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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하고 행복한 가정 : 백장흠 목사
시편 128: 1-6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곳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가정입니다. 어떤 화가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그림 도구를 갖고 길을 나섰답니다. 어떤 그림이 아름다울까 하다가 일년내내 땀 흘려 일하여 추수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땀 흘려 가을 추수의 보람을 찾는 모습 그야 말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다른 그림을 그리기로 하였습니다.
결혼식장에서 결혼하는 신랑 신부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다운 것 갖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전쟁에 나가서 승전하고 돌아오는 장군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씩씩하고 용감한 그 그림도 완전하지는 못 했습니다. 그림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피곤한 몸으로 가정으로 돌아옵니다. 문을 열자 마자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맞아 주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아빠하고 안깁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서로가 얼굴을 바라보면서 맛있게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화가는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가정이다. 그는 행복한 가정의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가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귀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흙으로 직접 지으시고 에덴에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보다 더 좋은 곳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은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곳입니다. 가정은 행복하고 형통하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가정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1. 이혼하겠다는 생각이 만연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 예식을 하면서 결혼 선포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이지요. 묻는 말에 서약하였으므로 부부가 된 것을 공포합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였는 데도 마음대로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혼 증가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황혼이혼이라 하여 70세가 되신 할머니도 이혼하겠다는 것입니다.
2. 불신과 갈등입니다.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살기는 하는데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정을 만들어 주실 때에 낙원보다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은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사회 풍조와 문화가 가정을 위험하게 하고 있습니다.
매스컴에서 보여주는 내용들이 마치 현대 가정이 다 그러한 것 같이 오도하고 있습니다. 싫으면 이혼해도 된다는 쉬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편의주의가 가정의 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박사는 미래의 가정형태를 86가지로서 제3의 물결에서 예견하고 있는데, 그 몇 가지 형태를 소개하면
이혼한 부부가 서로 자기 자녀를 데리고 재혼함으로 생기는 집합가족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아이에게 복수의 부모가 생기는 가족 관계로 남편은 이혼한 아내에게 아내는 전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고 사는 다부다처제적 경제관계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야말로 천국 가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천국 가정이 되기를 원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첫째, 건강한 가정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가정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결혼이란 일생에 단 한 번의 일회적이라는 관념이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결혼하면 죽어서도 그 집의 귀신이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의 이유는 대화의 단절이라는 것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가족과 하루에 얼마의 시간 동안 대화하시나요? 미국의 경우입니다만 하루에 대화하는 시간이 10분이라고 통계가 나왔습니다. 자주 대화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격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이혼사유를 말할 때에 성격이 도무지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맞추어서 살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혼은 환상이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니까 사회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하루에 태어나는 9,077명중에 1,282명이 사생아요, 하루에 5,962쌍이 결혼하고 1,986쌍이 이혼한다고 합니다.
건강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1. 서로 이해가 있는 가정입니다.
서로가 알아야 합니다. 남자는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여자는 칭찬을 듣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자는 남편을 인정해 주세요. 혹 남편이 속된 말로 허풍을 떱니다. 내가 이번에 중대한 것을 하게 되었는데 그 회사가 내가 아니면 문을 닫을 것이요. 그 말을 듣던 아내는 그래요. 당신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데요. 그러니까 내가 당신을결혼 대상자로 택한 것 아니에요? 그러면 남편은 우쭐댑니다. 아내는 칭찬 듣고 싶어합니다. 자기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칭찬 해보세요. 그렇게 가정이 아름다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은 칭찬에 인색합니다. 오히려 비난하는 투로 말하면 3년간 스트레스를 받는 다고 합니다.
여자들이 남편을 통하여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그로 인해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 쉽게 피곤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모든 일에 재미가 없다고 말합니다.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합니다. 그럴 때에 남편들이 칭찬을 해 주어야 합니다.
