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 폴란드의 애니메이션
인기멤버
hanjy9713
2023.09.09. 22:22조회 5
댓글 0URL 복사
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폴란드의 애니메이션
요약 폴란드 애니메이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의 지원과 통제 아래 있었다. 검열과 작가주의의 긴장관계 속에서 작가들은 상징, 풍자 등의 기법으로 개성과 주제 의식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1990년 공산권이 붕괴한 이후, 폴란드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위기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나가고 있다.
과거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대중적 흡인력을 일찍이 인식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폴란드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을 국영화했으며, 이는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작가들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국가의 검열을 피해 갈 수 없었던 한편, 국가의 지원이 있었으므로 작품을 통해 이윤을 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폴란드나 체코 같은 공산권 국가에서 고비용이 드는 인형 애니메이션 제작이 상대적으로 활발히 이루어진 것은 국가 주도의 산업 구조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 폴란드 애니메이션의 시작
폴란드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의자의 바람기, 그리고 망원경에게는 양쪽 끝이 있다(The Chair’s Flirtation and the Telescope has Two Ends)>(1917)이다. 페릭스 쿠츠코브스키(Feriks Kuczkowski)가 화가인 루찬 코비엘스키(Lucjan Kobierski)의 도움을 받아 38컷의 드로잉을 써서 제작한 작품이다. 광고 애니메이션에서 활약한 블라디미엘즈 코반코(Wlodimierz Kowanko)는 사운드 트랙의 기술적 발전에 기여한 작가로, <트바도브스키씨(Mr. Twadowski)>(1934)를 제작했다.
폴란드 애니메이션은 초기에 폴란드계 러시아인인 라디슬라스 스타레비치(Ladislas Starevich)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스타레비치는 <아름다운 류카니다 혹은 사슴벌레 전쟁(The Beautiful Leukanida)>(1910년)과 <카메라맨의 복수(The cameraman’s revenge)>(1911)에서 스톱모션 촬영 기법을 통해 의인화된 곤충들의 전쟁과 고통을 유려하게 묘사한 바 있다. 폴란드의 인형 애니메이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바르샤바에 위치한 ‘미니어쳐 필름 스튜디오’와 ‘투신(Tuszyn) 인형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전담해 제작했다.
시인이자 만화가였던 제논 바실레브스키(Zenon Wasilewski)는 폴란드 인형 애니메이션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림1] 바실레브스키는 인형 애니메이션 기법의 광고물을 제작하다가,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하자 러시아에서 폴란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종전 후 폴란드로 돌아온 바실레브스키는 인형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만든 <크라커스왕 시대에(In King Krakus’ Time)>(1947)을 발표했다. <크라커스왕 시대에>는 공작용 점토인 플라스티신(Plasticine)을 인형의 눈과 입술에 사용하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인형의 표정을 풍부하게 표현해 주목받은 작품이다.
그림1. <아기고양이 납로텍(Kitten Napłotek)>(1957)의 세트에서 작업 중인 바실레브스키
■ 정치적 해빙기에서 예술적 황금기로
러시아에서 1953년 스탈린의 사망 이후 흐루시초프(Nikita Khrushchyov) 정권이 출범했다. 러시아의 해빙기와 함께 공산권 전반에 새로운 기운이 움텄다. 정부의 통제가 완화되면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정치적 선전과 경직성이 다소 완화되었다. 폴란드에서도 중도 성향의 고무우카(Vladislav Gomul´ka) 정권이 시작되고 정치적, 사회적 안정기에 접어들자, 창작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
로디미엘즈 하우페(Wlodzimierz Haupe)와 부인인 하리나 비스린스카(Halina Bieslinska)는 폴란드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자노시크(Janosik)>(1954)를 공동 연출로 선보였다. 얀 레니차(Jan Lenica)와 바레리안 보로브치크(Walerian Borowczyk)는 <옛날 옛적에(Once Upon a Time)>(1957)와 <집(House)>(1958)으로 철의 장막을 넘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보로브치크는 이후 프랑스에 정착해 크리스 마커(Chris Marker)와 함께 <우주비행사(The Astronauts)>(1959)를 만들었다. <우주비행사>는 영화사 초기에 수많은 특수 효과를 만들어낸 조르주 멜리에스(George Mélièse)에게 헌정된 작품으로, 사진의 실사 이미지가 익살스러운 작품이다.
레니차는 프랑스와 독일에서 계속 활동하면서 <미로(The Labyrinth)>(1963), <코뿔소와 우부왕(Rhinoceros and King Ubu)>(1987) 등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그림2] 레니차는 컷아웃, 사진, 드로잉 등 다채로운 기법을 활용한 초현실주의 풍의 작품을 통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표현했다.
폴란드의 애니메이션은 브로브치크와 레니차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가 있을 만큼, 이들의 작품은 혁신적이었다. 브로브치크와 레니차는 애니메이션이 아동용이라는 편견을 깨고 어른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 내용적,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 후대의 애니메이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림2. <미로>의 장면들
날개달린 남자의 추락을 통해 전체주의를 은유적으로 비판한 작품이다.
폴란드 정부가 명백한 체제 비판을 금지하면서도 상징적 표현까지 막지는 않았던 1960년대 전후로 예리하고 흥미로운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비톨트 기에르시(Witold Giersz)는 다양한 기법을 써서 다작을 남긴 작가로 유명한데, 특히 셀룰로이드 위에 바로 물감을 펴 발라 움직임을 주는 기법으로 주목받았다.
