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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의대반 등 기괴한 현상 속 사교육비 27.1조
학벌주의 인한 변별과 서열화가 과도한 경쟁 이끌어
우물 안 능력주의와 공정에만 집착하는 개구리들
상위계층 지위 유지 전략에 온 국민 휩쓸리는 형국
윤 정부 부자감세 등이 역대 최대 사교육비 근본 원인
지난해 사교육비 지출은 역대 최대인 27조 1천억 원을 기록했다. 사교육업체 수도 크게 늘어났지만 주요 사교육업체의 매출도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의대증원 정책 등의 영향으로 초등 의대반이 생겼고, 심지어 유치원 의대반까지 생겨서 유치원생에게 미적분까지 가르친다고 한다. 가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괴한 일들이 이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교원들의 93.7%도 사교육이 더 확대되었다고 답했다. 윤석열 정부가 ‘공정한 수능’ 기치 하에, 수능 킬러문항으로 이권을 챙기는 사교육 카르텔을 잡겠다고 칼을 뽑았지만, 그것은 거의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금방 알아챘다. 윤석열 정부의 모든 교육 정책은 온 국민과 학부모를 더 심한 성적 경쟁, 즉 사교육을 부추기는 쪽으로 갔기 때문이다.
윤 정권의 ‘사교육 카르텔 척결 쇼’ 비웃는 괴물 사교육
외국에도 사교육은 있지만 한국처럼 사교육이 공교육 자체를 무력화할 정도로 괴물이 된 나라는 없다. 사교육비 증대가 국가와 사회에 어떤 주름을 남기는지는 모든 국민들이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부모의 경제적 부에 의한 교육투자의 격차는 사회정의에 심각하게 반하는 것이지만, 사교육비는 가계의 가처분 소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어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학부모의 노후 복지에도 적신호를 준다. 그래서 역대 모든 정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입시정책을 수도 없이 변경했다. 그런데도 정권과 사회를 비웃듯이 사교육 규모는 점점 더 커져 왔다. 그렇다면 과연 사교육은 우리 정치와 사회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인가?
사교육 투자는 경쟁적 입시가 유도한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 내신성적 향상을 위해 학원 수강을 하기도 하지만, 그 경우도 학교 교육의 보충이 아니라, 학교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맞춤형 지도의 성격을 갖는다. 물론 사교육에도 교육적 측면은 있고 사교육도 엄연히 교육기관인 것은 맞다. 그러나 사교육이 주로 공급하는 것은 시험 승리를 위한 정교한 기술 습득이다. 그런데 이 기술은 입시경쟁이 심할수록,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면 바뀔수록, 학교가 대학이 요구하는 전형에 맞추어 입시 지도를 하기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리고 수능시험의 변별을 위한 기법이 더욱 정교해져서 통상의 학교 수업으로는 그 기법을 습득하기 어려울수록 더욱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교원들은 사교육을 가장 많이 유발하는 대입 전형으로 수능 제도(61.1%)를 1위로 꼽았으며, .'사교육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입시 경쟁의 심화'(73%), 사회적 분위기(51.1%) 학부모의 높은 기대(46.5%), 교육정책의 불확실성(36.6%) 순으로 답했다.
상위계층 지위 유지 전략이 온 국민 끌고 다니는 사교육 시장
역대 정부는 한 번의 수능 시험 성적이 학생의 인생 진로를 좌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입시 전형의 다양화, 특히 각종 비교와 평가를 포함한 학생부 종합성적을 반영하도록 하였고, 대학에도 학교의 내신 평가에 기초한 수시모집 확대 등을 권장했다. 그러나 수능이 건재하는 한 이 모든 다양하고 복잡한 입시 전형 정책은 학생들과 학부모의 부담만 가중시켰다. 또한 의대와 명문대의 입학 사정에서 수능 최저기준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수능의 지배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학생들의 상향 평준화로 수능 1. 2 점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학교에서의 내신 상대평가가 건재하고, 내신 성적을 위한 학원 수강도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교육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사교육은 정말 그 투자 효과가 입증되었는가? 그렇다. 부분적으로 입증되었다. 재수 이상의 입학생 비율이 계속 늘어나고, 의대 입학생 80%가 N수생(재수 이상)이라는 각종 자료가 그것을 말해준다. 즉 학원과 기숙학원을 다니지 않은 우수한 이과 출신 학생들이 최상위권 대학의 인기학과나 의대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증거다. 물론 사교육 투자는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학부모의 불안감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교육은 최상위권의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는 분명히 효과적인 투자전략이지만, 나머지 학부모들에게는 울며겨자먹기로 따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의 압박, 불안심리의 반영이라는 점도 있다. 당연히 상층 학부모들의 교육투자 행태가 그 아래 계층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상층의 가족 투자 전략, 지위 유지 전략이 온 국민에게 영향을 준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 공정성에 대한 집착이 부른 수능의 퍼즐게임화
윤석열 정부는 학원, 강사, 교사들 간의 킬러문항 출제를 둘러싼 이권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사교육을 잡겠다고 나섰다.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킬러문항은 학생 성적의 엄격한 변별, 즉 수능 출제의 공정성과 객관성, 승복 가능성을 목숨처럼 여기는 국민, 학부모들의 민감성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것은 어떤 카르텔의 음모가 아니다. <수능해킹>(창비, 2024)의 저자들이 밝혀낸 것처럼 오늘날 수능 시험은 학력과 실력 평가가 아닌, 거의 퍼즐 맞추기 게임이 되었으며, 예상 문제들은 주로 수험생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지고, 문제은행이라는 거대한 컨텐츠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수능 문제의 생산자가 곧 소비자다. 기성세대가 알고 있는 수능과 오늘의 수능은 다르다. 수능 문제의 생산과 소비 자체가 거대한 시장이 되었으며, 수능은 이제 문화로서 정착했다.
