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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 유문(道主 遺文) - 유 시 (遺詩)
유시 (遺詩)
時時?誦空山裏(시시묵송공산리) : 때마다 빈 산 속에서 잠잠히(주문을)외우니
夜夜閑聽潛室中(야야한청잠실중) : 밤마다 잠긴 방에서 한가히(계시를)듣도다.
分明造化成功日(분명조화성공일) : 분명히 조화가 성공하는 날에는
堯舜禹王一切同(요순우왕일체동) : 요·순·우왕과 모두 한결같듯 되리라.
<辛酉<1921>年 9月 19日 致誠後 下敎於通士洞 永慕齊)
戊辰年來開花期(무진년래개화기) : 무진년이 오니 꽃이 피는 시기이고
己巳??滿發期(기사정녕만발기) : 기사년에는 정녕 (꽃이) 만발하는 시기이리라.
庚午辛未無限量(경오신미무한량) : 경오·신미년에는 한량이 없을 것이고
乙丙之間落花期(을병지간낙화기) : 을해·병자년에는 꽃이 떨어지는 시기이리라.
(戊辰<1928>年 秋夕 下敎於泰仁道場)
一幅宇宙余若何 (일포우주여약하) :한 폭의 우주와 나는 어떠하냐?
雨露不二永世定(우로불이영세정) : 비와 이슬이 둘이 아니듯 영세토록 정하리라.
(丁亥<1947>年 元朝 下敎於會文道場)
月出如意山(월출여의산) : 달이 여의산에서 돋아나오니
照得天心明(조득천심명) : 하늘(하느님)의 마음이 밝음을 비출 수 있도다.
(丙申<1956>年 元朝 下敎於寶水道庭)
山盡水廻處(산진수회처) : 산이 다하고 물이(산을 싸고) 도는 곳에
始覺有大道(시각유대도) : 비로소 대도가(여기에) 있음을 깨닫도다.
(丙申<1956>年 5月 初3日 下敎於釜山道場)
甘川本是坎川兮(감천본시감천혜) : 감천은 본래 이것이 감(坎)의 내이니
一六坎水太極動(일육감수태극동) : 1·6 감수에서 태극이 기동하도다.
甘川卽是神川兮(감천즉시신천혜) : 감천은 곧 이것이 신령스런 감(神)의 내임이여
上帝奉乎上帝位(상제봉호상제위) : 상제(옥황상제)가 상제님(구천상제님)을 받들도다.
(丙申<1956>年 5月 初3日 下敎於釜山道場)
去年四月何四月(거년사월하사월) : 지난해의 4월은 어떠한 4월인고?
運來靑龍是四月(운래청룡시사월) : 운이 청룡에게 오는 이 4월이로다.
(丁酉<1957>年 元朝 下敎於釜山道場)
趙鼎山來智異應(조장산래지리응) : 조정산이 오니 지리산이 응하고
一布衣來白日寒(일포의래백일한) : 한 포의로 오니 흰 해(뜨거운 태양)가 차지도다.
(丁酉<1957>年 8月 初 9日 下敎於智異山 雙溪寺)
강륜(綱倫)이 소지(掃地)에 패천만신(悖天?神)하니 혼잡이 기극의(其極矣)라.” : 3강 5륜이 땅을 쓸듯 없어짐에 하늘을 거슬리고 신명을 속이니 혼잡함이 그 지극하다.
願問生方從何地(원문생방종하지) : 원하여 묻노니 살 곳(방법)이 어느 땅으로 부터인가?
鐘聲起處太乙宮(종성기처태을궁) : 종소리가 일어나는 곳인 태을궁이로다.
兩白之運在何處(양백지운재하처) : 양백의 운수는 어느 곳에 있는냐?
四鐘聲振太乙宮(사종성진태을궁) : 네 번의 종소리가 진동하는 태을궁이로다.
(丁酉<1957>年 11月 初 1日 下敎於釜山道場)
聲滿宇宙萬物心(성만우주만물심) : 소리(뇌성)가 우주에 가득함은 만물의 마음이니,
淨吾脫劫所願成(정오탈겁소원성) : 나를 깨끗이 하여 겁액을 벗고 소원을 성취하리라.
