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와 광기의 기념비-베르사이유궁전 2】
베르사이유궁전의 정원에서 가장 뛰어난 특징은 분수와 폭포였다.
그것을 만드는 데는 방대한 수도설비와 거대한 양수장이 있어야 했다.
센강의 물을 끌어오기 위해 1681년부터 1684년 사이에 마를리기계시설이 건조되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고 유르강의 물줄기를 돌리는 공사가 추진되었으나 인명피해가 많고 돈이 많이 드는 데다가 1686년에 일어난 대동맹전쟁으로 중지되었다.
결국 베르사이유와 랑부에 사이의 高지대에 있는 물을 모아 수로망을 통해서 정원에 물을 대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1682년 루이 14세의 궁정이 깡그리 베르사이유로 옮겨져서,1789년까지 이곳은 프랑스의 수도가 되었다.
1000명의 조신과 4000명의 하인들이 궁전에서 기거했는데, 그 화려한 방과 회랑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는 도무지 맞지 않는 것들이었다.
건물은 사실상 난방이 불가능했으며 위생시설은 거의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
베르사이유궁전에는 루이 14세가 사용하는 화장실 이외의 화장실이 없어서 변기를 갖고 다니거나 정원에 실례를 해야했다.
루이 14세가 죽은 뒤,그의 증손 루이 15세가 베르사이유궁전을 다시 증축했다.
루이 16세는 마리 앙뜨와네트를 위해서 일련의 아파트까지 증축해 주었지만,베르사이유궁전의 권세와 영향력도 1789년의 프랑스혁명으로 종말을 맞는다.
혁명 후 궁전의 가구와 장식품은 매각되거나 도둑맞았고,궁전은 돌보는 사람없이 방치되다가 19세기 중엽에 루이 필립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서 베르사이유궁전의 복원사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