대화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남자는 한쪽 뇌의 발달이 느려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남자는 한 가지를 깊이 연구하는데 적합하지만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양쪽 뇌가 같이 작용을 하기에 라디오도 듣고 다리미질도 하면서 부엌에서 밥이 되는 지도 알고 아이가 넘어지는 것까지 다 살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퇴근 한 남편이 신문을 보는데 자꾸 무슨 말을 여자가 걸어옵니다. 남편은 신문 보는 데만 집중할 능력밖에 없습니다. 자꾸 질문하니까 남편 왈 당신은 몰라도 돼 시끄러워 그럽니다. 아내는 섭하다고 짜증을 부립니다. 서로가 심리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남자는 대화로 이끌려면 이야기를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시작해야 합니다. 남자는 독립적이고 경쟁적입니다. 여자는 의존적이고 수용적입니다. 남자는 목표 지향적이고 여자는 욕구 지향적입니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면 행복한 것입니다.
잘못을 했을 때도 남자는 죄의식을 느끼는데 여자는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어느 장소에 가서 자기 아이가 시끄럽게 하면 엄마는 얘 너는 창피하지도 않니 그러면 사람들이 욕해 조용히 해 그러는데 아빠는 너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는 줄 몰라 그럽니다. 죄의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가 다름을 이해하면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입니다.
2. 삶에 있어서 자신감이 있고 미래의 꿈이 있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가정입니다. 모든 일에 만족함을 느끼고 서로가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한쪽이 열등의식을 가지면 적신호가 됩니다. 남편 내조에 자신감이 있고 만족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3명이면 한 사람은 열등의식을 갖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3. 신앙교육이 바로 되어 있는 가정이 건강합니다.
브쉬넬이라는 이는 자녀 교육을 위해 힘써야 할 교육적 측면에 대하여 말하기를,
1) 신체적인 양육이라 하였습니다. 몸을 잘 훈련 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2) 처세 방법을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좋아하게 하고 말할 때에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3) 놀이 방법 교육이라고 하였습니다. 같이 놀아주는 것, 노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도 교육이라는 말입니다.
4) 치유 돌봄의 방법이라 하였습니다. 상처를 싸매 주는 것입니다. 혹 성적이 떨어졌을 때 무엇이라 합니까? 너 열
심히 했는데 그리 되었구나. 그 실력은 나중에 나타나는 것이야. 너는 실력이 있는 아이야 아빠가 너는 믿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5) 중요한 것은 성경교육이라고 합니다. 말씀으로 교육하는 가정이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4. 건강한 가정은 서로가 신뢰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믿어줍니다. 아내는 남편을 믿어 주는 것입니다. 가정에 의심이 들어오면 가정은 병들고 파괴되는 것입니다. 비행 항공술의 선구자인 핸드리 페이지가 많은 관중에게 에어쇼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는 창공에서 고난도 기술을 선 보였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안에서 계속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생쥐 한 마리가 전선
을 갉아 대고 있었습니다. 만약 전선이 끊기거나 합선이 되면 비행기는 여지없이 추락할 상황입니다. 비행기가 추락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순간 페이지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자 그리고 더 높이 날아오르자 그는 고도를 최대한 높였습니다.
비행기가 높이 날아오자 더 이상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아니합니다. 쥐는 비행기가 높이 오르자 산소 부족으로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의심이라는 적은 쥐가 가정을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서로가 신뢰하고 믿어주는 가정이 건강한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둘째, 행복한 가정은 사랑이 넘칩니다.
가정에 경제적인 부(富)도 있어야 하고 건강함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랑이 있어야 한답니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가 사랑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1. 자랑하고 칭찬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려고 하면 남편 되는 이들은 팔불출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를 자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랑하려고 하면 좋은 점이 있어야 합니다. 좋은 점을 찾아야 하고 그리고 남에게는 자랑하고 본인에게는 칭찬하십시오. 흔히 하는 말이 여자는 자기를 칭찬하여 주는 사람은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적은 것도 잘했다고 칭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처세술이라고 하는데 처세술에 능한 사람을 보면 대개가 칭찬을 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부가 살아가는데 서로가 기분이 좋지 않다든지 화가 나서 부부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 싸움에 금물이 있습니다. 서로가 아픈 데를 찌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주먹을 여자는 입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과거의 잘못까지 들추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문제만 갖고 해야 하지 왜 지난날 그것도 수 십 년 전의 사건까지 들추어서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약점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칭찬하면서 싸워 보세요. "당신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어 나를 더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어 알았어 자상한 당신 아니야 나에 대하여 좀더 신경 좀 써 달라는 것 아니야? 그런데 왜 화를 내는 거야"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자랑하세요. 본인에게는 자꾸 칭찬하세요. 이것이 사랑하는 것이랍니다.
