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이령"은 1960년대까지 왕래하던 길이었다
한계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용대리를 지나 옛미시령 입구 갈림길에서
약 1.8km정도 가면 지도상에는 “창암”이라고 표기되어있고 “박달나무휴게소”라고 있는데
요즈음 옛미시령 길을 새로 보수하면서
길에서 바로 들어갈 수 없게 펜스를 쳐놓아 밑에 위치한 군부대 앞을 통과해야한다.
(개울을 건너면 군훈련장이 나타나고 이곳 우측 개울옆으로 숲길이 있다)
강원도 북부의 동서를 연결하는 고개하면 "한계령"이나 "미시령", "진부령"이 꼽힌다
모두 험준한 백두대간상의 고개라는 점이 동일한데
동서 고개의 통로가 차량으로 넘을 정도로 도로가
수월해진 것은 역시 1971년 12월 한계령 길이 포장되면서부터다.
미시령은 조선시대 성종때 도로를 개통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워낙 지형이 험해 폐쇄와 개통을 반복해 왔던 곳이고
진부령 역시 이때까지 비포장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포장된 한계령이 각광받게 된 것은 당연하다
그로부터 진부령이 포장된 것은 13년 뒤인 1980년대 중반이고
이 중반이 넘도록 미시령 또한 비포장의 세월을 보냈다.
고성에서 장신리, 진부리를 거쳐 현재 46번 국도를 따라 진부령 너머 원통으로
올 수 있었으나
거리상으로 멀고 송지호에서 토성면 도원리로 남하하여 새이령을 넘었을 것이다
이 옛길을 따라 거진, 고성에서 생선장수, 소금장수들이 넘나들었다
부보상!
우리가 흔히 장돌뱅이라고 알고 있는 그들은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었다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 강력하고 독자적인 경제집단이었다.
부보상은 부상(負商)과 보상(褓商)의 합성어이고
부상과 보상이 취급하는 물품이 각각 달랐다
부상은 나무그릇, 토기 등과 같은 일용품을 지게에 지고 다니는 남자행상이며,
일명 “등짐장수”라고 했고,
보상은 비교적 값비싼 필묵, 금, 은, 동제품과 같은 세공품을 보자기에 싸서 다니는
여자행상이며, 일명 “봇짐장수”로 불리웠다.,
또한
유사시에는 국가에 동원되어 국가가 요구하는 일정한 정치적 역할도 수행하였다.
임진왜란때는 수천 부상이 동원되어 무기를 운반,보급하고,
병자호란때도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가 식량을 운반하고 병사들과 함께 성을 지켰다
이런 부보상이 넘나들던 새이령의 마장터
"새이령"은
"진부령"처럼 지루하지 않고
"미시령"은 짧지만 까탈스럽고
"한계령"은 경관이 좋지만 험악스럽고
"구룡령"은 장쾌하지만 뭔가 무거운 느낌이 드는 반면
"새이령"은 너무도 부드러운 길이다
새이령을 향해 오르는 중간 "마장터"는
한때 40호가 넘는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고
옛날 "마장터"에는
함지박은 만드는 곳도 있었고, 말발굽을 파는 곳
바닷가에서 소금이나 생선을 지고 다니는 상인들이 수시로 넘어 다녀
이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대처로 장 보러 나갈 일이 없었다고 한다
새이령은 총길이 11.5킬로 정도이며
걸어서 3시간에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창바위(현 지도상에는 “창암”이라고 표기)에서 마장터까지 1시간 20분 소요)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완만하고 부드러운 길과 고갯마루까지 가는 동안 12번 정도
자그마한 개울을 이리저리 건너야 한다
숲길을 가면서 우리는 두꺼비를 만났다
길 옆 수풀 속에서 움직임이 있어 들추어 보니 두꺼비였다
두꺼비를 손위에 올려놓고 관찰하다 눈이 마주쳤는데
그렇게 눈망울이 순박할 수 가 없고, 불안해 보이지않는다.
두꺼비와 교감된 것 같은, 짧은 순간이지만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사진을 찍고 놓아주자 우스꽝스럽게 뒤뚱거리며 아주 느리게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작은새이령(소간령) 너머 마장터 가는 낙엽송숲길은 황금빛이다
누군가 이삼십년전에 조림한 곳 같은데 풍광이 이국적이다
이 숲길에 황금바늘들이 떨어져
바닥은 온통 황금빛 고급카펫으로 바닥이 변했고 나무사이로 햇살이 빗살처럼 흐른다
마장터에 이르면
귀틀집 뒤로 낮은 능선이 감싸고 있고
집 앞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이물을 식수로 사용한다
땅은 건조하지 않고 비옥한편이다.
지금도 집주변의 밭에 주로 콩, 옥수수 등을 심고 몇 가지 약초도 심어져있다
산 속으로 피난와서 사는 사람들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얘기들은 어떤 것인가?
산 속의 사는 이의 희망은 나뭇잎처럼 노랗게 발갛게 물들었을 것이다
집터 앞으로 나 있던 길도 자취가 희미하고, 아픔의 흔적도 따라서 희미해졌을까?
현재 마장터에는 백씨성을 가진 60대초반의
외부인이 방문하는 것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뉘앙스를 풍기는 분이 거주하고 있다
백두대간 마지막구간인 24구간 중
큰새이령(대간령)에서 고성군 도원면과 인제군이 만난다
도원리로 하산하는 길은 급경사이며
35분가량 내려오면 문암천을 낀 임도가 나오고
임도따라 4km 정도 내려오면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이다
첫댓글 으와!! 넘 좋은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마치 산이라는 잡지에서 본 듯 하네요. ^.~
아!!!,,,,나도 따라가고파~~
어딜 따라갑니까? 밥 하셔야죠~ 그렇지 않아도 그쪽 산악회에 가입한 모양인데... 그렇게 마당발 노릇하다 발병나는 수 있으니 조심하기 바랍니다~
이 넘, 무지~ 빨빨 거리고 다니는 모양이야! (하긴! 옛날부터 그런 끼가 있었지...) 자연을 맘껏 즐기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