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 오른 이태전 글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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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포의 새벽 편지-259
동봉
제17장. 구경무아분-1
경을 읽다 보면
비슷한 내용이 중복되곤 합니다
특히《금강경》은 심한 편입니다
제13 여법수지분까지 내용이
그대로 제14 이상적멸분에 나오고
제14 제15 제16분 내용이
제17 구경무아분에 다시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얘기합니다
"이거《금강경》말이야
제14이상적멸분까지만 읽고
제15지경공덕분부터
그 뒤로는 굳이 읽을 필요 없어
왜냐? 이미 앞에 나온 것이니까."
지금도 일부 불교학자들이라든가
불교를 내용으로만 연구한
일부 지식인들과
스님네들은
위와 같이 얘기하지요
오히려 초발심 불자님들은
그야말로 '변성정각'의 경지를
마음으로 느끼는 듯
열심히 읽고 읽고 외웁니다
머리로써 이해하려는 학승들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가운데
경전을 쓰고 베끼고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며
읽고 외우는 불자들이
공덕도 먼저 쌓고
성불도 먼저 이룬다는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란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여름이었습니다
수지에 사는 한 후배스님과
팽목항에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새벽 5시 우리절을 출발하여
5시간을 달려 팽목항에 도착
1시간 남짓 독경하고 축원 올리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목포 시내를 통과한 우리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네비가 일러주는대로
길을 찾았지만
엉뚱한 곳으로 들어섰습니다
시내를 몇바퀴 째 뱅뱅 도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복잡했습니다
이승의 길은 목적지가 있고
네비게이션이라도 있으니
돌기는 좀 돌더라도
찾아갈 수는 있겠지요
저승길도 목적지가 있다고요
글쎄, 자세히는 모르지만
업에 의해 갈 길이 정해져 있겠지요
그러나 저승길은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입니다
모두가 인드라망입니다
중생과 부처가 서로 연결되고
부처와 보살이 연결되고
보살 연각 성문이 만나고
성문 연각 지옥이 이어지고
지옥이 천국으로
천국이 아수라와 아귀로
축생으로 이어지지 않겠습니까
고속도로 램프에 올리기 전
핸들을 잡은 후배가 묻더군요
"큰스님,
저 포르테 커피전문점의
포르테가 무슨 뜻입니까?"
나는 바짝 긴장했습니다
새벽에 팽목항으로 갈 때
얘기를 나누던 중
음악 얘기가 있었는데
그 생각이 나는가 싶었습니다
내가 되물었습니다
"뭐, 커피전문점에
포르테가 있다고? 어디 어디?"
"아이구 큰스님.
지나간지 벌써 한참입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커피전문점 '포르테'라는 간판이
얼핏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 기아자동차 중
포르테Forte에서 딴 거 아닐까?"
"네, 큰스님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콩나물 대가리가 그려져 있던데요."
"그래, 그럼 차이름은 아니구먼."
"그렇지요. 포르테가 뭘까요?"
그래서 나는 아침에 하던 얘기를
연결시켜 얘기했습니다
"음악의 셈여림표에서 따다가
커피집 이름을 붙였는가 봐
셈여림표라?
말하자면 안단테와 알레그로가
빠르기표라고 한다면
포르테와 함께 짝을 이루는
피아노를 붙여
강약으로 표시하는 것처럼 말이야."
피아니시시모ppp
피아니시모pp
피아노p
메조피아노mp
메조포르테mf
포르테f
포르티시모ff
포르티시시모fff
프레스티시모
프레스토 비바치시모
비바체
알레그로
알레그로 모데라토
알레그레토 모데라토
안단티노
안단테
아다지에토
아다지오
렌토
라르게토
라르고
그라베 .....etc."
