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Chlna) 산동성(山東省) 가상현 태안(泰安)의
<대문구문화유적지(大汶口文化遗跡址)>는,
고조선(환인 칸국+환웅 배달국+단군 조선국)의 <건국 의궤(建國儀佹)>였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정권은 중화민족의 문명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BC. 4,300~2,500년 경 신석기 후기 시대 동이족(古朝鮮族)이 이룩한,
고조선(환인 칸국+환웅 배달국+단군 조선국)의 문화유적지이다.
<대문구문화(大汶口文化)>는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한민족문명>이
지나대륙에서 꽃을 피운 문화로서 고조선(환인 칸국+환웅 배달국+단군 조선국)의
건국신화가 담긴 '산동성 가상현 무씨사당 석실 상석 그림'(서기1,786년 발견)이 있고,
또, 고조선(환인 칸국+환웅 배달국+단군 조선국)을 상징하는
<아사달(서울)> 상형문양이 세겨진 '뾰쪽밑토기 솥'이 출토되기도 했다.
이 시기 장안(서안), 함양 지역에는 적석식고인돌 피라밋묘(廟) 수십기가 남아있다.
이런 고고학적 유적때문에 양식있는 지나인 역사학자 서량지(徐亮之) 교수
및 지나인 저명 정치인 장계석, 저명 문학평론가 임어당(林語堂) 등
여러 인사들이 산동성의 <대문구문화>는
고대조선(환인환국+환웅배달국+단군조선)의 중심지라고 쓰고있다.
또한 지나(China)의 <상서지리금석(尙書地理今釋)>에서도
산동성 '우이' 는 "동이(고조선)의 중심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진) 산동성 가상현 무씨사당 석실화
- 고조선(환인환국+환웅배달국+단군조선)의 <건국 의궤(建國儀佹)>.
@ 환인환국에 이어 환웅천자가 배달국을 설립하고
3마리 룡(龍)이 끄는 마차를 타고 가는 '행차도(의궤)' 석실화.
(사진) 무씨사당 석실화 고대조선 환웅천자 행차도(의궤)
- 석실화 중 <고대조선-환웅배달국 건국신화>속의 <풍백>, <뇌공> 과 <우사>.
(사진) 또한 <고대조선-단군조선> 건국을 상징하는 '뾰쪽밑토기 솥' - 산동성 출토.
- 아사달(서울) 상형문양이 분명한 '뾰쪽밑토기 솥(한반도에서는 여러기 출토 됨)'
고대조선(환인환국+환웅배달국+단군조선)>의 강역은
'갈석산'이 있는 '태행산맥' 동쪽 지나대륙과,
'대흥안령산맥'의 만주 '지두우'에서 '천산-천해'가 있는 몽골 대평원을 이은
'이무르','사하린' 오호츠크해(옥저해) 연안 및 캄차카 반도에 퍼저 살아왔다.
본래 <한민족(한반도인)>은?
70%산으로 형성된 한반도에서 구석기-신석기 시대부터 산과 강,
2,000여개 자연동굴에서 살아온 한반도 신석기인은,
BC 10,550년에 중부지방 청원 소로리에서 쌀(단립벼) 재배농사에 성공하고,
양식(먹거리)이 풍부해 지니, 인구밀도가 조밀해 지고 있었다.
지구기온의 상승에 따라 그들은 대륙으로 퍼져나간다.
백두산 이두백하, 송화강을 따라 '이무르(아미르)'로 퍼져나간 <한반도인>,
그들 중, 아무르 상류로 올라가 '천산-천해' 몽골평원에 터전을 잡은
범 토템을 가진 예족(濊族) 신조선(辰韓)과,
아무르 하류로 내려가 옥저(오호츠크)해,사하섬,캄차카(담아파)에 터전을 집은
이리 토템을 가진 훈족(흉노족;스키타이족)은 중앙아시아로 흘러가 유목기마민족을 이룬다.
또한, 지나(China)대륙의 황하유역 서안-함양,만주(靑丘) 홍산지역에서
나락(쌀)재배기술을 갖고 간 곰(熊) 토템을 가지게 된, <後에 단군3조선-불조선(弁韓)을 이룬>
웅족(熊族)은, 기원전 4,300년경 산동지방의 상(商) 나라는 한겨레의 <대문구문화>를 이루고
다시 기원전 4,200년경 황하 궁(弓)자 지역 '황하평양'의 은(은허지) 유적을 남긴다.
여기서 <고조선(환인+환웅+단군)>의 역사적 범주는
요하 및 홍산지역 BC 8,000년 이후 <홍산문화>,
섬(島)에서 대륙으로 변한 산동성 우이,청주 지역의 BC 4,300년 경 <대문구문화>,
장안,서안,함양,황하평양 지역의 BC 4,000년경 <황화문화>,
이들 모두가 <고조선(환인환국+환웅배달국+단군조선)문명>으로서,
한민족(동이족)이 이룩한 <한민족문명>이다.
