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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6월 29일 월요일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오늘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신앙 고백의 모범이 된 베드로와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준 바오로는, 교회의 기초를 놓은 사도들입니다. 우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를 본받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증언합시다.
말씀의 초대
헤로데 임금은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지만, 천사가 나타나 그를 빼내 준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다고 티모테오에게 고백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 당신을 누구라고 하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으시자, 베드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한다(복음).
제1독서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헤로데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2,1-11
그 무렵 1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쳤다.
2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3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짠 네 개의 경비조에 맡겨 지키게 하였다.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그를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5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6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7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
8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하고 이르니
베드로가 그렇게 하였다.
천사가 또 베드로에게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일으키는 그 일이 실제인 줄 모르고 환시를 보는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10 그들이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나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어떤 거리를 따라 내려갔는데,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11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말씀입니다. 4,6-8.17-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3-19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 목동과 자연, 들판과 산림의 신인 ‘판’의 신전이 서 있던 자리, 제국의 이름이 새겨진 도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 16,13)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이름을 꺼냅니다.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마지막 구원의 시대에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예언자들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예레미야의 이름에는 슬픔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성전을 향하여 심판을 외치다 거절당한 사람(예레 7,27 참조).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이해합니다. 고통받는 예언자 예레미야와 예수님은 닮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16). 그 말은 용기라기보다, 갑자기 터져 나온 설익은 외침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말이 ‘살과 피’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인간적 계산이나 전통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의 계시가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나온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완전하신 하느님께서 어설픈 인간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16,18). 이름이 곧 사명이 됩니다. ‘반석’, 단단해 보이는 말이지만 우리는 압니다, 곧 흔들릴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을요.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 연약함 위에 공동체를 세우십니다. 저승의 세력도 이기지 못할 교회를 세우십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 위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고백하는 사람 위에 세워집니다. 설익고 어설픈 고백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즐겨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또 외칠 따름입니다. ‘스승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십니다!’(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그 숱한 인간적 결핍과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교회의 두 기둥 베드로 바오로 사도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양한 측면의 결핍과 인간적 나약함에도 불구하고 두분을 수제자요 이방인의 사도로 발탁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듭 실수하고, 불충실했으며,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스승님을 세 번씩이나 배반하는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신을 잘못을 성찰하고 뉘우칠 줄 아는 겸손함이 있었습니다. 되돌이킬 수 없이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 와중에도 가슴 치며 주님께로 시선을 되돌리고, 그분의 자비를 청하며 돌아설 줄 아는 용기,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보십시오. 그런 솔직함과 겸손함 위에 또 다른 한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었으니, 스승님의 정체성에 대한 명료한 의식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 사도는 지체없이 대답하는데, 예수님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정답이었습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5)
이런 베드로 사도에게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선물과 은총을 베푸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 18-19)
하느님 섭리의 손길은 참으로 오묘하십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길로 사도 바오로를 이끄십니다. 그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낙마와 실명을 한 후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간 상태에서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26,14)
온몸으로 생생하게 예수님을 체험한 사울은 이름도 바오로로 바꾸지만, 삶도 180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그가 그토록 박해했던 예수님을 위해 지닌 모든 에너지와 모든 열정, 삶 전체를 바쳐 사랑합니다. 그가 얼마나 강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빠져버렸는지는 서간 여러 곳에서 접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나에게는 그리스도의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필리 1,21)
바오로 사도는 다그치는 예수 그리스도 사랑의 외침에 언제나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분의 강한 요구에 매일 ‘예’라고 응답하며 평생에 걸친 목숨 건 전도 여행에 나섰던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예전에 ‘독수리 5형제’라는 만화영화가 있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지구를 지키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슈퍼맨, 스파이더맨, 터미네이터’와 같은 영화도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고, 정의가 결국 승리한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우리 역사에도 영웅들이 있습니다. 광개토 대왕, 을지문덕 장군, 강감찬 장군, 이순신 장군이 있습니다. 나라를 잃었던 시절에는 김좌진 장군과 홍범도 장군, 안중근 의사와 같은 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영웅들을 기억합니다. 그분들의 땀과 눈물과 희생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삶에도 영웅들이 있습니다. 사제 생활을 하면서 저는 참 많은 영웅을 만났습니다. 중곡동에는 스테파노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용산에는 마르코 형제가 있었습니다. 세검정에는 예로니모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제기동에는 바오로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적성에는 베드로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명동 교구청 사목국에는 야고보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토론토에는 마태오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시흥5동에는 다니엘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성소국에는 오틸리아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뉴욕 신문사에는 요셉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달라스에도 많은 영웅이 있습니다. 창고 공사, 농구장 공사, 나무 심기, 비료 주기, 놀이터 공사, 빔프로젝터 렌즈 교환과 같은 일들을 함께했습니다. 제가 혼자였다면 할 수 없었을 일입니다. 제가 부족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영웅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초대교회의 두 영웅을 기억합니다. 바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입니다. 두 분은 서로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길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두 분 모두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쳤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받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 야단도 맞았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말씀까지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죽겠다고 장담했지만, 정작 두려움 앞에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 다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세 번 물으셨습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베드로는 자신의 약함을 알았기에 더 겸손해졌고, 더 뜨겁게 주님을 따랐습니다. 한 번의 설교로 삼천 명이 넘는 이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끝내 십자가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선 사람이었기에 베드로는 더욱 위대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또 다릅니다. 그는 처음에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던 사람이었습니다. 스테파노가 순교할 때도 박해자들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그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회개한 바오로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배를 타고, 걸어서, 감옥에 갇히면서도 선교여행을 다녔습니다. 매를 맞고, 굶주리고, 배척당하면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내어드렸고, 초대교회의 신앙과 신학의 기초를 세운 위대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베드로와 바오로가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흔들렸고, 바오로는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부족한 사람을 부르셔서 위대한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영웅은 특별한 사람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영웅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사랑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영웅입니다.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이 영웅입니다. 본당에도 영웅들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성당 문을 여는 봉사자들이 있습니다. 이름 없이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성가대로 봉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이 있습니다. 아픈 몸으로도 미사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바로 오늘의 베드로이고, 오늘의 바오로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도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영웅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자리에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자리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 자리에서 주님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하느님 나라에서 빛나는 별이 될 것입니다.
