛나는 하늘을 대붕처럼 품고
눈 내린 자작나무숲을 지키는 너를 보았다
그 배후를 몰랐다∙1
임동윤
내가 떡갈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널따란 잎 탓이다
내가 대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그 숲에 바람이 사는 탓이다
내가소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가슴 콕콕 찌르는 바늘 탓이다
내가 동백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단번에 뚝뚝 지는 꽃 탓이다
널따란 잎은 바람이 머리채를 쓰다듬어 을 때마다
야들야들 흔들린다, 그 흔들림으로 꽃이 피고
열매를 단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
곧고 푸른 하늘을 움켜쥔 높이에서
품안에 바람을 거느리다가 어느 밤엔 우우우 바람소리로 우는
그 적막한 밤을 나는 몰랐다
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
자주 마주치는 맏ㄷ막다른 길목에서
축축이 젖는 눈의 무게를 털어내지 못하고 휘어지지 못해
끝내 허리가 꺾이는 그 겨울 눈덩이를
그 폭설의 밤을 나는 몰랐다
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
모든 꽃들의 후루루 지는 바람의 계절 속에서
단 한 번에 목을 치는 저 단호한 절규를
뚝뚝 모가지를 지르는 저 단호한 분노를
그 섬의 바닷바람을 나는 몰랐다
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내 뒤편의 풍경이 천길 벼랑인 아주 단순한 탓이다
봄날
임동윤
마른 벌판으로
너는 밀물지고 있다
긴 눈보라의 폭력이
마지막 매화나무 뿌리로 숨고
그 힘으로 일어서는 족보를
손끝 다닥다닥 힘줄을 매단다
철지만 참새들도 돌아오는
마지막으로 겨울 변경에서
바람은 푸르고 긴 손가락으로
사물의 몸에 플러그를 꽂는다
휭 휘일, 감전되는 몸
이 환장할 때를 우하여
가지마다 숨어있던 숨결이
뚝뚝 초록물감을 흩어놓는다
꽉찬 벌판으로
우리는 민물지고 있다.
내란의 시간
임동윤
차고 시린 밤에 빠진다
서슬 퍼런 파도가 나의 오장육부를 난도질하고
팔다리엔 날카로운 면도날이 선다
마지막 젊음이 피를 흘릴 때,
내 깊은 숲에서 나의 뼈들이 일어선다
깊은 어제의 까맣게 탄 가슴을 바다에 묻으면
또다시 돌아와 끈적이는 밤
내 이마에는 이 겨울 가장 사나운 눈보라가 치고
살아있는 힘들은 아파트 난간으로 굴러 떨어진다
보아라, 날마다 변질되어가는 내 몸을
퍼렇게 눈보라를 뚫고 가는 내 정신을
사방이 흰 벽이다, 푸득푸득 나의 새가 떨어진다
떨어지다가 가까스로 일어서지만
풀길 없는 어제의 문제들이 말갈기를 흔든다
지금, 어둠 저쪽은 눈보라
까맣게 등불 하나 켜든 내가
바람 흔들리는 허공을 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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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살아낸다는 말처럼 무모한 것이 없다. 책임진다는 말도 믿을 것이 못된다.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기 위해 바람 많은 언덕에 닻을 내린다.
혹여,
내가 찾는 꽃들이 피어있을지 모른다. 서성거린다.
그래도 내 머리에 별 하나 떠 있다.
.♣.
=============== == = == ===============
임동윤 詩集 [※사람이 그리운 날※]
[ 시인의 에스프리 ] -
소통을 위한 몇 개의 변명
임 동 윤
■ 시라는 영물靈物
오래 시를 붙잡고 살면서 아직 나는 마음에 드는 시 한 편을 캐내지 못했다. 투자한 시간에 비해 거둬들이는 것이 너무 미미했던 셈이다. 정말 비경제적이었다. 그런데도 신들린 듯 시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쳐있는 셈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냥 좋은 것을 어쩌랴.