(丁酉<1957>年 12月 初3日 初降式後 下敎於大降展 法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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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 유문(道主 遺文) - 유 시 (遺詩)> 라는 타이틀 아래 도주님의 遺詩 가 나와 있다. 도주님이 직접 작성하신 詩 라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 이 詩 들을 남겼는지도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믿을 만하다. <말>이 아니라 <글>이라고 해도 생각하면서 읽으라는 취지의 글은 성사께서도 말씀하셨고, 서전서문에도 나와 있다. 왜냐면 생각에서 생각이 나오기 때문이다.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수운이 작성한 후에, 해월에게 "자신이 쓴 글을 단 한 글자라도 고치지 말고 인쇄하라" 는 말을 남겼다는 수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나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참고1) 서전서문
慶元己未冬先生文公令沈作書集傳明年先生歿 又十年始克成編總若干萬言嗚呼書豈易言哉 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皆載此書而淺見薄識豈足以盡發蘊奧 且生於數千載之下而慾講明於數千載之前亦已難矣. 然二帝三王之治本於道二帝三王之道本於心得其心則道與治固可得而言矣 何者精一執中堯舜禹相授之心法也建中建極商湯周武相傳之心法也 曰德曰仁曰敬曰誠言雖殊而理則一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 至於言天則嚴其心之所自出言民則謹其心之所由施禮樂敎化心之發也 典章文物心之著也家齊國治而天下平心之推也心之德其盛矣乎 二帝三王存此心者也夏桀商紂亡此心者也太甲成王困而存此心者也 存則治亡則亂治亂之分顧其心之存不存如何耳 後世人主有志於二帝三王之治不可不求其道 有志於二帝三王之道不可不求其心求心之要舍是書何以哉 沈自受讀以來 沈潛其義參考衆說融會貫通折敢折衷 微辭奧旨多述舊聞二典禹謨先生蓋嘗是正手澤尙新鳴呼惜哉 集傳本先生所命故凡引用師說不復識別 四代之書分爲六卷文以時異治以道同 聖人之心見於書猶化工之妙著於物非精深不能識也 是傳也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雖未必能造其微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書因是訓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 嘉定己巳三月旣望武夷蔡沈序
경원(慶元) 기미(1199)년 겨울. 선생 문공(朱子를 가리킴)께서 나(채침)로 하여금 『서집전』을 짓게 하시고 그 이듬해에 돌아가셨다. 그 후 10년이 지나 이렇게 편찬하니 그 분량이 약 일만 자에 이른다. 아아! 『서경』을 어찌 함부로 말할 수 있으랴. 두 황제(堯舜)와 세 왕(禹·湯·武)의 천하를 다스리던 경륜이 이 책에 실려 있으니, 나같이 식견이 짧고 지식이 얕은 사람이 어찌 그 심오한 진리를 다 캐낼 수 있으리오. 더구나 천년 뒤에 나서 천년 전(前)의 일을 강구하니,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도다. 그러나 두 황제와 세 왕의 정치는 도(道)에 근본하고 그들의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둔 것이니, 그 마음만 바로 터득한다면 그 도(道)와 정치(政治)를 말할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정일(精一)과 집중(執中)은 요·순·우가 주고받은 심법(心法)이요, 건중(建中)과 건극(建極)은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이 서로 전한 심법이니, 덕(德)과 인(仁)과 경(敬)과 성(誠)이 비록 그 말은 다르나 진리는 하나이며, 그 모두가 이 마음의 오묘한 원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곧 그 마음이 유래한 곳(하늘)을 스스로 경건히 밝히려는 것이요, 백성을 말함에 있어서는 곧 그 마음이 베풀어지는 바를 삼가는 것이니, 예악(禮樂)으로 교화함은 그 마음의 드러남이다. 문물과 제도는 마음의 나타남이요,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으로써 천하를 바르게 함은 곧 그 마음을 미루어 확장한 것이니, 실로 마음의 덕이 성대(盛大)하다 할 수 있으리라.
두 황제와 세 왕은 이 마음을 간직한 이요, 하의 걸(桀)왕24과 상의 주(紂)왕25은 이 마음을 잃은 이요, 태갑(太甲)26과 성왕(成王)27은 겨우 이 마음을 지킨 이이니, 간직하면 다스려지고 잃으면 어지러워지는 것으로서, 치란(治亂)의 나뉨이 이 마음을 간직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후세의 임금으로서 두 황제와 세 왕과 같은 다스림에 뜻을 둔다면 그 도를 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 도를 구하고자 한다면 그 마음을 터득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마음을 구하는 요체로서 이 책(書經)을 버리고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침이 이 글을 읽은 후로 그 심오한 뜻을 헤아리고 여러 설을 참고하여 저절로 이해되고 관통되는 대로 감히 절충하고자 애썼으나 은밀한 말씀과 심오한 뜻은 그 전날 선생께 듣던 바를 많이 이끌어 썼고, 더구나 이전(二典)과 우모(禹謨)는 선생께서 일찍이 바로 하여 그 손때가 새로우니 아! 슬프고 애달프다. 집전은 원래 선생께서 명하신 것이다. 따라서 두루 선생의 설을 인용하였으나 별도로 표시하지는 않았고, 4대의 서를 나누어 열 권으로 하였으니, 글은 때에 따라 다르다 해도 다스림은 같아, 성인의 마음이 글에 나타남이 마치 조화의 묘가 만물에 나타나는 듯하여, 정심(精深)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이 전(傳)이 요·순·우·탕·문·무·주공의 마음 속 세세한 움직임에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분들에 대한 글을 이 전으로 새겨 읽으면 가리키는 바의 뜻을 대강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 기사(1209년) 3월 열엿새(16일)날 무이 채침(武夷蔡沈)이 머리말을 쓴다.28
(참고2)
훈시의 대지
도전님께서
"나의 말을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생활화되도록 하라."