칭찬하는 데도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칭찬하여야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형식에 지나지 않게 사소한 것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간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2. 서로가 끊임없이 대화하여야 합니다.
대화가 없는 것은 사막에서 홀로 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이 대개 화가 나면 대화가 없습니다. 가정에서 대화가 단절되면 모든 것이 끊어지게 됩니다. 왜 가정에 대화가 없게 되나요?
(1) 피차 세상을 살아가는데 너무나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2)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다른 매스컴이 다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3) 서로가 귀찮다는 것입니다. 대화가 있을 때 사랑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대화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① 나의 이야기보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② 말하기 전에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눈을 약간 밑으로 하고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 끄덕 해야 합니다.
③ 질문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요" "그런데 이런 것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식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④ 단답형 식이 아닌 말하게 하는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 밥 먹었어요. 답이 "먹었어" "편지 온 것 없어요" 그러면 끝입니다.
⑤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논쟁이 아닌 진실함이 있어야 진정한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3. 당신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좋으면 된다는 식 이것은 이기주의입니다. 이기주의가 문제의 요인입니다. 나보다 당신이 좋으면 그렇게 하세요가 되어야 사랑인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는 적은 물건 하나 사는데 부부가 의견이 맞지 아니하여 부부싸움을 하게 됩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좋으면 된다 이런 사고가 사랑의 마음인 것입니다.
4. 겸손해야 합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라고 하였습니다. 잘난 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물어 보겠습니다. 부부가 싸웁니다. 누가 이겨야 합니까? 남편이 그래도 내가 가장인데 질 수 있나? 그것은 교만입니다. 서로 이기려고 하면 부부싸움은 끝나지 아니 합니다.
손자하고 할아버지가 싸우면 누가 지나요? 할아버지가 집니다. 지는 것이 아니라 져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져 줄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서로가 져 주시기 바랍니다. 져 줄 마음이 없으면 부부싸움을 시작하지 마세요. 이기려고 하면 이혼이나 하려면 모를까? 사랑은 겸손한 것입니다.
한 번은 영국의 여왕 빅토리아가 자기 남편을 매우 화나게 하였다고 합니다. 알버트 공은 문을 잠그고 열지 않습니다. 그때 문을 노크합니다. 누구요? 영국의 여왕 빅토리아입니다. 그때 문이 굳게 잠겼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아차 실수하였구나. 인정하고 다시 노크합니다. 노크하였습니다. 누구요? 당신이 사랑하는 아내 빅토리아예
요. 그때 문이 열리고 껴안아 주면서 화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 살다가 보면 한 얘기를 또 하게 됩니다. 그런 때는 무어라고 해야 하나요? 잘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이구 듣기 싫어요. 그 이야기 수 천 번은 들었어요. 그것도 교만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하십시오. 그렇다면 겸손해야 합니다.
5.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말이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입으로도 해야 합니다. 당신 정말로 사랑해요. 사랑해요.(따라서 해보세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면서도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어야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모신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중에서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던지 만사 형통하리라♬ 하는데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요?
1. 우리 주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신 상태인 것입니다.
이 집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는 주님을 수종 드는 종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겠습니다. 그러한 자세로 살아가는 것 이런 집에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라고 찬송하는 대로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을 보면 가나 혼인잔치에 가셨을 때 그 집에 포도주가 모자랐습니다. 해결 할 길이 없습니다. 그때 우리 주님이 하인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문 앞에 놓여 있는 항아리의 물을 비우라. 그리고 다시 채우라. 다음에는 떠서 연회장에게 갔다 주라. 그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었기에 모자람이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예수가 계셔야 합니다. 모자람이 해결됩니다. 더 좋아집니다. 다른 이들에게 칭찬을 듣는 가정이 됩니다.