그렇다면 시는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 고백하지만 매우 부끄럽다. 습작시절엔 시가 나를 구원해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시를 통해서 해결하곤 하였다. 자연히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시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루에 두 세 편을 쓴 적도 있었다. 그것이 시의 꼴을 제대로 갖추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좋아서 쓴 셈이다.
습작단계를 넘어서는데 족히 또 몇 년이 걸렸다. 어느 날 문득 누가 내 시를 읽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자면 내 시를 알리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내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쓴 작품들이 활자화되는 일은 큰 기쁨이었다. 발표지면을 확보하기 위해 시동인에 가입했고, 문학공모전이라면 허락되는 대로 부지런히 투고를 했다. 물론 커다랗게 내건 상금이 탐나기도 했지만 내 작품의 수준을 공개적으로 검증받자는 의도도 다분히 깔려 있었다. 그리하여 몇 번인가 공모전에서 당선되는 영광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나의 갈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동인지에 실리거나 당선된 작품에 대한 평자들의 언급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문화예술지원금을 수혜 받아 일곱 권의 시집을 발간했지만 평자들의 눈에 들지 않았는지 시집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다만 지방신문에서 그나마 시집 소개를 해 주어서 섭섭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캄캄한 어둠에서 나를 구원하고, 자신의 얘기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그에 합당한 평가를 기다리는 일은 살아있는 순간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제 여덟 번째 시집『사람이 그리운 날』을 세상에 선보인다. 시집 여덟 권을 냈는데도 나는 내 시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어떻게 써야 좋은 시인지, 어떤 주제를 다루어야 독자들이 좋아하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 시는 살아있는 영물靈物이어서 고정되어 있지 못하고 언제나 꿈틀거린다. 어떤 형체와 색깔도 확연하지 않다.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면 어느새 보이지 않는 숲으로 숨어버리고, 손으로 움켜잡으려고 힘껏 손을 뻗으면 화들짝 놀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린다. 그렇다고 코로 귀로 냄새를 맡거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만큼 가까이 가면 만나리라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시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코로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영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 기막힌 영물을 마음의 앵글에 담아보려고 현미경 눈을 크게 뜨고 돌아다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시의 텍스트, 시의 씨앗이라고 하는데 그 씨앗을 발아시킬 능력이 아직은 멀게만 느껴진다. 그 씨앗의 발아를 위해 알맞게 물을 주고 알맞은 햇살과 따뜻한 체온을 준비할 뿐이다.
■ 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력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시를 읽는 독자와 소통이 되게 써야한다는 생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시인들이 익히 써온 낡은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알겠는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드는 살아있는 언어와 나만의 상상력으로 감동 깊게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시를 쓸 때마다 나를 짓누른다.
