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팔백예순여섯 번째
여백이 있어 아름답다
"여백은 창조의 포란실抱卵室".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리는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과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 Bill Movers의 TV 대담 초고를 재구성한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이란 책에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동양 미학에서는 이런 공간을 ‘여백餘白의 미美’라고 합니다. 여백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산수화는 그림을 보는 사람이 스스로 풍경을 완성하게 합니다. 꽉 채운 그림에서는 아무런 상상력이 나올 수 없지요. 어떤 사람은 안개 속에서 강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보일 듯 말 듯한 밥 짓는 마을을 보기도 합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산수화를 찾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 산수화는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거기에서 흰색을 빼면 보이는 게 없고, 검은색을 제하면 남아 있는 게 없습니다. 어둠을 다 걷어 내면 좋을 것 같아도 정작 빛은 기댈 데가 없어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노자가 그랬고, 예수님이 그랬듯이 모든 것을 ‘하나’로 이해하라고 한 이유일 겁니다. 수묵화는 달리며 보는 그림이 아닙니다. 홀로 멈춰 서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라고 일러주는 겁니다. 비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 빈자리에 나의 상상력, 창조의 알을 품는 겁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도적이자 연쇄살인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나그네들을 꾀어 자기 침대보다 키가 크면 남는 목을 잘라버리고, 키가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춰 강제로 늘리는 식으로 살해했습니다. 영어로 ‘Procrustean’이라고 하면 억지로 기준에 맞추려고 하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여백을 허용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여백은 강요하지 않기에 아름답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