2. 주님을 모신 가정이라 함은 주와 대화 즉 기도가 있는 가정입니다.
가정이 바로 교회입니다. 기도의 제단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을 보면 이방사람 고넬료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고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게 됩니다. 그 가정에 은혜와 축복이 넘치게 된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정 적은 교회가 되면 반드시 복 받는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가정에는 찬송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기도소리가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3. 주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는 내 뜻이 아니고 주의 뜻대로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뜻대로 인데 감사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주의 뜻대로인데 범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경건한 가정이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문제가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것입니까? 그 이전에 믿음의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것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주님 모시고 주의 뜻대로 살아 보세요. 반드시 복 주고 복을 주시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예화) 행복하게 살겠다는 부부의 결심으로 가정은 행복하여야 합니다. 에덴보다 더 좋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1. 건강한 가정이 되게 합시다. 서로가 이해하고 꿈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고 말씀으로 교육하는 가정입니다.
2.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3. 무엇보다도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중에 지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출처: 여호와닛시 글쓴이: 주님의숲
전병금 목사 /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
(시 128:1-6)
존 홉킨스 대학의 한 연구소에서 3,40십대 주부 3,000명을 대상으로 ‘당신 부부는 하루에 얼마나 대화를 하십니까?’라는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대화 시간은 하루 평균 20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부부간에 대화를 이렇게 적게 할까 하는 의아심이 듭니다. 아무리 부부간에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고작 20분이라니 너무하지 않습니까?
물론 부부간에는 많은 말이 오갑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대화’라고 볼 수는 없는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부부가 말로 서로를 비난하고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대화를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성인아동’이기 때문입니다. 성인아동이란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숙하지 못하여 아동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어른들을 가리킵니다.
1) 성인아동은 의존적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주 아기일 때에는 이 의존적이라는 것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아동은 결혼하고도 아내에게, 남편에게 의존하려고 합니다.
2) 성인아동은 이기적입니다:
아이들은 남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이기적입니다. 아이 시절의 이기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부부는 한 쪽에서 너무 이기적으로 나가기 때문에 상대방은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됩니다.
3) 성인아동은 성취지향적입니다:
아이들은 무엇이든지 ‘일등’을 해야 합니다. 양보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런 특성을 가진 성인아동은 사람들과의 관계보다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부부생활은 어긋납니다.
4) 성인아동은 절제를 하지 못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절제를 하지 못하고, 계획성이 없습니다. 이런 특성을 가진 성인아동은 화를 내지 않아도 될 것에 화를 내고, 절약하기보다는 충동구매에 휩싸여 낭비하기 일쑤입니다.
6) 성인아동은 매우 자학적입니다:
많은 성인아동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으면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나 자존심이 있을 수 없어 결혼을 하고서도 상대방을 건강하게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7) 성인아동은 무책임합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책임의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처럼 너무 무책임한 성인아동은 자신의 감정에 대하여 혼돈을 느끼고, 자신이 싫어하면 금방 토라지고,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하고, 툭하면 다른 사람과 싸우고 분쟁을 일으킵니다.
가정의 달에 가정이 회복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가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성인아동의 기질를 극복하고 사랑의 완성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 복이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며”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에 대하여 거룩하고 신령한 두려움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의미의 두려움이 아니라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 앞에서 갖는 신성한 떨림을 의미합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 같은 미미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내 주셨으니 이 크신 사랑에 무엇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하겠습니까?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에 복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개인, 가정, 나라, 사회는 그 어떤 일을 해도 그 모두가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인간은 타락 이후 수고해야 먹고 살수 있다고 했습니다(창3:19).
수고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인간으로서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음식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최선만 다한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둘은 결혼해 살게 되었습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소가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참을성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얘기했습니다. 서로는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지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소와 사자는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끝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헤어지며 서로에게 한 말은 “난 최선을 다 했어!”였습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입니다.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나다.
