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의 본질은 머리로 아는 게 아니고 꿈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구원도 마찬가지로 뭘 더 생각으로 자세히 아는 게 아니라 살아오며 후천적으로 쌓여진 개체(에고)의 존재방식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담배를 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담배를 끊는 법을 갖고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을 진 몰라도 실제로 담배를 끊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실제로 결행한 사람만이 담배를 끊게 됩니다.
진짜 나는 우주 탄생 전부터 스스로 독존했던 전체의식(단일의식)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래면목이며 하느님이며 그리스도의 성령 충만함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많은 눈먼 성직자들이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고로 구원이나 마음공부의 본질은 인간마음으로 살아오면서 후천적으로 쌓여진 개체의 나란 꿈에서 깨어나 본래 전체의식으로서의 참다운 나를 자각하고 나머지는 다 부수적인 전체의식의 산물로 여기는 것입니다.
삶이란 전체 우주 의식(단일의식)이 자기의 활동을 의식(자각)하는 겁니다. 즉 의식(전체)이 의식 활동(개체현상으로 나타난)을 의식(분별)하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것을 자각함이 깨어남이며 구원의 문을 통과한 것입니다.
동전에 앞뒷면이 있듯이 삶과 죽음은 단일의식의 앞뒷면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입자와 파동의 상호관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전 그 자체에 해당하고 입자와 파동으로 다 나타나는 실재에 대하는 그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거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수없이 말할 순 있지만 다 알 순 없듯이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입을 다물고 그냥 존재함으로 직관함이 훨씬 더 그것을 잘 표현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개체가 전체를 더 잘 알려고만 하지 말고 그 대신 나를 개체라고 여기던 그 마음이나 알음알이를 떠나서 그냥 나를 버리거나 잊음으로서 본래 그 자리에 있었던 전체성을 회복하고 전체가 되는 편이 차라리 빠르고 정확합니다. 이것이 구원과 마음공부의 진정한 본질입니다.
전체가 되라 한다 해서 꼼짝 말고 전체로 있거나 멍 때리란 말이 아닙니다. 모든 개체현상이 그대로 전체가 살아 움직이며 자기를 표현한 것입니다. 고로 동시에 전체를 품은 개체, 개체에 깃든 전체성으로서의 참 자신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