① 강은
단단한 뿌리를 가졌다
무딘 칼날로는
아무 구멍도 낼 수 없다
저 설해雪海의 자작나무가
제 몸을 털어내듯이
바닥이
제 구실을 할 때까지
강은 단단한 뿌리 속
차가운 눈물을 가졌다
-「단단한 눈물」전문
② 내가 떡갈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널따란 잎 탓이다
내가 대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그 숲에 바람이 사는 탓이다
내가 소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가슴 콕콕 찌른 바늘 탓이다
내가 동백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단번에 뚝뚝 떨어지는 꽃 탓이다
널따란 잎은 바람이 머리채를 쓰다듬을 때마다
야들야들 흔들린다. 그 흔들림으로 꽃이 피고
열매를 단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
곧고 푸른 하늘을 움켜쥔 높이에서
품안에 바람을 거느리다가 어느 밤엔 우우우 바람소리로 우는
그 적막한 밤을 나는 몰랐다
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
자주 마주치는 막다른 길목에서
축축이 젖는 눈의 무게를 털어내지 못하고 휘어지지 못해
끝내 허리가 꺾이는 그 겨울 눈덩이를
그 폭설의 밤을 나는 몰랐다
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
모든 꽃들이 후루루 지는 바람의 계절 속에서
단 한 번에 목을 치는 저 단화한 절규를
뚝뚝 모가지를 자르는 저 단호한 분노를
그 섬의 바닷바람을 나는 몰랐다
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내 뒤편의 풍경이 천길 벼랑인 아주 단순한 탓이다
-「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 1」전문
위의 시「단단한 눈물」과「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1」에서 나는 제목과 내용을 나도 모르게 낯설게 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①에서 눈물도 단단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인데, 그러자면 적잖은 설득이 필요할 것 같았다. 꽁꽁 언 겨울강의 이미지를 생각하였다. 얼음으로 뒤덮인 강은 부드러운 물을 가졌으나 분명 단단한 뼈를 가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저 여린 물의 강의 굳건히 바닥에 내린 뿌리를 우리들이 캐낼수는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봄이 되면 부드러운 눈물 하나로 단단하게 언 뿌리를 녹일 수 있다는, 이른바 논리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해 보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눈물도 때로는 얼음처럼 단단해져서 어떤 결말을 도출해내는 것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되었다. 여린 것이 단단해지는 것을, 단단한 것이 소리 없이 단번에 허물어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어떤 사건을 만나면 눈물도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②에서 모든 것의 결과는 그 이면의 배후, 즉 배경이 힘을 보태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결말의 이면엔 동기와 과정이 있다는 것을 하나의 나무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였다. 나무의 특서에 따라서 그 배경이 다르며 그 배경을 밑천으로 많은 일들이 제 각각 이루어진다는 것을 나무들의 삶을 빗대어 표현하고자 했다.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이 이해하는가의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하나의 작품에서 낯설게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러면서 소통을 생각할 때, 그 낯설음이 하나의 감동으로 와 닿는 것은 신의 세계이다. 시는 바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영물이기 때문이다.
■ 소금 같은 소통을 꿈꾸며
요즘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욕망을 가장 먼저 부풀리며 사는 듯해서 공연히 편치 않다. 누구에게나 욕심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우리의 속성이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그 중심에 서기 위하여 사람들은 노력한다. 그 중심에 선다는 일은 지난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우러러보는 중심에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군상들을 종종 만난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면을 썼거나 닭 잡아먹고 아무렇지 않게 내미는 오리발 몇 개는 미리 준비해둔 듯하다.
