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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可)하지만 부(否)하는 신앙이 진정한 신앙입니다.(행15:22-31)
2023, 9/24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행15:22-31절 말씀으로“가(可)하지만 부(否)하는 신앙이 진정한 신앙입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이번 주는 추석명절입니다. 우리나라에 여러 명절들 중에 추석과 설만 남았는데, 추석은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저들은 조상들에게 감사하는 절기고, 설은 새로운 한해를 새롭게 맞이하는 명절입니다.
이번 추석명절은 6일이나 되는 긴 연휴라 이동이 많을 것 같은데, 오고가는 길 안전운행하시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드시고 건강한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한 추석되세요.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가(可)하지만 부(否)하는 신앙이 진정한 신앙입니다.(29절)
둘째로, 성도는 성령과 긴밀한 관계설정을 해야 합니다.(28절)
셋째로, 성도는 날마다 영적진리를 깨달아가는 사람들입니다.(28절)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성령님과 긴밀한 관계설정이 잘 되어야 진정한 신앙인이 된다는 것을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가(可)하지만 부(否)하는 신앙이 진정한 신앙입니다.(29절)
본문 2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아멘.
예루살렘공의회에서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이신칭의’의 대 교리가 정립되어 온 세계에 전파되었고, 지금도 이 교리가 우리의 신앙전체를 아우르고 있는데, 예루살렘공의회가 이 결정을 통지하면서 바울과 바나바 편에 유다와 실라를 보증인으로 보내 공의회결정을 확실히 담보해줍니다.
이제 이 결정으로 이방인들이 더 쉽게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29절에서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죽인 것과 음행 등 4가지를 언급하며 멀리할 것을 당부하는데, 이 4가지는 이미 20절에도 언급한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4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4가지 금지사항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은 구원과 상관없지만, 그러나 이것들은 신앙인으로서 절대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래서 본 절에서도 지키면 복이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4가지가 무엇일까요? 이 4가지는 유대신자들에게는 절대로 범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이방인신자들은 별 죄책감 없이 살아오면서 관습적으로 습관적으로 행해왔던 것들입니다.
먼저‘우상의 제물’은 우상의 제사 때 바친 고기와 제물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으면 우상에 대한 경계심이 약화되고, 나아가 우상을 용납하는 수순으로 가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 먹는 것을 금한 것입니다.
또한 이방인들은 우상에게 특별히 제사하지 않는다 해도 연회나 축하연 등 잔치를 우상을 모시는 신전에서 하는 일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우상과 접촉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금지한 것은 당연합니다.
또한‘음행’도 우상숭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우상들은 대부분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에 성적방종과 일탈로 이어졌습니다.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난후 신전 여 사제들과 자연스럽게 음행으로 이어졌는데 이런 음행을 막으면 우상숭배도 막는 효과가 있겠지요. 그러나 본문의 음행은 반드시 신전에서 음행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행해지던 각종 음란과 성적방종도 포함됐다고 보아야합니다.
고전6:18절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목매어 죽인 것’과 ‘피’는 같은 개념으로 목매어 죽인 것은 질식해서 죽은 것이라 피를 빼지 못했기 때문에 고기를 먹으면 피 째 먹는 셈이 됩니다. 이는 창9:4절의 피를 먹지 말라는 규례를 어기는 것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이 오랜 세월 지켜왔던 규례입니다. 또한 피를 먹지 말라는 것도 레17:10-14절에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절대 먹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유대신자들이 모세의 율법을 생명처럼 지켰는데, 만약 이방신자들이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것을 서슴없이 먹고 행한다면 서로간의 원만한 교제에 큰 걸림돌이 될 겁니다. 그래서 이 4가지 금지사항은 우리의 구원과는 상관없지만 기독인들끼리 화합과 일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 4가지가 구원과 관계있다면 오늘날 우리도 이 4가지 금기사항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중 누구도 이런 걸 지키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유대신자들이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지켜왔던 율법을 일시에 폐지하면 이방신자와 유대신자들 간에 갈등이 뻔했을 것이고, 이 때문에 교회가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어 부득이하게 이방신자들의 절제를 요청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하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들과 나와 생각이 다른 형제들을 생각해서 내가 가진 자유를 스스로 절제하고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많이 알고, 많이 가졌고, 모든 것이 가능하며, 자유롭고 행복하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거나,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그 자유와 풍요로움을 절제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고전10:23-24절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든 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자유를 억제할 수 있어야합니다.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걸 본 믿음이 약한 형제가 용기를 얻어 따라 먹는다면 먹지 않고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지만 형제들을 위해 절제하고 자제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일떼면 자식 때문에 속 썩이는 사람 앞에서 자식 자랑하지 않고, 돈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 앞에서 돈 자랑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복음을 전해 영혼을 살리는 것이라면, 내 수고와 헌신으로 형제들의 신앙이 성장하고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자유를 억제하고 불이익을 감수해야합니다. 이것이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모든 것이 가(可)하지만 그러나 형제를 위해서 스스로 부(否)하는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도는 성령과 긴밀한 관계설정을 해야 합니다.(28절)
본문 2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아멘.
