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의 초당글밭] 01월 21일(목) 옷깃을 여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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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떨어진 알싸한 날씨는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이미 몸이 먼저 알고 웅크립니다.
체감 온도가 영하 25, 30도라고 합니다.
어쩌면 빈부의 격차와 왜곡이 극심한 이 시대인 것을 감안하면 체감 온도는 더 뚝 떨어집니다.
몇 일 전인가 가까운 님들을 만난 자리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읍니다.
옷깃이 어디냐를 물었고,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지요.
흔히 쓰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 불가의 ‘인연생기’의 가르침은 작은 만남이라도 소중히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발견됩니다.
옷깃은 저고리 그러니까 윗도리의 목을 둘러싼 날개 부분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그 옷깃이 스치자면 결코 가벼운 만남은 아니라는 것이 홍성님의 말씀입니다.
옷깃이 스치자면 몸을 끌어 안는 포옹이나 입맞춤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의 ‘옷깃’은 딱 그 ‘옷깃’에 중심을 둔 것은 아닌 듯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옷’이 아닌 ‘깃’에 중심을 두고 쓴 말로 생각됩니다.
우리말의 쓰임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고 할때의 깃과
‘아름다운 깃털로 덮여있는 새’라고 할 때의 깃
‘깃발’의 깃
그리고 빛이나 냄새, 감정이나 생각과 노력이 ‘서리어 깃들다’ ‘스며 깃들다’에서의 깃입니다.
따라서 깃은 두드라지게 튀어 나온 것을 두루 가리키는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읍니다.
옷의 경우는 목을 감싸는 쪽이 특히 그렇기 때문에 ‘옷깃’으로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깃들다’는 바로 그 깃 사이에 든 것을 이릅니다.
아무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그것에서는 건질 것이 들어 있읍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모두 그렇습니다.
그래서 꿈은 해몽이 더욱 중요한 법이지요.
그것은 바로 뜻을 찾는 길이기도 합니다.
옷깃을 여미고 알싸한 목요일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시작은 언제나 작은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알기에 옷깃을 여미는 것이지요.
꼭 추위 때문만은 아닌 새벽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