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鮮明先生말씀選集 2권
하나님을 위한 예수님의 지정(至情) 1957년 8월 4일(日), 전 본부교회
5. 하나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충성·인내
예수님은 아무리 피흘리는 자리, 슬픔과 고통을 당하는 자리, 공포에 사로잡히는 자리에 처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중심만은 변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하늘의 이념을 인계받아 지상에 하나의 불변의 길을 개척하는 전체적인 사명을 담당해야 할 예수님이 그러한 환경에서 중심이 변하였던들 승리적인 천륜의 역사는 시작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려운 환경, 소망이 끊어진 입장, 사탄이 참소를 받는 자리에서도 그 모든 것을 이기고 넘어서서 승리적인 천륜의 길을 개척해 나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길을 개척하기 위해 역사상에 없었던 사랑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더라도 그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죄인들이 악을 대하여 충성하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의 근본입니다. 사랑의 생활을 하게 되면 희락과 화평이 나오고, 인내를 통해서는 자비와 양선(良善)이 나오며, 충성의 생활을 하면 온유와 겸손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타락권 내에 있는 인간들의 모든 악의 요소를 제거시켜 주기 위해서 천적인 사랑과 천적인 인내, 천적인 충성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이것들이 천국의 이념을 달성시킬 수 있는 실천적인 이념인데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습니까?
또 인내와 충성심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현현하신 사랑의 화신체였으며, 서러운 골고다의 길에서도 만민의 고통을 염려하신 인내의 주인공이었으며, 역사상의 어느 누구보다 하늘 대해 충성했던 충성의 대표자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 인내심, 충성심은 어디로부터 기원한 것인가? 이것들은 예수님 자신에서 기원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연결시키는 중보의 역할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지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요, 하나님적인 가치의 실체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었던가? 그는 하나님과 뜻을 위하여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고, 자기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임할 수 있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친히 재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찾으실 때 논리적인 면을 앞세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대한 정의와 사랑에 대한 논리를 말하지 않았지만 사랑의 실천적인 면에서 역사를 대표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가 느끼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한 것은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실천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실천적인 사랑은 어디서 나왔는가? 예수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더듬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런 내적 심적 기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인간들은 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인가? 오늘날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천만번 배반하고 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불변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인간들이 몰랐기 때문에 인간들은 서로 배반하고 불신해 온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내심은 어디서 나왔는가? 하나님이 싸움의 역사를 해오신 것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악을 대하여 무한히 참아 나오신 것은 선의 생활이념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인간 하나를 세워 놓기 위한 변할 수 없는 천리법도의 기준을 세워 놓고 6천년을 참아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참뜻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과 같은 사람,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인간이 하나님 대해 충성하기 전에 하나님이 인간 대하여 먼저 충성하셨으며, 무한히 인내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륜을 중심삼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과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무한히 인간 대하여 충성했던 그 사정을 체휼해야 하겠고, 이 뜻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희생해 오신 하나님의 심정, 또 미래의 이념을 세우기 위해 무한히 당신을 초월하신 하나님의 심정, 무한히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체휼해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자기의 어떠한 주의 주장, 자기의 어떠한 관념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한한 사랑을 주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참아 나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는 누구였던가? 그런 자는 예수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아시는 예수님은 외로울 때도 그 사랑을 느끼며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4천년 동안 슬퍼하시고, 4천년 동안 싸우며 참아 나오시던 하나님인 것을 알고 그 인내심의 가치의 결과를 나타냄으로써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하나의 인격자는 어디 있었던가? 역시 예수님 한 분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통해 인간의 갈 길을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소망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인내를 대신하여 홀로 천륜의 길을 가야 하는 예수님은 비탄에 사무쳤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