예루살렘교회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신칭의의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다만 4가지 사항을 지켜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린 주체를‘성령과 우리’로 말하고 있는데, 성령과 우리라는 이 두 단어를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는데, 사도들의 결정이 자신들의 생각이 아니라 바로 성령 하나님의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교회는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도 본 받아야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6-21절까지 회의 진행과정에서 전혀 성령의 언급이 없었음에도 사도들과 장로들이 어떻게 성령의 뜻을 알았을까? 이건 누가가 성령님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도들과 장로들은 성령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해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결국 하나님 뜻을 알아냈다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성령과 우리라는 표현을 썼던 것입니다. 응답받지도 않았는데 사도들이 성령하나님의 이름을 팔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성령께서 아무리 강력히 역사해도 당사자가 응답주심을 모르거나 순종이 없다면 성령의 도우심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의 삶속에 적극 개입하셔서 주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성령님께 맡기고 의지한다면 성령님은 주도적으로 우리 삶속에 개입하셔서 날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개입하실 때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 개입하시는데, 설교를 듣거나, 기도 중에, 성경을 묵상하거나 형제들과 교제할 때, 아니면 일상의 일들 속에서 말씀하시는데 영적으로 둔해서 음성을 듣지 못하거나, 들어도 내 생각과 맞지 않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무시하면 성령의 음성은 나와 상관없게 됩니다. 때문에 영적으로 민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그 음성에 순종함으로써 날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당시 사도들도 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면 그 중요한 이신칭의의 교리도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음성을 듣지 못하거나, 불순종하면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지 말라고 권면했는데,(엡4:30) 이 말은 성령을 고통스럽고 서운하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또한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도 하셨는데,(살전5:19) 이 말씀의 뜻은 불을 끄듯이 성령의 불을 끄지 말라는 뜻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성막안의 등대의 불을 저녁부터 아침까지 간검하며 절대 꺼지지 않게 관리했는데,(출27:21)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써 옛날 성막의 등불처럼 성령의 불이 내 안에서 꺼지지 않도록 정말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의 음성을 바로바로 들을 수 있고, 이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이끄시며,(요16:13) 우리의 삶 세세한 것까지 가르치고 인도하십니다.(요14:26)
한때 우리나라는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 복음이 빠르게 확산되었지만 지금은 현저히 축소되었는데,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성령일까요? 아니면 우리 자신일까요? 성령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니 성령에 문제가 있을리가 없고, 그렇다면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한번 돌아봤으면 합니다. 현대사회가 정신없이 돌아가고는 있지만 그런 중에도 성령과 긴밀한 관계설정 그리고 민감한 영성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롬8:14절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교회공동체에 소홀하면 예배와 기도에도 소홀해지고, 세상 것에 마음 빼앗기면 성령님과 긴밀한 관계도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면 성령님께 둔해지고, 둔해지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거나 들어도 순종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차피 예수 믿고 구원받기로 작정된 몸이라 빼도 박도 못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화끈하게 예수 믿고 성령과 긴밀한 관계를 통해서 신세계를 열어 가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바로 우리의 살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악한 세대에서 영적으로 민감해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바르고 정직한 길, 복된 길을 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셋째로, 성도는 날마다 영적 진리를 깨달아가는 사람들입니다.(28절)
본문 2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아멘.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이렇게 말씀했는데, 이 글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옳은 줄 알았다’는 글귀입니다.
이 말의 뜻은 지금까지는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으로 알았는데 이제야 성령님의 도움으로 20절과 29절에 언급된 4가지 금지조항 외에는 이방인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걸 통해서 깨닫는 것이 있는데, 성도라고 단 번에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깨닫고 수정하고, 또 깨닫고 또 수정하면서 발전해간다는 것입니다.
중세의 유명한 신학자며 철학자인 안셀름(Anselme)은‘나를 알기위해 믿는다.’는 말을 했는데, 그만큼 우리는 모르는 것이 많고, 그 모르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믿어야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음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을 보십시오. 이들 대다수는 예수님께 직접 듣고 배웠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또 엡2:20절에는 우리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움을 받았다고 말씀할 정도로 저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임에도 모든 것을 다 안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도 그때그때마다 하나씩 깨닫고 알아갔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처럼 연약하고 미련한 자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이런 우리를 깨우치고 알게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요14: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서 계셔서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가르쳐서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하에 아브라함도 처음 가나안땅에 들어왔을 때는 믿음도 없고 어리석기까지 했는데, 그러나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알아갔고,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될 만큼 대단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고 하나님을 많이 알아도 전부를 알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성령의 조명을 받아 올바로 깨달아 실수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를 좀 오래 믿었다고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됩니다. 신급이 높고, 직분이 있다고 남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다고 봐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는 귀를 열고, 형제에게는 마음을 열어 겸손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뜻으로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조명이 반드시 필요하고, 성령의 조명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영적관계를 긴밀하게 만들어야합니다.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는 말씀과 기도, 그리고 순종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이걸 아시고 주안에서 날마다 인도함을 받는 복된 삶이되시기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