나 위주로 생각하는 최선, 상대를 못 보는 최선은 그 최선이 최선일수록 자칫 최악을 낳고 맙니다.
최선을 다하고도 최악이 되는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사랑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앎으로써 우리는 이기적인 사랑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사랑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최선의 삶은 소와 사자의 사랑이 보여주듯이 우리의 삶을 맹목적으로 만듭니다. 최선의 삶이 최대의 행복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러한 최선을 잘 인도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부부관계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할 때 부부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인아동에서 벗어나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부부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본문에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1절)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도’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1:1-2).
성경에서는 이 세상에서 복 있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행복이라는 것이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속에 숨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큰 집, 멋진 옷, 비싼 자동차, 많은 돈이 예금되어 있는 저금통장 속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싼 돈을 지불한 휴가, 많은 돈이 들어가는 여가 생활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크나큰 잘못입니다.
우리가 물질이나 돈을 가지게 되면 어느 정도의 위안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행복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행복이란 소유나 명예 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이 소유나 명예에 있다고 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하고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스웨덴 사람들이 자신들을 가장 불행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중국 초나라 때의 자종은 학문도 높았거니와 고상한 성품을 갖춘 당대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품이 깨끗하다보니 가난을 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조그만 초막에서 아내와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전에는 책을 읽고 오후에는 신을 삼아서 생계를 꾸려 가는 것이 그의 생활이었습니다.
이러한 자종의 인품을 알게 된 초나라 왕이 그를 불러 나라의 중책을 맡기려고 신하를 보냈습니다. 많은 예물과 자종을 모시고 가기 위한 화려한 마차를 보자 자종의 마음은 약간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상의했습니다.
“임금님이 국가의 중책을 맡기시려고 부르셨소, 내일부터는 당신도 부와 세력을 얻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었소, 이제까지 내가 당신을 너무 고생시켜서 항상 마음이 아팠는데 당신의 의향은 어떻소?”
그러나 그의 아내는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으며 대답하기를 “저는 보리밥에 나물 반찬을 먹고 신을 삼는 일을 하지만 행복합니다. 비록 맛있는 음식은 못 먹지만 굶지 않고, 또 당신의 사랑을 받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높은 자리에 올라 잘 먹고 잘사는 대가로 초나라의 근심을 도맡으시겠습니까?”
그리하여 자종은 어명을 거역하고, 다른 지방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가운데 여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행복은 돈과 명예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여러분에게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삶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하여 금은보화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잘 믿으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온갖 핍박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그런 금은보화를 하늘에서 받지 않는다할지라도 우리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사랑하는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인이 무엇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하겠습니까? 사랑하는 남자가 멋진 자동차를 선물해 주고, 값진 보석을 사 주는 것보다는 그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과 함께 있음으로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참다운 행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있는 것 그 자체입니다. 내가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으로 나는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 기도하여 낳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를 주시면 “나실인”으로 기우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면 다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입니다.
그녀는 아이를 받고 젖을 떼기까지 기다리다가 약속대로 성전에 데리고 가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삼상1:28)하고 드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고 바친 것입니다. 그는 엘리 제사장에게 말씀을 배운대로 살아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축복된 인생을 보장 받아야 합니다.
3. 교회 중심의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본문에서 “시온에서 복을 주실 것이며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5절)라고 했습니다.
시온 산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거처하는 곳이며(사8:18, 시74:2), 그가 왕으로 계신 곳이며(사24:23), 또한 그가 다윗을 왕으로 세운 곳(시 2:6)입니다. 따라서 이곳은 역사 속에서 야훼가 활동한 장소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이 활동하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바로 그곳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이자 성령이 역사하시는 장소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에 기초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기도를 통해서 성령과 매일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대학의 기독교 동아리 중에 교회를 부정하는 동아리가 있습니다. 그 중 UBF는 대표적으로 기존의 교회를 부정하는 동아리입니다. 그들은 기존의 교회와 단절하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성경 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교회를 떠나면 신앙 생활을 그만 두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듯 전도와 봉사와 헌신을 통해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교회를 잘 섬기기 위해서는 첫째,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파벌을 조성하지 말며 모든 일에 사람의 계획과 계산으로만 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헤아려 행해야 합니다.