도덕과 윤리가 멀리 깊은 바다에 소리 없이 함몰한 세상이다. 가벼운 몸으로 사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인가. 도대체 정의는 어디쯤 있는가. 저 하늘 유유히 나는 새들의 자유로움이 마냥 그리운 저녁이다.
눈 내린 산골집 마당에서
참새 떼가 푸른 아침을 몰고 한참을 놀다갔다
눈향나무에 이는 은물결 찰랑이는 햇살을 맘껏 주어먹다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수없이 많은 발자국을 찍어주고 갔다
혹한과 바람 속을 견뎌온 저 말간 발들
수십 번 오갔을 텐데 눈밭은 오히려 솜사탕처럼 부풀어있었다
막 문을 여는 꽃봉오리처럼, 그것은
어느 것 하나 다치지 않게 제 몸의 무게를 줄인 탓이다
저 희고 순결한 눈밭에 검푸른 점 하나 남기지 않으려고
적게 먹고 날개의 부력을 한껏 높인 탓이다
어쩌면 새는, 누군가를 짓뭉개는 일을 몰랐을 것이다
아니, 알고도 버렸을 것이다
저마다 자리를 독점하기 위해 눈 붉히며 몸집을 불리는
그대들과는 애초부터 생각이 달랐을 것이다
어깨마다 걸린 무거운 짐이
저 순결한 눈밭에 검고 깊은 자국을 남긴다는 것을
새들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것이다
바람의 길을 허허롭게 가는 가랑잎처럼
쌓인 눈덩이를 몸 흔들어 스스로 무게를 줄이는 소나무처럼
눈 내린 산골집 마당 한가운데 서서
검게 찍힌 내 몸무게를 어떻게 할까 고민, 고민하다 왔다
-「가벼운 것이 그리운 저녁」전문
어느 해 겨울, 한 사나흘 쉬려고 적막한 산골집에 간 적이 있었다. 종일 눈이 내려서 온 마을이 흰 것으로 가라앉고 춘천으로 가는 버스도 끊겨있었다. 대설주의보에 갇힌 산골집은 그야말로 절해고도였다. 그런데 다음날, 눈 그친 마당으로 참새 떼가 날아와 한참을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수많은 발자국을 찍어대며 재재거렸다. 그런데도 눈 쌓인 마당이 더러워지기는커녕 솜사탕처럼 더욱 하얗게 부풀어 있었다. 그것은 새들이 발레를 하듯 발끝을 들고 가볍게 눈밭을 오간 탓일 것이었다. 마치 눈밭이 더러워질까봐 어느 곳 하나 다치지 않게 제 몸의 무게를 줄인 탓으로 여겨졌다. 저 새들의 남을 위한 배려를 아침 눈밭에서 보는 듯해서 공연히 부끄러웠다.
돌아보면 우리 주변은 늘 시끄럽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남을 위한 배려를 찾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남을 배려하다보면 재빠른 사람보다 손해보기마련이고 뒤처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추월하는 게 된다. 그래서 씁쓸하다 못해 참담하다.
그리하여 세상은 스스로 살아내는 법을 터득하게 만든다. 세치의 짧은 혀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가증스럽게 내뱉고, 나는 또 그 내뱉은 말 때문에 밤새 끙끙 앓는다.
마음엔 늘 나 아닌 그 사내가 살고 있다
내 마음의 행로를 따라 제대로 걷지 못하게 한
그와 이처럼 오래 동거해왔다니
단칼에 그를 뿌리칠 수 있는 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조금씩 재치와 부끄러움과 체면을 알면서
내 얼굴은 철판처럼 두꺼워지고 가면이 되었다
그때부터 그와 나 사이엔 단단한 끈이 있어
세 치 짧은 혀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살아왔을 뿐
그리하여 상처투성이 그늘만 남았을 뿐
흐르고 싶을 때 흐르는 강물은 얼마나 편할까
날고 싶을 때 허공을 나는 새들은 얼마나 편할까
먹고 싶을 때 꿀꿀 먹는 돼지는 또 얼마나 편할까
아직 저 강물처럼 흐르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허구의 강을 허우적거리는
간사한 내 세치의 혀, 그 혀가 건너는 흐린 세상
이 몹쓸 놈의 혀를 단칼에 잘라낼 수는 없을까
밤새 담금질로 눈먼 혀를 두드려볼 뿐
너무 오래 늪지를 걸어온 발이 습관처럼 올라가는
우리 가파른 삶이 출렁거리는 바다
굵은 소금으로 내 세 치 혀를 염장해볼 뿐
-「마음그늘․1」전문
혀처럼 간사한 것이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혀. 믿지 못하면서도 믿는다고 말하는 이 간사한 혀, 참으로 말은 녹음하지 않는 한, 흐르는 강물처럼 흔적이 남지 않아서 좋다.
이 혀가 처세술의 왕이다. 오늘을 살아내는 방법을 터득한 자여, 혀 앞에서 넙죽 엎드려 절하라. 당신이 있는 한 우리 사이가 늘 웃음으로 유지되고 이 사회가 푸르고 건강한 모습으로 순화된다고, 허허 나는 웃는다. 공허한 웃음을 질질 흘린다.
햇살은 무서워!
