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고 팬들이라면 알 만한 썰. 지난번 필리핀항공 취재 때 난 인생 처음으로 오버부킹을 경험했다. 매번 뉴스나 카더라로 접하기만 했던 오버부킹을 실제로 경험하니 완.전.멘.붕! 아주 중요한 A350-900 취재를 앞두고 있었는데, 항공사 측에서 오버부킹을 이유로 탑승 직전 갑자기 B777-300ER에 태우는 게 아닌가…
더 큰 항공기가 필요했다는 한마디만 남기고… 난 이 기종을 원했던 게 아닌데 말이다. 만약 내가 큰마음 먹고 마일리지 탈탈 털어 타고자 했던 기종이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고, 그날 이후로 난 오버부킹의 문제성을 인식하게 됐다.
오버부킹은 이미 항공업계에선 오래된 관습
#오버부킹(Overbooking). 말 그대로, 예약을 오버해서 받았다는 뜻이다. 항공사가 노쇼(No-show) 승객에 대비해 실제 준비된 좌석보다 더 많은 좌석을 예약, 판매하는 경우를 말한다.
항공사 나름대로 피해를 줄이기 위한 취지로 시행하고는 있지만, 만약 노쇼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때 항공사 측은 선택을 하게 된다. 포기자에게 일정한 보상을 지급할지 or 다음 항공편 좌석 업그레이드를 제시할지 or 기종을 변경할지!
승객 중 이에 만족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피엔딩! 이런 것을 *자발적 범핑이라고 하는데 모든 오버부킹의 결론이 이렇다면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포기자가 없는 경우에 발생한다. 항공사가 탑승 인원을 맞추기 위해 일정 기준(체크인 시간, 멤버십 등급, 환승 여부 등)에 따라 하차 승객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범핑: 오버부킹을 받고, 표를 지닌 승객을 태우지 않는 것
미성년자, 노약자, 장애인, 동반 승객은 하차 승객 대상에서 제외
이것은 마치… 러시안룰렛…★
항공판 러시안룰렛의 희생자
그렇다면 대체 어떤 만행들이 있었길래 러시안룰렛(Russian Roulette)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것일까?
러시안룰렛(Russian Roulette): 회전식 연발 권총에 하나의 총알만 넣고 총알의 위치를 알 수 없도록 탄창을 돌린 후, 참가자들이 각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임
가장 유명한 사건은 2017년 미국 유나이티드항공(United Airlines)의 오버부킹 사건.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서 켄터키 주로 향할 예정이었던 3411 편에서 발생한 일이다. 항공사 측이 오버부킹을 받아 놓은 상태에서 4명의 직원을 탑승시켜야 했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자 온갖 조건을 제시하며 포기자를 물색했다. 그러나 포기자가 없자, 결국은 컴퓨터 추첨을 통해 4명에게 하차를 요구했다.
(출처: CNN 공식 유투브)" width=600>
‘컴퓨터 추첨’이라는 어이없고 극단적인 방법도 문제가 됐지만, 여기서 전 세계인의 공분을 산 건 항공사 측의 무자비한 태도였다. 동양인(중국인 추정) 남성이 자신은 의사이며, 진료를 위해 꼭 이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했음에도 그를 강제로 끌어당기고, 바닥에 질질 끌어내어 하차시킨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승객은 코가 부러지고, 이가 빠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 델타항공(Delta Airlines) 승무원이 2세 아들을 둔 부부를 쫓아낸 사건도 있다. 이 부부는 별도의 좌석을 구매해 아이를 카시트에 앉혔는데, 승무원이 다가와 “2살 아이는 별도의 좌석이 아닌 무릎에 앉혀야 한다며 그렇기 싫다면 내려야 한다”, “거부하며 내리지 않으면 체포돼 감옥에 갈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긴 실랑이 끝에 부부는 결국 하차를 했지만 이후 그 규정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됐다. 이들은 당시 항공편이 오버부킹 상태였으며, 자신들이 내리자 바로 대기 고객들이 그 자리에 탑승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밖에도, 가족여행을 떠나기 위해 7개월 전에 에어캐나다(Air Canada) 항공권을 끊은 가족들 중 어린 아들만이 탑승 하루 전에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승객’에 선정된 사건도 있다. (결국 가족여행은 무산…) 이처럼 덮어놓고 오버부킹 받은 항공사들의 무책임한 범핑으로, 애먼 승객들만 피해를 본 사례들이 꽤나 많다.