왜 이런 악보의 셈여림과
빠르기를 얘기하느냐고요
온 우주를 하나로 연결하는
인드라망Internet도
0과1이라는
두 개의 디지털 기호로 표현되고
우리가 쓰는 그 많은 우리말도
닿소리 14자 홀소리10자가
조합되는 것 말고
또 뭐가 있던가요
위키백과에 올라있는 영단어들이
천만 가지가 넘는다 해도
결국 기본은 알파벳 26자입니다
설령《금강경》내용이
끊없이 중복된다 하더라도
100조 개 세포들로 짜여 있는
우리 인간이 지닌 몸의
복잡한 구조를 뛰어 넘겠습니까
우리《금강경》은 음악입니다
특히 이 <구경무아분>의
다양한 중첩구조에서
들려오는 음률의 셈여림이
커피전문점 포르테에서 풍기는
향기분자의 셈여림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면 과장일까요
"여래란 모든 법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니라."
"여래가 깨달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바로 그 속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느니라."
"일체법이
모두 부처님 법일 뿐이니라."
"이른 바 일체법이란
곧 일체법이 아니나니
그러므로 일체법이라 하느니라."
붉은 여왕 효과를 알고 있습니까
루이스 캐럴이란 필명으로 발표된
소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속편《겨울 나라의 앨리스》가
과연 어느 정도나 유명하겠는지요?
1865년 초판 소설이 나온 뒤
영화로 1951년에 이어
2010년 팀버튼 감독이
미화 2억 달러를 들여 만들어
10억2천430만 달러
곧 5배 넘게 벌어들인 걸작입니다
차라리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망정
영화광인 내가 어찌 놓치겠습니까
끝내 인터넷으로
내려받아 보고야 말았지요
앨리스 킹슬리 역에는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열연했고
미친 모자 장수 역에는 조니 뎁이
붉은 여왕 이라스베스 역에는
헬레나 보넘 카터가
하얀 여왕 미라나 역에는
앤 해서웨이가 맡아 열연하였지만
그런 역할 못지 않게
대니 앨프먼의 음악이 좋았습니다
1953년생인 대니 앨프먼은
우리나라 나이로 쉰한 살이 되던
2003년에 늦깎이 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 하나를 얻었지요
팀 버튼의 영화에는
음악을 도맡다시피했는데
수상경력은 내세울 게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음악은
오히려 순수하기까지 합니다
영화 속에서 붉은 여왕은
앨리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어라 하고 뛰어야 한다."
불교경전《수능엄경》에 나오는
<흐르는 언덕>얘기는 접어 두고라도
박목월(1916~1978) 시인의
<나그네>라는 시의 내용과도
전혀 상반된 그런 소재입니다
박목월 시인의 시는
너무 유명하여
지금도 줄줄 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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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ㅡ 박목월
술 익은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ㅡ芝薰
강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은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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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르침은 불변입니다
'여래如來'라는 말씀에
그 뜻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른 바 여여如如의 세계는
바깥 상황이 변하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
항구적 세계지요
여기《금강경》에서 처음으로
부처님께서는 여래에
담긴 뜻을 말씀하십니다
"여래란 모든 법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니라"
즉 진여眞如라고요
이 말씀을 한 번 곱씹어 보겠습니다
만의 하나 모든 법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여래라고 한다면
여래의 씨앗Seed이 되는
'모든 법'은 과연 어떤 법일까요
네,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부처님 법의 씨앗인 일체법입니다
일체법을 떠나 따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없습니다
실무유법, 즉 부처님 법이라 할
특정한 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지요
그렇다고 한다면
붉은 여왕이 사는 나라 법과
우리가 사는 나라 법이 다를까요
붉은 여왕의 왕국은
왕국의 주인공인
그 백성들과 함께
같은 속도로 바뀌면서 달려가는데
우리 지구는
사람 붙이들과 달리
제자리에 가만히 멈추어져 있나요
아니지요
우리 지구환경도
붉은 여왕의 왕국처럼
같이 변하며 달려갑니다
우리가《금강경》을 읽으면서도
우리의 사고 의식이
주변과 함께 움직여 주지 않고
"진여의 세계는 영구불변이야!"
라면서 늘 멈추어 있다면
우리는 부처님 법에 얽매어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할 겁니다
위대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참으로 장하십니다
구경무아究竟無我시여!
완벽한 제행무상의 가르침입니다.
09/16/2015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