평상에 누운 노인들 팽하고 돌아눕는다
하늘을 잡고 놀던 팽나무도 그들의 잠을 팽팽 건드려본다
시린 가슴을 감추려는 듯 새우처럼 구부리고
햇살이 간지러워 귀만 살짝 열어놓는다
산수유 노란 귀가 바람에 연분 나는 마을 한복판
3월 평상은 골라잡기 힘든 놀이터였다
웅크린 몸을 햇살이 펴려 해도 자꾸 구부러지기만 할 뿐
어쩌면 저들의 봄은 먼 우주를 날아다닐지도 모른다
까칠해진 숨결이 막 돋아나는 팽나무 잎에 짓눌려 있다
겨울 용케 견딘 팔다리가 참을 수 없이 간지럽다
잎이 돋을라나
어떤 인기척도 침범할 수 없는 곳으로 가서
오로지 깊이 잠들고 싶다
햇살 한 자락도 연둣빛 잎사귀도
이제 그들 차지가 아니다. 저들은 살아있는 미라다
몸 돌돌 말아 올리는 평상의 늙은 미라
납작하게 웅크린 이 순간이 최후의 평화라는 듯
버림받은 자의 영원한 안식처가 이곳이라는 듯
바람이 흔들어 깨워도 머리맡에서 참새 떼가 짹짹거려도
마냥 햇살을 온몸에 덮고 누운 몸
마지막 흙덩이를 덮고 육신의 잠을 벗을 때까지
아, 햇살은 무서워!
귀만 벌벌 열어놓고 있다
-「마음그늘․2」전문
급격한 고령화로 노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요즘, 노인들은 설 자리가 없다. 배운 것이 없고 경제적으로 빈곤한 노인들이 모여드는 곳은 도시에서는 경로당이고 시골에서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인 팽나무 그늘 밑 평상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하는 일 없이 하루를 보낸다. 아니, 하루를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그저 소일거리로 화투를 치거나 시간을 보내기 위해 티브이를 보는 정도다. 지극히 비생산적이다. 이들에겐 꿈이 없다. 아니, 이미 꿈을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연명하는, 굴욕적인 삶을 사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도회지는 아파트단지마다 경로당이 있고 관청에서 운영하는 복지회관이 있어, 거기서 끼니를 해결한다. 그러나 노인들이 태반인 농어촌에서는 일손도 달리고 또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들이 편히 쉴 곳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이른 봄, 서늘한 바람이 가시지 않은 동네 팽나무 그늘로 모여든다. 몸이 아픈 노인은 새우등처럼 한껏 몸을 구부리고 봄 햇살을 쪼이느라 길게 드러눕는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농촌 현실인 것을 어찌하랴.
그 밤에는 폭설이 내리고
나뭇가지마다 이는 흰 바람을
내 마른 혀가 핥아먹고 있었다
별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몇 번인가
푸른 자작나무 숲에서 미끄러지고
꽁지 짧은 새들만 주둥이를 묻고 있었다
마침내 내 속으로 뚝뚝 떨어지는 별들
거친 물살이 집들을 허물고 가면
그 풍경에 갇혀 기동이 힘든 나의 몸
저 백색경보 속의 허리를 꺾는 정신들은
바닥까지 흔들다가 이윽고 보이지도 않았다
이 밤에도
저 흰 풍경 속으로 나의 말들은 달려가고
밤하늘은 펑펑 그리움을 토해놓는다
모든 것이 흰 물살에 갇히는
나를 위한 것은 그 아무것도 없다
퍼렇게
흰 장막만 눈을 가리고 섰다
-「깊은 밤 편지․6」전문
욕심 없이 사는 일은 죽어서나 가능한 일일까. 이 일은 예수그리스도가 되고 석가모니가 된다면 가능한 일이리라. 한 사나흘 폭설이 내리는 어느 섬에 혼자 유배되면 욕심을 버리게 될까. 이러한 생각이 생각을 낳는 요즘이다. 그러면서 가볍게 사는 법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나를 위한 것에서 온전히 해방될 때, 나를 생각하지 않는 나의 삶이 있다면 그것은 곧 나에게서 가벼워지는 일이 될 것이다. 결코 가벼워질 수 없는 욕망이 나를 다시 저 광활한 시의 세계로 끌고 간다.