오늘 감사송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베드로는 신앙 고백의 모범이 되고 바오로는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주었으며 베드로는 이스라엘의 남은 후손들로 첫 교회를 세우고 바오로는 이민족들의 스승이 되었나이다.” 두 사도는 서로 달랐지만 결국 하나의 길을 걸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되고, 믿음이 되는 신앙의 영웅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느님 나라에서 베드로와 바오로처럼 빛나는 별로 만나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믿음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저에게
믿음이십니다
희망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저에게
희망이십니다
사랑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저에게
사랑이십니다
기쁨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저에게
기쁨이십니다
품음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저에게
품음이십니다
스밈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저에게
스밈이십니다
돌봄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저에게
돌봄이십니다
섬김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저에게
섬김이십니다
베풂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저에게
베풂이십니다
살림으로만
고백할 수 있는
당신은
저에게
살림이십니다
오늘의 성인
성 베드로(Peter)
신분 : 사도, 순교자, 교황
활동연도 : +64년경
같은이름 :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람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케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16,18) 하셨다. 그리고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6,19)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의 수위권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자들의 으뜸으로서 배신자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해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 그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 그는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성 바오로(Paul)
신분 : 사도, 순교자
활동연도 : +67년경
같은이름 : 바울로,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는 당대의 유명한 유대인 랍비 가믈리엘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에서 공부하였다. 그가 회심할 때까지는 사울이라 불렀다. 천막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파였고, 그리스도교의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스테파누스(Stephanus)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그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개종을 불러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어 주었다.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설교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대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하였는데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밤을 이용하여 비밀리에 성벽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났으며, 바르나바(Barnabas)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입적하였다.
그 후 그는 타르수스(Tarsus)에서 몇 년을 지내다가 43년경에 바르나바에 의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으며 그곳 교회의 교사가 되었다. 이것이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대 전교의 시초가 되었다. 45년경부터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여행을 하게 된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키프로스(Cyprus), 베르게,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리가오니아를 전교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 이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베드로(Petrus)와 야고보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그리스도교회의 보편성 확립에 기여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가일층 진보된 단계를 맞게 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제2차 전교여행을 계획한다(49-52년). 제1차 전교여행에서 세운 교회들을 재차 방문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갔고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리피(Philippi), 테살로니카(Thessalonica), 베레아(Berea)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Athenae)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 법정 진술만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 후 안티오키아로 귀향한 그는 다시 제3차 전교여행을 계획하였으나(53-58년), 2년 동안은 코린토스(Corinthos)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에페수스(Ephesus)에서는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이 사건이 유명하다. 58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그는 야고보를 만나 보5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에 그는 유대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을 설명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비롯하여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하였으나,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을 따라 로마(Roma)에 갇히게 되었다.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에 따르면 그 후 그는 에페수스,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가서 사도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노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치명 하였다.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스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립비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수스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2서(코린토스에서 51-52년) 및 사목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를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공식 축일은 6월 29일이고, 개종 축일은 1월 25일에 지낸다.
성녀 엠마 (Emma)
활동년도 : +1045년
신분 : 과부, 수녀
지역 : 구르크(Gurk)
같은 이름 : 헴마
성 헨리쿠스 2세(Henricus II, 7월 13일) 황제의 친척으로 헴마(Hemma)로도 알려진 성녀 엠마는 황후인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3월 3일)의 돌봄 속에 황제의 궁중에서 성장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오스트리아 프라이자흐(Friesach)의 빌리암(William) 백작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으나, 남편 소유의 광산에서 발생한 폭동 중에 두 자녀를 살해당하고 말았다. 빌리암 백작은 극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해 복수를 결심하기도 하였으나, 아내의 만류와 인도로 복수 대신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로마(Roma) 순례를 결심하였고 돌아오는 길에 운명하였다.
이때부터 성녀 엠마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을 위해 봉헌하기로 결심하였다. 성녀 엠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고, 여러 곳에 성당과 수도원을 세우는 한편 자신이 구르크에 세운 수도원에서 수녀가 되어 일생을 보냈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938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승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