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행9:20-31)
갈등
1. 사도행전 이야기(내러티브) 16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 사울의 회심과 소명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빛 가운데 임하셨어요. 사울을 압도하며 그에게 소명을 주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을 압도하며 부르시는 주님 앞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순전히 순종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간단했습니다.‘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주님이 사울에게 사정을 하거나 설득하지도 않으셨어요. 사울에게 주시는 소명을 아나니아를 통해서 전해주셨습니다.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독특한 부름과 소명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사울이 복음을 전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언제부터 복음을 전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20절, 즉시로 각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을 있던 때가 언제인가? 알면 됩니다. 갈1:17에 자서전적인 바울의 이야기가 도움이 됩니다.
2.“또 나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사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아라비아로 갔어요. 사울이 아라비아 광야에서 (구약)성경을 읽을 때, 영적인 눈이 열리며 복음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3년간 말씀과 기도 가운데 복음을 정리했어요. 갈라디아서의 바울의 언급을 본다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은 아라비아에서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3년 후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지도 영상으로!)
바울이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자 21절,“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3년 후에 다메섹에 나타난 사울이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어요. 사울이 변화된 것을 그들이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회심을 위장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유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 마치 신천지 교인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신뢰를 쌓으며 한 명씩 신천지 교회로 이끌어가듯이요.(산 옮기기 작전) 대구의 어느 교회에서는 신천지 교인이 9년 동안이나 이런 일을 하다가 정체가 드러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담임 목사의 신뢰를 얻고 재정부장까지 하다가 끝내 들통이 났습니다. 사울이 3년 만에 나타나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본 유대교인들이 그를 죽이고자 공모했습니다. 사울이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도 불안한 존재요, 유대교인들에게도 불편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게 하셨을까요?
갈등 심화
4.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26절,“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사울이 다메섹을 떠나게 된 것은 유대교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공모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문입니다.(24절) 사울은 다메섹을 탈출하듯이 나왔어요. 사울이 광주리에 타고 성벽에서 그의 제자들이 달아 내리는 특수 작전이 이뤄졌습니다. 사울은 바로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성도들이 많았고, 또 사도들을 만나 교제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이제는 더 미루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했습니다. 사울이 새 마음으로-기대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왔지만, 제자들이 그를 믿지 못하였습니다. 사울의 회심과 그 실제를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고린도후서에서도 언급) 갈1:18-19, 바울의 증언에 의하면 게바-베드로와 함께 15일을 머물렀고 주의 형제 야고보(야고보서를 쓰고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가 됨) 외에는 다른 사도들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5.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며 29절,“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아라비아에서 돌아온 후 사울은 복음 전도에만 올인했어요. 다메섹에서도 예루살렘에서도요. 사울이 복음을 전하자 다메섹에서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했는데, 예루살렘에서도 복음을 전하자 예루살렘에 있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고, 사울은 형제들과 이야기하며 가이사랴를 경유해서 그의 고향인 다소로 갔습니다. 사울이 회심하고 소명에 순수하게 따랐지만, 그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불러주셨고, 3년간 아라비아 광야에서 경건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렇게 잘 준비된 일군, 사울의 복음 전도 여정은 왜 이렇게 험난하기만 하였을까요?
실마리
6. 지난 시간에 바울의 회심과 소명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고 창세 전에 또 모태에서부터라고 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엡1:4, 갈1:15의 바울의 고백) 하나님은 사울을 향한 모든 계획을 세우시고 D-day가 되자 사울에게 임하셨어요. 주님은 사울을 부르시며 그의 인생길이 쉽지 않음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아나니아를 통해서 사울이 16절,“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 동안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시며 많은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사울의 앞날도 만만치 않았어요. 하나님은 사울을 부르시고 가만히 있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사울이 아라비아 광야에서 성경을 읽고 복음을 정리하며 기도의 시간을 가진 후, 확신 가운데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사울이 복음을 처음 전한 곳은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소명을 받았던 다메섹에서 시작했습니다.(주님과 첫 만남, 첫 사랑을 경험한 곳)
7. 사울이 복음을 발견하고 확신 가운데 의욕적으로 전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가 진정 변화되었는지 신뢰하지 않았어요. 게다가 유대인들은 22절,“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사울이 일회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날을 쉬지 않고 전했어요. 유대인들은 사울의 본심을 알고 죽이기로 공모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이 이 사실을 알게 하셨고, 그를 다메섹 성 밖으로 탈출하게 하셨습니다.
사울이나 오늘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이나 바울도 그랬듯이 복음을 전하며 고난받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고난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하면, 사울과 같이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십니다. 사울의 험난한 여정은 교회 안에서도 이어졌어요. 사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사도들과 성도들이 그를 환영해주고 격려해줄 줄 알았습니다. 실제는 그들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믿지 않았어요.
8. 하나님은 이때 다시 사울이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 이어서 바나바를 예비하셨어요. 27절,“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하나님은 때를 따라 사울에게 최고의 인물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복음 전도는 이렇게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네트워크 협력을 통해서 전도가 이뤄집니다. 바나바의 노력으로 사울은 사도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와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하는 야고보(주님의 밑동생)와 만나고, 그들의 협력을 통해서 사도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고 초대 교회 전체에 사도로 인정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어요. 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헬라파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며 변론을 했습니다.(복음 전도 = 변증, apology)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 그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죽이려고 하였듯이, 사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교인들이 성경으로도, 능력으로도 바울을 당해내지 못했고 주님을 시기하고 죽였던 그들이 이제는 사울을 시기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은 형제들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서 탈출하여 가이사랴를 경유하여 고향 다소(터키)로 향하였습니다. 이런 고난의 여정은 사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이어졌습니다.
복음 제시
9. 복음 전도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는 것입니다.(20절) 예수를 그리스도라(메시야, 구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21절) 또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는 것입니다.(27절)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어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라, 성령으로 마리아에게 잉태하여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야 죄가 없는 의인이고, 사람이셔야 희생제물로 피를 흘리셨어요.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충족하셨고, 우리의 완전한 구원자-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예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선언했습니다.(요1:12)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역사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기대
10. 사울이 변화되어 쉬지 않고 예수님을 담대히 전파한 것처럼, 오늘 우리도 이 복음을 전하는데 전력을 다합니다.(전도와 선교) 우리가 제자훈련을 하며 외치는 구호가 있어요.‘복음 전하는 것 외에는 소망이 없다!’우리 삶의 가치와 보람은 이 한 가지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무병장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무병장수하며 모세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훗날 바울은 사랑하는 제자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복음을 전하는데 이런저런 핑계하지 말고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사울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며 31절,“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은 사울과 같은 사람을 변화시켜 복음 전도자로 세우시며 새 역사를 이뤄가셨어요.
11. 부활하신 주님은 복음 전도의 일군들을 다양하게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에 이어 스데반-빌립, 이제 바울까지요. 그밖에 우리가 모르는 헤아릴 수 없는 제자들을 부르고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저와 빛내리교회 성도님들도 모두 한 마음으로 전도와 선교에 참여합니다. 개인전도 하시는 분, 목요일 붕어빵 전도에 함께 하는 분들, 또 선교지에 동행하여 증언하는 분들로 인해서 저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제 다 같이 일어나 찬양하며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전도와 선교에 쉬지 않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도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게 하소서. 침체에 빠진 한국교회도 그러하게 하소서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일어나 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