매일 나를 내려놓는 일을 하자고 다짐하지만 언제나 말 뿐, 나는 언제나 욕심을 낸다. 만약 거짓을 고하면 바로 죽음이라는 율법이 나를 옭아맨다면 나는 단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속고 속이면서, 아니 속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사는 일이 이 세상에 없다면 우리 인간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공연히 허해지는 마음을 애써 달래본다.
■ 사람이 그리운 날
어느 따뜻한 봄날 목련나무 아래에 서면 문득 사람이 그리워진다. 어릴 적 외갓집 지붕에 한가롭게 걸린 구름 한 덩이를 보면 누군가의 이름이 그립던 것처럼 문득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목련나무의 그늘이 이쪽 강물을 풀어 저쪽 지붕까지 마치 명주실 몇 꾸러미를 펼쳐놓듯이 그렇게 마음은 깊어간다.
햇살 맑은 툇마루에 앉아
외갓집 지붕의 흰 그늘을 바라본다
희디흰 그늘이 뒤덮은 지붕은
구름속이다
잡힐 듯 나지막한 허공이다
그 하늘로 참새들이 날갯짓을 하고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배추흰나비도 나풀거릴 것 같은
이따금 산비둘기 울음도 날아와 앉는다
저 흰 물결, 어디서 온 걸까
할머니가 심은 벽오동나무 그늘일까
온통 흰 그늘로 지붕을 덮은
목련 한 그루
헐벗은 누더기를 벗겨내듯
환하게, 봄 한철 견디고 있다
이쪽 강물을 풀어 저쪽 지붕까지
마치 명주실을 펼쳐놓듯이
-「사람이 그리운 날․ 1」전문
유년시절, 폭설은 마을을 덮고 산짐승까지 먹을 것을 찾아 마을을 내려온 날도 지금 생각하면 사람이 그리운 날이라고 여겨진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은 ‘참’일 것이다. 누구를 미워하는 일조차 없는 세상이라면 사람이 그리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없으리라.
눈 내리는 창 안으로 바람이 분다
그럴수록 추억은 꽁꽁 얼지만
달도 어는 강 끝을
그런 달밤을 한 사내가 헤매고 있다
그 달빛이 내 안에 산다
그 달빛이 밤마다 베갯머리에 있다
누가 나를
저 커튼 밖으로 데려가 다오
추억이 없는 얼굴은
비로소 나를 기억하리라
벌거숭이 나뭇가지에 흰 깁을 내리는
저 착한 눈송이처럼
추억이 없는 나라에 사는 나를
추억이 나를 퍼다 버린다
저탄더미에 쌓이는 눈발처럼
그렇게 나는 이 밤
기억을 추억 속으로 돌려보낸다
깊은 동굴 속을 파 들어간다
아무도 안다고 하지 마라
-「사람이 그리운 날․5」전문
■ 배경, 혹은 배후라는 이름
요즘 부쩍 배경, 혹은 배후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배경은 그 사람의 뿌리를 말하기도 한다. 뿌리가 든든한 나무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용비어천가에 나와 있다. 배경은 힘이다. 그런데 그 배경은 자칫하면 일을 그르친다. 배경 혹은 배후만 믿고 설친 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아름답지 못했다. 그런 배경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을 키운다. 당당하게 중심을 향해 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바람은 언제나 나를 꼬신다
집을 버리라고 뜨겁게, 뜨겁게
나를 달군다
바람은 이제 나의 적이다
아침마다 배웅하는 아내의 눈빛이
투명한 물빛으로 귓불을 적실수록
나의 하루는 저물어
감당할 수 없는 강물이 되는 것을 어쩌랴
아침마다 부푸는 절망이
나를 팽개치지 않는다면
나의 욕망은 저 수평선 끝으로 배를 몬다
한 개 나뭇잎 같은, 나의 항해
눈 감고
파랑주의보조차 달게 맞을 때
바람은 언제나 나의 적이다
-「그 배후를 나는 몰랐다 ․ 2」전문
중심에 머무르지 못해도 아름다운 것들은 많다. 오늘 주변부에 머무르는 이웃들은 작지만 아름다운 꽃이요 풀이다. 저 들판에 지천으로 깔리 개망초와 애기똥풀꽃과 오랭캐꽃들을 보라. 모두 작지만 큰 우리 이웃이다. 중심에서 밀려났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작아서 조명을 받지 않아서 좋고 너무 흔한 것들이어서 눈여겨 보이지 않아서 들킬 염려도 없다. 그냥 혼자서 묵묵히 밤이슬을 견디는 지혜를 배우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한 세상이 아닌가. 공연히 허세를 부리고 남을 짓누르고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중심에서 사는 일보다 비록 아무런 배경은 없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길을 찾는 방법적인 삶이 진정한 축복인 것을 새삼 깨닫는다.