한국의 수능시험, 대학입시는 다수를 탈락시키기 위한 장치이며, 그 원리는 엄격한 변별이며, 경쟁이 치열할수록 변별의 기법은 정교해지고, 시험의 정당성은 변별의 합리성과 공정성에 있다. 의대나 최상위권 대학 입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할수록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절차적 공정성에 더 집착하고, 이 공정성에의 집착이 더 엄격한 변별을 요구하며, 변별의 요구는 사실상 모든 수능 문항을 준킬러문항으로 만들어 버렸다. 내신 성적에서 실패한 학생들은 수능에서 승부를 걸기 위해 자퇴를 하거나 재수의 길로 가기 때문에, 수능 시험의 병목은 더욱 심각해진다. 내신의 확대는 수능을 고도의 경쟁적 시험으로 압박한 요인이 되었다. 수능시험 문제가 학력 혹은 수학능력의 측정과 무관한 엄격한 변별의 요구에 부합하는 퍼즐게임으로 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열망하는 많은 교육자나 지식인들은 여전히 수능 자격고사화, 내신 위주의 대입 선발, 수능 상대평가 폐지 등을 외치치만, 그러한 주장은 1~2점 차이의 엄격한 변별을 요구하는 학부모, 줄세우기 서열 상위의 학생을 순서대로 싹쓸이 하려는 대학에게는 한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수능이 반교육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공정한 변별의 정언명령을 거부할 어떤 대안도 생각해 낼 수 없다. 수능이 실력 평가의 측면보다는 퍼즐게임이 되면서, 패배를 승복하지 않는 수험생의 재수, 삼수 무한도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학 서열화 둔화되면 사교육 줄일 수 있다는 당연한 원리
공교육의 결손이 사교육을 키웠다는 통상의 지적은 부분적으로는 진실이다. 과거 방과 후 학교, EBS 인터넷 강의 등이 사교육을 잡는 방법으로 도입되었지만, 그것은 학교를 학원처럼 만들겠다는 시도와 다름 없었다. 그것은 교육적 원칙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즉 학교는 수능 대비를 위한 기술 습득 기관이 아니다. 교육자로서 교사는 입시 성공을 위해 학생을 조련하는 역할을 잘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므로, 학교공부가 입시에 종속되면 이 조련사의 역할을 훨씬 더 잘하는 사교육 강사들의 인기는 더욱 치솟는다.
안정된 일자리, 좋은 직업 획득의 기회가 더욱 희소해질수록, 학부모들은 의대나 유명대학 상위권 학과의 입학이 자녀의 미래를 더 확실하게 보장해준다고 믿지 않을 수 없고, 의대 등 안정된 자격증을 부여해주는 학과에 입학하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루저가 될 위험성이 크다고 세상 사람들이 믿으면 믿을수록 수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즉 사교육은 수능이라는 병목의 과부하의 산물인데, 변별과 서열화라는 경쟁게임 자체의 논리와 학벌주의와 대학 서열화라는 사회적 변수에 좌우된다. 반대로 말하면 사회적 변수, 즉 학력주의와 대학의 서열화가 둔화될수록 학부모들은 무리한 사적 교육투자를 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고, 시험이 상대평가가 되거나 대입이 수능성적 서열에 기초하지 않게 되면 학부모와 학생들이 사교육으로 몰려갈 유인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입시경쟁은 결국 사회적 지위 확보 경쟁이므로 교육과는 원칙적으로는 무관하다. 27조 원의 사교육비는 진정으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청년을 육성하는 데 지출되지 않고, 변별에서 승리하기 위한 게임에 지출되는 돈이다. 그렇게 많은 지출이 세계를 선도하는 과학자나 인문학자를 배출하는 것과는 무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퍼즐게임의 승리자들은 자신에게 많은 투자를 해준 부모님에게 감사할지언정 그 게임 밖의 사회, 자신의 지위를 보장해줄 수도 있는 사회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갖기는커녕 언제나 자기보다 노력과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을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극도의 분노와 박탈감을 갖게 된다.
