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 이야기/靑石 전성훈
60년대 초반 이탈리아 영화, ‘몬도가네’(개 같은 세상)는 전 세계의 기이한 풍습과 별난 음식 문화를 소개한 충격적인 장면이 많이 나왔던 영화로 기억한다. 목숨을 걸고 먹는 음식은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요즘은 이 음식을 먹고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지만, 50~60년 전에는 자주 그 소식을 신문이나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저렴하게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조금은 비싼 음식의 하나인, 복어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 예전과 비교하면 훨씬 대중적인 요리로 자리매김을 한 복요리다. 복요리는 1년 중 겨울 막바지인 2월 하순에서 초봄인 4월 하순까지가 제일 맛있게 먹는 계절이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18세기에 한양에서 세도께나 하는 양반네들이 봄철에 제철 음식으로 복어를 먹었다고 한다. 복어는 종류가 많지만 참복, 황복, 까치복, 자주복, 밀복 등을 주로 먹는다. 복어 알, 간, 내장, 근육에는 청산가리보다 1000배나 독한 독이 있어, 복어 내장을 제대로 깨끗하게 씻지 않으면 복어 맹독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복어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임진강 유역에서 잡히는 황복을 최고로 여기기도 한다. 오래전 신문에 보도되었던 기사가 그 시절 이야기를 보여준다. 임진강 유역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이라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 지역을 경비하는 군부대의 허가를 받아야만 들어가 황복을 잡을 수 있다. 허가를 받아 조업을 마친 어부가 어렵게 잡은 황복 가운데 일부를 군부대에 상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떠돌아다닐 만큼 임진강 황복을 알아주었다고 한다.
복어를 처음 접한 것은 직장생활을 한참하고 나서다. 보통 복집에 가면 복매운탕이나 지리를 주문해서 먹는다. 여기에 소주나 맥주를 반주로 곁들인다. 탕이 끓기 전에 미나리에 무친 복어껍질을 안주 삼아 먼저 한 순배 술잔을 돌린다. 진하고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해독작용을 한다는 억세지 않은 미나리를 몇 번에 걸쳐서 듬뿍 넣고 펄펄 끓인 맑은 국물의 지리는 붉고 매운 매운탕보다 훨씬 입맛을 사로잡는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긴 하지만, 겨울철에 정종을 따뜻하게 데워서 커다란 대포 잔으로 홀짝홀짝 마시듯이, 히레소주를 곁들어 마시면 톡 쏘는 술맛이 아주 독특해서 별미이다. 히레(일본어, 지느러미)소주는 복어 지느러미를 볶아서 갈아 소주에 넣고 주전자에 부어 끓인 소주를 말한다. 쌀쌀한 날씨에 낮술로 뜨거운 히레소주 한두 잔 마시면 금세 취기가 오른다. 그러다가 한 시간 정도 이야기하면서 식사를 마치고 음식점을 떠날 즈음이면 술기운도 금방 깬다. 히레소주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면 마치 배갈에 불이 붙듯이 파란 불꽃이 솟아오른다. 복요리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복어회이다. 복어회는 가격이 상당히 비싸서 먹기가 쉽지 않다. 이제까지 단 한 번 맛보았을 뿐이다. 그것도 내 돈으로 사 먹은 게 아니라, 업무 관계로 만난 변호사와 서초동 법원 거리에서 식사하면서 맛본 것이다. 커다란 접시에 얇게 깔아 놓은 복어회는 다른 생선회처럼 두세 점씩 마음 놓고 젓가락질을 할 수 없다. 비싼 만큼 분량도 아주 적어서 그야말로 한 점 먹고 맛을 음미해야 할 정도다. 신경 쓰면서 먹어야 하는 분위기 탓인지 몰라도 지금도 복어회의 참맛을 알지 못한다. 회를 뜨는 요리사가 복어회를 얼마나 얇게 뜰 줄 아는 가에 따라 그 실력 차이가 나타난다고 한다. 대목수가 온갖 기술을 발휘하여 멋지게 대패질하듯이 복어회를 잘 뜨는 솜씨는 가히 예술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얼마 전 지인들과 복어전문점을 찾았다. 코스로 나오는 복어전문점이다. 접시에 복어 튀김, 복어 무침, 복어 전, 복어껍질에 이어 마지막으로 복지리가 나온다. 아쉽지만 복어회는 없다. 더운 여름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서로의 건강을 물어보며 즐거운 한때를 가지면서 술 한잔 건넨다. 음식은 누구와 함께 먹는가가 음식 맛을 좌우하기에 제일 중요하다. 더하여 음식점 실내장식과 주변 경치, 종업원의 손님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날씨이다. 이열치열이라고 했듯이 한여름의 복요리도 한 번쯤은 먹을 만하다. (2024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