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그리고 때늦은 후회
2009년 1월 출근 버스에서 서울에서 온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신인상을 타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예 그게 정말이세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휴대폰을 들고 나도 모르게 절을 꾸뻑했다. 내 소리에 기사와 손님들이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제 시가 신인상을 타게 되었답니다.”했더니 모두 웃으며 축하한다고 박수를 쳐 주었지만 순간적인 행동이 창피하기도하고 숨 막히는 감정을 누를 수가 없어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살면서 자식들이 상을 타 오거나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그리고 남편이 진급했을 때 고맙고 좋아했지만 나 때문에 그렇게 숨 막히도록 좋아 해본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가슴 벅차고 행복할 줄 알았다면 진작 등단 쪽으로 관심을 가졌을 텐데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글을 쓰면서도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못 해봤으니, 텔레비전이 없었던 시절 뜨개질과 수놓기를 좋아했던 나는 늘 라디오를 옆에 두고 일을 했다 넓은 초원에 사슴들이 평화롭게 뛰어노는 자수를 수놓으며 뜨개질을 했다 결혼을 하고 수예점을 하면서 온종일 유리벽에 갇혀 산다고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은 나에게 금붕어라는 별명을 지어줄 만큼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책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역할을 해 주었다 책 속에서 다른 세상을 만나며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세상 사람들의 삶을 들으며 그 주인공이 되어 간접적인 경험을 맛보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글을 평가 받고 싶어졌다.
망설이다 보낸 글이 주 장원으로 채택이 되어 원하는 날짜에 방송이 나오고 상품도 보내왔을 때 기뻐하며 친정어머니께 자랑을 했으며 또 쓰고 싶은 용기도 났다 그 후로 나는 각 방송국에 자주 원고를 보내게 되었으며 원하는 날짜에 녹음 준비하고 기다리면 거의 채택되어 방송이 되고 소정에 원고료와 상품을 탔다 대구KBS, FM,안동방송,MBC, FM,서울FM,은 내가 단골손님 이였을 것이다 서울방송 FM“김미숙의 음악싸롱”에서도 상품을 몇 번 받기도 했으며 “지금은 라디오 시대”에 글을 보내고 주 장원으로 최유라씨와 전화인터뷰도하고 원고료도 받았다. 지금 쓰고 있는 침대 역시 TV SBS 아침 토크쇼에서 상으로 탄 것이다
보낸 글을 아나운서가 고운 목소리로 감정을 넣어가며 읽을 때 눈물을 흘리며 준비해 둔 녹음하는 것조차 잊은 적도 있지만 여러 개를 한데모아서 편집해둔 테이프 몇 개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져가서 선생님과 같이 듣기도 했다며 자랑했었고 친정어머니와 친구들에게 테이프를 들려주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그걸로 만족하며 살아온 것 같다.