둘째, 모든 일을 소망 중에 해야 합니다. 고난당할 때에도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고, 억울할 때에도 참고 기다리며, 자신이 없거나 감동이 없을 때는 억지로 하지 말고 기도하며 신중히 생각하면서 행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다른 성도를 낙심하게 하거나 실족시킨 일이 없는지 살펴보고, 사랑하는 나머지 무례히 행치 않았나 살펴보고, 말로는 형식적으로 사랑을 표시했으나 속으로는 미워하거나 무관심 하지 않았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 생활을 하면서 교회에 충성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를 등한히 하고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온 가족이 교회를 섬기는 것은 행복 중에서도 최고의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살고, 교회 중심적인 생활을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우리의 가정이 행복으로 가득차게 해야 할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 : 최성규 목사
(시 128:1-6)
대한민국은 가정의 달과 효의 달이 있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계절의 여왕인 5월을 가정의 달로, 결실의 달인 10월을 효의 달로 주셨습니다. 오늘은 가정의 달, 5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가정은 중요합니다. 가정을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교회보다 먼저 세우셨습니다. 예수님도 첫 기적을 가정이 시작되는 혼인잔치에서 베푸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 가정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국가가, 교회가, 직장이, 사회단체가 가정을 세우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있듯, 가정이 먼저 튼튼해져야 합니다. 천국은 가정이고, 가정은 작은 천국입니다. 가정이 바로 세워질 때, 이 땅에 천국이 임합니다.
지금 우리의 가정은 건강합니까? 행복합니까? 안타깝게도, 지금 가정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결혼식장보다 가정법원이 더 바쁘다고 합니다. 이는 스스로 행복을 걷어차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에 복을 주셨습니다(창 1:28). 뿐만 아니라, 구원의 은혜를 가정에까지 베푸십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사도 바울은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고 선포했습니다. 행복한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 행복한 가정을 꿈꿔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우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인지 알아봄으로, 모두가 가정천국을 이루는 믿음의 명문가가 됩시다.
첫째, 가족예배를 드리는 가정
성경이 가르치는 행복한 가정은 가족예배를 드리는 가정입니다. 가족예배는 하늘을 향해 열린 문입니다. 가족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재하십니다. 가족예배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 128:1)라고 말씀합니다. 가족예배 드리는 가정은 복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복이 있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고넬료의 가정은 이방인임에도 성경에 기록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복을 받았고,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복을 받았습니다. 이방인 중에서 첫 번째로 성령세례를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큰 복을 받은 것은 온 가정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배했기 때문입니다(행 10:2).
가족예배는 서로의 마음 문도 엽니다. 어느 가정에나 문제는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지 못한 채 가출과 이혼의 위기로 이어지는 가정이 있습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나만 열심히 뛴 탓입니다. 가족과 대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형편을 돌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딤전 5:8). 가족예배를 드리면, 가족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서로의 아픔도 알고, 서로의 짐을 질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족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되는 자리입니다. 모여서 예배할 때, ‘각자’ 세상으로 가던 삶이 ‘함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삶이 됩니다. 말씀과 삶을 나눌 때, 흩어진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가는 곳마다 단을 쌓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우리 가족도 매일 예배의 단을 쌓읍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복 주십니다.