는 말씀이 계셔서, 1980년 1월부터 1984년 3월까지 도인들에게 내리신 훈시를 중앙종의회의 요청에 따라, 교무부가 그 요의(要義)를 정리하여 대순지침(大巡指針)으로 삼은 것이다.
지 침
1. 내가 말한 바를 소속 임원과 도인들을 지도하는 지침으로 삼는 데 중점을 두라.
2. 내가 말한 바를 공적 사항으로 보급하고, 종단 발전의 대목(大目)으로 삼아, 듣지 못한 도인이 있다면 서로 통하여, 승상접하지리(承上接下之理)로 강화해 나가기를 바란다.
3. 도주님 재세 시에 임원들에게 하교하신 후 "나의 말은 문지방을 넘어가기 전에 잊어버리라"는 달관(達觀)하신 말씀을 당위(當爲)로 받아들여 내적으로 관조(觀照)하여 근신절도(謹身節度)하여야 한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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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지침이 인쇄물로 되어 있는 것은 대순진리회 수도인들에게는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대순지침에도 "나의 말을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생활화되도록 하라." 는 말씀이나 "나의 말은 문지방을 넘어가기 전에 잊어버리라" 는 말씀이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丙申
月出如意山(월출여의산) : 달이 여의산에서 돋아나오니
照得天心明(조득첨심명) : 하늘(하느님)의 마음이 밝음을 비출 수 있도다.
(丙申<1956>年 元朝 下敎於寶水道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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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가 일진으로 丙申 이었다. 위의 시는 보수도장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고, 때는 丙申<1956>年 이었다. 이로부터 3년(병신, 정유, 무술) 후에 도주께서 化天 하셨다.
저 위의 해석은 무난하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도주님의 마음을 밝히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2) 月出如意山(월출여의산) : 달이 여의산에서 돋아나오니
전경을 읽다보면 月 은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如意山 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山 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에 비해서 해석은 단조롭기만 하다. 물론 의역은 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참고)
행록 2장 16절 그리고 상제께서 어느 날에 가라사대 “나는 곧 미륵이라. 금산사(金山寺) 미륵전(彌勒殿) 육장금신(六丈金神)은 여의주를 손에 받았으되 나는 입에 물었노라”고 하셨도다. 그리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아래 입술을 내어 보이시니 거기에 붉은 점이 있고 상제의 용안은 금산사의 미륵금신과 흡사하시며 양미간에 둥근 백호주(白毫珠)가 있고 왼 손바닥에 임(壬) 자와 오른 손바닥에 무(戊) 자가 있음을 종도들이 보았도다.
공사 1장 8절 상제께서 임인년 가을 어느 날에 김 형렬에게 “풀을 한 곳에 쌓고 쇠꼬리 한 개를 금구군 용암리(金溝郡龍岩里)에서 구하여 오게 하고 또 술을 사오고 그 쌓아놓은 풀에 불을 지피고 거기에 쇠꼬리를 두어 번 둘러내라”고 이르시고 다시 형렬에게 “태양을 보라”고 말씀하시니라. 형렬이 햇무리가 나타났음을 아뢰니라. 그 말을 상제께서 들으시고 “이제 천하의 형세가 마치 종기를 앓음과 같으므로 내가 그 종기를 파하였노라” 하시고 형렬과 술을 드셨도다.
교운 1장 5절 상제께서 하루는 “교운을 보리라” 하시더니 세숫물을 대하시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을 감고 보라”고 말씀하시기에 모두들 눈을 감고 물을 들여다보니 갑자기 물이 큰 바다가 되고 바닷속에 뱀머리와 용꼬리가 굽이치는지라. 모두들 본 대로 고하니 상제께서 “나의 형체는 사두 용미(蛇頭龍尾)니라” 말씀하셨도다.
제생 29절 그 후 또 김 경학이 병들어 매우 위독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상제께서 경학에게 명하시어 사물탕(四物湯)을 끓여 땅에 묻고 달빛을 우러러보게 하시더니 반 시간 만에 병이 완쾌하였도다.
(2) 照得天心明(조득천심명) : 하늘(하느님)의 마음이 밝음을 비출 수 있도다.