수능성적대로 사회적 보상 서열 정하는 것이 공정일까?
수능성적을 둘러싼 공정에의 집착은 세상의 변화와 무관한 우물 안 개구리들 간의 죽고 살기 전쟁이다. 우물 밖에서 천재지변이 발생하여 우물이 막히거나, 우물에 독이 들어오면 모두가 죽는다. 그런데도 시험 성적이 전부인 줄 안다. 그리고 자신들이 ‘노력’과 능력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정투쟁이 만연한다. 그러나 수능성적대로 사회적 보상의 서열을 배치할 수 있는가? 그런 공정은 도달 불가능한 목표다.
의사, 변호사, 그리고 명문대 졸업생이 성적 서열만큼의 지위를 평생 누릴 수 있는가? 회사 입사에서 대학 졸업장의 효과는 갈수록 떨어진다는 자료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다수의 한국인들이 이런 현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투자를 줄일 의사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경쟁 그 자체, 그리고 성적 변별의 공정성을 신앙처럼 받아들인다는 점이 문제다. 막대한 사교육 투자의 주체인 한국의 386 세대는 80년대 말 이후 명문대 졸업장을 무기로 대거 중산층으로 편입된 최초의 세대이고, 이들이 견지하는 능력주의와 공정에 대한 집착이 사교육을 부추긴 요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사회불신이 심각하고, 사회복지나 안전망이 취약한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경쟁 그 자체가 더 격렬하고, 시험을 통한 변별이 신화로 자리 잡은 것이 더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한 점이 있으나, 그 경쟁이 대학 입학의 관문에 과도하게 집중된다는 것이 입시 문제, 사교육 문제의 근원이다. 경쟁의 분산, 소모적 경쟁의 축소만이 대안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 서열화의 극복, 수도권 집중의 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학자 김종영이 서울대 10개 만들기 대안을 제시한 것이나, 한국은행이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 입학을 지역 할당으로 하자는 제안도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결국은 공교육과 지방 대학의 질을 높이고 지역경제와 대학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만이 대안일 것이다.
입시제도 변경 아닌 과도한 보상과 차별 축소가 관건
필자는 <시험능력주의>(창비, 2022)에서 한국의 입시 문제는 거꾸로 선 노동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교육’문제, 즉 입시 문제는 입시제도의 변경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사교육을 부추기는 가까운 요인은 대학의 서열화, 더욱 정교한 변별의 요청이지만, 그 상위에는 노동시장의 불안,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에게 주는 특권적 보상과 그 아래 사람들에 대한 심각한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단순하게 말하면 의대나 최상위권 대학 졸업자에 대한 과도하게 높은 보상과 더불어 그 병목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이 평생 겪어야 하는 무시와 차별이 그 원인이다. 과거에 양반을 돈으로 사려 했듯이 오늘에는 의사 자격증과 명문대 졸업장을 사교육 투자로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보상의 격차를 축소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며, 고용불안을 줄이는 것이 사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거시적 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지구적 신자유주의 시대에 고용불안의 완전한 해소는 개별 국가의 힘을 넘어선다. 한국이란 한 국가나 정치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성적 차별이 보상의 격차로 연결되는 고리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대 졸업자, 변호사 자격증, 그리고 명문대 졸업장의 프리미엄을 줄이는 것이다. 복지 확충 혹은 기본소득, 그리고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평등 극복이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매우 큰 사회개혁의 과제이며, 그중 어느 하나도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없다.
역대 모든 한국 정부가 한결같이 사교육을 잡지 못했지만, 사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대체로 미국식 시장주의에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에 발본적 개혁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입시 문제는 결코 ‘교육’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개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인데 역대 모든 정부는 그런 차원에서 입시 문제를 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사교육을 잡겠다고 하면서 실제 정책은 그 반대로 펴온 것이다. 그중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사교육비가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은 바로 윤석열 정부가 사교육을 가장 부추기는 정책, 부자 감세, 정부 축소, 노동 탄압, 반(反)복지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첫댓글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으니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