- 이런 이유로 하여 지나(China) <상서지리금석(尙書地理今釋)>에서
산동성 '우이'는 "조선의 중심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사진) <상서지리금석>에 근거한 고대조선(환인칸국+환웅배달국+단군조선)의 영토지도.
또한 지나(China) 학자 '하광악'의 <동이원류사(東夷源流史)>에서
"동이족(고조선족)은 일지기 지나대륙에서 크고 작은 수백게의 부락과 제후국을 세우고
강대한 상(商)나라 왕조를 세웠다.
동이족(조선족)은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감청고원, 연산산맥, 강소성, 섬서성, 감숙성, 신강성, 안휘성, 절강성,
황하 중류와 하류, 회수(淮水) 및 장강(長江) 유역,
또는 발해 연안 및 동북지역, 한반도, 몽고지역을 통치하였다.
그래서 대문구문화, 홍산문화, 천련강문화가
동이족(고조선족)의 대표적 문화이다." 리고 쓰고 있다.
산동성의 <대문구문화> 유적에는
신석기 후기(단군조선)의 무덤, 집터 등, 유적이 남아 있다.
여기 출토 유물에는
항아리 찜기, 채색도기, 삼발 솥, 높은 잔, 마제석기, 골각기 등이 있다.
(사진) 하광악 교수가 집필한 <동이원류사(東夷源流史)>에 나타난 <동이조선>.
(사진) BC. 4,300~2,500년 산동성 <대문구문화> 용산 출토 동이족 유물 토기찜기.
@ 3발은 <단군조선>과 삼신사상(三神;환인-환웅-단군)이 표현된 <대문구문화>
그 용도는? - 막걸리 고두밥, 떡 및 약밥, 소줏고리솥 찜기(수증기 발생기).
(사진) BC. 4,300~2,500년 산동성 <대문구문화> 출토.
- 채색토기, 고대(高臺)토기는 동이족(고조선족)만의 전 유물이었다.
(사진) BC4,300~2,500년경 산동성 <대문구문화> 출토.
- 고대 토기 동이족(고조선족) 유물, 가야토기, 신라토기와 비슷한 종류도 많이 보인다.
- 높은(高臺)토기는 화하족은 지금도 사용하지 않고 동이족(고조선족)만의 전유물이었다.
(사진) BC4,300~2,500년경 산동성 <대문구문화>출토
- 고대 접시 및 삼발제기(祭器) 동이족(고조선족) 유물.
(사진) 서량지 교수의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산동성은 동이족(고조선족) 활동 중심지의 하나.
<동이족(구려,부여,단군,환웅,환인)에 대한 지나(중화)의 많은 자료>
(사진1), 지나(China) 문자학자 "이경재"는 <발해>를 '조선의 내해' <북해>로 표시 했다.
@ 지나(China)역사서 여러 곳에서 <북해>는 조선의 내해로 나온다.
(사진2), 지나 문자학자 "이경재"는 동이족(고대조선) 설(倉颉)은,
고대조선 은(殷) 나라 시조로서 처음 한자를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진3), 지나 사학자 "왕옥철(王玉哲)"은 <중화원고사(中華遠古史)>에서,
@ 한자(漢字)는 "산동성 <대문구문화> 동이족(고조선족)이 만든 문자다" 리고 결론지었다.
(사진4), 명나라 <황명수문비사(皇明修文備史)>는
"동이족의 다른 이름이 '조선'을 비롯해 많은 표현이 있었다" 라고 쓴다.
(사진) 5, 명나라 <황명수문비사(皇明修文備史)>는 동이족의 다른이름이
<조선>을 비롯해 많은 표현이 있었다고 했다.
(사진6), BC.1,600~1,046년 경, 고조선-상(商)나라 시대 지나대륙 동이족 분포지역.
(사진7), 우(禹) 임금에게 바친 구주 그림, <우공구주도(禹貢九州圖).>
@ 청구(靑丘)는 물론, 산동반도에 있던 우이, 청주도 <조선>의 땅이 었다.
(사진8), 원나라 역사(元史), AD.1,300년경 곽수경이 <고려>와의 경계(국경)를 측량할때 기록.
@ <우이>와 <청주> 지역은 '조선땅'이다.
@ 동쪽 경계는 고려의 <요하 압록강>이다.
(사진9), <대문구문화>의 중심지 산동성 곡부는 <공자(孔子)>가 태어난 곳이다.
@ 공자도 <대문구문화> 지역 후손으로서 동이족(고조선족) 후손이다.
@ 사진의 문화(붉은글씨)들은 모두 <한민족문명>으로서 '하강문화'는 물론 '홍산문화' 등이 모두 고조선족(동이족)이 이룩한 문화들 이다. (결론)석기시대(BC 10,000년 경)에서 청동기시대를 거처 철기시대(BC.300~206년 경)까지지나(支那)대륙은 동이족(古朝鮮族)의 <환인+환웅+단군> 천자 임금이 다스렸다.
<한민족문명>를 정통으로 이어받은 우리는 방대한 선조들의 이 역사,
옛 고토와 문화를 수복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