아침엔 아이들과 남편이 출근한 뒤 청소와 가게 정리를 하고나면 나만의 시간이 된다 모두 바쁜 생활 속에서 못했던 말들을 편지로 써서 남편직장과 아이들 학교로 보내기도하고 주로 나는 아침에 일기를 썼으며 그 일기는 60살이 넘도록 썼다
어쩌면 나 혼자의 푸념과 독백이었을 것이다
우리 집 가까이 남편 친구가 서점을 하는데 가게가 조용한 아침으로 책을 자주 사러갔었는데 한번은 남편친구부부가 “뭐 하러 자꾸 사요, 깨끗하게 보고 갖다 놓으면 되요.”라고 해서 그때부터 두 권쯤 빌려보고 한권씩 사기도 했었다 내 글이 방송에 나오면서 여기저기서 원고 청탁도 들어오기도 했으며 각 지방신문에서 글을 부탁했고 소백신문에는 “창간호에 대한 기대”라는 제목으로 지면 가득 내사진과 글이 실리기도 했다 “신흥해풍”이라는 주간지신문사에서 매주 글을 부탁했으며 소정의 원고료도 보내 주기도 했었다
방송국과 신문사에서 온 봉투는 아직 추억처럼 내 앨범에 꽂혀있다
그때 내 나이 30대에서 40대쯤(30여 년 전)이였을 것이다 그때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못해봤기에 신춘문예 같은데 관심도 없었고 정보도 어두웠다 내게 처음으로 글쓰기 공부를 권했던 분은 그때도 이미 내 나이 50살이 가까웠을 무렵 오래도록 하던 수예점을 정리하고 대학교 앞에서 레스토랑을 할 때 당시에 최고의 인기 단막극인 “전설의 고향” 권기훈 작가께서 어느 날 우리가게까지 친히 오셔서 “어느 신문에서 글을 읽었는데 작가로서의 소질이 다분하다” 시며 “공부를 좀 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그리고 KBS TV“전설의 고향”에 방영 되었던 것만 엮으셨던 책에 싸인 을 해서 두 권을 주셨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그 책을 볼 때마다 좀 더 빨리 등단 할 수도 있었던 좋은 기회였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당시에는 모든 여건도 안 좋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핑계일 뿐 작가에 되한 꿈이나 관심조차도 없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늘 쓰던 단어조차도 생각나지 않는 61살의 늦은 나이에 아들이 “어머니, 이왕 글 쓰시는 거 등단을 하셔서 쓰시면 좋잖아요.”할 때 “이 나이에 등단은 해서 뭐하겠냐.” 하면서도 그제야 작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울산대 평생교육원 시창자과에 등록을 했다. 그땐 이미 6개월에 걸쳐 “좋은 날의 일기”를 탈고한 이후였다
그리고 자신이 없어서 담당교수님께 상의도 없이 “서울 문학 저널“에 시를 보냈는데 신인상 수상이라는 전화를 받은 것이다
숨 막히도록 좋았던 신인상을 타면서 진작 작가의 꿈을 가지고 공부를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때늦은 후회를 했다 장편소설 ”좋은 날의 일기“ 출판한 이후 교수님들께 더 열심히 많은 공부를 하는 동안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고향 친구들이나 형님들과 지인들 모두가 “진작 시작하지 그랬냐.”고하며 아쉬움으로 전화를 하기도 한다.
지난날 힘들었던 시간들은 내 영혼과 육체를 제 멋대로 흔들어 버린 지금, 흐릿해진 영혼에서 수없이 바글거리는 글들을 가슴을 열고 마음껏 쏟아 내지 못하고 붓끝이 갈팡질팡 헤맬 때가 있어 외롭고 답답한 가슴으로 우울증이 다녀간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끝없는 욕구와 욕망은 다시 필을 쥐게 한다. 100세에 “약해 지지마.”라는 시집을 출판해서 베스트를 냈던 일본“시바타도요” 라는 여인처럼 언제나 맑고 푸른 글을 쓰고 싶다. 일류 요리사가 되려면 밥만 해서 되겠는가 떡도 할 줄 알아야하고 서양요리, 동양 요리도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늦은 만큼, 희미해진 만큼, 더 열심히 책도 보고 글도 쓰면서 꾸준히 새로운 도전을 꿈꾼다.
첫댓글 수노아님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말년을 가장 행복하게 살고 있으신 분, 만인에게 행복을 주시는 분.
그리고 젊게 사시는 분,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꿈 더 넓게 펼치세요.
축하드립니다^^*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남겨 주시는 글이
뒤에 가는
저에게 많은 공부가 됩니다.
감사 드립니다.
고마우신 말씀들 제게 힘이되고 위안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
그리고 교수님께 이번 수필 신인상 수상된 책(문예운동 수필시대)이 나와서 보내드렸는데 받으셨나요?
제일먼저 교수님께 보내드렸습니다~~
잘 받았습니다. 신인상 축하드립니다. 요즘 문학관 행사로 미쳐 전화를 못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