오버부킹의 문제점? 우리도 인식해
그럼 모든 항공사들이 이런 만행을 저지르느냐? 그렇지는 않다.
(출처: 라이언에어 공식 페이스북)
미국의 저가항공사 제트블루(Jet Blue)나 아일랜드의 저가항공사 라이언에어(Ryan Air)는 일찍이 오버부킹을 받지 않고 있다.
"비행기를 탑승하지 않을 경우 미리 고지해 주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예약 후 미탑승하는 경우 티켓 요금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이는 실제 라이언에어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문구이다. 노쇼 고객의 자리는 비워서 갈지언정, 오버부킹의 희생양은 만들지 않겠다는 깔끔한 일처리 법이 눈에 띈다.
한편, 유나이티드 사건 이후 항공업계에서는 오버부킹의 문제성을 인식하고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Southwest Airlines)은 2017년 4월, "승객의 탑승을 거부한다는 것은 가장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말과 함께 미국 주요 항공사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오버부킹 공식 폐지를 발표했다.
이에 비해 조금 소극적이긴 하지만, 유나이티드항공과 델타항공은 자발적으로 하차한 승객들에게 최고 1만 달러까지 보상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오버부킹을 당장에 폐지할 순 없어도, 확실한 보상 체계라도 구축해 나가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야겠지…? 금전적 보상조차 없는 범핑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 말이다.
국내 항공업계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17년 국토교통부는 약관 개정을 통해, 자리가 부족한 경우 승객이 아닌 승무원을 하차 우선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로 인해, 오버부킹으로 좌석이 부족할 경우 다른 노선 운항을 위해 이동하는 승무원, 개인적 이유로 직원용 할인 좌석을 이용하는 승무원 등 안전 업무와 무관한 직원이 먼저 내리게 된다.
오버부킹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항공사의 변화도 좋지만,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오버부킹에 대처할 수는 없을까? 오버부킹 상황을 대비해 보상 체계에 대해 잘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자발적 범핑
일단 자발적 범핑의 경우에는 대체로 승객이 갑일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 항공사가 갑이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차 의사가 있는 승객이 여러 명일 경우, 항공사는 보상 금액이 더 낮거나 공수가 덜 드는 승객을 택하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협상력! 위에서는 ‘보상 금액’을 언급했지만 대부분의 항공사는 금전적 보상이 아닌 바우처로 때우려는 시도가 빈번하다. 이럴 경우 이 바우처가 언제까지 유효한지에 대해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
바우처가 아닌 금전적 보상을 원할 경우에는 어느 정도의 기준을 가지고 협상하는 것이 좋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선은 400달러, 국제선은 800달러 선에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여행이 지연되는 정도를 고려해 금액을 올릴 수도 있음)
비자발적 범핑
주목해야 할 건 비자발적 범핑일 경우이다. 이땐 정말 눈 뜨고 코 베이지 않도록 사전 학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항공사는 반강제로 하차한 승객에게 반드시 바우처, 금액 보상, 다음 항공편 좌석까지 보장해줘야 하지만, 이는 항공사 세부 규정 및 비행 거리, 대체 항공편까지의 대기 시간 등에 따라 보상 정도는 천차만별이다. 이때에도 빛나는 협상력이 관건! 여행 전문 사이트 ‘더 포인츠 가이(The Points Guy)’에서 내놓은 팁은 아래와 같다.
★협상 TIP
협상 전에는 좌석을 끈질기게 요구할 것
바우처 유효기간을 최대한 길게 요청할 것
바우처가 타 항공사에서도 이용 가능한지 확인할 것
5시간 이상 지연될 경우, 호텔 이용권을 요구할 것
외에도 비행기 체크인을 일찍 한다던가, 해당 항공사의 상용 고객이 되어 탑승 거절 고객이 될 확률을 낮추는 방법 등도 있다. + ‘국내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에 나와 있는 분쟁 규정을 참고해 보다 확실한 방법으로 권리를 요구할 수도 있다.
오버부킹, 다신 마주치지 말자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인지 더 이상 오버부킹이 무섭지는 않다. 협상 스킬과 보상 규정 달달 외워서 당당히 갑에 위치에서 협상하는 승객이 되리라!!! 프고 팬들도 만약을 대비해 오버부킹 미리 알아두길…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뭐다? 살면서 오버부킹 당하는 일이 없게 하는 것. 만약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왕 오버부킹 당할 바에 좌석 업그레이드 받아서 비즈니스 or 퍼스트 타고 비행하길 바란다. (흑심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