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생각은 힘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선동과 날조가 가득한 땅,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땅, 감시와 통제가 가득한 땅, 그곳에선 전쟁이 평화였고 자유가 예속이었으며 무지는 힘이 되었다.
1984는 전체주의, 집단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는 비판서이자, 당시 사회주의의 몰락과 지금의 정보화 시대의 병폐를 예언한 예언서이기도 하다. 책 속의 세상은 철저한 디스토피아였다. 사람들은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 사상경찰에게 모든 사생활과 표정, 몸짓 하나하나까지 모두 감시를 받았다. 조금의 반역의 조짐이라도 보이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증발되었고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또한 사람들의 일상은 풍족하지 못했다. 그들이 사는 환경은 황폐했고 먹고 자고 입는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했다. 그러한 일상에서 사람들은 억압받은 감정을 ‘증오의 시간’을 통해 적과 반역자들에게만 표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뇌받은 사람들은 빅브라더를 찬양하고 당을 찬양했다.
그 땅에 없는 것은 사고의 힘이었다. 당은 이와 같은 상황을 유지시키기 위해 무지하고 우매한 사람들을 원했다. 당에서는 계속해서 단어가 절반 이상 삭제된 신어(newspeak)를 쓰게 하였다. 신어는 사람들의 생각과 상상의 폭을 점차 줄여가고 아예 반역을 꾸미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또한 당은 과거의 내부당원인 주인공 윈스턴이 하는 일은 과거에 기록된 것들의 오점을 수정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저 과거의 진실을 필요에 따라 날조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빅브라더의 언급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입맛대로 과거를 바꾸어 버리는 것이 윈스턴의 업무였다. 과거의 정보를 모두 흐려놓는 당의 행동은 사람들의 사고하는 힘을 더욱 저하시켰다. 과거에 대한 기록은 우리가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지식이다. 이것을 날조하는 것은 사람들의 지식을 모두 빼앗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생각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시킨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현재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아무도 ‘why?’ 라는 물음표를 던지지 않았다. 주인공 윈스턴은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무산계급(프롤)에만 있다.” 책 속 에는 계급이 있었는데, 가장 아래에는 노동자 프롤들이, 그 다음은 외부당원, 그 다음은 내부당원, 그리고 그 꼭대기에 빅브라더라는 사람이 있었다.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들은 인구의 85%나 되지만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받지 않는다. 당은 프롤들이 태어날 때부터 우매하고 열등하다고 생각했기에 조금만 선동해도 잘 다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은 그들을 마치 짐승처럼 다루었다. “당의 슬로건에 따르자면 ‘노동자와 동물은 자유로운 존재‘다.“ 윈스턴이 이들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크고 자유로운 무리였기에 그는 프롤들이야 말로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은 힘든 육체노동, 가사와 양육에 대한 걱정, 이웃과의 사소한 말다툼, 영화,축구, 맥주, 그리고 무엇보다 도박이다“ 윈스턴은 프롤들만이 희망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 한다. 그들은 그저 원시적인 애국심만 가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
1984 책을 덮고 외출 준비를 했다. 옷을 입고 거울을 보는데, 나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어디까지 생각하는가?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생각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지금의 우리들도 책 속의 세계와 완전히 다른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가짜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으며 어쩌면 거짓과 선동이 활개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우리들도 프롤들의 모습과 같이 자신의 일상 외에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왜? 라는 질문은 항상 우리를 괴롭히고 성가시게 한다. 특히나 나의 앞에 일이 아니라면 무시하기 쉽다. 하지만 그 물음표를 놓치는 순간 우리는 우리들의 주도권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좀 더 많은 사람이, 좀 더 다양한 곳에서 생각하는 힘을 잃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