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배로운 섬 진도 진도로 1박2일 일정으로 33명이 함께 떠난다. 아직도 아침저녁은 날씨가 쌀쌀한 편이다. 봄이 언제쯤이나 오려나, 목을 길게 빼고 남녘을 바라보았는데 그새 알게 모르게 꽃이 피고 지며 4월 중순에 접어들었으니 달력을 들여다보면 벌써 봄이 절반은 가고 있는 셈이다. 시내는 이미 꽃이 많이 졌지만 오늘 남쪽으로 떠나도 가는 길목마다 꽃들이 기다리고 있어 꽃길을 함께 갈 것으로 기대해 본다. 진도는 보배 진(珍), 섬 도(島)에서 보듯 보배로운 섬으로 얼마만큼이나 보배로운지 살짝 엿보기로 한다. 진도는 목포에서 대불공단 해남의 화원반도를 거쳐 가는데 불과 500여 미터도 안 되는 좁은 해협으로 우리나라에서 조류의 흐름이 가장 빨라 물살이 회오리치는 곳으로. 평소에도 와랑와랑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울돌목이고 명량이라 할 만큼 여느 바다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이충무공이 비록 군대나 장비는 왜군에 열세지만 자연적 지형을 이용한 전술과 구국의 정신에서 한 수 앞섰던 것이다. 이를 모르고 왜군은 얕잡아보며 성급하게 불나비처럼 달려들었다가 화를 자초한 것이다. 이제는 험한 물결이 몰아치는 바닷길이 아닌 연륙교인 사장교를 편안하게 자동차로 건너면 진도다.『진도(珍島)』하면, 아무래도 맨 먼저 진돗개가 떠오른다. 함경남도 지금은 양강도 풍산의 풍산개와 우수성이 비견되며, ‘경주개 동경이’와, ‘경산의 삽살개’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또한 강원도 정선과 경상도 밀양 등과 같이 수많은 민요 중에 진도아리랑이 떠오른다. 진도아리랑은 서리서리 절절하게 맺힌 한을 거침없이 씻어 내리는 소리로 구슬프면서도 시원하게 풀어낸다. 진도는 서화예술이 발달한 곳이다. 조선후기에 진도출신 ‘소치 허련’은 충청도 예산 출신으로 당대에 최고였던 ‘추사 김정희’에게 서화수업을 받으면서 남종화의 대가로 성장했다. 말년에 고향으로 내려와 집을 짓고 당호를 ‘운림산방’이라고 하였다. 이는 첨찰산을 지붕으로 삼고 사방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고 붙인 이름이다. 아들 ‘미산 허형’ 손자 ‘남농 허건’으로 부족해 5대로 이어지며 한국 남종화의 성지가 되었다. 바다에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하여 농작물이 넉넉하다. 사람 사는 세상 애환을 달래고 돋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술을 찾게 된다. 이에 진도 지방 특유의 홍주가 빚어지고 그 비법이 전해져 왔다. 보리에서 지금은 쌀로 만들어지는 막걸리에 지초(芝草)를 증류과정에서 가미하여 40도가 넘는 백주를 홍주를 탈바꿈한 것으로 400년 애주가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다. 하지만 주민이 한 때 12만 명에 이르렀으나 채 3만도 안 되는 것을 보면 농촌은 농촌이고 어촌은 어촌으로 잡아둘 수 없나 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보릿고개에는 하루가 그렇게 길다고만 하였는데 오늘의 하루는 너무도 짧게 지나가는구나. 대전에서는 이미 끝물인 줄 알았던 벚꽃이 며칠 늦춘 듯 한참 폭죽을 터트리며 환영일색이다. 벚꽃이 어쩌면 이리 발길 닿는 곳마다 늘어서 조용히 손을 흔들고 그로도 부족하여 산자락마다 반반은 됨직하게 수를 놓아 봄을 밝히고 진도를 밝히고 나그네 마음을 밝히고 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준비를 하였는지 감탄을 자아내며 이제 벚꽃하면 이곳 진도를 떠올려도 손색없을 듯싶다. 개들도 지능이 있어 반복해 가르치고 훈련하면 저처럼 묘기를 부리는구나. 아무려면 사람이 개만도 못하겠는가. 뭉클뭉클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없으랴. 여기에 흥을 더 돋우는 것은 진돗개의 400미터 내달리기 경주다. 1,2,3,4,5번 다섯 마리가 선수로 나섰다. 푸짐한 상품도 걸렸다. 오늘은 4번이다. 달려라, 힘껏 내달려라. 목청껏 내질러 본다. 몸만 아닌 마음도 뛰고 상품이 뛴다. 하늘이 뛰고 바다가 뛰고 진도가 뛰고 네가 뛰고 내가 뛰고 오늘 하루가 뛴다. 스트레스가 멀리멀리 달아나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