<짧은 서부영화(Little Western)>(1960), <빨강과 검정(Red and Black)>(1963), <말(The Hoorse)>(1967) 같은 대표작이 이러한 방법으로 탄생했으며, 특히 <말>은 물감의 두께감과 활달한 필치를 통해 독특한 질감을 선보였다.[그림3]
그림3. <빨강과 검정>의 시작 부분
제목에서 방울져 떨어진 빨강 물감과 검정 물감이 각각 투우사와 투우로 변한다.
스테판 스하벤베츠크(Stefan Schabenbeck)는 <모든 것은 수이다(Everything is a Number)>(1966)와 <계단(The Stairs)>(1969)에서 기하학적이고 단순화된 이미지로 인간 존재의 조건을 형상화했다. 특히 <모든 것은 수이다>는 만물의 원리를 수로 파악했던 피타고라스적 세계관을 보여주면서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림4]
그림4. <모든 것은 수이다>에서 등장인물이 숫자 ‘4’에 앉아 있는 장면(왼쪽)과 숫자 ‘0’을 집어 드는 장면
다니엘 슈체후라(Daniel Szczechura)는 반체제적 시각에서 당대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국가의 검열을 비판한 <갈등(Conflicts)>(1960), 권력욕으로 인한 싸움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의자(A Chair)>(1963)가 체추라의 대표적인 초기작이다. 그러나 <여행(The Voyage)>(1970)에 이르러 체추라는 날카로운 풍자 대신 절제된 영상과 움직임으로 정중동의 미학을 선보이게 된다. [그림5]
그림5.<여행>의 장면들
관객은 전신주의 반복과 음향의 규칙적 리듬감에 젖어 최면에 걸리듯 정체모를 남자의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1970년대 이후 폴란드 애니메이션은 이전의 활력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리사르트 체칼라(Ryzsard Czekala), 예지 쿠치아(Jerzy Kucia), 즈비그니에프 리프친스키(Zbigniew Rybczynski)와 같은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체칼라(Ryzsard Czekala)는 애니메이션에서 이야기의 힘을 중시한 작가로 <새(The Bird)>(1968), <아들>(1970>, <점호(Roll-Call)>(1970)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특히 <점호>는 애니메이션에서 나치 수용소를 다룬 최초의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한 포로의 저항이 모든 포로의 처형으로 귀결되는 이야기가 극적인 흑백 대비의 이미지를 통해 함축적으로 표현되었다.
쿠치아는 <귀향(Return)>(1972)에서 현실과 기억, 꿈의 미묘한 관계를 서정적으로 풀어내 주목받았다. 이후 <엘리베이터(Elevator)>(1973), <반영(Reflections)>(1979), <들판을 가로질러(Across the Field)>(1992)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리프친스키는 1970년대부터 <수프(Soup)>(1974)와 같은 작품을 통해, 전통적인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사진 이미지로 다양한 실험을 했다. 1983년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 수상작인 <탱고(Tango)>(1980)는 공을 든 소년을 시작으로 다양한 인물이 방에 연달아 들렀다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리브진스키는 기발한 조형적 상상력과 기술적 혁신으로 ‘현대의 멜리에스’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림6. <탱고>의 한 장면(왼쪽)과 <탱고>가 2011년 독일 베를린에서 옥외 상영된 모습
방에 드나드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길거리를 지나가는 행인의 모습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 1990년대 이후의 새로운 모색
1990년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폴란드가 정치적·경제적 격변에 휩싸이면서 애니메이션 산업도 위기를 맞았다. 국가의 지원이 끊기자 작품의 제작과 실험 정신도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 와중에도 애니메이션에서 두각을 나타낸 작가로 피오트르 두말라(Piotr Dumala)와 마렉 스크로베키(Marek Skrobecki)를 꼽을 수 있다.
두말라는 페로의 동화를 패러디한 <검은 모자<little black riding hood)>(1983)에서 발군의 블랙 유머를 선보인 이후, 문학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에 꾸준히 관심을 보였다. <온순한 여자(The Gentle One)>(1985)와 <죄와 벌(Crime and Punishment)>(2000)은 도스토옙스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며,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1991)는 카프카의 소설과 편지를 토대로 카프카의 삶과 내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두말라는 문학을 바다를 건너는 다리에 비유하며, 그 다리를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으로 도스토옙스키와 카프카를 꼽은 바 있다.
그림7. <프란츠 카프카>의 장면들
조각을 전공했던 두말라는 검은 칠을 한 석고판을 긁어내는 기법으로, 흑백의 대비가 강렬하면서도 몽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스크로베키는 폴란드 인형 애니메이션의 전통을 되살리면서 기술적 혁신을 이룬 대가로 평가받는다. <디아이엠(D.I.M)>(1993)은 실물 크기의 인형으로 풍부한 표정과 시적 정서를 살린 작품이며, <물고기(Fish)>(2005)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기법과 3D 컴퓨터 그래픽을 함께 사용해 삶의 부조리를 다룬 수작이다.
2000년대에 들어 토마츠 바진스키(Thomasz Baginski)는 <성당(The Cathedral)>(2002)을 통해 컴퓨터 그래픽의 진수를 보여준 바 있다. 그밖에 다미안 네노브(Damian Nenow), 마르친 바스코(Marcin Wasko) 등의 젊은 작가들이 활동 중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폴란드의 애니메이션 (세계 애니메이션 백과, 신홍주, 한창완)
hanjy9713님의 게시글 더보기
좋아요0
이 글을 '좋아요'한 멤버 리스트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