감곡 진달래공원묘원에
나는 아버지를 내다버렸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직 무성하다
허리 꼿꼿이 펴고 다니신다
무섭다
여든 아홉의 생애가 꼬장꼬장하다
높은 곳에서 흐르는 것이 물이라지만
거꾸로 흐를 수는 없나
그런 반역을 이 묘원에서 꿈꾼다
마지막 날의 평화를 꿈꾼다
때론 모반도 힘이 된다면
시간이여, 나는 나를 거스르고 싶다
아직은 한 번도
건강검진을 받은 적 없다
나는 어머니의 DNA가 무섭다
어머니 같은 내가 무섭다
-「북망北邙 근처」전문
시가 한 인간의 유적에 관한 결과물이라면 여기에서 누구나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잊히지 않은 과거며, 오늘을 존재하게 하는 삶의 등가물이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어머니의 DNA를 닮아서 그런지 병원을 멀리하고 산다. 그러나 자신의 몸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오랜 세월 병석에 누워 시간을 축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길일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힘닿는 데까지 즐기면서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사는 길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일이라면 나는 그나마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것이 비록 돈이 되지 않을지라도 나는 즐겁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아니면 깊은 잠에 들었다가, 아니면 어느 숲에 들었다가 고요히 아주 고요히 잠들고 싶은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깊은 병치레를 하지 않기를 마음으로 늘 기도드린다. 그러면서 즐겁게 아주 젊게 시를 쓰고, 나의 시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 일이 요즘 내가 소망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 내가 쓴 시가 내 시를 읽는 독자에게로 가서 조금이라도 소통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커다한 날개를 달고 훨훨 하늘로 날아올라 한 다른 세상을 만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우주의 작은 점 같은 나의 존재를 깨닫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날마다 찾아 나설 때, 비로소 시의 영물靈物이 가만히 와 닿을 것이라고 굳게 믿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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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이제 여덟 번째 시집『사람이 그리운 날』을 세상에 선보인다. 시집 여덟 권을 냈는데도 나는 내 시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어떻게 써야 좋은 시인지, 어떤 주제를 다루어야 독자들이 좋아하는지 여전히 모르고 있다. 시는 살아있는 영물靈物이어서 고정되어 있지 못하고 언제나 꿈틀거린다. 어떤 형체와 색깔도 확연하지 않다.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면 어느새 보이지 않는 숲으로 숨어버리고, 손으로 움켜잡으려고 힘껏 손을 뻗으면 화들짝 놀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린다. 그렇다고 코로 귀로 냄새를 맡거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만큼 가까이 가면 만나리라 막연하게 생각한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시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코로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영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 기막힌 영물을 마음의 앵글에 담아보려고 현미경 눈을 크게 뜨고 돌아다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시의 텍스트, 시의 씨앗이라고 하는데 그 씨앗을 발아시킬 능력이 아직은 멀게만 느껴진다. 그 씨앗의 발아를 위해 알맞게 물을 주고 알맞은 햇살과 따뜻한 체온을 준비할 뿐이다.