둘째, 서로를 위해 수고하는 가정
한 아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왜 우냐고 묻자, 아이는 “산이 날 보고 자꾸 바보라고 해”라고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산을 향해 “너는 천재야!”라고 소리쳐 보라고 했습니다. 엄마의 말대로 한 아이가 웃었을까요? 계속 울었을까요? 가정에서 수고가 많은 만큼 수심이 많은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아빠도, 엄마도, 아이들도 ‘자기 수고’만 내세우기에, 돌아오는 메아리도 “자기 수고”뿐입니다. “서로”가 빠져 있는 것입니다. 연애할 때를 돌아보십시오. 남자 친구를 위해 도시락을 만들거나, 늦은 밤 여자 친구를 집까지 배웅해줄 때, 힘듭니까? 오히려 기쁘고 행복합니다. 피곤도 잊습니다. 이는 “서로를 위해” 수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5월 5일 어린이 날, 5월 8일 어버이날, 5월 15일 스승의 날과 가정의 날, 5월 21일 부부의 날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들을 주신 것은 서로를 기억하고 위해주라는 것입니다. ‘왜 내가 땀 흘려 수고해야 하는지’, ‘왜 내가 덜 쓰고 저축해야 하는지’ 재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 모든 수고는 가족을 위한 것입니다. 땀 흘리는 남편의 얼굴을 봅시다. 젖어 있는 아내의 손을 잡아줍시다. 공부에 지친 아이의 어깨를 감싸줍시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더 힘써 수고할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그 수고 위에 복을 더 하십니다(신 12:7).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 128:2).
셋째, 기다려주는 엄마가 있는 가정
엄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링컨은 “내가 성공한 것은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탈무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엄마를 보냈다”고 말합니다. 물론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에 차등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와 엄마의 사랑은 조금 다릅니다. 자녀를 볼 때 아빠는 “내 자식”이라고 하지만, 엄마는 “내 핏덩어리”라는 느낌을 갖는다고 합니다. 이토록 엄마는 가정에서 절대적인 위치입니다. 엄마의 역할에 따라 가정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엄마는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하고 부를 때, “응” 하고 답해주어야 합니다. 빈집은 아이의 마음을 비게 합니다. 엄마의 부재는 아이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합니다. 아이들에게 용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엄마의 품입니다. 자녀를 바르게 키우는 것은 자녀를 보고 웃어주는 엄마의 미소입니다. 엄마의 자리를 지킵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아이를 향한 가장 큰 사랑입니다.
성경은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 128:3)라고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엄마는 아이의 미래도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남보다 뒤쳐진다고 달달 볶지 맙시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재능과 은사를 주셨음을 기억하고, 그것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줍시다. 응원해줍시다. 남과 같은 아이로 키우지 말고 남다른 아이로 키웁시다. 또한 아내로서도 남편의 꿈을 기다려줍시다. 남편은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가정의 머리’입니다. 사라처럼 남편을 “주”로 알고 세워줍시다. 아내의 사랑과 응원이 남편에게 제일 좋은 보약입니다.
넷째, 자녀에게 밥상 교육이 있는 가정
시편 128편 3절은 자녀를 “네 상에 둘린 자식”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때 상이란, 밥상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정에서 아이들의 위치는 밥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들은 자녀가 밥상보다 책상에 앉아 있기만을 바랍니다. 밥상이야말로 최고의 책상입니다. 오늘날 논술이나 면접에서 중요시 되는 ‘자기 생각’이 어디서 길러집니까? 밥상에서 가장 많이 길러집니다. 밥상교육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를 자라게 합니다. 하버드대학 연구진은 ‘책 읽어줄 때는 140개 정도의 단어만 노출되지만, 가족과 식사 중에는 1,000개의 단어가 노출된다’고 발표했습니다. 풍부한 어휘 습득은 읽기, 쓰기, 말하기, 생각하기의 기초가 됩니다. 결국 밥상머리 교육을 잘 하면, 아이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고 정주영 회장은 새벽 5시에 전 가족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자녀와 손자를 모두 미국 명문대학에 보낸 전혜성 박사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험 기간 중에도 예외 없이 새벽 6시 30분에 모두 모여 식사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인생, 미래, 신앙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유대인 역시 밥상머리에서 중요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밥상에서 보내는 20분 내지 30분 가량의 짧은 시간이 자녀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밥상에서 대화의 성찬을 나눕시다. 음식만 먹지 말고, 아빠의 사랑과 엄마의 경청을 먹입시다. 자녀에게 밥상 교육을 잘 시켜주면, 그 자녀는 부모님께 성공의 효를 차려드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이라는 행복을 선물하셨습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이라는 선물을 선택합시다. 그 선물을 선택할 때, 천국이 우리 안에 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