1) 照 의 용례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표현 속에 照 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냥 보는(見) 것이 아니라 비추어( 照) 보아야(見) <색수상행식> 이라는 五蘊 이 모두 空 임을 알아 인간의 모든 고통을 극복했다는 내용의 글인데, 이건 반야심경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 照 라는 글자는 <정신일도> 한 상태임을 전제로 하는 글자다. 照 라는 글자와 같이 붙여쓰는 觀 이라는 글자도 그런 상태에서 보는 것을 의미하는 글자다.
(참고)
교운 1장 30절 상제께서 정미년 섣달 스무사흘에 신 경수를 그의 집에서 찾으시니라. 상제께서 요(堯)의 역상 일월성신 경수인시(曆像日月星辰敬授人時)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일월이 아니면 빈 껍데기요, 일월은 지인(知人)이 아니면 허영(虛影)이요, 당요(唐堯)가 일월의 법을 알아내어 백성에게 가르쳤으므로 하늘의 은혜와 땅의 이치가 비로소 인류에게 주어졌나니라” 하셨도다. 이때 상제께서 일월무사 치만물 강산유도 수백행(日月無私治萬物 江山有道受百行)을 가르치고 오주(五呪)를 지어 천지의 진액(津液)이라 이름하시니 그 오주는 이러하도다.
新天地家家長歲 日月日月萬事知
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至氣今至願爲大降
明德觀音八陰八陽 至氣今至願爲大降
三界解魔大帝神位願趁天尊關聖帝君
서전서문에서도 觀 또는 照 를 해야 알 수 있는 글자들이 있다. 그런 글자들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참고)
慶元己未冬先生文公令沈作書集傳明年先生歿 又十年始克成編總若干萬言嗚呼書豈易言哉 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皆載此書而淺見薄識豈足以盡發蘊奧 且生於數千載之下而慾講明於數千載之前亦已難矣. 然二帝三王之治本於道二帝三王之道本於心得其心則道與治固可得而言矣 何者精一執中堯舜禹相授之心法也建中建極商湯周武相傳之心法也 曰德曰仁曰敬曰誠言雖殊而理則一無非所以明此心之妙也 至於言天則嚴其心之所自出言民則謹其心之所由施禮樂敎化心之發也 典章文物心之著也家齊國治而天下平心之推也心之德其盛矣乎 二帝三王存此心者也夏桀商紂亡此心者也太甲成王困而存此心者也 存則治亡則亂治亂之分顧其心之存不存如何耳 後世人主有志於二帝三王之治不可不求其道 有志於二帝三王之道不可不求其心求心之要舍是書何以哉 沈自受讀以來 沈潛其義參考衆說融會貫通折敢折衷 微辭奧旨多述舊聞二典禹謨先生蓋嘗是正手澤尙新鳴呼惜哉 集傳本先生所命故凡引用師說不復識別 四代之書分爲六卷文以時異治以道同 聖人之心見於書猶化工之妙著於物非精深不能識也 是傳也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心雖未必能造其微於堯舜禹湯文武周公之書因是訓亦可得其指意之大略矣 嘉定己巳三月旣望武夷蔡沈序
2) 得 의 용례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 ―①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②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③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
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④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⑤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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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상장> 에는 得 을 하기 위한 과정이 나와 있다. 붉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의 가장 마지막 글자가 得 이다. 도주께서 말씀하신
<照得> 은 저런 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상장의 저자는 자신이 得한 내용을 붉은 글씨 아래에 토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저런 과정을 온전히 거쳐서 저런 내용을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이 大人 이라는 것이다.
(참고)
공사 3장 41절 상제께서 무신년에 “무내팔자 지기금지 원위대강(無奈八字至氣今至願爲大降)”의 글을 지으시니 이러하도다.
欲速不達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九年洪水七年大旱 千秋萬歲歲盡
佛仙儒一元數六十 三合爲吉凶度數
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 ○○
또 무신년에 이런 글도 쓰셨도다.
一三五七九
二四六八十
成器局 塚墓天地神 基址天地神
運 靈臺四海泊 得體 得化 得明
(3) 天心明
照得天心明(조득천심명) : 하늘(하느님)의 마음이 밝음을 비출 수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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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역으로는 무난하다. 그리고 굳이 의역도 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의역하기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도주께서 꼴랑 해석과 같은 저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런 오묘한 詩 를 남기셨을까?" 라는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왜냐면 수도인들이라면 심우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심심유오> 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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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맨들에게 질문합니다 ~지금 상도에서는 백마라는 닉네임의 선남이 대두목 인가요? 이 백마 선남은 상도에서는 어떤 직위를 갖고있나요? 저는 이분도 선남이라고 불려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신선은 아무나 되는것이 아니잖아요 신선이라고 불리워 진다고 신선은 아니잖아요 그 백마선남이 무엇을 가르쳐 주길래 상도맨들은 뽕 갔는지 참 궁금합니다 백마선남에 대해서 함 자랑거리가 있다면 많이 자랑을 함 해보세요