- 「시인의 에스프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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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동윤 시인∥
∙ 경북 울진 출생
∙ 196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 1992년 문화일보 경인일보 시조 당선
∙ 199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 시집으로 <연어의 말> <나무 아래서> <함박나무가지에 걸린 봄날> <아가리> <따뜻한 바깥> <편자의 시간> 등 7권
∙ 수주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 수상
∙ 현재《시와소금》발행인 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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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구문에 담긴 낮은 목소리... 임동윤 시인 작품집 펴내
[경상일보] 승인 2015.08.03
◀ 사람이 그리운 날 // 임동윤 지음 / 소금북 / 139쪽 / 9,000원
임동윤 시인의 작품집 <사람이 그리운 날>이 소금북시인선 1집으로 나왔다. 임동윤 지음, 소금북 펴냄, 139쪽, 9000원.
시집은 1부 ‘마음그늘’, 2부 ‘매화가 피면’, 3부 ‘봉개동의 봄’, 4부 ‘자작나무 숲에 내리는 별’ 등 4부로 구성되어 시인의 주옥같은 시편을 담았다.
시인의 시 매력은 풍경의 내면화와 내면의 풍경화가 겹쳐지는 지점에 위치한다. 그의 시에서 풍경 속에 스며있는 미세한 감정의 떨림은 ‘단호한 비명’이거나 ‘불안한 눈빛’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주변부에 머무르는 것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시선이다.
단정한 구문에 담긴 낮은 목소리, 적막한 이미지에 실린 선비정신, 자본주의 세계의 모든 소유를 초탈한 부재의 현실이 이 시집을 관류한다. 나이 들면서 바라보는 어린시절의 추억을 통해 인간답게 사는 길을 찾아 떠나는 진정한 마을이 어딘가에 존재하기를 기대한다. 그 길의 도정에서 시인은 ‘사람이 사는 마을’을 꿈꾼다.
임 시인은 경북 울진 출생으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강원도 춘천에서 보냈다. 196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순은의 아침’이 당선돼 문단에 이름을 처음 올렸다. 1970년 강원도 최초의 시동인 ‘표현시’를 결성한 뒤 작품활동을 본격화했다. 수주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계간 시전문지 <시와소금> 발행인 겸 편집주간이다. 박철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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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새책] 사람이 그리운 날
매일신문 2015.07.25
사람이 그리운 날 / 임동윤 지음/ 소금북 펴냄
임동윤 시인의 8번째 시집이다. '단단한 눈물'부터 '내란의 시간'까지 모두 57편을 수록했다. 저자는 "시는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코로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영물"이라며 "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마력도 갖고 있다"고 했다.
가령 시 '단단한 눈물'에서 눈물이 지닌 특성 중 하나인 단단함은 쉬이 인지되지 않아 느끼기 힘든 것이지만, 저자는 시를 통해 구현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우리 삶 속 배경, 배후이기도 하다. 저자는 나무의 배경, 배후이며 그래서 나무가 설 수 있는 기반인 뿌리로 우리네 세상살이를 설명한다. 물론 중심에 단단한 힘이 있어 설 수 있는 나무도 있지만, 그 주변부에 있더라도 스스로 힘을 키우며 당당하게 서는 들꽃이며 풀도 있다.
울진 출신인 저자는 196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간이 많은 흐른 뒤인 1992년 문화일보와 경인일보, 199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다시 당선되기도 했다. 시집 '연어의 말' '아가리' '편자의 시간' 등을 펴냈다. 현재 계간 시전문지 '시와소금' 발행인 겸 편집주간으로 있다. 139쪽, 9천원.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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