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법원, 펌>
지난 25일 브라질 대선 결선 투표에서 패배한 보수 진영의 <플라비우 보우소나르> 상원의원이 서둘러 미국으로 도피성 출국을 감행하며 사실상 망명을 했다.
플라비우는 온라인 도박 조직 연계 자금 세탁과 대선캠프 불법 자금 조달 등의 혐의로 동시 다발적인 수사를 받고 있었고, 내년 2월 상원의원 임기가 끝나면 불체포특권이 사라지면서 곧바로 구속될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패배한 후보자가 망명길에 오르는 것은 보통 민주국가에서는 매우 드문 극단적인 현상이다.
플라비우의 망명은 우선 두 거대 팬덤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진영논리에 갖혀 있는 <양극화된 정치적 부족주의 (Polarization)>라는 브라질 특유의 정치 문화가 한 몫 했다.
즉 상대 진영을 <공존해야 할 정치적 파트너>가 아니라 <타도해야 할 악>으로 규정하고, 선거에서 지면 정책적 퇴진이 아니라 반대 진영으로부터 <철저한 정치적 보복이나 구속>을 당할 수 있다는 실존적 공포가 지배한다.
그럼 플라비우는 4선 당선에 성공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에 의해 사실상 쫓겨난 것일까.
20%는 맞고 80%는 틀렸다.
오늘날 브라질 정치는 <법을 이용해 정적을 몰아내는>, 이른바 <사법정치 보복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사법부의 정치화>와 <사법 리스크>, 영어로 <롭페어(Lawfare, 법률 전쟁)>라고 부른다.
그럼 브라질 Lawfare의 주역은 누구일까.
그건 여당도, 야당도 아닌 대법원이다.
대법원에 의한 <사법 독재>가 사실상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사법부, 특히 연방대법원은 선거로 뽑히지 않은 권력이면서 행정부와 입법부를 압도하는 사실상의 초법적 독재기구처럼 군림하고 있다.
그것은 무너뜨릴 수 없는 신분 보장과 어마무시한 권한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11명인 연방대법관은 일단 임명되면 만 75세까지 자리가 보장되는 종신직에 가깝다.
대법관을 해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상원의 탄핵> 뿐이지만, 상원 의원들은 브라질 정치문화 특성상 자신들의 비리나 부패혐의 등으로 대법원의 재판 대상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탄핵이 불가능하고, 역사상 대법관 탄핵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대법관을 탄핵하려다 내가 먼저 구속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연방대법원(STF)은 전 세계 민주국가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우선 <정치인 직속 재판권(Foro Privilegiado)>으로, 브라질에서는 대통령과 부통령, 장관, 국회의원 등 고위 정치인의 형사 사건을 일반 법원이 아닌 대법원이 직접 재판한다.
2019년에는 대법원이 스스로 규칙을 개정해 검찰의 기소가 없어도, 대법관 개개인이(전원 또는 합의부 없이) 독자적으로 수사를 명령하고 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 초법적 권한을 부여했다.
다시말해 <영장 없는 수사개시권(Inquisitorial Power)>을 갖고 있는 것이다.
미국 망명을 택한 플라비우에게 여러가지 혐의를 씌우고 가짜뉴스 수사, 출국금지, 계좌 압류 등을 추진한 것도 알렉산드리아 드 모라이스 대법관 한 명이 독단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연방대법관에게는 <법률 및 행정명령 무효화권>이 부여돼 있는데,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에 대해 대법관은 단독으로 부적절하다며 장관 임명을 취소할 수 있고, 정부의 핵심 정책이나 행정 명령을 헌법위반이라며 언제든지 정지시킬 수 있다.
대법원이 국가의 사법 정의와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원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의 이익선을 침범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우선 룰라는 과거 대법관에 의해 부패 혐의로 구속수감되었다가 역시 대법원의 판결무효화 덕분에 가까스로 돌아와 4선 도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대법원에 도전할 경우 대법원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과거의 혐의를 재점화하거나 경제난 등 실정 등의 새로운 혐의로 자신을 다시 감옥에 보낼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게다가 현재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우파 세력의 탄핵 공세를 막아내려면 대법원의 막강한 권력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대법원이 우파를 Lawfare로 때려 잡아줘야 룰라정부가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공생관계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브라질 사법부는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철갑을 두른 신분보장과 무소불위의 사법권을 무기로 삼아, 대통령과 국회 등 <그 어떤 선출 권력도 자신들을 위협하지 못하게 조종하는 엘리트 귀족카르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민주국가의 필수 덕목인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ebearance, 권한이 있지만 최대한 자제하며 사용하는)>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럼 룰라 대통령과 사법부, 특히 연방대법원은 어떤 관계일까.
한마디로 <심정적 동지>라고나 할까.
룰라와 연방대법원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던 과거 역사가 있지만, 지금은 보우소나루라는 공동의 적을 맞아 공생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대선 승리와 동시에 대법원은 보우소나르 세력에게 출국 금지와 여권 압수, 자금 세탁 및 쿠데타 모의 수사를 전격 개시하면서, 룰라가 정치적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판을 깔아줬고, 룰라는 대법원의 초법적 수사에 대해 <민주주의 수호>라며 아양을 떨었다.
그래서 플라비우의 망명에서 룰라도 20%의 지분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럼 연방대법원은 왜 플라비우 보우소나르를 사법 처리라는 초법적 조치로 협박했을까.
그것은 괘씸죄, 정확하게 말하면 대법원의 절대 영역인 사법카르텔(기득권과 체면)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대법원과의 악연은 45세인 플라비우 한 사람만의 몫일까.
절대 아니다.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르는 대통령 집권시절 대법관들을 국가의 적이라 부르며, 지지자들의 대법원 습격(2023, 1, 8)을 사실상 선동하며 사법부를 무력화하려 했다.
그 대가로 대법원은 자이르에 대해 징역 27년 3개월을 때렸다.
아들 플라비우 역시 이번 대선 과정에서, 대법원의 선거관리를 믿지 못하겠다며 불복선언을 했고, 대법원이 여권 제출을 명령하자 아르헨티나를 거쳐 미국으로 도피했다.
다른 아들 에두아르도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대상으로 경제 제제와 관세 부과를 로비했다는 아유로 국가모독죄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한 가족의 정치 생명의 싹을 모두 잘라버린 셈이다.
사법귀족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흔들면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보여주겠다는 본보기식 응징이라 할수 있다.
룰라와 대법원의 공생은 지속될까.
경제난 등으로 룰라가 정당성을 잃고 민심이 돌아서기 시작하면 대법관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언제든 룰라를 버릴 것이다.
사법부는 항상 강한 자의 편에 서지, 약해진 자의 권력을 끝까지 지켜주지 않을 것이다.
이란에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가 있다면, 브라질에는 사법부, 특히 연방대법원이 있다.
최고지도자 체제에 변화가 없으면 이란에 봄소식을 전할수 없듯이, 브라질 연방대법원의 철갑통이 깨지지 않은 한, 선거로 국민대표를 아무리 뽑아도 그것은 연방대법원의 하수인에 불과하다.
민주 정치의 망또를 걸친 신종 독재정치, 그것이 브라질이다.
펌)황현호 변호사 페북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